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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트 핑크 |
이름 | 윤종신(尹鍾信) |
출생 | 1969년 10월 15일,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1] |
본관 | 칠원 윤씨[2] |
신체 | 168cm, 60kg, A형 |
학력 | 대원외국어고등학교 스페인어과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국어국문학과 |
데뷔 | 1990년 015B 1집 '텅빈 거리에서' 객원보컬 |
가족 | 배우자 전미라[3], 아들 윤라익 딸 윤라임, 윤라오 |
그룹 | 신치림 |
소속 | 미스틱 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 |
별명 | 종신징역, 종신옹, 윤자기, 음유시인, 종심씨, 시샤모, 종신보험, 보급형 정우성, 신경필[4], 게임계 복덩이[5] 진구[6] 빙수종신, 스시종신, 만년대리[7],예능계 늦둥이 |
윤종신닷컴 트위터 페이스북 |
신치림 | ||
윤종신 | 조정치 | 하림 |
목차
1 소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10집의 <휴일>이다. 쓸쓸할 때에 윤종신의 <휴일>이라는 곡을 들어본다면, "이 사람, 참 진짜 멋있는 사람이구나"를 느끼게 되실 것이다. - 성시경
그에 대해서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음유시인" 그 자체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 진중권
윤종신(尹鍾信)은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 겸 프로듀서, 개그맨, 예능인, 그리고 기획사 미스틱 89 대표 프로듀서이다. 미스틱89의 전신은 '신스타운',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윤종신 1인 소속사, 이후 하림과도 계약했었다. 현재 소속 연예인으로는 윤종신, 하림, 조정치, 투개월, 퓨어킴, 가수 박지윤, MC 박지윤, 김연우, 영화감독 장항준, 작가 김은희 등이 있다. 다만 미스틱89의 실제 대표는 이학희씨로 되어있다. 그의 정식 직함은 '대표 프로듀서'이고 실질적으로 실제 대표인 이학희씨가 운영한다.
2 생애
1969년 10월 15일 경상남도 진해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주 어릴 때 잠깐 살다가 5살 무렵 서울 광진구로 상경, 그 뒤 대원외고[8] 스페인어과 졸업 후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88학번으로 입학,[9][10] 소창사라는 음악동아리에 가입하며 음악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되었다.
본래 가족들이 독실한 신앙인이 워낙 많아서 어릴 적부터 연세대 신학과에 진학하여 목사가 되는 것이 원래 꿈이었는데 성적상 원주캠퍼스 국문학과로 입학하게 되었고, 그 이후 적응을 못해서 1,2학년 동안 방황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음악을 좋아하여 노래나 작곡을 취미로 하긴 했지만 사실 진짜 꿈이 프로가수였다거나 음악인이거나 해서 진지하게 노력했던 건 아닌데 우연히 교내 가요제에 참가했다가 수상 후 운좋게 데뷔한 케이스라고 한다. 만약 자신이 신학과에 합격했다면 목사가 되고, 가수가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음악 스타일에도 찬송가의 영향이 크다고도 하는데, 어릴 적부터 기독교 음악을 많이 접한 탓이라고 한다.[11] 원주캠퍼스 홍보비디오에도 나왔고 라디오 생방송에서도 원주캠퍼스 다닐 때 크고 아름다운 호수가 있었다는 등 대학시절 이야기를 종종하는 편이다. 예능 중간중간 문법으로 개그를 치는 것으로 보아, 국문학 '배운 사람' 맞다.
연세대 원주캠퍼스 가요제에서 금상 입상한 이후, 과 동기의 소개로 정석원을 소개받았다. 정석원은 친구의 아파트에서 윤종신의 노래를 듣고 015B의 객원보컬로 픽업했다. 이 때 장호일이 반대했다고 한다.[12] 이유는 비주얼. 그래도 보컬이 밴드의 얼굴인데... 가창력만으로 승부한 데뷔였던 셈이다.
015B를 병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솔로 발라드 가수로 커리어를 쌓았고, 작사, 작곡을 배워 군 제대 후에는 작품주의 싱어송라이터가 되었다. 나름대로 발라드계에서 입지전적인 케이스다. 객원보컬이 프로 작곡가, 작사가로 인정받은 것은 대한민국 음악 역사상 윤종신이 유일하다.
유희열에 따르면 윤종신은 '뮤지션들이 휴지기를 가져야 음악이 나온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한다. 즉, "녹음실 갈 때나 집 갈 때 생각나면 쓸 수도 있는 것. 그건 급하지 않아서 그렇다"라고 했다고(...) 유희열은 "만년 대리"같다고 평했고, 성시경은 요즘 임원이 되어서 음악 노예들을 부려먹는다(...)고 폭풍 디스... 하긴 유희열은 윤종신의 음악노예 1호였으니... 윤종신 특유의 부지런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13]
윤종신을 잘 모르는 요즘 사람들은 주로 예능에 나오는 연예인인 줄 알지만 데뷔했을 때나 본업은 가수.(…) 사실 예전에는 거의 가수 활동만 했지만, 군대에 갔다 온 후에 예능이나 시트콤 등에도 출연하고, 영화음악도 꽤 하게 되면서[14] 개인앨범 발매 주기가 상당히 늦어져서 그런 이미지가 생긴 듯하다. 그래서 두 자리수 앨범을 낸 가수임에도 개그맨이 장난으로 앨범을 내지 말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리고 아직도 그러는 인간들이 있다. 하지만 2016년 현재 17집 가수라는 거... 2018년이면 조용필과 동점
올드 팬에게는 내가 좋아했던 가수가 맞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예능에서 이미지 변신을 했다. '텅빈 거리에서, 애니, 모처럼, 바다이야기'등의 헤어진 다음에 찢어지는 남자의 감정(혹은 청승)을 가장 잘 표현했던 그이기에 예능활동을 보고 있자면 눈물만 흐른다.(본래 코미디에 욕심이 있어 시트콤에 종종 출연해서 기존 팬을 깜짝 놀라게 했었다. 거침없이 하이킥에까지 섭외되었으나 테니스 선수 출신 부인과 만날 시간이 없을 것 같아 거절했다고 한다.) 다만 라디오에서는 전성기 때부터 이렇게 깐족거렸다.
