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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na Hingis
1 개요
슬로바키아계 스위스의 여성 테니스 선수.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세계 여자 테니스계를 평정했던 인물이다. 별명은 '알프스의 소녀'.
2 어린 시절
1980년 9월 30일 체코슬로바키아의 코시체(Košice)에 태어났다.[1] 부모 역시 테니스 선수 출신이었는데, 마르티나가 6살었을 때 이혼한 후 이듬해인 1987년 어머니가 망명한 스위스로 이주, 귀화하게 되었다. 마르티나라는 이름은 어머니의 동료이기도 했던 당대의 대선수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에서 따 온 것이다.[2]
1994년의 모습
불과 10대 초반 1993년에 프랑스 오픈 주니어 부문에서 우승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해를 넘긴 1994년에도 프랑스, 윔블던 대회의 주니어 부문을 석권하였고,[3] U.S 오픈 주니어 부문 결승에도 진출했다.
3 짧았던 전성기
본격적으로 성인 리그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1996년에는 호주오픈 단식 준준결승, U.S오픈 단식 준결승에 올랐다. 윔블던에서는 모국 출신인 헬레나 슈코바와 한 조를 이루어 복식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 때 나이 15세로 테니스 국제대회 그랜드슬램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이는 본격적인 성공 가도의 시작일 뿐이었다.
1997년에 힝기스는 그야말로 천하무적의 포스를 자랑했다. 그랜드슬램 4개 대회들 가운데 프랑스 오픈을 제외한 나머지 3개(호주 오픈, 윔블던, U.S 오픈)를 독차지했던 것이다.[4] 이듬해인 1998년에도 그랜드슬램 4개 대회의 복식을 싹쓸이했고, 테니스 여자 랭킹에서 단/복식 모두 1위를 차지하는 3번째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린제이 데이븐포트, 비너스 - 세레나 윌리엄스 자매 등의 막강한 경쟁자들이 부상하면서 독주 체제는 오래 가지 못했다. 여기에 2001년 발목 부상을 겪으면서 성적은 더욱 주춤했다. 결국 부상과 부진을 극복하지 못한 채, 2003년 은퇴를 선언했다.
4 복귀와 은퇴, 또 복귀
그러나 너무 이른 은퇴에 따른 아쉬움 때문인지, 2006년부터 다시 복귀를 선언했다. 호주오픈에서 여자 단식 준준결승까지 오르면서 그런대로 무난한 복귀를 신고했다.
같은 해 가을에는 한솔오픈에 초청받으면서 한국에도 방문하여 한국 테니스팬들의 열띤 응원을 받았다. 이 때 전미라도 만났다. 당시 주최 측은 2004년의 마리아 샤라포바처럼 힝기스의 출전이 대회 흥행에 보탬이 되길 내심 기대했지만, 예선 2라운드에서 뜻밖의 패배로 탈락하면서 무산되었다.
그러던 2007년 11월 국제테니스연맹(ITF)로부터 약물 복용 의혹에 관한 조사를 받게 되었는데, 곧바로 은퇴를 선언하였다. 6년 후인 2013년에 2차 복귀를 선언했는데, 앞으로는 복식 경기에만 전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전략은 2014년 US 오픈 여자 복식 결승 진출, 2015년 윔블던/US 오픈 여자 복식 우승, 그리고 2016년 호주 오픈 여자 복식 우승 등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덕분에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평가.
2016년 호주 오픈 복식 우승 직후, 복식조 파트너인 인도의 사니아 미르자와 함께.[5]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도 티메아 바친스키와 함께 여자복식 부문에 출전했는데, 결승에서 러시아에 석패하여 은메달을 차지했다.
5 트리비아
역시 스위스 출신의 테니스 스타인 로저 페더러와 지난 2001년 혼합 복식조를 이루기도 했다. 15년만인 오는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스위스 대표팀으로 다시 출전할 계획이었는데... 대회 직전 페더러가 부상을 당해 아쉽게도 본인 혼자만 출전하게 되었다.
1994년 윔블던 주니어 결승에서 한국의 전미라와 대결한 적이 있었다. 12년 후인 2006년 한솔오픈 출전을 위해 방한했을 때, 전미라의 안부를 먼저 물었고 대회 기간 동안 재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