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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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미 육군, 미 해군, 미 공군용 명예 훈장.

1 개요

미합중국 군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

Congressional Medal of Honor. 미합중국 정부에서 군인에게 수여하는 최상위 훈장.

수여 자격은 미군 내의 각군 소속이면 되고, 미국의 적과 전투 중에 자신의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자신의 직무 범위를 넘어 눈에 띄는 용맹을 보여 준 군인이라 판단될 때 수여하는 훈장이다. 의회의 동의를 얻어 의회의 이름으로 수여하기 때문에 풀네임은 의회 명예 훈장이다.

훈장의 특성상 살아서 받기가 상당히 힘들다. 안타깝게도, 훈장 수여의 약 99%가 가족이나 친지에 의해 대리 수령되었다.

육군, 해군, 공군마다 고유한 디자인이 존재하며, 미 해병대미 해안경비대는 해군 훈장을 받는다.

목에 거는 부분은 옅은 파란색을 띄는 비단으로 만들었고, 너비는 30㎜, 길이는 552㎜이다. 수여식 및 정장 패용시엔 목에 걸지만, 약장으로 패용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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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별개로 우주 개발 시대가 열린 뒤에는 Congressional Space Medal of Honor라고 해서 우주인들을 위한 명예 훈장도 있다. 닐 암스트롱, 존 글렌, 앨런 셰퍼드, 프랭크 보먼 등 초대 수훈자들부터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인데, 아무래도 달나라 마실가듯 우주전쟁하면서 다녀오고 하던 시대는 아닌지라 우주왕복선 시대에는 STS-51-L, STS-107 등 우주 개발 과정에서의 순직자들을 위한 추서 훈장의 성격을 갖고 있다.

2 역사

미합중국 최초의 무공 훈장은 미국 독립전쟁조지 워싱턴이 만든 Badge of Military Merit이다(현재는 폐지.). 이 뱃지를 본떠서 만든 게 바로 그 유명한 상이기장인 Purple Heart(퍼플 하트)다. 이후 그 외 훈장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가 남북전쟁링컨 대통령이 관련 법안에 서명하면서 명예 훈장이 만들어진다.

사실은 첫 명예 훈장은 남북전쟁이 터지기 직전에 수여된 적이 있다. 1861년 2월달, 미 육군 7연대 조지 N. 베스컴 중위와 60명의 부하들이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인 아파치에 포위되자 버나드 어윈 하사(31세)가 당나귀를 타고 160㎞을 달려와 포위를 뚫고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부대원 모두를 생환시킨 무공을 치하하여 링컨 대통령이 명예훈장을 수여했다.

명예 훈장이 정식으로 제정된 후 명예 훈장을 수여받은 이들은 남북전쟁 때 대열차추적(Great Locomotive Chase, 앤드류 습격대)에 참여했던 대원들이었다. 이들은 미리 전보선을 끊어 남부군이 습격을 알지 못하게 한 후 열차가 역에 정차할 때를 노려서 기습했다. 이 습격에 참여했던 이들은 후에 남부군에 체포되었는데, 이를 주도한 제임스 J. 앤드류스(James J. Andrews)와 7명이 처형되었고 민간인이었던 앤드류스와 캠밸을 제외한 나머지 19명이 명예 훈장을 수여받았다.

남북전쟁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수여되었고, 신미양요 때도 15명의 미합중국 해군 소속 장병들이 받았다.

유일한 무공 훈장이다 보니 지나치게 남발되는 경우가 많아, 이후 하위 훈장들을 제정하면서 수여 기준을 올렸다.

3 혜택 및 법적 보호

저승 구경을 하고 오는 것이 기본인 훈장인 만큼, 명예 훈장 수훈자에게는 굉장한 혜택과 법적 보호가 주어진다. 더군다나 수여하는 국가가 국가다 보니...

전공과 간지로 때우는 기사 철십자장과는 다르다! 아, 물론 소비에트연방영웅은 넘사벽이니 예외.