블랙베리를 사용해서 @MelodyMonthly라는 아이디로 트위터를 이용하고 있다. 진중권 교수와 트위터 상에서 외모(둘 중에 누가 더 잘생겼냐는…)에 대한 논쟁을 벌였으며, 이에 유희열은 전파낭비라고 라디오에서 얘기한 적이 있다. 이 얘기를 접한 윤종신은 "이게 웬 하수의 기웃거림인가?.....ㅋㅋㅋ"라는 트윗을 남겼다. 이후에도 SNS에서 종종 서로 까는(?) 모습이 등장한다. 물론 분위기 자체는 가볍게 놀리는 정도.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두 사람이 실제로 만난 적도 있다.[15] 2014년에는 같이 예능에도 출연하고, 심지어 히든싱어 윤종신 편에는 진중권도 패널로 출연했으니...
부인은 9세 연하의 前 테니스 선수인 전미라 씨.[16] 힐을 안 신어도(…) 전미라가 더 크기 때문에[17], 이를 소재로 한 개그를 종종 써먹는다. 슬하에 아이는 셋을 낳았는데, 윤라익(아들), 윤라임(딸), 윤라오(딸). 전미라의 이름 끝글자를 돌림자로 썼다고 한다. 특히 막내딸은 전미라를 거의 빼다 박은 수준으로 닮았다. 그리고 2011년 2월에 라디오 스타에서 정관수술을 했음을 고백했다. 이미 조치를 취하셨다고 한다
두시탈출 컬투쇼에 출연했을때, DJ의 "윤종신 씨는 애가 셋이라던데, 생긴 것과는 달리 의외로 힘이 세다."라는 말에, "힘이 아니라 기교예요. 메시가 힘으로 축구하나요?"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2012년 2월 윤종신은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난치병인 크론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혔다. 크론병은 입에서부터 항문까지 이어지는 모든 소화기관에 염증이 생길 수 있는 병으로, 수술로도 완치는 불가능하며 평생 약물치료를 해야하는 병. 윤종신은 2006년에 처음으로 병에 걸린 것을 알았다고 한다. 너무 늦게 발견해 소장을 60cm나 잘라야 했고 지금은 약물 치료중이라고 한다. 게다가 더 놀라운 사실은 윤종신이 지금까지 예능에서 치질에 걸렸다는 얘기를 하며 웃으며 했던 얘기가 사실은 이 크론병으로 인한 치루질환을 말한 것이었다고……. 난치병을 웃음소재로 바꿔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줘야 했던 윤종신의 안타까운 고백이었다.
이 소장수술을 하고서 마취가 풀리면 링거에 연결된 모르핀이 조금씩 나오도록 장치를 해 놨다고 한다. 정 못참겠으면 버튼을 한번씩 누르라고 했다고. 그런데 마취에 깨면서 아파하자, "아프면 버튼 누르래요" 하자마자 뾱뾱뾱뾱뾱뾱뾱뾱뾱뾱뾱뾱……. 그리고 3일간 기절해 있었다고(…). 물론 실컷 눌렀다고 해서 모르핀이 쭉 나왔을 리는 없고(...),[18] 고통으로 졸도해 있다가 깨어난 뒤에도 몽롱한 상태로 며칠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던 걸 3일 기절이라고 했을 수도 있기에 그냥 방송의 재미를 위해 기절한 시간을 과장했다고 보는 게 맞을듯. 실제로 수술 후 깨어난 뒤에 모르핀 때문에 다시 기절해서 3일동안 못 깨어나면 의료사고가 될 수 있어서 병원 뒤집어져 난리난다.. 최소한 하루 이상 지난 뒤 '윤종신 수술 후 혼수상태로 위독'으로 연예뉴스에 나왔어야 할 정도.. 간단히 말하자면 성시경과 김연우에게 웃기려고(...) 농담을 떨었을 가능성이 높다.
3 가수로서의 활동
3.1 1990년대: 미성의 레전드
1990년 7월 015B의 객원 보컬로 데뷔했다. '텅빈 거리에서'의 '야윈 두 손에 외로운 동전 두 개 뿐'이라는 가사가 공감을 샀다. 물론 노래 자체로도 레전드급. 당시 윤종신의 미성을 지금과 비교해 보면…….
