첼시 FC

2016-17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레스터리버풀맨시티맨유
미들즈브러번리본머스사우스햄튼
선덜랜드스완지스토크아스날
에버튼왓포드웨스트 브롬웨스트 햄
첼시크리스탈 팰리스토트넘


첼시 F.C.
Chelsea F.C.
정식 명칭Chelsea Football Club
별칭더 블루스 (The Blues), 더 팬셔너즈 (The Pensioners)
창단1905년 3월 10일
소속 리그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English Premier League)
연고지런던 (London), 풀럼 (Fulham)
홈 구장스탬퍼드 브리지 (Stamford Bridge)
(42,055명 수용 가능)
라이벌아스널, 풀럼[1], QPR, 브렌트포드, 리즈 유나이티드
구단주로만 아브라모비치 (Roman Abramovich)
회장브루스 벅 (Bruce Buck)
감독안토니오 콘테 (Antonio Conte)
주장존 테리 (John Terry)
부주장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 (Branislav Ivanovic)
공식 웹 사이트[1]
[2]
전세계 스포츠 구단 가치 순위36위[2]
클럽 기록
최고 이적료 영입페르난도 토레스 (Fernando Torres)
(2011년, From 리버풀 FC, 5850만 유로)
최고 이적료 방출다비드 루이스 (David Luiz Moreira Marinho)
(2014년, To 파리 생제르맹, 6300만 유로)[3]
최다 출장론 해리스 (Ron Harris)[4] - 795경기 (1961-1980)
최다 득점프랭크 램파드 (Frank Lampard) - 211골 (2001–2014)
우승 기록
프리미어 리그 (1부)
(5회)
1954-55, 2004-05, 2005-06, 2009-10, 2014-15
챔피언십 리그 (2부)
(2회)
1983-84, 1988-89
FA컵
(7회)
1970, 1997, 2000, 2007, 2009, 2010, 2012
풋볼 리그 컵
(5회)
1965, 1998, 2005, 2007, 2015
FA 커뮤니티 실드
(4회)
1955, 2000, 2005, 2009
UEFA 챔피언스리그
(1회)
2012
UEFA 유로파 리그
(1회)
2013
UEFA 슈퍼컵
(1회)
1998
2016-17 시즌 유니폼
원정서드골키퍼
메인 스폰서유니폼 메이커

모든 UEFA 주관 대회[5]를 우승해본 유일한 잉글랜드 클럽.[6]

EPL 시즌 최다승점[7], 시즌 최다골[8], 시즌 최소실점[9] 시즌 최장기간 1위 기록[10]을 보유한 잉글랜드의 대표적인 강팀.


1 소개

잉글랜드 런던의 풀럼을 연고지로 하는 축구 클럽.[11] 창단 연도는 1905년이며 팀 컬러는 전통적으로 푸른색과 흰색의 조합이다.

구장이 먼저 지어지고 소유권을 구단이 산 케이스다. 왜냐하면 풀럼에 위치한 스탬퍼드 브리지는 원래 풀럼 FC에게 제공될 예정이었으나 풀럼이 이 제의를 씹으면서 막 창단된 첼시에게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 첼시는 런던의 첼시 지구에 위치해 있지 않고 풀럼에 위치해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첼시에게 가지고 있는 부자동네 연고지의 이미지는 원래 풀럼 FC 얘기다. 첼시 FC가 직접 연고로 하는 동네는 그냥 평범한 동네다. 강팀이 된 이후 인기구단으로 발돋움 했으나 악명높은 헤드헌터스도 있고 대체적으로 팬층이 거칠고 서포터층의 주축은 극우 노동계급이다. 파리에서 사고친것도 그 맥락.

2003년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팀 인수 이후부터 막대한 오일(Oil) 머니를 이용하여, 돈을 주고 우승을 산 구단이라는 비판을 듣기도 하지만, 만수르 인수 전 강등권을 맴돌다가 갑자기 우승권으로 도약한 맨체스터 시티[12]와는 달리 꾸준히 중상위권 성적을 내던 클럽이었다. 실제로 로만의 돈이 들어오기 전 시즌에 리그 4위를 기록하여 다음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참가가 결정된 상황이었고, 로만이 투자를 결심한 것도 첼시가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냈기 때문이었다. 또한 에버튼 FC, 아스날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토트넘 핫스퍼, 리버풀 FC와 더불어 EPL 출범 이후 한 번도 강등되지 않은 팀이기도 하다.

다만, 자금력으로 바탕으로 지금의 EPL을 대표하는 구단으로 성장한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 과정에서 구단주의 자금력을 이용해 이적시장에서 선수들을 사오면서 이적료 인플레이션이 일어났으며, 이 사건 이후, 맨체스터 시티, 파리 생제르망 등 oil money를 이용한 부자구단들이 생겨나면서, 유럽 축구의 건전성을 해쳤다는 계기가 되었다는 비판도 있다.

삼성은 파란색의 팀 컬러를 생각해 2005년 부터 첼시를 스폰했는데, 첼시 팬인 여러 대기업 오너들과의 인맥 등을 고려한 결과 첼시가 3시즌(2006/07~08/09) 리그나 챔스를 우승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액의 스폰서 계약 연장을 했다. 그리고 09/10 시즌 첼시가 더블 크라운을 달성하면서 삼성도 기업 이미지 측면에서 많은 이익을 보았고 11/12시즌 첼시의 챔스우승 이후 스폰서 계약 연장을 체결했다. 하지만 삼성의 실적부진으로 마케팅 비용을 줄이기로 했고 14/15시즌을 끝으로 첼시 유니폼에서 삼성 로고는 볼수 없게 되었다.[13] 이후 첼시는 일본의 요코하마 타이어와 계약함으로써 막대한 스폰료를 챙겼는데 5년간 4000만 파운드(720억원)로 프리미어리그 사상 두 번째로 높은 금액이다.[14]


2 스쿼드

2.1 1군 선수 명단

첼시 FC 2016-17 시즌 스쿼드
등번호이름영문 이름포지션국적생년월일신체 조건비고
1아스미르 베고비치Asmir BegovićGK 1987년 6월 20일198cm, 83kg
3마르코스 알론소Marcos AlonsoDF 1990년 12월 28일188cm, 81kg
4세스크 파브레가스Cesc FàbregasMF 1987년 5월 4일175cm, 74kg
5퀴르 주마Kurt ZoumaDF 1994년 10월 27일190cm, 92kg
6나단 아케Nathan AkéDF 1995년 2월 18일180cm, 71kg
7은골로 캉테N’Golo KantéMF 1991년 3월 29일169cm, 69kg
10에덴 아자르Eden HazardMF 1991년 1월 7일173cm, 74kg
11페드로 로드리게스Pedro RodríguezFW 1987년 7월 28일167cm, 62kg
13티보 쿠르투아Thibaut CourtoisGK 1992년 5월 11일199cm, 91kg
14루벤 로프터스-치크Ruben Loftus-CheekMF 1996년 1월 23일191cm, 83kg
15빅터 모지스Victor MosesMF 1990년 12월 12일177cm, 75kg
16케네지KenedyMF 1996년 2월 8일182cm, 77kg
19디에고 코스타Diego CostaFW 1988년 10월 7일188cm, 85kg
21네마냐 마티치Nemanja MatićMF 1988년 8월 1일194cm, 84kg
22윌리안WillianMF 1988년 8월 9일175cm, 75kg
23미키 바추아이Michy BatshuayiFW 1993년 10월 2일185cm, 78kg
24게리 케이힐Gary CahillDF 1985년 12월 19일193cm, 86kg부주장
26존 테리John TerryDF 1980년 12월 7일187cm, 90kg주장
28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César AzpilicuetaDF 1989년 8월 28일178cm, 75kg
29너새니얼 찰로바Nathaniel ChalobahMF 1994년 12월 12일185cm, 75kg
30다비드 루이스David LuizDF 1987년 4월 22일188cm, 84kg
34올라 아이나Ola AinaDF 1996년 10월 8일175cm, 65kg
35찰리 무손다Charly Musonda JrMF 1996년 10월 15일173cm, 66kg
37에두아르두EduardoGK 1982년 9월 19일187cm, 84kg
41도미니크 솔랑케Dominic SolankeFW 1997년 9월 14일185cm, 75kg
출처 : 첼시 공식 웹사이트 , 마지막 수정 일자 : 2017년 2월 1일


2.2 임대 선수 명단

Chelsea FC 2016-2017시즌 임대 선수 명단
임대 이적 팀이름영문이름포지션국적생년월일
AC 밀란마리오 파실리치Mario PasalicMF 1995년 2월 9일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안드레아스 크리스텐센Andreas ChristensenDF 1996년 4월 10일
SBV 피테서루이스 베이커Lewis BakerMF 1995년 4월 25일
SBV 피테서나단NathanMF 1996년 3월 13일
SBV 엑셀시오르다닐로 판티치Danilo PanticMF 1996년 10월 26일
로더럼 유나이티드이사야 브라운Isaiah BrownMF 1997년 1월 7일
SBV 피테서매튜 미아즈가Matthew MiazgaDF 1995년 7월 19일
그레미우왈라스WallaceDF 1994년 5월 1일
풀럼 FC토마스 칼라스Tomás KalasDF 1993년 5월 15일
알라니아스포르케네스 오메로우Kenneth OmeruoDF 1993년 10월 17일
무스크론-페루웰츠마테이 델라치Matej DelacGK 1992년 8월 20일
그라나다 CF빅토리앙 앙반Victorien AngbanMF 1996년 9월 29일
VV St. 트루이덴크리스티안 쿠에바스Cristian CuevasDF 1995년 4월 2일
인디펜디엔테 산타페주앙 로드리게스Joao RodríguezMF 1996년 5월 19일
크롤리 타운알렉스 데이비Alex DaveyDF 1994년 11월 24일
던캐스터 로버스조던 휴튼Jordan HoughtonMF 1995년 11월 9일
AFC 본머스나단 아케Nathan AkéMF 1995년 2월 18일
유벤투스 FC후안 콰드라도Juan CuadradoMF 1988년 5월 26일
풀럼 FC루카스 피아존Lucas PiazónMF 1994년 1월 20일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찰리 무손다Charly MusondaMF 1996년 10월 15일
크리스탈 팰리스 FC로이크 레미Loïc RémyFW 1987년 1월 2일
그라나다 CF제레미 보가Jeremie BogaMF 1997년 1월 3일
왓포드 FC케네지KenedyMF 1996년 2월 8일

임대 선수만 38명 다 적기에도 벅차다

3 역사

첼시 FC의 84년간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비디오 (1989)

첼시 FC의 92년간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비디오 (1997)


3.1 창단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소속 프로 축구 구단으로 1905년 3월, 라이징 선(해오름)이라는 술집에 모인 여러 주주들이 모여서 만든 게 시초이다. 당시 현재 첼시의 홈구장인 스탬포드 브릿지의 부지를 사들인 거스 미어스는 풀럼 FC에게 구장을 대여해주고 그 대가로 수익을 얻고자 하였다. 그러나 당시 풀럼의 회장이던 헨리 노리스와 그 측근이 이를 거절하였고, 이에 미어스의 친구였던 프레드릭 파커의 설득에 따라 창립멤버와의 회의를 통해 제일 유력했던 켄징턴FC 라는 이름으로 창립 하려 했으나 "안 멋있다" 라는 이유로 첼시 FC로 결정되었다.

2부 리그 소속으로 첫걸음을 내딛은 첼시는, 조지 힐스톤, 지미 윈드리지, 닐스 미들보 등의 슈퍼스타를 앞세우며 1906/07 시즌 준우승을 거두며 1부리그로 올랐고, 다음시즌 13위라는 성적을 거두며 안정적으로 1부 리그에 정착했다. 창단 10주년인 1914/15 시즌 FA 컵 준우승을 거두었고, 1919/20 시즌에는 리그 3위라는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후 꾸준히 중상위권을 넘나드는 팀으로 자리잡았으나 2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구단을 해체할 위기에 놓였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1952년, 아스날 FC의 레전드이자 잉글랜드 국가대표 공격수 출신인 테드 드레이크가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테드 드레이크는 축구적인 면 외에 구단의 전반적인 현대화 작업을 진행시켰는데, 우선 스타 플레이어 영입에만 의존하던 어? 기존 방침에서 벗어나 켄 암스트롱, 존 해리스 등 전도유망한 유망주들을 수집하고, 유스시스템을 재정비해 팀의 기초를 탄탄히 다지기 시작했다. 이 같은 드레이크 감독의 노력에 힘입어 첼시는 1954/55 시즌, 드디어 처음으로 리그 우승을 거둔다. 하지만 UEFA 챔피언스 리그 전신인 유러피언 컵 1회 대회(1955년)는 당시 대회 자체를 무시하던 FA의 압력으로 참가를 포기해야 했다.