  • 각 명예 훈장 수여자는 명예 훈장 명부에 이름을 올릴 수 있으며, 이는 재향군인회에서 인증하여 수여자가 받을 자격이 있는 다른 군 연금이나 다른 혜택을 초과하여 따로 1,027달러의 연금을 받을 수 있다. 2004년 12월 1일부터 이 연금은 생계비 인상의 대상이다.
  • 수여자가 사병(부사관)일 경우 새 군복을 요구 시에 지급한다.[1]
  • 미 국방부 규정 4515.13-R이 명시하는 Space-Available Travel 규정에 따라, 명예 훈장의 수여자는 미 국방부 소속 항공기를 여행 목적으로 탑승하는 것[2]이 허용된다. 심지어 민간인 신분으로도![3] 여행하려는 경로에 적합한 미 국방부 소속 항공기 일정이 있고, 명예훈장수훈자는 자리만 있다면(...) 국방부 소속 항공기로 공짜로 여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명예훈장수훈자의 dependents 는 동승자 조건만 갖추면 국외-국외/국내-국외 여행 목적의 탑승이 허가된다. 물론 엄연히 군 소속 항공기므로 항공 일정이 취소되는 건 어쩔 수 없다.[4] 물론, 민간 소속 항공기라도 명예 훈장 수훈자가 탑승한다면 엄청난 우대를 받는 것이 당연하며, 국내선이라면 명예훈장수훈자가 탑승중이라고 기장이 자랑하는 것도 기본이다. 그래도 미국 국내선이 겁나게 비싸기 때문에 1등석으로 승급은 무리인듯.
  • 수여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특별한 식별증, 매점과 환전 특전이 주어진다.
  • 수여자는 따로 자격이 누락되지 않는 한 사후에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될 자격을 갖는다.
  • 수여자의 자녀들에게는 추천과 할당 요구사항에 관계 없이 미국 사관학교의 입학이 보장된다.(기본적으로 미국의 사관학교 입학은 추천제인데 추천 여부과 무관하게 본인이 원하면 자유롭게 입학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 훈장 수여자는 미 연방법 10장 3991조에 의거하여 퇴직금의 10%를 더 받을 수 있다.
  • 2002년 10월 23일 이후로 명예 훈장을 수여받은 자는 명예 훈장 기를 수여받는다. 또한 연방법 14장 505조에서는 현재 생존한 이전 수여자 103명에게도 이 기를 수여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 명예 훈장 수여자는 다른 모든 훈장과 마찬가지로 '적절한' 민간인 복장에 명예 훈장을 착용할 수 있다. 또한 정치적, 상업적, 또는 과격주의 목적등이 아니라면, 임의로 군복을 입을 수 있다(!)고 법에서 규정하고 있다.[5] 은퇴한 다른 군 인사는 규정된 행사시에만 군복을 착용할 수 있다.[6]
  • 군 규정에는 없지만 상관이라도 명예 훈장 수여자에게는 먼저 거수경례를 하는 게 관례라고 한다. 4성 장군도, 심지어 대통령도 먼저 경례를 한다.[7]해당영상
  • 2006년 후반까지 명예 훈장만이 유일하게 연방법으로 위조 및 매매가 금지되어 있었다가 2005년의 도난 훈장 법령 (Stolen Valor Act)이 2006년 12월 20일부터 제정됨에 따라 모든 훈장으로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
  • 모든 명예 훈장은 미 국방부에서 원본을 수여자에게 수여하며, 훈장의 오용 (인가되지 않은 생산 및 착용 포함)은 최대 10만 달러의 벌금 또는 1년의 금고형에 처할 수 있다. (미 연방법 18장 704(b)조에 의거)

4 기타

(수여식 영상)

육군이 가장 많은 수여자를 배출했고 가장 적은 수여자는 해안 경비대. 더글라스 문로 신호중사가 과달카날 전투에서의 활동으로 해군판을 받았던 것이 해안 경비대의 유일한 수상 사례. 아무래도 해안 경비대는 영해에서 말 그대로 해안 경비에 치중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해외에 파병되더라도 미 해군과 함께 비전투 임무를 수행하는 선이기에 이런 무공훈장 받을 정도로 험한 일은 드물다. 만약 해안 경비대가 몇십명씩 무더기로 명예 훈장 받을 일이 있다면 그건 아마 AMERICA UNDER ATTACK일 것이다(...)

현재까지 총 3,465번 수여되었으며 수여자는 3,446명이다. 19명은 이중 수여를 받았는데, 이 중 5명은 같은 행동으로 서로 다른 군의 명예 훈장을 수여받은 경우이며 나머지 14명은 다른 행동으로 두 번 수여받았다.

동양계 미국인 수훈자중에는 일본계가 압도적으로 많은 편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무려 21명이나 수훈자를 배출했고, 그중에는 9선의 기록을 가진 하와이 연방 상원의원 대니얼 이노우에 소위도 있다.[8]

한국전쟁 때도 일본계인 미야무라 히로시 상병이 동양계 중 유일하게 명예훈장을 수훈받았는데 대전에서 진지를 방어하던 중 중국군 인해전술로 인해 밀려 후퇴할 때 후방에 남아 부상병까지 모두 데려갈 수 있도록 시간을 벌고는 혼자 수십명의 중공군을 상대로 백병전을 벌여 죽이고 그들의 피로 죽은 것처럼 위장해서 전투가 끝날 때까지 살아남았다가 이후 포로가 되어 휴전 후 포로교환 때 풀려났다고 한다(...). 안그래도 일본인에게 악감정 가진 북한군이 혹여나 미야무라 상병에게 혹독한 고문을 할까봐 명예훈장 수여 여부를 그가 풀려날때까지 군 일급기밀에 부쳤다고(...)출처

한국도 비슷한 태극 무공훈장이 있다. 명예 훈장과 비교한 한국의 군인에 대한 대우 수준. 태극무공훈장 수여자들도 일부 쓰레기를 제외하면 명예훈장 수여자에게 뒤처지는게 없는데도.법률

5 수훈자

원칙적으로는 공을 세우거나 전사한 뒤 2년 내에 대통령에게 소식을 알리고 3년 내에 수여되도록 하고 있지만, 시체조차 찾지 못한 전사자들이나 부대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으면서 고군분투했던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오랜 세월이 흘러서야 훈장을 받은 이들도 많다. 또한 공적을 최대한 정확히 파악하여 수훈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아직도 제2차 세계대전이나 한국전쟁에서의 영웅적 활약을 기려 이 훈장이 수여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이 경우 수훈 당사자가 살아 있을 확률은 거의 없으므로[9] 그 가족이 대리로 받게 된다.