데뷔곡인 텅빈 거리에서'. 도저히 지금의 윤종신의 목소리를 생각할 수 없는 맑디 맑은 미성이다. 이 문단 아래의 최근 목소리와 비교해 들어보면 어떻게 목소리가 이렇게 바뀔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당시 이 아름다운 미성을 두고 대중과 평단은 무공해 목소리라는 찬사를 내렸다. 때문에 당시 같이 미성으로 이름을 날렸던 신승훈도 그의 목소리가 너무 변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승환의 증언에 의하면 자신이 아는 가수 중 가장 단기간에 가장 많이 목소리가 변한 가수라고.
윤종신 본인에 따르면 잦은 음주와 흡연으로 인한 목소리 변화가 원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윤종신에 따르면 둘 다 즐기는데도 아직 목소리가 안 변한 성시경은 사기캐라고 한다(...)
지명도를 높이고 1991년에는 1집 앨범(TITLE : 처음 만날 때처럼)을 발표했다. 이후 015B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한편[19], 솔로 앨범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었다. 특히 2집 'Sorrow'(TITLE : 너의 결혼식)[20] 때가 윤종신의 전성기로, 개그맨 박휘순이 윤종신의팬이었다고 한다.(…) 3집 'Natural'(TITLE: 오래전 그날), 4집 '공존'(TITLE: 부디, 내사랑 못난이), 5집 '우'(TITLE : 환생) 등등 윤종신 전기 음악의 대단원이라 할만큼 노래 각각의 완성도로 보나 앨범의 완성도와 짜임새로 보나 걸작이었다. 특히 5집의 경우 1996년 별들의 전쟁이라 불리는 스타급 가수들의 컴백경쟁 속에서도 꾸준히 인기를 얻은 앨범이었다. 입대하기 직전에 부랴부랴 냈던 6집(1996. 11)까지도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확실히 이 시기는 인기로 보나 히트곡의 중량감으로 보나 명실공히 대한민국 발라드판에서 거의 신승훈, 이승환의 바로 아랫급 정도의 지위는 누렸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음반 판매량은 역대 최고인 4집, 5집 모두 밀리언에 약간 못미치는 90만장으로 밀리언셀러 대열에는 아깝게 합류하지 못했다.
해군 연예병사 1기 출신으로 2함대가 평택으로 이전하던 때 부른 '바다로 세계로'라는 군가는 일반 가요라고 해도 믿을만한 가사와 멜로디를 자랑한다.
-바다로 세계로- 작사 : 금나영 / 작곡 : 조만호 / 노래:윤종신
해군 홈페이지 mp3 다운로드 주소 링크. (다른 군가와의 괴리감이 엄청나다.)
- 군 복무 중 하림이라는 인물을 찾아내기도 했으나 정작 제대한 후에는 음악 시장이 완전히 재편되어 있었다. 1999년 초에 발표한 7집 '후반'(TITLE : 배웅)은 평가가 괜찮았으나 이전에 거두었던 상업적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신만만해하며 거액을 투자하여 만들었는데 6집 판매량 대비 3분의 1이 팔렸다고 한다. 윤종신 본인도 거듭되는 성공에 취해 있다가 한 번 말아먹자 충격이 컸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증언과 반대로 8집, 9집을 1년 주기로 계속 낸 것으로 보아 충격은 곧 가신 듯하다. 라디오 스타에서 본인이 밝힌 바로는, 그 당시에 앨범도 망하고, 7집을 발표한 후 맡았던 라디오 프로그램(윤종신의 자유지대)도 청취율이 개박살이 나는 등의 일이 일어나자 "내 연예인 운은 끝이구나" 하고 다른 일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친구와 노래방에 갔다가 "내 행복은 여기 있는데 왜 다른걸 하려고 할까" 하면서 생각을 고쳐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예능 늦둥이로 변신. 연기자도 겸업.
3.2 2000년대: 격동하는 목소리(...)
윤종신 10집 'Behind The Smile' (2005년).
군 입대를 전후하여 윤종신 음악을 전기와 후기로 나눌 때, 후기를 대표하는 앨범.
마니아들을 아우르는데 만족하며 본인의 색깔을 내기 위해 노력한 결과, 오랜만에 015B의 정석원과 후기 앨범의 파트너 하림과 함께 하여 위에 나온 10집(2005. 4)에서 뛰어난 노래를 다수 써냈다. 이 앨범 때문에 윤종신의 팬이 된 사람도 다수 된다. 사실 8, 9, 10집은 5집과 함께 이제 윤종신을 대표하는 명반이 되었다. 그야말로 훌륭한 노래들이 가득 가득 하다. 평론가들은 대개 10집을 5집과 함께 최고의 앨범으로 꼽고, 이한철 같은 동료 가수들이나 윤종신 본인은 9집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어쨌든 작품성으로는 이 때가 윤종신의 전성기로 인정받는다.
3.3 2010년대: 월간 윤종신
이후에 낸 11집(2008. 11)을 포함하면 정규 솔로 앨범만 11개에 활동 기간은 무려 20년. 게다가 지금은 Monthly 프로젝트(매달 곡 2~3개를 묶어 싱글 형태)까지 진행하고 있다.[21] 전혀 이윤이 남지 않을 듯한 프로젝트를 하는 이유에 대해 본인은 그때그때의 감정에 충실하여 곡을 만들고, 그것을 바로 표현하고 싶어서라고 답했다.[22] [23]
보컬리스트로서의 능력은 준수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잘한다고 평가하긴 조금 애매하다. 대한민국인들이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보컬은 풍부한 성량과 감정을 담아내는 호소력있는 보컬인데, 윤종신의 보컬은 거의 정반대라고 봐도 좋을 정도라 호불호가 좀 갈린다. 발음도 발성도 깔끔해서 곡마다 다르긴 하지만, 감정이 쉽게 묻어나지 않는다. 대신 가사 전달력은 최고 수준이다. 일종의 담백한 느낌의 보컬.