1961년에 토미 도허티가 새 감독으로 취임한 뒤 론 "초퍼" 해리스, 피터 오스굿 등을 축으로 1964/65시즌, 2개 대회 결승에 진출하며 리그 우승, FA컵 우승, 리그 컵 우승이라는 트레블을 달성할 기회를 얻었으나, 리그 컵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이후에도 데이브 섹스톤 감독 시절에 1969/70 시즌 다시 한번 FA 컵 우승을 거두었고, 1970/71 시즌에는 유로파리그의 전신인 위너스 컵 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2-1 승리를 거두며 우승을 거머쥐었다.

1974년에 섹스톤 감독이 해임된 이후 팀은 쇠퇴해 오다가 70년대 후반에 첼시는 스탬포드 브릿지의 재건축으로 인해 구단의 재정이 심각하게 흔들렸고, 팀의 스타 플레이어들을 매각하면서 성적은 곤두박질 쳤다. 이후 1978/79 시즌에는 1부리그에 참가한 이래 처음으로 2부리그로 강등되었으나, 1981년에 존 닐 감독이 부임한 뒤 이듬해에 켄 베이츠가 구단주로 취임하여 1983/84 시즌 2부리그 우승컵을 거머쥐며 다시 한 번 1부리그로 승격하게 되었다.

그러나 1부리그로 승격한 첼시는 1987/88 시즌 다시한번 강등되고, 이듬해인 1988/89 시즌 또 2부리그 1위를 차지해 1부리그로 승격한다.

프리미어 리그 개편 이후에도 중상위권을 유지하며 1994년에는 FA컵 결승에 진출하였으며, 1996년 발롱도르 컨덴터인 뤼트 휠릿이 선수 겸 감독으로 취임하여 1996/97 FA컵에서 우승을 거두었다. 지금까지도 첼시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취급받는 지안프랑코 졸라가 영입된 것도 이 시기이다. 이후 지안루카 비알리가 팀을 맡아 1997/98 시즌에는 2번째 컵 위너스 컵 우승 및 UEFA 슈퍼 컵 우승까지 차지했다. 1999-2000 시즌에는 리그에서 맨유를 5:0으로 이기기도 했으며 그 해 챔피언스 리그 8강까지 진출(덜미를 잡은 게 FC 바르셀로나)했고 5, 6위를 꾸준히 유지하며 중상위권 팀으로 저력을 보였고 2002-03 시즌에는 4위를 차지하며 4강에도 진입했다.

이 시절 구단주인 켄 베이츠는 1982년 첼시가 가진 빚을 갚고 1 파운드라는 상징적인 값을 내며 구단을 샀다. 그의 투자로 중하위에 맴돌던 첼시는 중상위권에 들면서 안정적인 성적을 내긴 했으나 그도 결국은 많은 빚을 져야 했고 결국 2003년 로만 아브라모비치에게 구단이 진 빚을 청산함과 동시에 구단을 팔고 만다. 참고로 베이츠는 첼시를 판 돈으로 2005년 리즈 유나이티드를 샀지만 3부 리그로 강등당하는 일을 겪게 되었고, 결국 2013년에 바레인의 사업가 살라 누루딘에게 팀을 매각하고 구단주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

EPL 출범 이후 간간히 챔스에 출전하기도 하는 등 중상위권 팀이었으나 로만 아브라모비치에게 인수 될 즈음에는 챔스에 단골 출전하게 되면서 빅4의 일원으로 자리잡으면서 유럽의 강호로 평가받을 만큼 강호의 이미지를 굳힌 팀으로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돈 발라서 급격히 강해진 하위 팀'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저 그런 중위권 팀이었으나, 90년대 중반, 팀을 괴롭히던 고질적인 경기장 부동산 문제가 해결되고 대대적인 투자로 강팀으로 탈바꿈했다. 이 시기에 팀 감독까지 했던 비알리, 디 마테오, 첼시의 레전드로 기억되는 졸라 등 이탈리아 출신의 선수들[15]과 98 월드컵 우승의 주역인 드사이, 데샹, 르뵈프, 프티 등의 프랑스 커넥션, 그리고 네덜란드 출신으로 프리미어 리그에서 두 번이나 득점왕을 차지한 하셀바잉크[16], 오베르마스와 더불어 윙을 보면서 폭발적인 돌파력을 보여준 젠덴 등을 영입했다. 결국엔 부채를 껴안았으나 극적인 챔피언스 리그 진출과 결국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인수로 위기에서 벗어났다.[17]


3.2 로만, 그리고 주제 무리뉴의 등장

2003년 6월 로만은 당시의 첼시의 빚까지 모두 청산하고 첼시를 인수한다.[18] 이후 로만은 한 시즌이 지난 03/04 시즌 후 감독이었던 라니에리(전 인테르 감독, 현 레스터 시티 FC 감독)를 03/04의 리그 2위, 챔스 4강을 이끌었으나 우승을 원했기에 경질하고, 04/05 시즌에 FC 포르투의 03/04 시즌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주제 무리뉴를 감독으로 영입한다. 이와 함께 로만의 본격적인 투자가 시작되었다. 당시 첼시의 이미지가 지금처럼 유럽의 강호가 아니었기에 막상 당대 최고의 스타를 영입하지는 못했고[19], 대부분 스타 선수가 될 만한 잠재력을 가진 선수들을 영입했다.

무리뉴가 영입했던 선수들은 크게 두 분류로 나뉘는데, 전자는 포르투에서 함께 뛰었던 선수들이었으며(히카르두 카르발류, 파울루 페헤이라), 후자는 프랑스 리그등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이던 선수들이었다.(페트르 체흐, 존 오비 미켈, 디디에 드로그바, 마이클 에시엔 등) 이 당시 대표적으로 비난받은 영입 대상이었던 디디에 드록바마이클 에시엔의 경우 첼시를 떠난 이후 그들의 평가는 첼시에서 최고의 선수중 하나로 손꼽힌다. 체흐 역시 원래는 주전이었던 쿠디치니의 백업 요원으로 영입한 것이지만 상당히 뛰어난 모습을 보이면서 주전경쟁에서 앞서는 모습을 보여줬다. 다만 레딩 전에서의 악몽같은 부상으로 지금은 폼이 많이 떨어졌다가 서서히 폼이 올라오더니 11/12시즌 첼시의 챔스 우승 체흐가 없었으면 불가능 했다고 할만큼 대단한 활약을 보여줬고, 아스날로 이적한 지금에도 여전히 유럽전체 다섯 손가락 내에는 드는 실력이다.

다만 항상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아틀레틱 빌바오의 왼쪽 풀백 아시에르 델 오르노의 경우 무리뉴가 완벽한 자신만의 포메이션 구축을 위해 야심차게 영입한 케이스이지만 이렇다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발렌시아 C.F.로 가버렸다. 존 오비 미켈과 살로몬 칼루의 경우에도 영입을 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미켈의 경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영입에 관해 마찰을 감수하고 질렀음에도 현재까지는 기대 이하. 미켈은 그래도 나름 성장을 했지만 칼루는 냉정하게 말해 서브 이상의 카드로써는 의미가 없는 상황.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지네딘 지단 이후 빠지고 있던 이적 시장의 거품을 다시 불러일으켰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후 미하엘 발락이나 안드리 셰브첸코 같은 당대 최고의 스타를 영입하기도 했으나 이건 구단주의 입김이 작용한 영입이었다.

이런 행태에 알렉스 퍼거슨 맨 유 감독은 "돈으로 성공을 살 수 없다."라면서 첼시의 돈지랄을 비난했고, 이에 당시 감독이었던 무리뉴는 "퍼거슨의 말이 맞다. 난 맨유의 10% 예산인 FC 포르투를 이끌고 맨유를 꺾었다. 그것이 그 증거이다."라고 응수했다.

어찌됐든 간에 이런 영입을 통해 무리뉴 사단은 04-05 시즌 29승 8무 1패 승점 95점이라는 EPL 역대 최고 승점을 따내며 우승. 참고로 1패는 맨 시티에게 0:1로 패배한 기록이다.[20] 막대한 자금을 써서 대개혁을 실행한 첼시에게 처음에 쏟아진 것은 돈 처바른 구단이라는 부정적인 시선이었으며, 첼시가 이후 프리미어 리그와 챔피언스 리그에서 보여준 팀 컬러[21]은 그 비난을 더더욱 가중시켰으나, 무리뉴는 그딴거 몰라라는 듯 승승장구했다.

특히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FC 바르셀로나와의 16강 2차전에서 무리뉴 사단의 팀 컬러가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는데, 전반에만 무려 3골을 빠른 역습과 세트 피스로 집어 넣었다. 각각 전반 8분, 17분, 18분에 득점하여 단숨에 분위기를 가져오는 듯했으나 당시 외계인으로 이름을 날리던 호나우딩요가 팀의 부진 속에서도[22] 2골이나 넣으며 추격했다. 그러나 후반 테리의 헤더로 점수차를 더 벌린 첼시가 바르셀로나를 4:2로 박살내고 8강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시 베니테스가 이끌던 리버풀 FC에게 패배하였다. 그 외에 리버풀과의 칼링 컵 결승전에서 제라드의 충격적인 자책골과 함께 분위기를 되돌리며 2-3으로 역전, 우승했다.

다음 시즌인 05-06 시즌에도 리그 우승을 이끌어냈으나, 동시에 팀 내 잉여 선수의 정리도 이때 상당히 이루어졌다. 구드욘센, 크레스포, 데미안 더프, 델 오르노, 갈라스 등이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팀을 떠나거나 다른 선수와 트레이드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갈라스는 현금과 함께 아스날 FC의 애슐리 콜과 트레이드되었는데, 이 상황에서 불법 접촉 논란이 있었으며 일부 사실로 나타나는 등 잡음이 이끌었다. 갈라스는 이후 자서전에서 무리뉴 감독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또 바르셀로나와 16강에서 만나 이번에는 홈에서 어이없는 1-2 패배, 원정 1-1 무승부로 떨어지고 만다.

06-07 시즌부터는 로만의 영입 의사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우선 애슐리 콜을 불법 접촉 논란까지 나올 정도로 집요하게 노려 겨우 영입했지만 덕분에 튼튼했던 수비진이 혼란을 겪었으며, 수비진은 센터 백이 세 명 밖에[23]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발락과 셰브첸코를 영입하는 데에 이적료를 낭비하여 팀의 정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10/11 시즌과 비슷하지 않은가?) 그 뿐만이 아니라 레딩전에서 체흐가 끔찍한 부상을 당해 사실상 시즌 아웃에 가까울 정도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또한 야심차게 영입한 발락과 셰브첸코는 부진을 보였으며, 특히 셰브첸코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발락과 달리 리그 적응에 실패하여 전력 외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24][25] 뿐만 아니라 그나마 없는 센터 백들이 줄부상당하고, 불라루즈가 외계인 막기 빼고 미친 듯한 부진을 보이며 삽질을 하자 결국 맨 유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리그 3연패에 실패한다. 또한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대장정 끝에 다시 한번 4강으로 들어섰으나 다시 만난 리버풀 FC에게 패하고 만다.[26] 그러나 FA 컵과 칼링 컵 우승[27]을 거머쥐었으며 드록바는 포텐이 뻥뻥 터져 득점왕까지 석권했다. 이로써 무리뉴는 3시즌간 5개 대회 석권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것이다.

그러나 무리뉴의 축구는 로만이 원했던 공격적인 축구와는 정반대인 탄탄한 수비를 기반으로 한 전술을 사용했다. 04-05 시즌을 보더라도 득점량은 2위였던 아스날이 87골로 첼시의 72골에 비해 15골이나 많았지만 실점량이 36실점으로 첼시의 15실점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던 걸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무리뉴의 축구가 10백 축구였던 것은 아니다. 당시 더프-드록바-로번의 3톱은 가히 살인적인 공격력을 선사했다. 게다가 로만이 궁극적으로 원했던 챔피언스 리그의 우승에는 번번이 실패하자 로만은 점차 무리뉴의 축구에 불만을 표시한다. 3년동안 최고수준의 성적을 냈음에도.

07-08 시즌이 시작하자 첼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게다가 챔피언스 리그 조별 예선에서도 로젠보리와 비기는 듯 불안불안한 행보를 보인다. 이를 핑계로 로만은 무리뉴의 상호 계약 해지, 사실상 해고를 선언한다.


3.3 무리뉴가 떠난 후

무리뉴가 떠난후 첼시의 레전드 클로드 마켈렐레는 후에 프랑스에서 발간된 자신의 자서전에서 첼시에서 조세 무리뉴 감독을 쫓아낸 장본인은 존 테리라는 폭탄 발언을 했다. 테리의 불만으로 인해 무리뉴 감독은 첼시를 떠나야 했다 며 당시 사건의 내용을 폭로했다. 그는 "나는 당초 무리뉴 감독이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테리가 피터 케년 첼시 이사에게 무리뉴 감독과의 불화를 이유로 이적을 요구하자,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직접 나서 무리뉴에게 첼시를 떠날 것을 명령했다"고 전했다.