5.1 실제 수훈자

각종 매체를 통해 잘 알려진 수훈자 위주로 나열했다. 수여받은 사람의 수가 총 3470명이나 되는 만큼[10] 너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이름이 없다고 해서 훈장을 받을 만큼 훌륭한 사람이 아니란 말은 아니다.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 항목도 참조. 미국이 역사는 짧은데 배는 너무 많아서 붙일 만한 이름이 바닥났고 전사자들의 이름을 따오는 전통 아닌 전통이 생겨서 명예 훈장이 추서된 전사자들의 상당수(특히 해군·해병 출신)는 최신 전투함의 함명에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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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윌시 육군 중령[11]조지 맥머트리 육군 대위넬슨 홀더먼 육군 대위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두고 77보병사단 308연대와 306·307연대 잔존병 500여 명을 이끌고 5,000명에 가까운 독일 육군에 포위되어 필사의 항전을 벌여서 독일군 전선을 크게 무력화시켰다. 영화 '로스트 바탈리온'이 이들의 활약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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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둘리틀 육군 중령

둘리틀 특공대의 바로 그 분. 살아서 돌아온 뒤 대령을 건너뛰고 준장이 되어 명예 훈장을 수여받았다. 중장으로 예편했지만 노년을 보내던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기 대통령이 그를 명예 공군 대장으로 진급시켜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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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맥아더 육군 원수

그 맥아더 맞다. 필리핀 바탄 반도에서 분전하던 맥아더에게 호주로의 철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명예 훈장이 수여되었다. 아버지이자 육군 중장까지 지낸 아더 맥아더 주니어도 명예 훈장 수훈자라 부자가 각각 명예 훈장을 받은 기록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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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이노우에 육군 대위

2012년 12월 작고하기 전까지 정치 생활 내내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다. 의대를 다니고 있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하와이에서 진주만 공습에 이은 행정명령 9066호로 수용소에 끌려갈 위기에 육군에 자원 입대하여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되었다. 처음엔 의무병이었지만 전쟁이 길어지며 현지임관으로 장교가 된 뒤 독일군 기관총 방어진지 제압 작전에서 한 팔을 잃고도 소대를 잘 지휘한 공로가 인정받아 상이 기장과 청동십자훈장을 받았고, 2000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추천을 받아 명예 훈장을 수여받았다. 최종 계급은 대위. 1963년 1월 하와이 주의 연방 상원 의원에 당선된 후 2012년 12월 작고할 때까지 연방 상원 의원으로 9선의 기록을 달성하여 미국 역사상 네번째, 非백인계 인종으로는 제일 오래 중앙 정계에 몸담은 기록을 가진 인물이다. 2012년 12월 작고한 뒤 장례식에서는 버락 후세인 오바마 대통령과 수많은 스타들이 장례식에 참석했고 랩터의 추모 비행이 있었다. 미 해군에서는 이후 알레이 버크 급 플라이트 IIA: 기술 실험 버전의 세번째 함정으로 예정된 DDG-118의 이름을 USS 대니얼 이노우에라 결정하였다. 이는 일본계 이름으로서는 강습상륙함 이오지마 이후 오랜만에 나오는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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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디 슈거트 육군 중사게리 고든 육군 상사

영화 블랙 호크 다운에서 다루고 있는 모가디슈 전투에서 추락한 헬기 슈퍼 64의 생존자인 조종사 마이클 듀란트를 보호하기 위해 상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청해서 민병대와 무수한 군중들 사이에 뛰어들었다. 필사적으로 버텼지만 결국 끝도 없이 몰려오는 모두를 당해내지 못하고 전사했다. 타군인 미 해군에서도 그들을 기려 신형 군수지원함 2척에 그들의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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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머피 해군 대위

네이비 씰 대원으로, 영화 론 서바이버에 나오는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레드윙 작전의 정찰 임무를 수행 중 탈레반과의 교전에서 심한 부상을 입고도 산악 지형이라 본부와의 통신이 되지 않자 동료들의 구출을 위해 죽음을 무릎쓰고 개활지로 이동, 통신을 시도하여 지원군을 요청하는데 성공하고 이후 교전 끝에 전사하고 만다. 덧붙여 알레이 버크 급 구축함의 62번함 DDG-112에는 마이클 머피의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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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토레 쥔타 육군 하사

아프간 전쟁에서의 네번째 수훈자이자 베트남 전쟁 이후 최초로 생존자로서 명예 훈장을 받은 사람이다. 미국 내의 반응도 아주 뜨거웠는데 스티븐 콜베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비롯해 여러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2011년 하사 계급까지 달고 제대하여 콜로라도 주립 대학교에 재학 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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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 '패피' 보잉턴 해병 대령

플라잉 타이거즈에 잠시 몸담은 적도 있는 해병대 항공대 최고의 에이스(28대 격추). 보잉턴의 활약은 자서전 <Baa Baa Black Sheep>과 동명의 TV 드라마로 극화되었다(1970년대 후반 MBC TV에서도 방영). 하지만 모난 성격이라 이리저리 치고받기도 했으며 이런 성격 때문에 플라잉 타이거즈의 지휘관 클레어 센놀트 대령과 불화가 생겨서 팀을 나왔다. 원래 1944년에 명예 훈장 수훈이 결정된 상태였지만 하필 태평양 전쟁 말기를 일본군에 포로로 잡힌 상태에서 수용소 생활을 하다가 일제 패망 이후에 풀려났기에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수훈한 훈장을 해리 S. 트루먼에게서 받았다. 최종 계급은 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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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도메로 로페즈 해병 중위