근데 이 '감정이 쉽게 묻어나지 않는다'는다는 느낌이 윤종신의 가사와 맞물리면 오히려 더 큰 감정 동요를 일으킨다. 이별하고 미쳐 죽을 것 같은데 그걸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담백하게 부르니 앞에서는 담담하게 얘기해도 속은 썩어들어가는 이별한 남자의 정서를 극대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너의 결혼식'에서 절규하듯 부르던 시절의 보컬 스타일과 비교하면 감정을 조금 누르고 절제시킴으로써 더 애절하게 만드는 스타일.
그러나 최근의 음반에서는 목소리 관리를 안한 티가 역력하다. 그래서 근래에는 토이처럼 객원보컬 체제로 했을지도
단적인 예로 11집 발매 직후 출연한 수요일 밤 MBC의 음악프로 음악여행 라라라에서 본인의 옛 노래들을 매우 힘들게 부르더니, SBS의 음악프로그램인 김정은의 초콜릿에서는 7집 타이틀곡 '배웅'을 부르다가 아무래도 가래가 낀 듯한 목소리를 잠시 냈다.(…) 술 담배가 문제.[24] 그래도 2옥타브 시는 올라간다.[25] 다만 자신은 지금의 목소리를 상당히 좋아한다고 표현한 것을 보면 과거의 미성을 안 쓰는건 취향 반 능력 반 정도가 아닐까 싶다.
4 창법
위에 서술했듯 사람의 목소리가 어떻게 그렇게 바뀌는지 몸소 보여준 가수.
데뷔 초에는 미성으로 고운 목소리를 냈으나 음주와 흡연(...) 으로 인해 1996년 4집 때부터 목소리가 변하기 시작하더니 2000년대에 와서는 지금의 목소리로 굳어졌다. 지금의 창법은 바람이 들어간 목소리로 아주 정확한 발음으로 부른다. 느끼하다는 평도 있지만 부드러워서 더 좋다는 평도 많다.
4.1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역량
윤종신과 음악노예(...) 유희열, 조정치, 성시경, 박정현, 하림, 투개월(김예림, 도대윤) 순.[26]
공장장.
월간 윤종신의 발행인 겸 편집장
다양한 소재 등으로 다양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작사가 겸 작곡가.
윤종신은 싱어송라이터로 높은 평가를 받는데, 015B 객원 보컬 출신으로 솔로앨범을 내면서 작사/작곡까지 참여하면서 스스로의 노래를 만드는 싱어송라이터로 발전했다. 유영석은 싱어송라이터를 두 부류로 분류하는데 보컬에서 작편곡을 시작하면서 싱어송라이터가 되는 부류, 전문 작곡가가 보컬에 참여하면서 싱어송라이터가 되는 부류이다. 윤종신은 바로 전자에 해당된다. 그런데 윤종신이 작사/작곡을 하는 싱어송라이터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전문적으로 편곡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곡이 전문 작곡가와의 공동작곡이고 편곡을 맡긴 경우가 많다. 이때문에 편곡을 위한 서포터가 필요한데 이들이 아래 언급될 윤종신의 음악노예들이다.
최근 방송에 노출되는 이야기에 따르면 곡을 쌓아놓고, 집에 '고객상담용 모니터'가 있으며 폴더별로 나뉘어서 들려줄 정도로 공장장. 거기다 상당히 쿨한 성격이라 곡이 까여도 '마음에 안 드니? 그럼 이건?'라는 식이다. 메일 등을 이용해서도 노래를 무진장 가수들에게 뿌린다고 하는데, 성시경에게는 한 번에 9곡이 온적도 있다고.(…)
윗문단에도 써있듯 편곡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 때문에 작곡 당시에는 본인이 직접 친 통기타 반주에 본인 목소리로 가이드를 넣는 것 같다. 다분히 옛날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요즘은 가이드 곡이라도 편곡이 상당부분 완성된 상태로 나가고, 가이드도 실력파 보컬들이 맡아서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팝송으로 들릴 정도로 세련되게 다듬어진 상태로 가수들에게 전달된다. 디렉터스컷에서 전한 일화에 따르면, 한번은 윤종신이 이효리에게 곡을 주려고 기타로 반주를 치고 멜로디를 흥얼거려서 녹음한 뒤 메일로 보냈는데 거절당했다고 한다. 헌데 나중에 이효리가 자기한테 굉장히 세련된 팝송을 들려주길래 "야 이거 좋다. 누구 노래야?" 라고 물어봤더니 이효리에게 온 가이드 곡이었다나. 자기는 통기타를 쳐서 흥얼흥얼 녹음한 뒤 "나중에 편곡이 되면 여기에 이런 비트가 들어갈거야, 상상되니?"(...) 하는 식인데 이효리가 받는 가이드곡들은 이미 완성품 수준의 퀄리티를 가지고 있어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국문과 출신이라 그런지 발음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는 편으로, 한국어에 서툴렀던 박정현이 첫 노래 작업을 윤종신과 함께했고 하도 교정받아서 그 때 많이 발전했다고 한다. 지금도 감사하다고 한다. 박진영은 발음을 또박또박 하는 것보다 흘리는 걸 좋아하는데, 이걸 가지고 라디오 스타에서 출연진과 나머지 MC들이 윤종신을 디스하기도 했다. 이 발음에 대해서는 2014년 4월 9일자 라디오 스타에서 정준일이 말한 "종신이형 창법은 중국 노래 같다."라는 내용을 보면 된다. 머나~ 머언~ 길을~ 떠나는~
작곡 면에서도 색깔 있는 곡을 곧잘 만드는 우수한 작곡가로 통하지만, 작사 실력은 말 그대로 우리나라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작곡에서 윤종신을 그저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작사만큼은 이견없이 그 수준을 인정하는 편. 다만 디렉터스컷에서 작사에 대해 윤종신 본인이 직접 얘기한 바로는 자기는 작사에는 잘하고 못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물론 겸손의 의미로 한 말이며, 옆에서 하림이 '근데 형은 잘하잖아요'라고 바로 되받아쳤다.
