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kn al-Din Khurshah
(1229 ~ 1257)
페르시아 아사신의 제8대 수장이자 최후의 수장. 무함마드 3세의 아들.
아버지가 하산 마산다라니에게 살해되자 무함마드 3세의 정부이기도 했던 하산 3세의 아내가 남편이 자백한 이 사실을 밀고하자 쿠르샤는 하산 마산다라니와 그의 세 아들을 처형하면서 아사신파의 수장이 되었다.
이라크에 있던 몽골 제국군의 사령관 야수르에게 항복 문서를 보냈는데, 야수르가 훌라구 앞에 직접 나타나야 한다고 하자 호라산에 있는 훌라구의 진영에 동생인 샤한샤를 대신 보냈다. 1256년 6월에 야수르가 알라무트 지역을 침입하면서 공격을 굳건히 버티다가 훌라구가 항복 요청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쿠르샤가 요새들을 파괴하고 몽골 지도자 앞에 직접 나타나 항복한다면 아버지가 저지른 죄와 무관한 것으로 생각해주겠다는 전갈을 보냈으며, 야수르의 군대가 계속 전진하자 훌라구에게 알현하기 전에 1년 동안 시간을 달라는 것과 알라무트와 람마사르에 대한 파괴를 면하게 할 것을 요청했다.
훌라구가 쿠르샤가 직접 올 수 없다면 서약을 보증하는 징표로 아들을 보내야 한다고 하자 아들을 보냈으며, 훌라구는 쿠르샤의 진짜 아들인 것인지 의심했지만 니자리파 역사가들은 아들이 맞다고 주장했다. 또한 쿠르샤는 3백 명의 니자리파 사람들과 자신의 또다른 형제를 몽골의 수장에게 볼모로 보냈는데, 그 와중에도 훌라구는 계속 진격했다.
1256년 11월에 쿠르샤는 마이문디즈나의 문디들 성에 있다가 훌라구의 군대가 요새까지 오면서 닷새 안에 직접 항복할 것을 요구하자 19일에 보물을 챙겨 아들과 측근을 데리고 훌라구의 진영으로 들어가 항복했으며, 성 안에 남은 아사신들은 항복을 거부해 몽골인들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훌라구가 정중한 대접을 하면서 백 마리의 낙타와 몽골 신부를 선물로 받았으며, 훌라구가 쿠르샤를 따르면서 버티고 있는 아사신들에게 항복을 직접 호소할 것을 요구하자 그 말대로 해서 백 채 가량의 성채들을 몽골군에게 항복시켰다.
알라무트와 람마사르의 지휘관들은 처음에 항복하기를 거부했다가 알라무트는 1256년 12월에 항복했으며, 람마사르는 1년 동안 저항하면서 쿠르샤는 몽골인들에게 항복하라는 편지를 보내면서 몽케 칸과의 회합을 요청했다. 1257년에 몽골군을 따라 카라코룸으로 갔지만 몽케가 람마사르와 기르드쿠가 아직도 몽굴 군대에 저항하고 있으므로 접견을 거절했으며, 돌아오는 여행길에 낙담한 쿠르샤는 자신을 호위하던 몽골 수비대에게 얻어맞으면서 발로 차이다가 칼에 찔려 죽었다.
결국 람마사르는 같은 해에 함락되고 기르드쿠는 1270년까지 버티다가 함락되었는데, 1275년에 아시신 세력은 알라무트를 탈환했지만 1년도 안 돼서 다시 빼앗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