인천 상륙작전 항목 첫번째 사진에서 맨 위쪽에 있는 군인. 유일하게 실전 경험이 없던 중위이며, 상륙 후 주둔하고 있던 북한군을 공격하기 위해 첫번째 수류탄을 투척한 뒤 곧바로 두번째 수류탄을 투척하려 했으나 적군 자동화기에 가슴과 오른 어깨를 피격당해, 막 투척하려던 수류탄을 땅바닥에 떨어트렸다. 자신이 떨어트린 수류탄 때문에 소대원들이 위험에 처하게 되자 온몸으로 막아 대원들을 구하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 전공을 기려 사후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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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바실론 해병 중사

과달카날 전투에서 무려 48시간 동안 일본 육군 3,000명과 맞서 싸웠다. 전투 도중 고장난 기관총을 수리하거나 아군 기지까지 포화를 뚫고 돌아가 탄약을 메고 다시 돌아오는 등 미친 듯이 활약을 펼쳤으며, 적들의 시체가 시야를 가로막자 적진으로 "뛰어가서" 시체담을 무너트리고 다시 돌아와 기관총을 갈기거나, 무려 15㎏이 넘는 수냉식 브라우닝 기관총을 "들고"[12] 일본군을 죽이기도 했다. 확인된 것만 37명 이상의 적을 사살해 생존한 채로 명예 훈장을 받고 전쟁채권 홍보 등으로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으나, 사무직으로 남는 것을 거부하고 해병 신병교육대 교관을 거쳐 다시 최전선 파병을 지원하여 제5해병사단에 배치되었지만 이오지마 전투 초반에 전사하고 만다. 전사할 당시 계급은 중사. 후에 그의 이름을 딴 기어링급 구축함이 진수되었다. 더 퍼시픽의 주인공으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패피 보잉턴 대령과 함께 해병대에서 보기드문 명예 훈장과 해군 십자장을 모두 받은 용자이자 이 기록을 가진 유일한 부사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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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 머피 육군 소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6세의 나이로 자원입대하여 이탈리아 전선, 프랑스 전선에서 용감히 싸워 은성무공훈장 등 여러 훈장을 받았으며, 현지임관으로 소위가 되었다. 1945년 1월 26일 홀츠마이어 전투에서 1개 소대 병력으로 독일군 2개 대대 병력의 공격을 격퇴하였으며, 특히 격파된 아군 M10 울버린 구축전차 포탑 위에 단신으로 뛰어올라가 포탑의 대공기총으로 독일군을 격퇴하면서 화력유도까지 해내는 공을 세워 명예훈장을 받고 중위로 진급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자신의 전투를 영화화한 영화 'To Hell and Back'에 본인 역을 스스로 맡는 등 영화배우로 전업하여 활동하였고,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참전용사들의 PTSD 치료를 위한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다가 1971년 비행기 추락 사고로 45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현재까지 미 육군 장병 중 가장 많은 훈장을 수훈한 사람이자 최단기간에 이등병에서 장교까지 올라갔다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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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코타 마이어 해병 병장윌리엄 스웬슨 육군 대위[13]

다코타 마이어는 아프간 전쟁 중 2009년 9월 8일 아프가니스탄 쿠나르 지방 간즈갈 계곡 전투에 참여하여 탈레반 50명의 기습을 받았다. 이 기습으로 동료 미군 4명이 사망했고, 36명의 아프간 정부군이 발이 묶였다. 마이어 병장은 말리는 상부의 지시를 무시하고, 동료인 로드리게스 차베즈 하사와 함께 험비를 타고(정확하게는 차베즈 하사가 험비 운전을 하고, 마이어 병장은 험비 상부 기관총을 잡았다) 5회 왕복을 하며, 동료 미군 시신 4구와 아프간 정부군을 구출했다. 이 과정에서 마이어 병장은 4회째 왕복에서 오른팔에 총상을 입었다. 이후 마이어 병장은 전역하였고, 건설회사에 근무하던 중 2011년 9월 15일 명예 훈장을 수여받고 오바마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맥주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었다. 역대 최연소 수훈자이고,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중 생존한 미군으로는 3번째, 미 해병대에서는 첫번째 수훈자였다. 동료인 차베즈 하사는 명예 훈장을 받지는 못했으나 두번째로 높은 "Navy Cross" (해군 십자상, 육군 수훈 십자상과 동일하다)를 수여받았다.
명예 훈장 수여를 알리기 위해 백악관에서 마이어가 일하는 곳으로 전화를 했는데, 마이어 병장은 지금은 현장에서 일하는 중 이며 업무 시간에 다른 짓을 하면 수당을 받을 수 없다며 점심시간에 다시 전화 하라고 한다. 대통령의 전화를 씹은 용자 이에 백악관에서는 점심시간에 맞추어 다시 마이어와 통화를 했으며, 통화를 마친 마이어는 다시 일을 하러 갔다고 한다. 후에 백악관에서 열린 수여식에서 오바마는 이 일화를 언급하며 "내 전화를 받아줘서 감사하다"는 조크를 한다.