이적과는 다른 의미로 특출난 작사를 하는 편으로, 요리송의 달인, 생활가사의 일인자 등의 이명이 있을 정도다. 생활밀착형 가사의 경우 발라드 가사에 어울리지 않는 의외의 상황이나 주제를 묘사하는 낯설게 하기 기법을 자주 쓰고, 노래의 화자는 대개 찌질하고 볼품없는 남자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독특한 가사로만 유명한 것은 아니며, 전형적인 사랑 노래나 가슴 아픈 이별 노래도 수준급으로 잘 쓴다. 오히려 그런 노래에서 윤종신 특유의 '한끗'이 있는 표현으로 가슴을 절절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 편. 가사에 쓰이는 표현에 대한 감이 좋아서인지 가사를 다 쓰고 나면 가수들에게 가사를 보여주며 '여기 이 표현은 앨범 몇장짜리, 이 표현은 몇장짜리' 하는 식으로 포인트를 짚어준다고(...).
가사도 굉장히 금방 쓴다고 하며, 거리에서도 2절 가사가 없었는데 "아 잠깐 가만있어봐...뭐야 이거..."라고 하면서 즉석에서 만들어줬다고 한다.
박정현의 경우 한국에 와서 윤종신이 작사한 '오랜만에'를 사전을 찾아가며 의미를 해석했고, 의미를 알게 된 후엔 가사가 너무 좋아서 '한국에도 작사를 시의 수준으로 해내는 사람이 있구나'하고 감탄했다고. 심지어 신사동 호랭이같은 댄스 작곡가들에게도 작사가로는 존경받고 있는 롤 모델이라고 한다.
정작 윤종신의 이미지는 '노래 잘 부르는 가수였으나 살짝 퇴물'이라는게 강해서 노래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노래방 가서 부르면(…) 풍부한 성량에서 뿜어져 나오는 깔끔한 고음이 무시무시하다. '잘했어요'나 '동네 한 바퀴'만 불러봐도 어느새 '난 안되는구나. 윤종신도 가수는 가수구나.' 생각하며 마이크를 내려놓고 정지버튼을 누르고픈 충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감성적인 멜로디와 감정을 억누르다 후반부의 폭발하는 전개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대표적인 곡이 "너에게 간다". 이런 노래들을 '매달' 국수 뽑듯 뽑아내고 있는 괴물.
특유의 말투와 톤이 재밌고 따라하기 쉬워 연이 있는 가수들이 자주 성대모사를 한다. 특히 성시경이 분위기까지 잘 살려서 성대모사를 많이 했었다(...)
가수 원미연의 말에 따르면, 의외로 윤종신이 깐깐하다고 한다.
5 음악 활동
가수로써의 윤종신을 보면 객원보컬에서 시작해서 싱어송라이터, 본격 작곡가, 제작자[27]까지 그야말로 모든 일을 다 해본 물론 탑을 찍었다고 하기는 다들 조금 애매하지만 환상의 커리어란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음악취향 Y라는 웹진에서 발라드 명곡 100곡을 뽑아봤더니[28] 이문세, 유재하, 이승환, 신승훈, 김동률, 김형석 같은 발라드 하면 떠오르는 장인들보다 오히려 더 많은 곡을 실어 총 7곡으로 최다 노미네이트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다른 이들은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꾸준히 곡을 올린 것에 비해 객원보컬로서(텅빈 거리에서), 싱어송 라이터로서(우리 이렇게 스쳐보내면), 또 작곡가로서(거리에서, 넌 감동이였어 등), 작사가로서 (이별택시) 각각 골고루 차트에 올린 것도 주시해볼만한 부분.. 싱어로써이자 음악 커리어 데뷔곡인 '텅빈 거리에서'는 심지어 전체 2등을 차지했다.