첼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주제 무리뉴 감독이 로만 아브라모비치와의 불화 때문에 경질당하고 당시 코칭 스탭이었던 이스라엘 국적의 아브람 그랜트 감독을 세웠지만 준우승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불운을 맛봤다.[28]

특히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첼시는 그야말로 뼈에 사무치는 패배를 당했다. 호날두의 선제골과 램파드의 전반 종료 직전 동점골로 1-1이 되어 120분 연장혈투 끝에 승부차기 까지 간 첼시는 호날두의 승부차기 실축으로 분위기가 가져오는 듯 싶었으나 존 테리의 불운한 실축[--대단한 선택...--], 그리고 새로 영입한 니콜라 아넬카의 슛이 반데사르에게 막히며 승부차기에서 패배, 결국 우승 컵을 맨유에게 잃고 말았다.

감독이 거의 무명(이스라엘에서야 유명하지만 국제적으론 그게 누구야? 소리 듣던 인물)이었단 점을 감안해보면 준우승은 절대로 나쁜 성적(되려 무리뉴도 못해 내던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도 첼시 역사상 처음으로 이룩했다.)이 아니다. 허나 이 때 선수들간의 분위기가 안 좋아지기 시작했고 스티븐 클라크 코치도 홀대를 받기 시작하는 등 로만의 네덜란드 커넥션이 점점 영향력을 대놓고 행사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하지만 로만에 의한 낙하산(첼시를 이끌던 실력을 봐도 능력치는 꽤 있음에도, 같은 유태인인 로만 구단주의 낙하산이라는 오명은 그를 괴롭혔다.)이라고 불리던 그랜트도 결국 경질[29]당하고 남은 연봉을 받기 위해 고소까지 하고 이래저래 안습이 되고 말았다.


3.4 첼시 FC/08-09 시즌

3.4.1 스콜라리 하의 첼시

그랜트의 후임으로 들어온 감독은 명감독이라 칭송받던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 다만 스콜라리 감독 체제는 시작부터 흔들린다. 대표적인 사례가 거의 기정사실화되어 가던 레알 마드리드의 호비뉴 영입 실패. 게다가 폼이 떨어진 데쿠를 영입해서 거의 매 경기 주전으로 돌리는 바람에 라커 룸 분위기도 어수선 해지고, 팀의 살림꾼이던 에시엔이 한동안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면서 초반의 상승세를 이끌어 가지 못하고 시즌 도중 경질당하고 말았다.

재밌으면서도 강력한 축구를 원하던 로만 구단주에 맞추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겠지만, 기존의 스쿼드에서 별로 변경된 것도 없으며 스콜라리 입맛에 맞는 스쿼드가 아님에도 갑작스런 스타일 변경을 시도한 것이 문제였던 듯. 주전급 선수로는 데쿠와 보싱와 정도가 영입되었으나, 이는 그 당시 스콜라리 감독이 추구하려던 포메이션에선 반드시 영입해야 할 선수는 아니었다. 스콜라리 감독은 데쿠를 플레이 메이커로 기용하고 호비뉴를 세컨드 스트라이커 혹은 윙포워드로 기용하는 시스템으로 기민하고 공격적인 포메이션을 구상했던 듯 하나 호비뉴의 영입 실패로 인해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

하지만 스콜라리 감독 또한 팀내 분위기를 장악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고(체흐, 발락, 드록바 등의 반발) 전술적으로도 특색이 없거나 다소 의아한 용병술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런 어수선한 분위기를 반영한 듯 첼시의 자랑이던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86경기 무패라는 대기록이 08-09 시즌 프리미어 리그 9 라운드에서 리버풀에게 패배하며 깨지고 리그 내 성적도 서서히 내려가게 되었다.


3.4.2 거스 히딩크 하의 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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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평소 친분이 있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을 설득해 러시아 대표팀 부임 중 임시로 데려오게 된다.

'히딩크 매직' 이라는 별명답게 3개월 남짓한 짧은 시간에도 리그 10승 1무 1패 , 챔스 4강, FA 컵 우승 등 많은 성과를 일궈냈는데,

우선 스콜라리 감독시절 '드록바와 아넬카는 물과 기름이라 서로 공존 할 수 없다' 면서 드록바의 부상 이후 아넬카만을 고집해왔는데 히딩크는 훈련에서 과감히 드록바-아넬카 조합을 시도하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결국 아넬카가 수비진을 흔들고 드록바가 마무리 함으로써 공존시키는데 성공한다.

말루다는 자신을 영입한 무리뉴가 경질되는 통에 이리 굴려지고 저리 굴려지다 폼을 잃어버려 시즌 초반 내내 부진했으나 히딩크의 지도 하에 리옹시절 폼을 다시 되살려 후반기 최정상급의 윙어로 거듭나 말루다-아넬카-드록바 라인의 폭발적인 공격력을 만들어내었다.[30]

또한 램파드는 월드클래스급의 미드필더로써 재능을 만개하여 중요한 경기마다 결정적인 골과 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팀에 기여했고, 무언가 램파드와 호흡이 2% 부족하던 발락의 위치를 재조정하는 작업 끝에 드디어 에시앙-램파드-발락 3미들이 조화를 이루어 에시앙-마케렐레-램파드의 뒤를 잇는 첼시 특유의 단단한 중원을 가동시키는데 성공한다.

거기에 보싱와 등이 가출이나 불안한 수비능력으로 오른쪽 풀백이 구멍이라는 지적을 받자, 영입하고 어디에 내팽겨놓은(..) 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를 중용하며 단숨에 구멍을 메꾸고, 이바노비치 또한 리버풀과의 챔스 8강전에서 헤딩으로만 2골을 신고하며 믿음에 보답한다. 그밖에도 스콜라리 체제하에서 잊혀졌던 알렉스의 재발견, 칼루의 수퍼 서브로서의 좋은 활약 등이 겹치며 첼시는 떨어졌던 리그 순위도 끌어올리고 FA 컵도 결승전에 진출했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16강에서 이탈리아의 강호 유벤투스를 꺾고[31] 8강에서 리버풀을 만났는데 이 경기는 그야말로 첼시 경기 중 백미 중의 백미. 1차전을 지옥의 안필드 원정에서 이바노비치가 머리로만 2골을 만들어내는 대활약으로 3:1 역전승을 이루어낸 첼시는 2차전 홈경기에서는 전반에만 2골을 먹고 한 골 더 먹으면 탈락할 지경까지 끌려다녔으나 후반전 드록바, 알렉스, 램파드의 골로 3:2로 다시 앞서나갔다. 그러나 리버풀의 맹공으로 2골을 더 먹어 3:4로 다시 한 골 차 승부가 되었다.[32] 그 와중에 아넬카의 돌파와 함께 이은 땅볼 크로스를 램파드가 환상적인 슛으로 집어넣어 기어이 승부에 쐐기를 박으며(그런데 리버풀도 잃을게 없었는지 그에 굴하지 않고 두 골차가 되었는데도 미친듯이 쏴제꼈다) 1,2차전 합계 7:5로 4강에 올라간다.[33]

4강에서는 최근 무적이라고 까지 불리우는 FC 바르셀로나와 만나게 되었는데 1차전 캄프 누 원정은 0:0 무승부로 끝냈다.

참고로 경고 누적으로 주전 왼쪽 풀백 애슐리 콜이 출전하지 못하게 되자 대다수의 팬들은 이제 오른쪽 공격수로 나서는 메시에게 털리겠다..고 걱정했지만 히딩크는 보싱와가 잘 막아줄 것이라며 인터뷰하였다. 그당시 보싱와의 주 포지션은 오른쪽 풀백에다가 자리도 제대로 잡지못하고 서브 신세를 지고 있는데 무슨 수로 메시를 막겠나 싶었는데 다음날 정말 놀랍게도 메시를 지웠다.[34] 이 날 경기는 보싱와가 MOM을 받았고 팬들은 메시에게 밥 먹다 체했냐며.. 물론 당시 바르셀로나 공격수로 나온 에투가 너무 삽질한 것도 있지만 1대1로 안정적이게 잘 막아줬다. 지금도 메시 네스타 얘기 등이 나오면 보싱와도 같이 껴서 간간히 회자되는 경기이다.

이어진 2차전 홈경기, 전반 에시앙의 아름다운 발리슛으로 선제골을 얻어내지만 후반 종료직전, 이니에스타의 골로 1:1 무승부로 경기는 끝났고 원정 득점 우대 원칙에 따라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다. 다만 바르셀로나와의 4강 2차전 홈 경기의 경우 워낙에 오심이 판을 쳤던 경기였던지라 이것은 히딩크 감독과 첼시 선수들의 역량으로는 타개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날 경기에서 첼시가 받아야 할 PK만 적어도 4개정도였으며, 맨 마지막에는 주심이 보는 가운데에서도 대놓고 발락의 슛을 막는 핸드링 반칙을 했지만 휘슬이 안 불리는 등 X판이었다. 또한 아비달이 파울을 하지 않았는데도 퇴장을 내리는 병크까지 발생. 결국 1:0으로 앞서고 있던 상황에서 인저리 타임에 이니에스타의 동점골로 탈락하게 된다. 경기 직후 선수들은 분노하여 주심에게 강하게 어필했고, 드록바는 폭언[35]으로 징계를 받았다. 오브레보는 팬들에게 맞지 않아서 망정이지. 히동구 형님의 토너먼트 4강 징크스는 여전한 듯..

리그는 결국 3위로 마쳤지만 챔스 32강 직행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만족하는 중. 유종의 미로 FA 컵 우승도 했다.[36]

이때도 우승컵을 들고있는 센터싱와

이로써 팬들이나 선수들 모두 히딩크의 첼시 잔류를 바랐다. 하지만 히딩크는 이번 시즌이 끝나면 러시아 대표팀으로 돌아간다고 확고하게 말해왔었고 결국 잔류하지 않았다. 그 후 감독은 카를로 안첼로티.

사실 히딩크 감독은 특별한 전술적인 변화나 선수층의 변화를 주지 않았으나 특유의 카리스마와 심리술로 첼시 선수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실제로 히딩크 시절 첼시의 전술을 무리뉴 시절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드록바가 말하길, 히딩크가 선수들과의 미팅에서 가장 처음으로 한 말이 '너희들은 감독이 없어도 이길 수 있는 선수들이다. 나는 신경 안쓸테고 너희들도 신경 쓸 필요 없으니 그냥 니네가 하고싶은대로 해라'였다고(…). 결국 심리적인 변화가 경기력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 된다.

3.5 첼시 FC/09-1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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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 역대 최소 실점 팀[37]이 역대 최다 득점으로 우승을 거머쥐다

히딩크가 사임한 후, AC 밀란 전 감독인 안첼로티 감독을 후임으로 내정하고 영입 시장을 맞이하게 되었다. 아마 예상하기를 안첼로티 감독은 챔피언스 리그에 강한 감독이기에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위해 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리그를 먹었네?

로만 제국이 되기 전에도 주전 선수들의 대부분이 비잉글랜드계 선수들이라서 용병 구단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위에도 언급했듯 이탈리아계 이주민이 많은 지역이라 이탈리아 선수들(비알리, 디 마테오, 졸라, 쿠디치니, 암브로시오), 감독들이(비알리, 라니에리, 안첼로티) 비중이 크거나 많았던 팀이 첼시이다. 현재 조 콜과의 재계약 불발로 잉글랜드의 주전급은 09/10 시즌 이후로는 세 명이라 할 수 있다(램파드, 애슐리 콜, 존 테리). 솔직히 좀 적은 편이긴 하다. 대표적인 선수로 지안프랑코 졸라(現 알 아라비 SC 감독)를 꼽을 수 있다.

현재 팀에서 러브 콜을 넣고 있는 선수로는 프랑스의 현재 희망과도 같은 선수라고 할 수 있는 FC 바이에른프랑크 리베리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세르히오 아궤로, 그리고 AC 밀란안드레아 피를로, 알렉산드르 파투 등이 있다. 제각기 현재 보여주고 있는 클래스가 보장된 선수들이자 각 팀의 기둥과도 같은 존재들이기에 이번 이적 시장에서 어떻게 선수진을 보강할 것인지가 매우 주목된다.

2009-2010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에서 2007년까지 첼시를 지휘한 주제 무리뉴가 이끄는 인테르와 만나 관심을 모았는데 2전 전패, 스코어 합계 1-3으로 패했다.