윌리엄 스웬슨은 마이어과 함께 간즈갈 계곡 전투에서 싸웠던 육군 대위다. 그는 당시 전투에서 구출 작전을 주도했고 그로 인해 명예 훈장 후보에도 올랐으나 탈락했다. 이유는 수뇌부에게 개겨서…더 정확히 말하자면, 당시 상부에 화력 지원을 요청했으나 묵살당했고, 이를 비판했기 때문이었다. 수뇌부에게 밉보인 스웬슨은 당연히 수훈에서 탈락했다. 훈장도 받지 못한 채 2011년에 전역, 이후 미혼에 무직으로 살아왔다고 한다(…). 아이고 아이고 나이가 서른 다섯인데 무직에 총각이라니 그런데 당시 스웬슨을 알던 종군기자가 이후 마이어의 수훈과 그 전공에 의문을 품고 추적해 이러한 사실을 폭로했다. 마이어도 자신의 저서에서 종군기자의 주장에 동조하였다. 해병대 자체에서는 반발했지만, 캘리포니아의 하원의원이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에게 편지를 써서 제대로 조사가 이루어져, 2013년 10월 15일 명예 훈장을 받았다(마이어 역시 해당 전투에서 작지 않은 공을 세웠기 때문에 수훈은 유지되었다). 참고 1 참고 2 위키백과스웬슨 대위 항목 역시 참고해도 좋다. 스웬슨은 2014년에 현역으로 복귀하여 다시 복무하고 있다.

윌리엄 H. 카니 육군 상사

남북전쟁 중 와그너 요새 공략중 기수가 저격을 받아 쓰러지자 대신 깃발를 들고 돌격하였으며 연대장인 로버트 굴드 쇼 대령의 전사에도 불구하고 부하들을 성공적으로 퇴각시킨 공훈으로 받았다. 퇴각 당시에 총 4곳에 총상을 입었지만 목숨을 건졌다. 카니 상사는 미군 최초의 흑인이자 유색인종 부사관이며 또한 최초로 유색인종으로서 명예 훈장을 받은 인물이기도하다. 카니 상사가 소속되었던 부대 또한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부대인 매사추세츠 54연대였는데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영광의 깃발이다. 영화 중에서 모건 프리먼이 맡은 역할이 카니 상사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이다. 또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공주와 개구리의 주인공인 티아나의 아버지 역시 이 사람을 모티브로 했다. 사족으로 맨 마지막에 나오는 쇼 대령과 부대원들이 조각된 기념비는 실존하는 것으로 보스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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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에반스 해군 중령

플레처급 구축함 USS 존스턴 함장으로 태평양 전쟁 참전하여 레이테 만 해전 중 사마르 해전 중 전사했다. 그가 속한 '태피 3'는 고작 지상공격 혹은 대잠, 대공화력만을 갖춘 최대 28대 비행기를 수용하는 마이너 항공모함인 카사블랑카급 호위항공모함 6척와 구축함보다 작은 존 C 버틀러급 호위구축함 4척, 그리고 같은 플레처급 구축함이 존스턴을 포함한 3척 뿐이었고, 상대는 야마토급 전함 야마토 1척, 나가토급 전함 나가토 1척, 공고급 순양전함 공고와 하루나 2척, 모가미급 중순양함 쿠마노와 스즈야 2척 및 다수의 구축함들로, 배수량만을 따지면 미국 태피3의 모든 함을 모아야 겨우 야마토 한 대와 비슷한 실정이라 무장이 매우 빈약했다.절망적인 상황에서 명령도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홀로 일본 주력 함대를 향해 돌격, 쿠마노 호의 함수를 어뢰로 날려버려 쿠마노의 호위를 위해 스즈야 호가 쿠마노와 함께 전선을 빠져나가 패퇴시키고 같은 구축함 및 호위구축함들에게 용기를 줬다. 이 후 공고와 야마토의 포에 큰 손상을 입었지만, 호위항공모함을 노리고 접근하는 일본 중순양함, 구축함들을 향해 또 홀로 덤벼들어서 전선을 흐트려 놓아 일본 함대를 상대로 용감하게 맞섰지만, 끝내 USS 존스턴 함이 격침되어 실종됐으며, 그의 무모하면서도 용감했던 희생은 일본군을 교란시켜 잘못된 판단을 하게 만들고, 자신이 속한 태피3가 전멸하는 것을 막음과 동시에 더글러스 맥아더를 비롯한 필리핀의 수많은 미군을 구했다. 사후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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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 W. 프리먼 육군 소령

대위 시절 베트남 전쟁에서 헬리콥터 조종사로 활약했다. UH-1 휴이를 몰았다. 미군과 북베트남군 사이에서 벌어진 첫번째 전투인 이아 드랑 전투(Battle of Ia Drang)에서 자신과 편대장이 실어나른 육군 대대가 집중 포화를 받자 포화를 14차례나 뚫고 들어가 보급품을 운송하고 부상자 30명을 외부로 실어날랐다. 착륙 지점은 전투가 벌어지던 곳에서 불과 200여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았기에 그의 헬기도 사격에 노출되었고, 이 때문에 프리먼 대위는 팔과 다리에 총 네차례나 총상을 입었다. 부상을 입은 후 비행 부적합 판정을 받은 뒤엔 공병으로 전과했다. 그의 편대장이었던 브루스 크랜달(Bruce Crandall) 소령 역시 같은 전투에서 활약하여 명예 훈장을 받았다. 훈장 추천 시기가 늦어서 당시에는 받지 못했지만 명예 훈장의 추천 시기 제한이 없어지면서 2001년 7월 16일에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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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카폰 육군 대위