곡 | 가수 | 작사 | 작곡 | 편곡 |
윤종신 앨범 수록곡 | ||||
너의 결혼식 | 윤종신 | 박주연 | 정석원 | 정석원 |
오래전 그날 | 윤종신 | 박주연 | 윤종신, 정석원 | 정석원 |
이층집 소녀 | 윤종신 | 박주연 | 윤종신 | 윤종신 |
부디 | 윤종신 | 윤종신 | 윤종신 | 윤종신 |
내 사랑 못난이 | 윤종신 | 윤종신 | 윤종신 | 박용찬 |
환생 | 윤종신 | 윤종신 | 윤종신, 유희열 | 유희열 |
Annie | 윤종신 | 윤종신 | 윤종신 | 윤종신 |
배웅 | 윤종신 | 윤종신 | 최하림 | 최하림 |
팥빙수 | 윤종신 | 윤종신 | 이규호 | 박용준 |
고속도로ROMANCE | 윤종신 | 윤종신 | 윤종신, 이근호 | 박용준 |
너에게 간다 | 윤종신 | 윤종신 | 윤종신, 이근호 | 박인영 |
내일 할 일 | 윤종신 | 윤종신 | 윤종신, 이근호 | 정석원 |
윤종신 앨범 수록곡 외 | ||||
거리에서 | 성시경 | 윤종신 | 윤종신, 이근호 | 나원주 |
넌 감동이었어 | 성시경 | 윤종신 | 윤종신, 이근호 | 나원주 |
한번 더 이별 | 성시경 | 윤종신 | 윤종신, 이근호 | 나원주 |
나의 하루 | 박정현 | 윤종신 | 윤종신 | 박용준 |
몽중인 | 박정현 | 윤종신 | 최하림 | 최하림 |
YOU MEAN EVERYTHING TO ME | 박정현 | 윤종신 | RAINGRUV, 하림 | 하림 |
스치듯 안녕 | 이수영 | 윤종신 | MGR | 황성제 |
덩그러니 | 이수영 | 윤종신 | MGR | MGR, 박용준 |
난치병 | 하림 | 탁영(윤종신) | 하림 | 하림 |
출국 | 하림 | 탁영(윤종신) | 하림 | 하림 |
봄날의곰/원더우먼 | 조원선 | 윤종신 | 윤종신, 이근호 | 박용준 |
이별택시 | 김연우 | 윤종신 | 김승진 | 유희열 |
꿈 그리고 한가지(신라대학교교가) | 김연우 | 윤종신 | 윤종신, 이근호 | 이준호 |
뒷모습 | 나윤권 | 윤종신 | 윤종신, 이근호 | 이근호 |
미행 | 나윤권 | 윤종신 | 윤종신 | 황성제 |
나에게 온다[29] | 옥주현 | 윤종신 | 윤종신, 이근호 | 윤종신, 나원주 |
훈련의노래(군가) | (비)김동환 | 윤종신 | ||
영계백숙(간장원정대)-애프터쉐이빙 | 애프터스쿨 정준하 | 윤종신 | 윤종신 | 김제형 |
내 사람들 | 정엽 | 윤종신 | 윤종신 | 정지찬 |
첫 이별 그날 밤 | 아이유 | 윤종신 | 윤종신 | 조정치 |
잘 이별하기 | 2AM | 윤종신 | 윤종신 | Miss Kay |
이처럼 윤종신이 혼자 작사, 작곡, 편곡을 한 노래는 상당히 드물다. 스스로도 자신이 화성학 지식이 있는 전문적인 작/편곡자가 아니기 때문에 아이디어나 멜로디는 자신이 만들고 그것을 곡으로 만드는 것은 조정치, 정석원 등 전속 노예 전문가와 공동작업을 한다고 밝혔다.[30]
위에서도 여러 번 언급됐듯이 전문적으로 음악과 작곡을 공부한 정통파가 아니다보니 편곡자나 공동 작곡가를 많이 두는 편이고 이들 중에 유명한 사람들이 소위 윤종신의 '음악노예'들인 유희열, 하림, 조정치. 셋 다 전문적으로 음악을 공부한 정통파들로 전부 윤종신이 발굴하다시피한 인물들이다. 윤종신 본인도 방송에서 자기 자신은 천재가 아니지만 천재를 보는 안목은 있다고 자부했듯이 셋 모두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음악인들이다. 유희열은 군에서 제대한 후 정신을 못 차릴 때 낚아챘다고 하며 조정치는 세션으로 활동하던 시절에 김C를 통해 세션 기타로 추천받았다가 재능을 알아보고 데려왔으며 심지어 하림의 경우 해당 문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윤종신이 군 복무 시절에 알아보고 계약서를 쓰게 했다고 한다. 윤종신 본인은 이를 노예계약 운운하며 예능 소재로 써먹고는 있지만 본인의 한계점을 명확하게 인식한 뒤에 그 점을 보완하려고 재능넘치는 원석들을 계속 발굴해서 성장시키며 가까이 두고, 또 단순히 자신만 이득을 본게 아니라 서로 윈윈관계가 된 점은 윤종신이란 사람의 능력이 대단함을 보여주는 일화다.