충격의 맨시티전 4-2 패배 이후(한 경기를 덜 치렀지만) 맨유에게 리그 선두를 내주고, 챔피언스 리그까지 탈락하자, 안첼로티 감독의 지도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현재 첼시의 가장 큰 문제는 현실과 FM을 착각하는 구단주와 무리뉴의 그늘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선수진. 무리뉴가 떠나고 그랜트-스콜라리(히딩크는 임시직이었니 제외)-안첼로티를 거쳤음에도 여전히 첼시의 주축은 무리뉴 체제에서 성장했거나 중용된 선수들이다. 다만 맨시티의 물량 공세 덕인지 안첼로티 체제에는 특히 10-11 프리 시즌에는 현실 FM과 돈지랄을 자제하고 안첼로티의 자율을 배려하다 못해 주전급 선수를 별다른 보강없이 팔고있다. 그리고 그중 태반은 나이가 30줄에 접어들고 있다. 뭔가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세대 교체를 단행해야 할 시점인데 구단주는 1년도 채우기 전에 감독을 갈아 치우니 감독 입장에선 눈앞의 성적이 중요하지 장기적으로 뭘 해볼 여지가 없다.

급기야 블랙번과의 원정 시합에서 무승부, 맨유보다 덜 치른 한 경기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맨유에게 승점 1점차로 1위 자리를 빼앗기게 되자 현지에선 벌써 안첼로티 경질설마저 솔솔 나오는 중...은 훼이크고 포츠머스 FC 원정과 애스턴 빌라 홈 경기에서 각각 5:0, 그리고 7:1로 대파하면서 분위기 반전에 성공, 마침내 올드 트래포드에서 맨유를 2:1로 이겨 다시 프리미어 리그 1위에 복귀했다. 현재 09/10 시즌 프리미어 리그 우승이 가장 유력. FA컵 역시 우승이 가능한 상태인데, 현재 준결승에 올라와 애스턴 빌라와 붙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드록바, 말루다, 그리고 램파드의 골로 3:0으로 승리함으로서 FA 컵 결승에 2연속 진출하게 된다. 그리고 아스톤 빌라는 첼시와의 마지막 2경기에서 10골을 먹는 수모(...)를 보여준다. 그 다음 경기에서 볼턴 원더러스에게 1-0으로 이긴후 맨유와 승점차를 4점으로 벌리면서 우승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되었다. 하지만 토트넘과의 경기에서 존 테리가 퇴장을 당하면서 2-1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그 다음경기에서 스토크 시티를 7-0을 대파하고 나서 이제 맨유와의 승점차는 1점. 리버풀전도 2-0으로 이겼다. 그래서 나머지 빅 4를 모두 이기는(6전 6승) 누구도 이루지 못한 대업적을 남기게 되었다. 리버풀은 이제 빅4가 아닌가 하지만 맨유도 선더랜드에 원정에서 1-0으로 승리를 거두었고, 우승 컵의 주인은 마지막 라운드, 38 라운드에 결정되게 되었다.

위건 감독도 그렇고 퍼거슨도 그렇고 위건의 분전을 말했으나 무참하게 8:0으로 떡실신당하면서 첼시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4:0 승리와 관계없이 2009/2010 EPL의 우승을 확정지었다. 또한 리그 38경기에서 103골을 몰아쳤으며 해트트릭을 기록한 드록바는 29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17도움의 램파드는 도움왕. 거기다 프리미어 리그 팀 최다 득점(103골) 기록에 골든글러브(체흐, 레이나 역시 클린시트 17경기지만 경기수에서 체흐가 더 적기 때문에)수상, 소위 빅4라 불리는 팀과의 경기에서 전승까지. 기록이란 기록은 다 가져갔다. 시즌 4호골의 박지성은 이렇게 묻혔다 5월 15일 2010 FA Cup에서 포츠머스를 1:0으로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클럽 역사상 최초로 더블을 이룩했다(리그+FA 컵).

대부분의 선수들이 지난 시즌 막판의 좋은 폼을 그대로 시즌 끝까지 이어나갔다. 램파드는 초반에는 부진했으나 후반기 첼시 특유의 4-3-3으로 전환한 이후에 엄청난 스탯을 찍으며 32살의 미드필더답지 않은 엄청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드록신은 드록신이었다. 아넬카는 드리블과 패스가 돋보이는 플레이 메이커 같은 모습이 점점 만개하기 시작했으며, 말루다 역시 좋은 활약을 펼쳐주었다. 발락은 에시앙의 후반기 부상 공백을 잘 막아 주었으며, 미켈 역시 약점을 장점으로 메꾸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 외에 이번 시즌 주전급으로 영입한 유리 지르코프는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지만 활발한 움직임과 멀티 플레이어 능력으로 애슐리 콜의 부상 공백을 메꿨으며, 페헤이라와 이바노비치는 보싱와의 장기 부상을 잊어 버리게 만들 정도로 오른쪽을 잘 책임졌다.
알렉스는 이번 시즌 부진했던 카르발료를 밀어내고 주전 자리를 꿰찼고, 존 테리는 후반기 불륜 사건으로 폼이 떨어진 것을 제외하면 무난했다. 체흐는 헤드 기어를 낀 이후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치며 골든 글러브까지 수상했다.

이렇게 09-10 시즌은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들 덕분에 첼시 팬들로 하여금 다음 시즌에 대한 밝은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3.6 첼시 FC/10-11 시즌


첼시 FC/10-11 시즌 참조.

전 시즌 더블을 해놓고 그 다음 시즌 무관으로 인해 잘린 안첼로티

리빌딩, 성적 두마리 토끼 중 아무것도 잡지못한 시즌

그리고 그 분이 오신 시즌


3.7 첼시 FC/11-12 시즌


미래가 밝아 보인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첼시 FC/11-12 시즌 참조.

지옥에서 천당으로 간 첼시 FC 역사상 최고의 시즌

드라마보다 더 거짓말같았던 시즌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 체제가 들어선 이후, 사상 최악의 리그 성적인 6위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이는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획득할 수 있는 4위권 진입에 실패했다는 의미...하지만 첼시는 FA컵에서 극적인 우승.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몇번의 고비를 넘기고, 결승에서 FC 바이에른 뮌헨마저 꺾어 창단 첫 우승을 차지. 망했다고 생각했던 11/12 시즌을 빅이어와 FA컵을 따낸 더블이란 기적같은 성적을 거둔 첼시 역사상 최고의 시즌으로 바꿔놓으며 , 내년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확보했다!

이로서 첼시는 런던 축구 클럽들 중에서 최초로 UEFA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한 팀이 되었다.[38] 그리고 로베르토 디 마테오는 1999-2000 시즌의 비센테 델 보스케 전 레알 마드리드 감독에 이어 감독대행 신분으로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한 두번째 감독이 되었다.[39] 그야말로 기적같은 시즌이 11-12시즌이었다.


3.7.1 11-12 시즌의 기적

07-08 시즌부터 빅이어를 드는 11-12시즌까지 첼시의 챔피언스리그에서의 고군분투를 기록,편집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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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렘덩크]
챔피언의 숙명은 원래 아픔이 따른다 11-12 시즌의 첼시의 행보는 드라마로 써도 비현실적이라고 욕을 먹을만한 한 편의 드라마였는데, 특히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활약은 그야말로 독보적이었다.

챔피언스 리그 16강 원정 나폴리전에서 3:1로 참패를 당한 후, FA 컵 버밍엄 전도 1:1 무승부를 기록하는 등 실망스러운 행보를 이어가던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 감독은 결국 웨스트 브로미치 알비온전 1:0 패배를 계기로 경질당하고,그 자리를 소년 명수 로베르토 디 마테오 수석 코치가 맡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타축구 팬들은 물론이요 첼시 팬들마저 첼시의 이번 시즌이 망했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게 되었다.

허나 FA 컵 재경기에서 버밍엄을 깔끔하게 2:0으로 이기고, 스토크 시티전 역시 1:0으로 이기며 슬슬 경기력을 끌어올린 첼시는 나폴리와의 2차전 홈 경기에서 4:1로 극장 같은 역전승을 따내며 8강 진출에 성공한다. 전반 17분 하미레스의 크로스를 받은 드록바의 헤딩골, 후반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나온 코너킥에서 존 테리의 헤딩골로 둘 다 머리로 넣은 두 골을 먼저 넣어 쉽게 올라갈 수 있었으나, 인러의 만회 골로 다시 득실에서 뒤쳐졌고 결국 램파드의 페널티 킥 득점으로 동률이 되어 연장전에 돌입한 뒤, 드록바의 크로스를 받은 이바노비치의 골로 극적인 승리를 따낸 것이다.

그뒤 비록 리그는 미미했으나 FA 컵에서 레스터 시티를 5:2로 화끈하게 격파해 토트넘과의 경기를 남겨두었고, 진출한 8강 벤피카전은 원정 팀의 무덤이라 불리는 벤피카 홈에서 1:0 승리, 그리고 극장 골로 패배를 면한 2차전 2:1 승리로 4강으로 진출했다.

4강 팀이 바르사였기에 첼시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심지어 첼시 팬들마저도). 허나 토트넘과의 FA 컵 4강전에서 5:1 대승을 거두며 희망의 불씨를 태운 첼시는 바르사를 홈으로 불러들여 드록바의 결승골로 1:0으로 격침시키고, 원정에서 존 테리가 퇴장당하고 케이힐이 부상으로 교체되어 센터 백이 없다시피한 상황에서 2점이나 실점, 후반에는 PK까지 허용하는 그야말로 불운의 끝을 달렸으나, 메시의 PK 삽질에 힘입은 영혼을 담은 수비와 한 방 역습을 잘 살려 하미레스의 만회골과 900억짜리 토레스의 종료 직전 동점 골로 2:2 극적인 무승부[40]를 이끌어내며 첼시 역사상 두 번째로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진출한다.

FA 컵에서는 최근 두 시즌동안 5번 만나 모두 패한 리버풀을 상대. 허나 첼시는 하미레스의 선제골과 결승전의 사나이 드록바의 결승골로 캐롤의 만회골을 허용하고도 끝까지 버티며 2:1로 승리해 무관을 벗어났다.

그리고 대망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첼시는 바르사와의 4강전의 주역이었던 하미레스, 메이렐레스, 존 테리, 이바노비치 등 주축이 모두 빠진 라인 업에, 이제 막 부상에서 복귀한 케이힐-루이스 조합을 센터 백으로 써야 했다. 게다가 결승전 장소는 바이에른의 홈 구장인 알리안츠 아레나인,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비록 바이에른 역시 3명이나 경고 누적으로 출장하지 못한다지만 공격진은 건재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첼시는 홈 어드벤티지를 업고 밀어붙이는 바이에른을 전반부터 후반 막판까지 혼신의 힘을 다한 수비로 막아 냈으며, 제공권을 절대로 넘겨주지 않으며 세트 피스 상황에서도 모두 걷어 내는 투혼을 발휘했다. 사실 어느 쪽으로 승부의 축이 기운 것은 아니었다. 뮐러와 고메즈는 시종일관 루이스에게 막히는 모습이었고, 애슐리 콜은 로벤을 완벽하게 봉쇄했다. 심지어 똥쟁이보싱와마저 리베리와 디에고 콘텐토를 예상외로 잘 막아내며 결정적이거나 위협적인 장면은 얼마 되지 않았다.
사실 리베리와 로벤, 뮐러가 큰 찬스때마다 삽푼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그러나 큰 경기에 강했던 토마스 뮐러의 기습 헤더로 후반 37분경 골을 먹으며 끌려다니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패색이 짙어졌고, 모든 사람들이 '그래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잘한 거지' 하면서 포기하려던 찰나, 종료 직전 마타의 코너 킥에 이은 결승전의 사나이 드록바의 헤더로 1:1 극적인 동점을 이룬다.

허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연장전에 들어서자마자 리베리의 돌파를 막으려던 드록바의 실수로 PK를 허용한 것. 다시 패색이 짙어졌고 첼시 팬들이 모두 돌아서려던 순간, 키커 로번의 슛 경로를 읽은 체흐의 완벽한 선방이 나왔다.[41] 또한 드록바의 태클로 인해 리베리는 교체당했고, 안 그래도 보싱와라 시도때도 없이 뚫리던 오른쪽 측면이 안정화되었다.

그 뒤 오히려 바이에른은 정신적으로 충격이었는지 급한 모습을 보여주었고,[42] 첼시는 차분하면서도 필사적으로 바이에른의 공격을 막으며 혼신의 힘을 다했다. 결국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승부차기에 돌입.

독일 팀이 전통적으로 승부차기에 강했기에 이 역시 바이에른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들이 많았고,[43] 실제로 첼시의 1번 키커인 마타가 실축해 버렸을 때까지만 해도 모두들 바이에른의 승리를 다시 점치고 있었다. 허나 바이에른의 4번 키커 올리치가 체흐에게 막히고, 새가슴인 5번 키커 슈바인슈타이거의 킥이 골 포스트를 맞고 흘러 나오면서[44] 순식간에 분위기는 다시 첼시 쪽으로 넘어갔다. 이 날 체흐는 경기 중에 모든 PK의 방향을 예측하는 미친 활약을 보여주었다.