천주교 군종 신부. 6.25 전쟁에서 명예 훈장을 받은 이들 중 거의 유일한 비전투요원이자 사제. 한국전쟁군종 신부로 참전하여 아군은 물론 적군까지도 가리지 않고 돌봤으며, 부상당한 적군한테도 대놓고 투항하라고 권유할 정도로 간 큰 인물. 운산 전투에서 포로가 된 뒤 같이 포로가 된 장병들의 탈출도 돕고 자신의 배식도 동료 포로들에게 나눠주며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주다가 세균에 감염되어 사망했다. 신부이자 장교로써 모범이 된 인물이다. 60여 년이 지난 2013년에 명예 훈장이 추서되었으며 미국 가톨릭에서는 그를 순교자로 인정해야 한다며 카폰 대위의 시성에 필요한 기적도 조사되는 등 시성 운동도 하고 있다고 한다.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이 젊은 시절 번역한 그의 전기가 출간되기도 했다.

찰스 조셉 워터스 육군 소령

카폰과 마찬가지로 육군 군종 신부다. 베트남 전쟁 닥토 전투에서 공수작전 도중 부상당한 공수부대원들을 피신시키고 자신은 아군 항공기의 오폭으로 전사하여 사후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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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몬드 도스 육군 상병

위의 카폰, 워터스와 함께 비전투요원으로서 훈장을 받은 사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신자였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징집령을 받아 미 육군에 입대했지만 집총을 거부하고 대신 의무병과에 지원했다.[14] 그는 지휘검열이 있는 일요일에도 미사에 참석해야 한다며 상관의 명령을 거부하거나 전투병과로 보직 변경을 하라는 지휘관의 설득을 거부해 군대 내에서 골칫거리 취급을 받았다. 미 육군 77사단 307보병연대 1대대 소속으로 오키나와 전투에 투입되었는데 전투 내내 일본군의 집중 공격을 받으면서도 쓰러진 전우들을 일일이 확인해 생존자들을 아군 진지로 들어 날라 총 75명의 생명을 구하게 된다. 그 중에는 일본군이 대놓고 수류탄을 던지는 참호 앞까지 가서 생존자 7명을 구한 것도 있었다. 넓은 의미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해당하지만 의무병으로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전우를 구한 행동으로 명예 훈장을 수여받았다.
2016년에 그의 일생에 대한 영화가 개봉한다. 제목은 핵소 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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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로렌 맥고나걸 해군 중령

6일 전쟁 당시 리버티 사건에서 이스라엘 해군 어뢰정과 공군에게 피격당한 기술연구함(사실은 NSA와 공동운용하는 정보수집함) USS 리버티의 함장이었다. 이스라엘이 뒤늦게 "미국을 건드렸구나 ㅅㅂ 우리 x됐어요" 해서 똥줄 태우며 어뢰 쐈던 그 어뢰정(…)을 보내 구호지원을 제의했지만 쌩까고 자신도 부상을 당한 채로 USS 리버티를 지중해 미 해군기지까지 무사히 자력 항해하였다. 살아서 명예 훈장을 받는다는 사실은 백악관 초청이 당연한 용자의 상징이지만, 이 사건 자체가 기밀이었던지라 해군청에서 조촐한 수여식만 열어줘야 했다고. 어찌보면 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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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F. 딘 육군 소장

한국전쟁 당시 미군 포로 중 최고 계급으로 리학구 총좌와 교환되어 석방된 그 양반. 미 24보병사단장으로서 대전 전투를 이끌었다. 인민군의 엄청난 공세에 맞서 수많은 전차를 부수는 등 분전했지만 버텨내지 못하고 본대와 떨어진 뒤에도 부상을 입고도 사단장으로서 로켓 포와 수류탄을 들고 싸우는 등 절박하게 본대와의 만남을 위해 애썼지만 끝내 전북 진안에서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 훈장 수여 당시엔 부인과 자식들이 대리 수여하는 등 미국에서도 전사자 취급을 했으나, 1953년 포로교환에서 남한을 거쳐 미국으로 돌아와 전쟁영웅으로 대접받았다. 이후 소장으로 퇴역하여 여생을 조용히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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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카일 카펜터 해병 상병

아프간 전쟁에 해병대 제1사단 소속 자동소총 사수로 참전하여 2010년 전투 중 동료에게 수류탄이 날아오자 몸을 던져 수류탄 공격을 막아내고 동료와 함께 중상을 입은 채 살아남았지만(온전히 몸으로 덮은 것은 아니었다고) 얼굴과 오른팔에 중화상을 입어 한 눈을 잃었는데 이후 눈물겨운 재활과정이 언론에 보도되며 전미가 울었다. 해병대에서 의병 제대한 뒤 사우스 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체육교육을 공부하고 있으며 2014년 6월 19일 백악관에서 명예 훈장이 수여되었다. 생존하여 명예 훈장을 받은 인물로서 역대 최연소 기록을 새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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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바이어스 해군 특수전 상사