이 중 '팥빙수'는 가요사상 거의 전무후무한 요리 레시피를 가사로 쓴 것이라 개그소재 등으로 자주 애용된다. 어느 방송에서 가사를 어떻게 썼느냐는 질문에 "인터넷에서 팥빙수 레시피를 검색했다"고 밝혔다.[31] 그리고 그 당시 인기있었던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언더그라운드 가수 역으로 특별 출연해서 이 노래를 잠깐 부른 바 있으며[32], 또 어느 네티즌이 이 노래에 가사만 바꾼 패러디곡 '보신탕'이 소리바다에 떠 돌아 다닌 적도 있었다(…). 본인 스스로 '대한민국 푸드송의 원조' 라고 주장했으나 별 근거는 없다.[33] 요즘은 예능용으로 자주 써먹는다. 박명수의 "바다의 왕자", 쿨의 "해변의 여인" 등과 함께 오래도록 깨지지 않을 여름의 레전드 곡이다. 2009년 무한도전의 '강변대로 듀엣 가요제'에 '영계백숙'을 작사/작곡하기 했다. 그 기세로 또 하나의 푸드송 "막걸리나"를 내놓았으나 반응은 '이런 노래도 있구나…….', 아니면 '이 분 노래에서도 주워 먹으시네.' 2013년에는 망고 쉐이크라는 노래도 냈다. [34] 2014년에는 '눈송이 빙수', 2015년에는 '쿠바샌드위치'로 영계백숙에 이은 두번째 핫 푸드 송도 냈다. 그리고 아무도 기억을 못하지만, 박경림이 전대미문의 히트를 쳤던 곡 '착각의 늪'이 수록된 앨범 '박고테 프로젝트'에 '안녕 핫바'라는 푸드송을 수록하기도 했다. 당시엔 본격적인 예능인이 되기 전 시절이라 방송에서도 진지하게 작사작곡을 하는 모습만 비춰졌다.
팥빙수 노래 가사 중에 '팥빙수 팥빙수 난 좋아 열라 좋아'라는 소절이 있는데 뒤의 '열라'가 비속어라는 이유로 방송 금지 판정을 받아서 방송용으로 '열라 좋아'를 '진짜 좋아'로 수정한 버전도 만들었다.
1996년 발매된 015B 6집의 "21세기 모노리스"를 '신경필'이라는 가명(…)으로 불렀다.[35]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지만 팬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당시 대영AV에 소속되어 있던 015B가 LG미디어로 옮기면서, 대영에 남아 있었던 윤종신이 대놓고 참여하기는 어려워서 그랬다는 설이 있다.[36] 그 외에도 하림의 1집 앨범에서는 '탁영'이라는 가명의 작사가로 활동한 적도 있다.
한겨레에서 만든 음악웹진 백비트에서 선정한 2000년대 베스트 앨범 100에서 'Behind The Smile'(10집)이 51위, 1990년대 베스트 앨범 100에서 '우 (愚)'(5집)가 27위에 선정되었다
2012년에는 음악 후배인 하림과 조정치와 함께 신치림이라는 그룹을 결성했다.
2012년 10월에 발매된 손가인의 솔로 미니 앨범 2집 'Talk About S.'에 '시선'이란 곡으로 참여했다. 작사/작곡은 윤종신 본인이 하고 편곡만 POSTINO가 담당했다. 무려 가인과의 듀엣곡으로 가사가 비범하다. 사실 이 앨범 전체가 그런 컨셉이긴 하지만 사실 윤종신이 쓴 곡들치고 이런 끈적한 느낌의 곡을 찾긴 힘든 편이다.
손가인도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밝히기로 윤종신 선배님에게 곡을 받는다고 했을 때 발라드를 기대하고 갔는데 점점 부르다보니 가사가 이상했다고(?!) 결국 듀엣곡이 음흉해졌다고 녹음 후일담을 밝히기도 했다. 유희열 : 세상에 그 분 참여할 줄 알았어, 그 분 시선이 음흉해요???
결국 유희열의 스케치북 2012년 성탄특집에서 유희열까지 합세해 '시선'을 방송에서 불렀다. 포인트는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장미를 씹어먹을 듯한 윤종신과 무심히 피아노치며 코피 터지는 유희열. 그리고 손가인의 의상.
2013년에는 정말 오래간만에 가수 윤종신으로 연말 가요제에 참여해서 노래를 불렀다. 비록 소속가수인 김예림, 박지윤과 함께 나온 것이었지만, '본능적으로'를 끈적한 버전으로'[37] 연말 가요제에서 부른 건 처음이다.
2014년, 네이버 뮤직 음악감상회에서 했던 라이브. '오래전 그날', '1월부터 6월까지'외 여러 곡을 불렀다. 젊은 시절 미성은 사라졌어도, 부드러워진 저음과 한층 더 깊이 있어진 감성으로 아직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좋은 가수임을 보여주는 라이브이다.
5.1 정규 앨범 목록
앨범 발매에 대해서는 위 문서 참고.
6 방송 활동
6.1 연기
6.2 예능
KBS 예능프로 '야행성'에서……. 발라드 계의 능참봉 드립도 여기서 나왔다
90년대에 가수로 활발히 활동할 때도 윤종신은 이미 그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깐족의 대명사로 불렸다. 당시 윤종신의 그 간드러지는(…) 평소 목소리를 들으면 사람들이 놀랐다고 할 정도. 2000년대 초반에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 영화감독 장항준과 함께 비실형제로 카메오로 출연, 이후 본격적으로 예능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 2002년 똑바로 살아라[38]에 또 카메오로 2번정도 출연했고, 그건 말이 안되고요! 2003년 논스톱4에 교수 역을 맡는 등 점차 활동의 폭을 넓혀 3사를 종횡무진하는 예능인으로 성장했다.