결국 오늘 좋은 활약을 펼친 드록바가 마지막 키커로 나서 노이어를 상대로 매우 침착하게 페널티 킥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첼시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빅 이어를 들게 되었다. 그리고 케이힐은 오자마자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전 소속팀은 블루 드래곤과 함께 강등을... 토트넘은 4위를 해놓고 유로파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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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보싱와는 센터싱와라는 별명을 획득했다 [센터싱와의 진실]


3.8 첼시 FC/12-13 시즌

UCL 32강 탈락으로 구긴 체면을 UEL 우승으로 다시 살리다

지난 시즌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으로서의 자존심은 로만 구단주 부임 이후 첫 챔피언스 리그 16강 탈락으로 빛이 바랬다. 그것도 챔피언스 리그 개편 이후 유일한 전 대회 우승팀의 16강 진출 실패라는 기록까지 남겼다. 그것뿐만 아니라 커뮤니티 실드, 클럽 월드컵, 리그 컵, FA 컵,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모두 우승에 실패하며 기운만 빼고 무너지는게 아닌가 싶었으나 어찌 어찌 유로파 리그를 우승하며 체면치레는 했다.

'뮌헨의 기적'의 주인공 로베르토 디 마테오는 감독 대행에서 정식 감독 계약을 맺었으나[45] 유벤투스전 0-3 완패 이후 새벽 4시에 초고속으로 경질되었다. 세간은 물론 첼시 팬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들끓었음은 당연하다. 다만 로만은 이전부터 감독 물갈이가 잦다는 지적을 받아 왔기 때문에 디 마테오에 대한 동정 여론이 좀 더 힘을 얻었다.

미국 투어까지 포함하면 12-13 시즌 동안 무려 71경기를 치르게 되는 것인데,노예가 따로 없구만 대회란 대회는 다 참가하는 식으로 선수들을 혹사시킨 감이 없지 않다. 이런 체력적인 부담이 각종 대회에서의 우승 실패에 한 몫했음을 부정할 수 없을 듯. 근데 이것도 핑계라면 핑계

※ 더 상세한 시즌 내용을 알고 싶다면 첼시 FC/12-13 시즌을 참조.


3.9 첼시 FC/13-14 시즌

강팀에 강했기에 더욱 아쉬운 무관

한 단어로 시즌을 요약하면 첼타몽, 바이언을 만나든 선덜랜드를 만나든 비등한 경기를 펼치는...[46]
리그, 컵, 챔피언스리그 모두 무관으로 끝났다. 이로써 로만 체제 2번째 무관이자 무리뉴의 감독 경력 2번째 무관이 되었다.
팬들의 평가는 엇갈리는 편인데, 애초에 무리뉴가 없는 동안 전력이 약화되어 지난 시즌에는 우승경쟁에서 진작에 밀려났고 챔스는 조별리그 광탈을 했던 팀을 가지고 시즌 막판에 결국 밀려났다지만 계속 우승경쟁을 했고, 챔스도 4강을 기록했기에 나쁘지 않다는 평가. 우승 경쟁을 하던 맨체스터 시티리버풀 FC에게 전승을 거두고그놈의 의적질만 아니었어도 리그와 리그컵 성적은 더 좋았을 테니... 챔스 8강에서 기적적으로 판도를 뒤집는 등의 임팩트 있는 모습이 몇 번 있었기에 이대로 끝난 게 아쉽다는 평가로 나뉜다.물론 첼시까들과 무까들은 무관을 신나게 조롱 중 그래도 다음 시즌을 기대한다는 점은 모두 같은 듯.

※ 더 상세한 시즌 내용을 알고 싶다면 첼시 FC/13-14 시즌을 참조.


3.10 첼시 FC/14-15 시즌

Happy One의 복귀 후 두번째 시즌, 리그 우승과 리그컵 우승으로 새로운 첼시 왕조의 초석을 쌓다
2005년부터 10년간 함께한 삼성(SAMSUNG)과의 마지막 시즌.
이땐 몰랐지...

챔피언스리그에선 파리 생제르망과의 16강전, 전 시즌 리벤지 매치에서 일격을 맞고 탈락했지만 리그컵에서 토트넘을 꺾어 우승을 거두고 그리고 중반에 약간 위기가 있었으나 시즌 초반부터 줄곧 1위를 내달리며 리그우승을 차지해 더블을 달성하였다.[47]

그러나 부족한 선수층 뎁스와 후반기 들어서 주축 오스카, 파브레가스의 체력저하에 따른 부진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다음 시즌 보다 더 치열한 순위싸움을 예고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 더 상세한 경기 내용을 알고 싶다면 첼시 FC/14-15 시즌을 참조.


3.11 첼시 FC/15-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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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전 우승팀에서 평범한 중위권 팀으로 전락하다

스페셜 원의 경질과 무너진 첼시 제국

첼시 FC 역사에 남을만한 최악의 시즌

자세한 사항은 첼시 FC/15-16 시즌첼시 FC/15-16 시즌/문제점 참조. 블루스라면 정신 건강을 위해 읽지 않는 것이 좋다만. 엥? 첼시는 15-16시즌에 축구 안 하지 않았음?

3.11.1 첼시의 상징 주제 무리뉴의 해임

ONE OF US의 추락

110년 첼시 창단 이래 최고의 감독. 결국 경질

에메날로 : 누가봐도 첼시 선수와 무리뉴의 갈등이 존재해 보여 경질이라는 옳은 결정을 하였다.

첼시 사상 최고의 감독이라며 칭송받던 무리뉴는 결국 2015년 12월 17일 구단과 서로 합의 후 계약을 해지했다.

무리뉴는 첼시 연례 행사에 참석해 선수들과 함께 식사하던 중 해임 통보를 받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강을 건넜다. 무리뉴 감독이 경질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첼시 팬들은 SNS에서 선수들을 미친듯이 비난하고 있으며 첼시 서포터즈 연합 회장인 팀 롤스는 텔레그라프와의 인터뷰에서 “분위기가 별로 좋지는 않다. 그래도 무리뉴의 이름을 외칠 것이다” 라며 구단의 결정이 틀렸음을 보일 것이라고 한다.

추후 보도된 [기사]에 따르면 무리뉴는 자신의 선수 장악력이 바닥을 쳐 선수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아 성적이 최악에 치닫자 지푸라기라도 잡아 팀을 끌어올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를 찾아가 선수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달라고 호소했다고 한다. 구단주가 직접 나서 선수들과 대화를 나누고 동기부여를 심어준다면 현재의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감독의 힘이 더이상 선수단에게 닿지 않자 고개를 숙이고 최후의 방법으로 로만에게 손을 뻗은 것이다. 그러나 로만은 무리뉴를 해임시킨 이후 첼시의 코밤 훈련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선수들에게 "현재 상황을 바꾸는 것은 당신들의 책임이다"고 말했다. 무리뉴는 보드진 미팅 이후 단 한 번도 로만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계약 해지 소식을 통보받은 뒤에도 마찬가지다. 짐을 정리하기 위해 코밤 훈련장을 찾았으나 수뇌부 그 누구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첼시 수뇌부의 No.2라 할 수 있는 마이클 에메날로 기술이사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에메날로는 이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서 무리뉴를 평가절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 씨바 할말을 잊었습니다결국 무리뉴는 씁쓸하게 자신의 차를 타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기에 이른다. 이후 무리뉴는 19일 에이전트를 통한 성명서에서 "난 잘렸다, 합의 아닌 해고였다 ... 710억 보상금도 필요없다" 라고 상호 합의가 아닌 일방적 해고라고 못 박으며 “나는 하나도 지치지 않았다. 안식 기간도 필요 없고 곧 다른 팀을 맡을 것이기 때문에 첼시는 위약금을 줄 필요도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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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뉴가 해임된 직후 선덜랜드 전에서는 관중들이 선수들이 득점을 하든 실점을 하든 상관없이 연신 무리뉴의 이름을 연호했으며 특히 언론에서 태업의 주동자라고 지목받는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디에고 코스타, 존 테리를 비난했다.[48]

무리뉴는 경질 당한 이후 브라질과 포르투갈에서 휴식을 취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인 반 할의 해임을 기다리고 있다는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으며 맨유 수뇌부가 무리뉴와 접촉했다는 ESPN의 보도가 흘러나오기까지 해 무리뉴 맨유행의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매체는 무리뉴 감독의 측근을 인용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무리뉴 감독과 접촉 중이라고 설명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도 무리뉴를 원하니 특별한 일이 없다면 무리뉴는 맨유로 갈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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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뉴가 떠난후 훈련장에 들어오는 첼시 선수들.]

그리고 무리뉴는 2016년 5월 27일 스승인 루이 반갈의 후임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3.11.2 히딩크와의 재회

무리뉴가 해임 된 이후 첼시는 임시방편으로 로만과 친분도 있고 과거에도 공석이였던 첼시직을 맡아 FA컵 우승을 이뤄낸 거스 히딩크를 빠르게 선임했다. 계약 기간은 15-16 시즌이 끝날때까지이다. 히딩크는 자신이 첼시직을 맡는 조건으로 잉글랜드 출신 스트라이커의 영입과 드록바의 코치직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리고 20일 선덜랜드 전을 디디에 드록바와 함께 직관했다. 새 감독이 와서 그런지 선덜랜드 전은 올 시즌 첼시 경기 중 가장 완벽한 경기라고 평가될 정도 이다. 무리뉴: 내가 있을 땐 그렇게 못하더니..

히딩크 감독은 무리뉴 후임으로 공식 임명된 후 발 빠르게 구단 상황파악에 나서기 위해 무리뉴와 런던 버커리 호텔에서 만나 조식을 함께 해 현 스쿼드에 관련된 상세한 정보를 전달받았으며 그동안 첼시 내에 있었던 불화도 무리뉴 감독에게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히딩크는 부임 직전에 더 텔레그라프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첼시의 상황이 좋지 않고, 이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며 첼시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바 있다.

그리고 히딩크가 감독으로 부임된 이후의 두 경기 모두 무승... 그러자 태업이 아니라 원래 가지고 있는 실력이 현저히 떨어진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속출하는 반면 현재까지 리그에서 무패를 기록 중이다

무리뉴가 경질된 이후 부터...

1월 7일 이청용이 선발 출전한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경기에서는 코스타와 오스카가 1골 1어시스트로 팀의 3:0이라는 큰 승리를 기여했다

1월 10일 잉글랜드 FA컵 64강에서 만난 스컨토프 유나이티드 FC와의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하였다.

1월 17일 에버튼과의 홈 경기에서는 전반전까지 존 테리의 자책골과 케빈 미랄라스의 골로 2:0으로 크게 밀렸으나 63분 코스타의 골과 65분 파브레가스의 동점골로 추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70분에 교체되어 들어온 푸네스 모리의 90분 극장 역전골로 지는 듯 싶었으나 막판 추가시간, 존테리의 극장(?) 동점골로 패배를 면하게 되었다.

1월 15일 아스날과의 경기에서는 이바노비치의 어시스트와 코스타의 득점, 그리고 수비들의 활약으로 당시 리그 1위 아스날을 무실점으로 잡았다

이로써 아스날전 4년 연속 무패 및 올시즌 더블, 그리고 최근 9시간 36분 아스날전 무실점 기록을 이어나갔다.

2월 1일 MK 돈스와의 경기에서는 기다리던 아자르의 PK 골과 트라오레의 데뷔골 오스카의 헤트트릭과 코스타의 골로 5:1 승리를 이끌어 냈다.

2월 8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홈으로 불러온 경기에서는 신예 제시 린가드에게 선제골을 허용하였지만 90분 + 추가시간 1분에 디에고 코스타의 극장골로 리그 12경기 무패 기록을 새웠다. 이 경기에서 커트 주마가 헤딩 후 착지를 하다 다리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당했다

결국 히딩크도 08/09 시즌의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꾸역꾸역 무승부와 간간히 승리와 패배를 반복하며 첼시는 10위라는 순위로 시즌을 마감한다. 그래도 시즌 초반 엄청난 페이스를 보이며 강등권으로 추락한 팀을 적어도 쉽게 지지는 않는 팀으로 사실 6개월 전엔 지기가 어려운 팀이었지만 바꿔 놓은 점은 평가받을 만 하다.


