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hard Ira Bong (1920/9/24 – 1945/8/6)
1 개요
리처드 봉은 미국 육군 항공대의[1] 에이스로, 보기 힘든 쌍발기 에이스였다. 40대 이상의 일본기를 격추했으며 미국 최고의 격추왕으로 평가받는다.
2 상세
스웨덴 이민자 가정에서 9명의 자녀중 한명으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항공기에 흥미를 가졌다고 한다. 1938년에 민간에서 운영하는 조종사 양성 프로그램에 등록하여 교육을 받았으며 1941년에 조종사 후보생 프로그램에서 교육을 받게 된다. 비행훈련을 받는 동안 그의 비행능력을 인정받았다. 1942년 9월에 오스트레일리아의 다윈에 주둔한 49 전투비행전대 9 전투비행대대에 배속되었다. 그와 다른 조종사들은 P-38이 배달되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동안 뉴기니의 포트 모즈비에 주둔한 39 전투비행전대의 39 전투비행대대와 훈련을 하였다. 1942년 12월 17일에 봉은 P-38을 조종하여 2대의 일본기를 격추시켰다.[2] 이 공로로 봉은 은성 훈장을 수여받는다.
1943년 1월 7일에 2대의 K-43을 격추시키고 다음날 또 한대의 일본기를 격추시켜 에이스가 된다. 3월 3일에는 비스마르크해 해전 도중 1대의 A6M을 격추시켰으며 같은달 11일에는 2대의 A6M을 격추, 19일에는 1대의 중폭격기를 격추시키는 활약을 한다. 4월 14일에는 폭격기 1대를 격추시켜 메달을[3] 수여받는다. 6월 12일에는 A6M 1대를 격추시켰으며 26일에는 호위작전 도중 4대의 일본기를 격추시키고 수훈 십자상[4]을 수여받는다. 이후 11월 5일까지 6대의 일본기를 추가적으로 격추 시키고 1944년 1월까지 위스콘신으로 떠난다.
1944년 2월에 다시 전선으로 돌아와서 15일에 Ki-61 1대를 격추시킨다. 3월 3일에 Ki-21 폭격기 2대를 격추시켰으며 4월 3일에 1대 4월 12일에 3대를 격추시켜 이전에 미군 최고 격추기록인 26대를 깨뜨리게 된다. 이후 5월부터 7월까지 전선에서 잠시 물러났다가 다시 복귀한다. 10월 10일에 1대의 J1N과 Ki-43을 격추시켰으며 27일에 Ki-43 1대 다음날 2대를 격추시킨다. 11월 10일에 또 ki-43 대를 격추 시켰으며 11월 11일에 2대의 적기를 격추시키고 명예 훈장을 추천받는다. 12월 7일에는 Ki-21, Ki-44를 1대씩 격추시켰으며 15일과 17일에 Ki-43을 1대씩 격추시킨다. 총 격추수는 40대로 미군 조종사중 가장 많은 격추수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