네이비 씰 중에서도 베테랑들만 모여 위험한 임무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작전에 투입되는 DEVGRU소속의 오퍼레이터인 바이어스 상사는
아프가니스탄 동부 라그만 주에서 탈레반에의해 운전사와 통역사와 함께 납치된 '딜런 조셉'박사의 인질 납치 첩보를 입수한 미국이 편성한 구출팀에 소속되어 작전에 참가하였다. 맨 처음 건물로 침투한 니콜라스 체크 중사는 머리에 총상을 입고 현장에서 즉사 하였으나 바로 뒤에 있던 바이어스 상사는 탈레반과 교전을 시작하고 인질이 갇힌 독방까지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이에 갑자기 달려드는 탈레반을 확인하고 맨손을 제압한후 바로 인질에게 달려들어 인질을 보호한 후 인질을 성공적으로 구출했다. 대원으로는 6번째이자 DEVGRU대원으로는 1번째로 명예훈장을 수여받았는데 심지어 살아서 받았다!!! 이게 왜 대단한지모르면 맨위의 설명을 다시 읽어보아라!!!
오오 DEVGRU오오

오하이오 출신의바이어스 상사는 1979년생 현재 36세로 1998년 해군에 의무병으로 입대후 2002년 BUD/S수료후 네이비 씰 대원으로 활동하다 2011년 DEVGRU오퍼레이터가 되었으며 복무기간동안 총 11번의 파병을 다녀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수여식에서 "바이어스 상사는 적을 맨손으로 제압하면서까지
동료들이 작전을 원활하게 할수있도록 도왔고 전광석화와 같은 임무수행능력으로
인질과 동료들의 목숨을 구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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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알버트 먼로 해안 경비대 하사[15]

전무후무한 코스트 가드 출신의 명예 훈장 수훈자. 통신부사관으로, 과달카날 전투의 제1차 마타나카우 전투에서 루이스 풀러 중령의 해병 7연대 소속 1대대가 전멸할 위기에 놓이자 일본군의 십자포화가 빗발치는 가운데 상륙주정을 이끌고 들어가서 기관총으로 일본군과 교전을 벌이다가 전사했지만 그 덕에 해병대가 무사히 철수할 수 있었다. 미군에서도 쓸데 없는 자부심과 높디높은 콧대로 유명한 해병대가 진정한 은인이라며 두고두고 떠받들어 모실 정도면 말 다 했다. 해군에서도 먼로의 이름을 딴 구축함을 진수했고, 해경에서의 위상은 말할 것도 없다. 국토안보부워싱턴 D.C. 남동부에 짓고 있는 해경본부 신청사의 명칭을 더글러스 A. 먼로 빌딩으로 정했으며, 해경에서도 레전드 급 경비정에다 그의 이름을 붙여서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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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스톡데일 해군 중장

중령 시절 베트남 전쟁에서 A-4 스카이호크를 조종하다 북베트남에서 격추된 뒤 포로수용소에서 모진 고문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정신력을 잃지 않고 버텨내며 끝내 살아 돌아온 공로로 수여. 중장으로 퇴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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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셜 우드로 윌리엄스 해병 하사

화염방사병 출신. 이오지마 전투에서 일본군의 기관총 공격을 줄이기 위해 약 32kg에 달하는 화염방사기를 들고 홀로 적진으로 돌격해 화염방사기로 공격하고 다시 뒤로 물러나 연료통 교환 후 다시 위험을 무릅쓰고 적진으로 돌격하는 행동을 무려 4시간 동안 반복했다. 전후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45년 10월 5일 백악관에서 명예 훈장을 수여받았다. 2016년 현재 94세(1923년생)로 아직 살아계시며, 이오지마 전투에서 명예 훈장을 수여받은 병사 중 최후의 생존자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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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L. 하워드 육군 대령

약장으로 소련 훈장방탄복 만들기세..

그는 미국 그린베레출신으로 사병에서 시작해 대령으로 전역한, 그리고 전역 시 현역에서 가장 많은 훈장을 수여받은 군인이었다.

그는 베트남전에 54개월동안 참전하는동안 8개의 퍼플하트[16], 4개의 동성 훈장, 은성훈장, 수훈 십자상, 그리고 명예 훈장을 수훈한 인물이다. 뭐??

그는 중사로 MACV-SOG에 소속되어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 미군이 작전한 거의 모든 전역에 투입되었다. 또한 명예 훈장 수훈 추천을 3번을 전부 다른 작전에서 펼친 활약으로 추천되었으나, 캄보디아에서 비밀임무에 종사하고 있을 때의 전투였기 때문에 처음 2번의 추천은 다운그레이드되어 은성훈장과 수훈 십자상이 수훈되었다.

마지막의 북베트남 전역에서 실종 아군 수색구조 임무에서 헬리콥터에서 투입된 직후 2개 중대에 포위당해 소대장이 부상당하고 자신도 부상당한 상태에서 소대장 위치까지 기어가 응급처치를 한 뒤 낙오된 소대장을 끌고 소대가 위치한 지점까지 끌고 간 다음 구조헬리콥터가 도착할때까지 항공지원을 받아가며 3시간 반동안 방어를 지휘해 결국 탈출에 성공했다. 이 공로로 그는 명예훈장과 퍼플하트를 수여받았다.

그가 사망할 당시, 그는 가장 수훈한 훈장이 많은 명예 훈장 수훈자였다. 레알 MOH를 찍었네..