3.12 첼시 FC/16-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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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감독과 함께하는 첫 시즌

4 역대 성적 (99~00 시즌 이후)

99/00 시즌 리그 5위, 챔스 8강, FA컵 우승
00/01 시즌 리그 6위
01/02 시즌 리그 6위
02/03 시즌 리그 4위
03/04 시즌(로만 구단주 부임) 리그 2위, 챔스 4강
04/05 시즌 리그 우승, 챔스 4강, 칼링컵 우승
05/06 시즌 리그 우승, 챔스 16강
06/07 시즌 리그 2위, 챔스 4강, FA컵 우승, 칼링컵 우승
07/08 시즌 리그 2위, 챔스 준우승, 칼링컵 준우승
08/09 시즌 리그 3위, 챔스 4강, FA컵 우승
09/10 시즌 리그 우승, 챔스 16강, FA컵 우승
10/11 시즌 리그 2위, 챔스 8강
11/12 시즌 리그 6위, 챔스 우승, FA컵 우승
12/13 시즌 리그 3위, 유로파 우승
13/14 시즌 리그 3위, 챔스 4강
14/15 시즌 리그 우승, 챔스 16강, 캐피탈원컵 우승
15/16 시즌 리그 10위, 챔스 16강


5 로만 집권 후 잦은 감독 교체와 스타 영입 실패의 원인

몇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 때문이다.

2004년 이후의 첼시의 성공에 큰 이유는 바로 로만의 과감한 투자가 있었기 때문인데 이것이 바로 양날의 검으로 작용했다.

로만은 매우 다혈질이고 참을성이 부족한 성격인데다가, 축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구단 운영에 매우 깊게 관여하고 있다. 물론 첼시에 거금을 투자했으니 어느정도 구단 운영에 관여하는것도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그정도가 심하다.

실제로 로만은 경기중 리저브 타임에 선수 라커룸에 들어와 선수를 질책한다던가 칭찬을 하며 전술적 요구는 물론 지시까지 내린다고 한다.[49] 때문에 필연적으로 감독들과 잦은 마찰을 가져왔다.[50]

이는 팀구조에서도 드러난다. 잉글랜드 축구는 전통적으로 감독이 팀내 업무의 전권을 쥐고 있다. 때문에 감독은 선수영입과 유소년 발탁, 계약, 훈련등 거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구단주 밑에 보드진, 감독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첼시의 경우에는 감독 외에 스포르팅 디렉터(Sporting Director)라고 하는 이른바 단장 혹은 기술 이사 그리고 개새x라고 불리는 직책이 존재하며 선수 스카우트 등 구단 운영의 전반적인 일을 맡는다. 때문에 감독은 선수단 관리와 전술 등 경기장 내부의 일만을 맡게 되고 단장은 그 외의 구단 운영을 하며 선수 영입시에는 감독과의 상의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때문에 단장은 감독과 동등한 위치이거나 감독보다 조금 높은 지위를 맡는다.

이 같은 스포르팅 디렉터직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퍼거슨이나 벵거 같은 장기집권 감독이 아닌 이상 감독은 주기적으로 교체되는 존재이다. 가까이서 접할 수 있으나 스포르팅 디렉터가 없는 K리그와 비교해 볼 때, 감독 한 명이 갈리자 팀컬러가 돌변하면 옛선수들이 사라지고 새 감독의 전술에 맞는 새로운 선수들이 나타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는 팀 차원에서 봐도 감독 한 명 갈았는데 갑자기 쓸데없는 비용이 엄청나게 발생하는 단점이 생긴다. 팬들 입장에서도 1, 2년 사이에 응원팀에서 정 붙이던 선수들이 거의 다 사라져 버리는 납득하기 어려운 운영형태로 나타난다. 이 경우 후임 감독이 자기 전술에 맞는 팀을 만든답시고 몇 년간 삽질을 하는 것을 용인할 수밖에 없는데, 정작 그러고도 후임 감독은 부진한데 전임 감독이 쌓아놓은 유망주나 중용하던 선수들이 타구단에서 터져 버리면 비용낭비는 막대하고 심각한데 팬들의 복장도 터지는 2중고를 안게 된다. 이런 쓸데 없는 낭비를 막기 위해 축구 전문가인 스포르팅 디렉터가 팀 차원에서 팀의 운영 방향을 정하고, 유망주 육성 방향도 정하고, 감독 교체시 팀컬러에 맞는 감독을 선임한다.

그리고 이 스포르팅 디렉터는 보드진과 감독간의 의견차가 생길 경우 특히 선수단의 연봉이나 영입과 방출 등의 의견 충돌시에 보드진과 감독간의 조율을 하며 구단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도 수행한다. 문제는 첼시의 경우 감독과 단장 사이에 권력 다툼이 심하며 선수영입과 운영에 대하여 힘 싸움을 벌인다는 것이다. 또한 사실상 단장은 이사진 즉 보드진으로써 로만 구단주 의견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안드리 셰브첸코미하엘 발락[51]은 무리뉴 감독은 영입을 반대했지만 당시 단장인 아르넨센과 그랜트의 주장(이라고 쓰고 로만의 주장으로 읽는다.)으로 영입되었고 페르난도 토레스의 경우도 단장과 보드진의 요구로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의중과는 상관 없이 영입되었다. 셰브첸코 영입 당시 무리뉴가 원했던 선수는 자신의 전술에 맞는 다비드 비야. 그러나 구단주는 전술마저 바꾸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감독 입장에서는 자신의 전술과 맞지 않을 뿐더러 원하지도 않는 선수임으로 당연히 팀 전술에 스타 선수들이 녹아들지 못해 스타 선수들의 성적은 저하되어 선발진에서 빠진다. 그러면 보드진은 감독이 스타 선수를 계속 기용하도록 압박하여 감독은 스타 선수를 다시 기용한다. 그럼 다시 전술에 맞지 않는 스타선수들의 성적은 더욱 떨어지고 다시 선발에서 빠지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서 감독과 보드진간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고 보드진 입장에서는 큰 돈을 들여 영입한 선수를(비록 감독이 원치 않았더라도) 못 써먹는 감독을 무능하다고 판단하여 결국 감독을 경질하게 되는것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전혀 없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것이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현 기술이사인 마이클 에메날로가 라파 베니테즈 감독을 로베르토 디 마테오 감독 후임으로 추천한것 때문에 큰 압박을 받고 있어 조만간 기술이사가 바뀌어 구단 운영에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52][53]

그리고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지극히 절실하게 원하던 펩 과르디올라FC 바이에른 뮌헨으로 가버린 후,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감독인 주제 무리뉴를 선임함으로서 지금까지의 행보의 변화를 예고했다. 에메날로의 경질도 본인은 사임을 표했으나 무리뉴와 보드진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또한 셰브첸코 이적에 대한 것은 무리뉴가 직접 인터뷰로 구단주의 의도만으로 된 것이 아닌 자신의 의사도 들어가 있었다고 고백했다.[54]

그러나 이런 잦은 감독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성적이 나오는 것은 칭찬받을만 하다. 새로 들어온 감독의 전술적 역량, 감독의 경질에 따른 선수단의 사기 상승 등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두가지 이유로는 주제 무리뉴 감독이 닦아놓은 첼시의 기본적인 큰 틀과 첼시의 10년을 책임진 환상적인 척추 라인[55]이 손꼽히고 있다.

주제 무리뉴 감독이 닦아놓은 첼시의 4-3-3 포메이션은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부임 이전까지 첼시의 큰 틀이었고, 그 틀 안에서 첼시의 황금세대, 척추라인이라고 불리우는 페트르 체흐, 존 테리, 애슐리 콜, 프랭크 램파드, 디디에 드록바는 꾸준히 환상적인 활약을 펼칠 수 있었고, 그 덕에 첼시는 EPL과 유럽대항전에서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첼시의 지난 10년을 만들어 냈었던 주제 무리뉴 감독을 귀환시킴과 동시에 전시즌 첼시의 주축이었던 다비드 루이스, 후안 마타 등을 상당한 금액에 이적시키고 파브레가스, 디에고 코스타 등의 유능한 선수들을 상대적으로 매우 싼 가격에 데려오는 모습과 주급체계를 엄격히 지키는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거상의 면모를 보여주면서 향후 첼시의 또다른 10년이 주목되고 있다....는 15/16 시즌 개막 전까지의 전망..

14/15 시즌 우승에 너무 도취되었는지 전시즌 갓드진이라 칭송받던 보드진은 무리뉴가 요청한 영입 리스트를 무시하고, 도리어 여름이적시장에선 최대 라이벌인 아스날에 구단 역사상 최고의 골리였던 페트르 체흐되도않는 대인배 코스프레 하면서 떠나보내는 창의적인 병크를 작렬한다. 그리고 첼시는 커뮤니티 실드 아스날과의 매치에서 극악의 경기력을 보여주며 조금씩 위기론이 나오게 되었고, 이윽고 시즌이 시작되자 커뮤니티 실드 전을 능가하는 엄청난 리얼 개막장 경기력을 보여준다. 부랴부랴 무리뉴의 전화찬스로 페드로 로드리게스 하이재킹엔 성공했지만, 이미 NFS 떨어진 마르퀴뇨스, 폴 포그바에 매달리다가 막판에 듣도 보도 못한 질로보지, 헥터란 선수를 영입하면서 무리뉴에게 빅엿을 먹였고, 그 결과는 현재 순위를 보면 알 수 있다.

거기에 팀은 팀닥터 스캔들, 태업설 등등 망하는 집안의 적절한 예시를 보여주며 12월 현재 16위까지 추락했고, 그 위대한 갓드진과 로짜르은 현지시간 12월 17일, 7개월 전 프리미어리그 우승 감독인 주제 무리뉴를 경질한다. 팀닥터 >>>> 전성기 이끈 감독? 10년은 개뿔

6 라이벌

축구 종가 영국, 그리고 그곳의 수도답게 수많은 축구 클럽이 있는 런던이지만 사실 첼시는 런던 내에서는 라이벌이 많은 팀이 아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첼시가 있는 서부 런던에는 브렌트포드 FC, 풀럼 FC, QPR 등이 있는데 첼시는 브렌트퍼드와 처음 맞붙은 게 1950년이었고(브렌트퍼드는 1889년에 창단했고, 첼시도 창단이 1905년이었는데!), QPR과는 1996년부터 2008년까지 만난적이 없다. 리그 컵이나 FA 컵에서 조차도. 많이 붙어봐야 선수, 팬들 간의 라이벌리가 생길텐데 일단 만날 일이 없기 때문에 서런던 더비는 상당히 심심한 편이다. 바로 옆동네의 북런던 더비의 토트넘-아스날, 그리고 축구 라이벌리에서 최악의 분위기를 자랑하는 웨스트 햄-밀월을 보더라도.

그나마 풀럼 FC과는 74번 맞붙은 전적이 있기 때문에 서런던 더비라고 불린다. 문제는 첼시가 41승 24무 9패로 완전히 씹어 먹는 상대 전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

서런던에서는 이렇게 미지근한 반면 다른 구단들과는 꽤나 라이벌리를 형성했는데, 아스날 FC와의 더비는 북런던 더비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역사가 깊다. 177번을 붙어 54승 52무 71패로 밀리는 성적. 2000년대 이후에는 2002 FA 컵 결승에서 아스날이 첼시를 잡은 적이 있었고, 2007 칼링 컵 결승에서는 첼시가 아스날을 꺾었다. 이 경기 이후 아스날에 개스날이라는 별명이 추가되었다 다만 무리뉴 감독이 지휘하고 있을 때 만큼은 7승 5무 1패로 벵거를 완전히 호구잡아서 가지고 노는 일방적인 전적을 자랑한다.[56] 토트넘 핫스퍼 FC와도 근래 자주 만나 양 팀 팬들은 경기가 벌어지는 날이면 매우 민감해진다. 그 대표적인 경기가 11-12 시즌 FA 컵 4강.

첼시는 요크셔의 리즈 유나이티드와 자주 붙었기 때문에 라이벌리를 형성하고 있다. 101번이나 만나서 33승 29무 39패로 약간 밀리긴 하나 이정도면 팽팽한 수준. 맨 유와 리즈 간의 라이벌리가 너무 강력해서 그렇지 리즈의 두 번째 라이벌은 첼시였다. 지금은 리즈 시절의 리즈가 아니라 그렇지만 1970년에는 FA 컵에서 재경기 끝에 첼시가 리즈를 꺾고 우승한 적도 있다.

2000년대 이후 강팀이 된 이후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버풀 FC와 라이벌 관계에 엮이기도 했다. 맨유와는 대체로 성적에 의한 라이벌리가 형성되었으며, 리버풀은 심심하면 컵 대회에서 만나면서 라이벌리가 형성되었다.[57] 특히 리버풀과는 페르난도 토레스 이적건으로 인해 라이벌리가 더욱 불타올랐는데, 토레스 이적 직후 2012시즌까지 첼시는 리버풀에게 겨우 1승에 그치고 있다. 다만 그 1승이 FA 컵 결승이라 리버풀 팬들은 "차라리 리그에서 한경기 지고 말지 왜 하필 거기서 지냐"면서 배아파하고 있지만. 그런데 13-14 시즌에는 리그 2경기 모두 첼시가 이기고 징크스를 깼다. 14-15 시즌에도 안필드에서 첼시가 리버풀을 2-1로 잡고 스티븐 제라드의 마지막 주요 경기였던 첼시 홈에서 열린 경기는 테리, 제라드 양 레전드들이 한 골씩 넣으며 1-1로 비겼다. 그리고 리버풀의 빅4는 사실상 좌절되었다. 15-16 시즌에는 스페셜원 vs 노멀원 경기에서 리버풀이 쿠티뉴의 2골1도움 맹활약으로 1-3 역전승을 기록하였다.


