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3세

III. Hassan
(1213 ~ 1255)

페르시아 아사신의 제7대 수장이다. 또한 알라 알 딘 무함마드(Ala al-Din Muhammad)로도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며 하산 3세의 아들..

9살에 즉위한 이후에 장성하자 알라무트의 시이파 신도들에게 아버지의 이맘 재위에 대해 세속 통치자처럼 행동하면서 영적인 신분을 숨기는 사트르(은폐, Satr)의 시기로 본다고 발표했으며, 무함마드 3세가 엄격하게 강요하지 않았어도 알라무트에서는 샤리아를 준수했다고 한다.

페르시아 역사가로 아사신을 혐오한 주바이니에 따르면 무하마드 3세는 기울어가는 알라무트 공동체 서력의 나약함이 표출된 것에 불과한 타락한 지도자라고 하면서 젊어서 병에 걸릴 당시에 무능한 의사 때문에 과다 출혈로 인한 뇌손상으로 고생했다고 주장했다.

소문에 따르면 나이가 들수록 그의 행동은 미친 사람처럼 잔인하고 오만하며, 가학적인데다가 술에 중독되어 예측할 수 없었다고 한다. 무슬림 공동체와 동맹을 맺으면서 독일, 아라곤, 예멘 등으로부터 안전을 보정하는 대가로 재정적 공물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 당시의 아사신파의 상황으로 볼 때 공물을 받았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몽골 제국의 공격으로 인한 불안한 정치 상황으로 하산 3세가 이뤘던 다중 동맹이 깨졌으며, 1238년에 몽골군에게 대항하기 위해 프랑스의 루이 9세에게 사절을 보냈지만 유럽에서는 무슬림에 대항해 몽골인들과의 동맹을 모색하고 있었다고 한다. 1248년에 몽골인들의 회합에서 대표단을 파견하려고 했지만 거부되었으며, 1255년에는 이맘의 정신병이 놀라울 정도로 약화되어 아사신 지도자들은 이맘을 폐위시키고 아들인 루큰 알 딘 쿠르샤를 즉위시켜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렇지만 그 계획이 발생하기 전에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자신이 가학적인 사랑 놀음으로 불구로 만든 동성 연애 상대인 하산 마산다라니에게 살해되었으며, 무함마드 3세의 정부이기도 했던 하산 3세의 아내가 남편이 자백한 이 사실을 밀고해 쿠르샤가 하산 마산다라니와 그의 세 아들을 처형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