5.2 가상의 수훈자

  1. 과거 사병들의 월급이 사비로 피복을 맞추기 곤란할 만큼 적은데다, 군 피복이 정복전투복의 구분 없이 하나만 지급되어 전투 후 수여식 등에 참석하려면 훼손된 피복을 입고 가야 하는 일이 많아 생긴 규정이다. 현재도 훈장 수여식에 가급적 깔끔한 정복을 입고 가야 하는 사병들 입장에선 새 피복 지급 시기 이전 혹은 예비역이라 추가 지급이 안 나올 경우 등에 매우 유용하다. 장교의 경우는 제정 당시엔 급여가 충분하여 사비로 맞춰 입게 되어 있었기에 이 혜택이 없다.
  2. 국내-국내/국외-국외/국내-국외 전부 허용.
  3. 단, 이 경우에는 반드시 서류를 구비해야한다.
  4. Space-A는 그 근본적 목적이 군사 목적인 프로그램이고, 이걸 편의 기능(?)으로 이용하는 것은 그냥 덤이다. 그러다보니, 규정에 맞기만하면 이용은 가능한데, 군인 우대 항공표를 파는 단체들에선, Space-A를 이용하다가 표가 취소되거나해서 문제가 발생해서 휴가 미복귀 크리같은 안습한 상황이 터저도 우린 책임 못짐. 애초에 이 목적으로 쓰지 말라니까.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휴가 목적으로는 진짜 시간 널널하게 주어진 경우에나 써야함" 이란 설명도 (...)
  5. 그러니까 그냥 평소에 군 정복에 명예훈장을 착용하고 다녀도 법으로 보장된다!
  6. 전역하여 민간인 신분으로 전환된 군인들은 정복 입고 연회하는 걸 좋아하는 미군답게 군, 혹은, 자신의 모교/지역 연회들에 참석한다거나, 각종 개막식등의 특별한 행사등에 규정에 따른 군 정복의 착용이 허가되고,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는 적극적으로 전역 후에도 군복 착용이 장려되긴 한다. 하지만 이런 미국에서도 전역 후에는 규정을 씹고 마음대로 입고다니면 맑고 고운 소리 드립을 듣게 된다. (...) 미국이 얼마나 문민통제가 강력한 나라인지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런데 명예 훈장 수훈자는 그런거 없이, 그냥 군복을 착용하고 다녀도 아무 상관이 없는 파격적 대우를 받는다. 일단 그냥 간지나고 정갈한 슈트(?)같은 목적으로 착용하는 것을 규정하지만, 어지간해서는 건드리지 않는 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그렇다고 막나갔다간 정치권에선 막강한 민군통제로, 군에서는 명예 훈장에대한 모독으로 트리플 베리 하드한 갈굼을 시전할 것이다. 어쨌든 저승 문턱을 밟고는 와야 간신히 받을랑 말랑 하는 훈장인 만큼, 이걸 모독했다고 까임을 받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는 지옥에 빠지리라...
  7. 창작물의 사례긴 하지만 미드 NCIS에서 어떤 2차대전 참전자 할아버지가 전시아군살해혐의를 자백하며 처벌을 요구하자, 치매걸린 노인이겠거니 하다 하는 수 없이 체포하려고 헌병들이 출동했는데, 체포하는 과정에 이 할아버지가 넥타이 뒤에 명예훈장을 달고 있었다! 이걸 보자마자 헌병들은 바로 직립부동으로 경례를 했고 담당 검사였던 콜맨 소령도 경례 대신 부동 자세를 취했다. 작중 묘사처럼 현역 영관급 장교가 퇴역사병에게 부동 자세를 취하는 것은 굉장한 예우다. 한마디로 간지폭발한 장면
  8. 미국 민주당 서열 1위이자 상원의장 대행인이고, 미국 대통령 부재시 승계서열 3위까지 올랐다. 상원 세출위 위원장으로서 미국 정부 예산 집행에 깊은 관여를 했으며 외교위원회 소속으로 미국의 對이스라엘 외교의 설계를 담당했다. 또한 명예 훈장 수상자로서 정계에서 깊은 존경을 받았다. 미국 아시아계 인사 중 최종보스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하지만 일본계인지라 대일외교에 관대한 정책을 꾸준히 상정해서 우리나라에서의 여론은 안좋은 편이다. 2012년 12월 17일 별세했다.
  9. 애초에 수훈자 중 다수는 전사하는 경우가 많다.
  10. 남북전쟁 시기에 너무 남발됐기 때문이다. 이것 외에 이렇다 할 훈장이 없어 좀 잘 싸웠다 싶으면 줬다. 심지어 운디드니 학살사건에 가담한 장병들에게도 훈장이 수여되기도 했다. 20세기 들어 중간 단계의 훈장들이 여럿 생기고, 규정이 엄격해져서 그 가치가 올라가, 2차 대전 즈음에는 지금과 같이 살아서 받기 힘든 훈장이 되었다.
  11. 이 사람은 1921년 11월 뉴욕에서 아바나로 가는 배 안에서 실종된다. 자살했을 것이라는게 정론이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12. 이로 인해 손에 화상도 입었다.
  13. 좌우의 인물은 존 매큐 육군청장과 레이먼드 오디어노 육군참모총장이다.
  14. 당시 미군 의무병은 무장을 하지 않았다.
  15. Signalman First Class. 국군에서는 번역시 이 계급을 하사로 보고 있지만 실질적인 위상이나 추후 신설될 선임원사 계급까지 감안하면 중사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16. 부상은 14번 당했다고 한다.
  17. 6화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받았다. 얘가 미군이었나? 훈장이 아니라 납탄을 받아야 맞는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