6.1 FC 바르셀로나와의 악연

FC 바르셀로나와는 2000년대 초기부터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에서 자주 만나 경기마다 명경기를 불러일으키며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첫 만남은 1999-2000 챔피언스 리그 8강전. 당시 잉글랜드의 떠오르는 강자였던 첼시는 1차전 홈에서 지안프랑코 졸라 등이 맹활약하며 3-1로 승리를 거두었다. 이 당시 첼시는 로베르토 디 마테오가, 바르셀로나는 펩 과르디올라가 현역으로 뛰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캄프 누에서 열린 2차전에서 0-5로 대패를 당하며 4강은 바르셀로나가 가게 된다.

그 뒤 두번째 만남은 로만이 인수한 후 주제 무리뉴 감독의 첼시 첫 시즌인 2004-2005 챔피언스 리그 16강전. 1차전 캄프 누 원정 경기에서 드록바의 퇴장 등으로 열세에 몰린 첼시는 선제골 이후 내리 2골을 먹으며 2:1로 역전패했다. 그리고 2차전 홈에서는 역사에 길이 남을 명경기를 만들어내며 4:2로 대승을 거두었다.[58] 그러나 4강에서 리버풀에게 유령골을 먹히며 결승행이 좌절되고, 그 리버풀은 이스탄불의 악몽AC 밀란에게 선사하며 우승을 차지한다.

바로 다음 시즌 2005-2006 챔피언스 리그 16강에서 다시 만난 첼시와 바르셀로나는 이번에는 1차전은 첼시의 홈에서, 2차전은 바르사 원정으로 치뤘다. 허나 1차전 메시와 딩요의 맹활약에 델 오르노의 퇴장으로 불운을 겪은 첼시는 2:1로 패배했고, 원정에서도 간신히 1:1 동점을 만들었으나 결국 탈락하고 만다.

2006-2007 시즌, 이번에는 무려 조별 리그에서 만났다. 1차전에서 첼시는 드록바의 환상적인 터닝슛으로 1:0으로 승리했으며, 2차전에서는 2:0으로 끌려다니다가 드록바의 만회골, 그리고 프랭크 램파드의 무각도 슛[59]으로 동점골을 만들면서 1승 1무로 판정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2년 뒤인 2008-2009 챔피언스 리그 4강전에서는...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오브레보 개새끼 해 봐

그 뒤 3년 만에 2011-2012 시즌 챔피언스 리그 4강전에서 위에 서술한 대로 드라마틱한 경기를 펼치며 첼시가 바르셀로나를 꺾고 올라갔다. 공교롭게도 이때 두 팀의 감독은 99-00 시즌 선수로 피치 위에서 부딪힌 로베르토 디 마테오, 펩 과르디올라였다.

첼시는 2006-07 시즌 이후로 한 번도 FC 바르셀로나에게 진 적이 없으며, 과르디올라가 감독으로서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유일한 팀이기도 하다. 최고의 축구스타 메시 역시 첼시와의 경기에서 단 한 차례도 골을 넣지 못했다. 심지어 PK도 놓칠정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FC 바르셀로나와 티키타카가 유독 첼시에게만 힘을 쓰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시기의 첼시가 전성기의 첼시가 아닌, 무리뉴 1기의 말년과 잦은 감독 교체기였음을 감안하면 상당히 놀라운 결과이다. 티키타카는 압도적인 피지컬과 활동량으로 전방위 압박을 가하는 게겐 프레싱에 카운터를 맞고 황혼기에 접어들었는데, 첼시 역시 수비 차원에서 이와 비슷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무리뉴가 남긴 선 수비 후 역습 정신은 후에 부임한 감독들에게도 그대로 계승되었으며,[60] 마케렐레, 에시앙, 램파드, 발락 등 활동량과 압박 면에서 유럽 최고 수준의 중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길목마다 번번이 바르셀로나의 발목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7 응원가


제목 : Blue is the color

Blue is the colour, football is the game
푸른색이 제일이고, 축구가 최고라네
We're all together, and winning is our aim
우리는 다 함께하고, 승리는 우리의 목표지
So cheer us on through the sun and rain
그러니 해가뜨나 비가오나 우리를 응원하자
Cause Chelsea, Chelsea is our name
첼시, 첼시는 우리의 이름이니까.

Here at the bridge[61] whether rain or fine
날씨가 좋던 궂던 여기 브릿지에서
We can shine, all the time
우리는 언제나 빛날 수 있어
Home or away come and see us play
홈이든 원정이든 항상 우리를 보러 와
You're welcome every day.
너는 언제나 환영받을꺼야

Blue is the colour, football is the game
푸른색이 제일이고, 축구가 최고라네
We're all together, and winning is our aim
우리는 다 함께하고, 승리는 우리의 목표지
So cheer us on through the sun and rain
그러니 해가뜨나 비가오나 우리를 응원하자
Cause Chelsea, Chelsea is our name
첼시, 첼시는 우리의 이름이니까.

Come to the shed[62] and we'll welcome you
섀드에 와, 그럼 환영받을꺼야
Where your blue, and see us through
푸른 유니폼을 입고, 우리를 봐
Sing loud and clear until the game is done
경기가 끝날때까지 크고 또렷하게 노래해
Sing Chelsea Every one
모두다 첼시를 노래해

Blue is the colour, football is the game
푸른색이 제일이고, 축구가 최고라네
We're all together, and winning is our aim
우리는 다 함께하고, 승리는 우리의 목표지
So cheer us on through the sun and rain
그러니 해가뜨나 비가오나 우리를 응원하자
Cause Chelsea, Chelsea is our name
첼시, 첼시는 우리의 이름이니까.

노래 제목은 Blue is The Colour. 홈 구장인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제일 처음으로 나오는 응원가이다. 1972년 리그 컵 결승 진출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선수단이 이 노래를 녹음했다. 한 때 UK 차트 5위까지 올라가면서 가장 성공한 축구 팀 응원가가 되었다. 1973년 스토크 시티와의 리그 컵 결승전에서 첼시 팬들이 처음으로 이 곡을 부르나 졌다.

토트넘, 아스날 디스하는 Pride of London이란 응원가도 있다. 가사를 보면 런던 연고 축구팀들보다 우수하다고 하며 토트넘과의 홈 경기에서 토트넘은 페널티킥도 실축하며 4-3으로 이겼다고 깐다.(...)
그리고 Blue Day 등도 응원가로 유명하다.

선수 응원가도 많이 있으며, 감독 디스 곡(Rafa Out)도 있다(...). 응원가 중에는 꽤나 거친 곡도 많아 F word가 밥먹듯이 들어가는 곡들도 있을 정도. [링크].


8 유니폼

항목 참조


9 기타

  • 아브람 그랜트 前 첼시 감독은 재직 시절 ["첼시 빅클럽 아냐."] 하면서 팀이 명문팀으로 도약하려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올라야한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이 분이 원조구만
  • 웸블리 스타디움이 재건축을 하는 동안 잉글랜드 FA 컵은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결승이 진행되었는데, 첼시는 재건축 전 마지막 결승과 재건축 후 뉴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첫 FA 컵 우승을 차지한 전력이 있다. 뉴 웸블리에서의 첫 칼링 컵 결승에도 진출했으나 토트넘에게 패했다.
  • 1970년 이후로 첼시 헤드 헌터스라는 훌리건 집단이 악명을 떨치던 적이 있었는데, 웨스트 햄, 밀월 등과 더불어 런던의 악질 훌리건으로 유명했다. EPL 출범 이후로는 구장의 전좌석화, CCTV 설치 등으로 거의 훌리건들이 보이지 않으며 타팀 팬들이 보기에 첼시 팬들이 얌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여전히 첼시의 과격 훌리건들은 무시무시하다.[63] 09-10 시즌에만 126명의 팬이 구속되었으며 27명은 영구 입장 정지를 당했다. 참고 자료.[64]
  • 1410214520876_wps_25_Chelsea_manager_Jose_Mour.jpg
    무리뉴의 표정이 묘하게 음흉하다.EPL을 대표하는 강팀으로 유명하지만 삼성전자가 스폰서하는 팀으로도 유명했다. 첼시가 강팀으로 일어서는 와중에 1800만 파운드(약 300억원)의 계약으로 2004년 삼성에서 스폰서를 맺었고, 파란색이라는 컬러가 잘 맞아떨어져서 일명 '블루동맹'이라 불리며 광고효과도 매우 쏠쏠하다고 한다, 이러한 신의 한 수는 아직도 대표적인 성공적 마케팅 전략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그러나 2015년부로 스폰서 계약이 종료되고, 삼성 측에서는 마케팅 비용을 대대적으로 줄이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결국 삼성과의 스폰서계약은 2014-15시즌으로 끝나고 2015-16시즌부터 요코하마고무(요코하마 타이어라는 타이어 브랜드로 유명하다.)로 유니폼 스폰서가 바뀐다. 04-05시즌부터 첼시와의 스폰서 계약을 한 삼성은 딱 10년동안 스폰서를 한 후 관계를 끝냈다.[65] 더불어 스폰서 금액은 연간 40M,우리나라 돈으로 680억원의 계약이라고 한다.[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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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시엔 표정이 정말 행복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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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에드 시런이 첼시 팬이라고 한다.


10 같이 보기

순서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국가첫 우승연도우승 횟수
1 레알 마드리드
(Real Madrid)
1956년11회
2 벤피카
(Benfica)
1961년2회
3 밀란
(Milan)
1963년7회
4 인테르나치오날레
(Internazionale)
1964년3회
5 셀틱
(Celtic)
1967년1회
6 맨유
(Manchester Utd.)
1968년3회
7 페예노르트
(Feyernoord)
1970년1회
8 아약스
(Ajax)
1971년4회
9 바이에른 뮌헨
(Bayern)
1974년5회
10 리버풀
(Liverpool)
1977년5회
11 노팅엄 포레스트
(Nottingham Forrest)
1979년2회
12 애스턴 빌라
(Aston Villa)
1982년1회
13 함부르크
(Hamburg)
1983년1회
14 유벤투스
(Juventus)
1985년2회
15 스테아우아
(Steaua)
1986년1회
16 포르투
(Porto)
1987년2회
17 PSV
(Eindhoven)
1988년1회
18 츠르베나 즈베즈다
(Crvena Zvezda)
1991년1회
19 바르셀로나
(Barcelona)
1992년5회
20 마르세유
(Marseille)
1993년1회
21 도르트문트
(Dortmund)
1997년1회
22 첼시
(Chelsea)
2012년1회
ECA (European Club Association, 유럽 클럽 협회) 창립 회원
디나모 자그레브
(Dinamo Zagreb)
레알 마드리드
(Real Madrid)
레인저스
(Rangers)
리옹
(Lyon)
맨유
(Man Utd)
밀란
(Milan)
바르셀로나
(Barcelona)
바이에른
(Bayern)
비르키르카라
(Birkirkara)
아약스
(Ajax)
안더레흐트
(Anderlecht)
올림피아코스
(Olympiacos)
유벤투스
(Juventus)
첼시
(Chelsea)
쾨벤하운
(København)
포르투
(Porto)
  1. 첼시는 이름만 첼시지 사실은 풀럼에 위치해 있다.
  2. 2016년 기준
  3. 역대 수비수 최고 이적료이다. 한편, 그의 이적 직후 월드컵이 시작되고 브라질은 4강에서 독일을 만나게 되는데...
  4. 첼시 팬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구단의 전설적인 선수 가운데 한 명이다!
  5. UEFA 챔피언스 리그, UEFA 유로파 리그, UEFA 슈퍼컵, 현재 폐지된 UEFA 컵위너스컵
  6. 2013년에 UEFA 유로파 리그를 우승하면서 4번째로 이 기록을 보유한 클럽이 되었다. 이전에는 유벤투스 FC, AFC 아약스, FC 바이에른 뮌헨이 달성했다.
  7. 04-05 시즌 95점
  8. 09-10 시즌 103골
  9. 04-05 시즌 15실점
  10. 14-15 시즌 1R~38R
  11. 첼시가 위치한 지역은 런던에서도 부촌으로 유명하다.
  12. 실제로 맨체스터 시티는 2부리그 최다 우승
  13. 참고로 스폰하는 이 10년동안 첼시와 삼성은 서로 세계 최고수준의 빅클럽과 대기업이 되었다. 그래서 서로에게 아쉬웠는지 스폰이 끝나기 전 서로서로에게 10년 스폰 기념 영상을 헌정했다.
  14. 1위는 맨유의 쉐보레 연간 5300만 파운드
  15. 이 지역은 이탈리아계 이주민이 많다고 한다.
  16. 아이두르 구드욘센과 최고의 호흡을 보여준 그 선수 맞다.
  17. 첼시가 로만에게 큰 클럽이라고 할 수 있어도, 맨시티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즉, 첼시는 로만 이전부터 어느 정도 성적도 낸 클럽이었던 반면 맨시티는 만수르가 인수하기 전까지 첼시와 달리 하위권이나 2부리그 생활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일부 첼시팬들은 맨시티와는 다르다고 한다. 로만은 왕족이 아니니까
  18. 당시의 분위기에 대해서는 [이 글] 참조.
  19. 맨시티의 인수 후 초창기를 생각해보라.
  20. 아이러니하게도 이 득점은 한때 첼시에 있었던 니콜라스 아넬카의 득점이다. 파울루 페헤이라의 반칙으로 얻은 PK를 성공한 것.
  21. 선 수비 후 역습.
  22. 부진이라고 해도 점유율은 4:6으로 바르셀로나가 앞서 갔다. 그러나 유효 슈팅 수는 첼시가 더 많았다.
  23. 테리, 카르발료, 불라루즈
  24. 역시 거금을 들여 영입한 칼루와 미켈은 위에 자세히 나와 있으므로 생략.
  25. 물론 발락은 FA로 왔기 때문에 이적료에 대한 부담감은 전혀 없었고 셰브첸코에 비해서는 덜 까였다. 후에 잘했기도 했고...문제는 주급이 너무 비싸 재계약에 실패했다.
  26. 참고로 첼시는 04-05, 06-07, 08-09 시즌에 4강전을 치를 때마다 심판 판정에 대한 논란이 불거져 나왔으며, 그럴 때마다 반드시 패했다. 안습.
  27. 아스날에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따라붙은 계기가 된 경기. 아스날 항목 참조. 06-07 FA Cup 결승전에서는 드록바의 연장 결승골이 터지자 무리뉴의 벼 베기 세레모니가 나왔다. 벼 베지 마
  28. 리그는 맨유에 밀린 2위, 칼링컵은 토트넘에게 져서 준우승, 그리고 챔스는...
  29. 이스라엘 여러 구단의 스카웃 제의를 마다하고,그 뒤로도 프리미어 리그에 남고 싶다던 그는 이후 포츠머스 FC 감독이 되지만 첼시 때와 달리 강등당하였고 다시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감독이 되었지만 여기도 2010~11시즌 강등권에 머물다가 결국 강등, 2회연속 강등팀 감독이라는 불명예를 당했다. 그 뒤에 잉글랜드를 떠난 그란트는 세르비아 리그로 가서 FK 파르티잔 감독이 되어 팀을 리그 우승시키며 프리미어리그에서 2회 연속 강등감독이란 오명을 씻으며 은퇴했다.
  30. 이 시기 말루다는 맨유의 우리형 부럽지 않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
  31. 다만 이 시점에서 MBC ESPN이 히딩크빨 시청률 상승을 기대하며 레알-리버풀이라는 희대의 대진을 씹고 첼시 경기를 라이브로 중계하며 축빠들에게 까이기도 했다. 유벤투스도 만만찮은 강팀이긴 하지만 이 시즌 리버풀이 워낙 힘세고 강했던지라 말이 많았다. 어쨌든 첼시빠들은 좋아했지만.
  32. 전반 종료 시점에서 합계 3:3이 되 원정 다득점으로 첼시가 우세했다. 첼시가 다시 세 골을 넣었지만 리버풀도 두 골을 따라붙었고, 이 시점부터는 원정 다득점도 리버풀이 앞서기 때문에 리버풀이 한골만 더 우겨넣으면 연장 갈 것도 없이 그대로 끝.
  33. 이 경기는 첼시의 챔피언스 리그 경기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명경기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한 편의 영화 같은 경기니 축구 팬이라면 꼭 감상해 보도록 하자. 리버풀도 당시 스티븐 제라드가 없이 나선 경기였기 때문에 팬들이 기대를 버리고 보다가 어...어... 하는 사이 희대의 명경기를 보았다며 승패는 둘째치고 2008-09 후반기의 3대 명경기로 꼽을 정도. 아스날전 4-4도 있는데? 안드레이 아르샤빈 하나를 못 막아서... 3대 명경기 중에서도 해당 시즌 16강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털어버린 것보다 더하다고 할 정도다. 물론 올드 트래포드에서의 맨유 1-4 리버풀 정도로까지 쳐주지는 않는 모양이지만... 이탈리아의 스포츠전문지 '라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는 이 경기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천년에 한번 나올법한 승부."
  34. 매일 같이 경기 비디오를 보며 메시의 움직임을 공부했다고 한다
  35. 오브레보에게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You Fu**ing disgrace라 외치셨다...
  36. 에버턴과의 결승전이었으며 이 경기 역시 명경기이다. FA 컵 사상 가장 빠른 25초 만에 루이 사하에게 선제골을 먹었지만, 말루다의 크로스를 받은 드록바의 동점골, 그리고 램파드의 환상적인 중거리 슛 역전 골로 2:1로 승리했다. 골을 넣은 뒤 램파드의 세레모니는 과거 자신의 아버지가 FA 컵에서 골을 넣은 뒤 한 세레모니를 따라서 한 것.
  37. 04/05 시즌
  38. 런던 소재 클럽 중 첼시와 함께 빅4의 일원이었던 아스날은 아스날은 바르셀로나에게 패해 준우승한 게 최고 기록. 또 토트넘의 경우에도 우승 경력이 없다.
  39. 공교롭게도 당시 레알 마드리드도 리그를 5위로 마무리하는 바람에 챔피언스 리그에 직행할 수 없었다. 이 때 마드리드는 결승전에서 발렌시아를 3-0으로 완파하며 8번째 빅 이어를 들어올렸고, 스페인 축구 협회는 리그를 4위로 마감한 사라고사를 UEFA 컵으로 강등시키고, 레알 마드리드에게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부여하였다.
  40. 사실 토레스의 골이 없었어도 1,2차 총합골 (2)-(2)로 홈에서 바르셀로나에게 골을 안내준 첼시가 원정 다득점이여서 결승 진출은 가능했다. 그래도 이 골로 바르셀로나가 2골을 넣어야 되어 화려하게 마무리하게 된다. 1골차면 바르셀로나가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지만 버스 한 번 뚫는 것도 어려운데 시간도 부족하고 그것도 두번을 어떻게 하냐
  41. 체력이 많이 떨어진 연장전이니만큼 키커가 더 강하게 찰 수 있는 방향으로 올 거라 생각했고, 왼발잡이인 로번의 입장에서는 오른쪽으로 찰 때 힘을 더 많이 실을 수 있으므로 오른쪽을 선택했다고 한다.
  42. 특히 슈바인슈타이거는 카메라에 잡힌 모습만으로도 박살나고 있는 멘탈이 보일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그리고...
  43. 바이에른 자체도 이 경기 전까지 챔피언스 리그에서 승부차기 2승 0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44. 체흐가 손끝으로 터치하기는 했다.
  45. 펩 과르디올라를 원하고 있었던 로만으로서는 차마 우승 감독을 내칠 수는 없어서 마지못해 맺은 계약이었다. 햇수도 고작 1년.
  46. 실제로 바이언과의 슈퍼컵에서 비겼지만 리그에서 선덜랜드한테 홈인데도 졌다. 무리뉴가 홈에서 당한 유일한 1패....
  47. 프리미어 리그 역대 최장기 1위 수성 기록이었다.
  48. 단 디에고 코스타의 경우는 무리뉴 경질 2주 전에 훈련량을 늘리는 등 태업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비난의 여론에서 벗어난 상황.
  49. 예를 들어 로만이 라커에 들어와 에시엔에게 네가 전술의 핵심이다 라고 말하고 간다거나 무리뉴 경질후 실제로 자신이 직접 전술 지시를 하기도 했었다.
  50. 첼시 부임당시 무리뉴는 "만약 로만이 계속 팀 훈련에 관여한다면 우린 리그 꼴찌일 것이다. 만약 내가 로만의 사업에 관여한다면 우린 파산했을 것이다."라고 했을정도.
  51. 발락은 초창기에는 적응에 실패하였으나 08/09시즌부터 에시엔-램파드-발락 삼각편대의 한 축을 맡는등의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셰브첸코는...
  52. 그렇다고 에메날로가 무능한 것은 아니다. 토레스 영입시에도 사실 그는 반대했었고 마타, 다비드 루이스, 오스카르, 아자르 등 주전은 물론 쿠르투아, 로메우, 더브라위너. 피아존과 같은 유망주까지 11/12시즌 이후 이루어진 꿀영입들은 모두 그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53. 그리고 페르난도 토레스 영입은 에메날로가 아닌 당시 기술이사였고 지금은 함부르크 SV의 단장인 프랭크 아르네센의 입김이 가장 강했다. 사실 10/11시즌의 생각없는 무리한 지출은 아르네센의 무능함이 그 큰 원인이었던 듯. 그리고 그 무능함을 함부르크에 가서도 절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마이클 에메날로가 기술이사가 된 후에는 딱히 심각한 지출 없이 선수들을 쏠쏠하게 사오는 것을 보면...
  54. 당시 첼시는 다비드 비야도 관심이 있었지만 사무엘 에투에게도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에투 및 비야 구입에 사력을 다했으나 돌아온 것은 NFS였고 그 차선책으로 구입한 것이 당시 그래도 전성기를 달리던 셰브첸코였다. 그러나 경기에서 셰브첸코가 폭망(...).
  55. 체흐, 테리, 램파드, 드록바
  56. 최악의 스타트를 기록한 2015-16 시즌 전반기에서조차 첼시는 코스타의 적절한 초반 어그로가 대성공을 거두며(…) 2-0으로 이겼다. 2015년에 와서야 벵거에게 당한 유일한 패배는 이벤트전에 가까운 커뮤니티 실드이고, 결국엔 2015-16 시즌 전반기가 끝나기도 전에 무리뉴가 경질당하면서 리그에서는 무패 전적을 유지한 채 마무리되었다. 또한, 2016년 처음 열린, 그것도 아스날 홈에서 열린 리그전에서 또다시 1-0으로 승리하며 리그에서 4년 연속 아스날에 무패, 9시간 36분간 아스날에 무실점, 그리고 초반에는 강등 위기에 까지 몰렸던 최악의 시즌에서조차 아스날에 더블을 기록하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57. 2000년대 중후반에 챔피언스 리그에서 이들은 심심하면 만났다. 초반에는 리버풀이 재미를 보다가 후에는 첼시가 흥했다. 그런데 FC 바르셀로나전보다는 맞대결 기록이 적다.
  58. 이 경기는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최고의 경기 중 하나로 여겨진다.
  59. 페널티 박스 내부 엔드라인에서 띄운 공이 그대로 들어갔다.
  60. 일단 선수단부터 그렇게 구성을 해두었으니 말이다.
  61. 스탬퍼드 브릿지
  62. 섀드 엔드
  63. 영국 축구 컬럼니스트 사이먼 쿠퍼가 첼시 서포터를 만났는데 크리스털 팰리스 서포터와 싸우다가 쇠파이프로 상대방 머리를 때려 눈알 하나가 튀어나오게 했다고 한다...그리고 그걸 경찰이 봐버렸고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그 서포터는 5년동안 교도소행을 지내고 평생 경기장 출입금지를 당해서 티브이로 봐야 한다고 이를 벅벅 갈고 있었다. 뭐, 먼저 상대 서포터가 그 서포터를 때리긴 했으나 과하게 보복했으니...
  64. 역시 이 바닥에서 유명한 팀으로는 같은 런던 팀인 웨스트 햄, 그리고 맨 유, 버밍엄, 리버풀 등이 있다.
  65. 삼성그룹은 2013 시즌을 끝으로 스포츠 마케팅 비용을 줄여나가고 있다. 2013년 자사 축구단과 남녀농구단을 제일기획의 자회사로 넣으며 운영비를 줄여나가고 있으며 대한축구협회와 대한레슬링협회의 스폰서도 더이상 연장하지 않았다. 첼시 유니폼건도 자금싸움에서 밀린게 아니라 계약 연장을 올해까지만 하고 포기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66. 국내에선 전범기업 이미지가 강한지라 한국내에서는 반감이 상당히 컸다. 더욱이 국내기업 직후에 등장했으니... 하지만 첼시 입장에서는 한국내 이미지 보다도 계약금에 무게가 실리는 입장이라 어쩔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요코하마의 저주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