2009년이 그 전성기로, MBC 황금어장의 라디오 스타, SBS 패밀리가 떴다, 예능선수촌[39] 에 고정출연하여 시청률 60%를 책임졌……으면 좋으련만 모두 프로그램의 중심 캐릭터가 되지 못했다. 애초에 윤종신의 캐릭터는 촐싹맞고 얄밉게 깐족대기. 아무래도 나이도 나이고 몸도 몸이니만큼(…),[40] 몸을 쓰는 일(몸개그를 포함하여)은 어려웠던 듯하다. 대신 쉴 새 없이 말로 태클을 걸거나, 특히 다른 사람이 던진 말장난을 한번 더 받아치는 '주워먹기' 개그에 뛰어나다. 그래서 기프갤에서 얻은 별명이 윤자기. 본인도 주워들었는지는 몰라도, 2010년 놀러와 283회에서 갑자기 윤자기 드립을 쳤다. 그 날 윤종신의 활약으로 놀러와는 음악성과 웃음을 함께 거머쥐며…… 소위 흥했다. 윤종신은 자기가 나오는 프로그램에서는 거의 모든 드립을 주워먹는다. 특히 독한 것은 그 깐족대는 캐릭터와 겹쳐서 독한 드립은 더 독하게 치는 바람에 말리는 시누이 포지션으로 정착한 것. 김구라조차도 명랑 히어로에서 난 최소한 앞에서 때리지 저 형은 뒤에서 친다고라면서 질색했다.
그러나 패밀리가 떴다 시즌 1이 마감하면서 같이 하차. PD와 접촉하여 시즌 2를 노렸으나 대대적으로 물갈이하려던 방침에 맞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본인의 말로는 '애는 늘었는데 프로그램은 줄었다'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예능선수촌의 경우 초기에는 최양락의 레전드급 토크로 흥하였으나 결국 놀러와를 이기지 못하고 그 해 가을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그 뒤 SBS는 월요예능을 화요일로 옮겨 강심장으로 재기한다.
2010년 KBS 2TV '밤샘버라이어티-야행성'에 출연했으며 현재 라디오 스타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2009년의 포스는 없지만 나름대로 예능 주요 시간대를 두 개 점하고 있다는 점에서 급 몰락할 우려는 없어보인다. 연예계에서 크로스오버로 성공한 대표적인 산 증인.
무한도전 듀엣가요제에서의 영계백숙을 작곡했다. 그런데 작곡 후 정준하의 보컬이 아쉬웠는지(…), 본인이 직접 불러 리믹스를 해 유료 음원 시장에 내놓았다. 이에 대한 논란은 후술
패밀리가 떴다에서 이효리에게 '효리야, 나랑 게임 한 번 하자'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자막에 '효리야, 나랑 한 번 하자'로 나와서 이 장면이 캡쳐되어 개그 요소로 쓰이고 있다.(…) 박진영을 아는 사람이라면 게임 한 번 하자도 충분히 웃을 수 있는 장면... 지못미.
90년대에는 분명히 "노래하는 음유시인"으로 추앙받던 싱어송 라이터였는데, TV를 출연하면서 "빙수종신", "스시종신" 등의 코믹하지만 은근 안습한 이미지로 돌변했다. 90년대부터 음유시인으로 좋아하는 팬들은 상당히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그런데 사실 90년대에도 라디오에서 윤종신의 깐죽포쓰는 대적할 자가 없었다. 본인도 "라디오 들어본 사람들은 자기가 원래 이런 이미지라는 것을 알 것."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본인은 예능인 윤종신과 음악인 윤종신의 괴리감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스스로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와 개그맨 비트 다케시와 같이 생각하면서 예능인과 음악인으로서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다고 얘기하고 다닌다고 한다.[41][42]
나는 가수다의 3대 MC를 맡게 됐는데 시즌1이 마무리되면서 하차했다.
SBS의 고쇼에서 고현정, 김영철, 정형돈과 진행을 했었고 현재는 종영했다.
결국 2012년 MBC 연예대상에서 최우수상과 라디오 스타로 최고의 프로그램상을 수상했다.
현재 라디오 스타에 출연중이다. SBS 일요일이 좋다 - 맨발의 친구들(2013.11.17폐지)에 출연했었다. 화신은 2013년 5월 14일을 끝으로 하차했다.(어떻게 SBS는 윤종신 출연하는 족족 조기폐지?)
여담이지만 2008년에 무한도전에서 하하와 유재석이 금산에 인삼을 사러 갈때 잠깐 전화통화를 한적이 있는데, 그때 방송에 나온다는 것을 모르고 너무나 가볍게 됐어~ 이 시X놈아~라고 욕했다. 물론 욕은 묵음처리되었고, 그 뒤에 유재석이 "형, 이거 무한도전에 나가는 거야"라고 하자 바로 "웬일이니 재석아?"라고 하며 바로 급변했다.
2014년 7월 31일부터 M.net 블랙드라마 엔터테이너스에 출연 중이다. UV신드롬, 음악의 신, 방송의 적을 연출한 박준수 PD의 작품인데, 페이크 다큐멘터리였던 전작과는 달리 드라마 혹은 시트콤의 성격이 강하다. 윤종신이 틴탑의 프로듀싱을 맡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음악의 신에서 한 몸 불살라 제 2의 전성기를 열었던 이상민처럼 회드립 등 자기 비하도 서슴지 않으며 분투하고 있지만 영 반응이 시원찮은 편.
2014년 11월부터 2015년 3월까지는 종편인 JTBC의 속사정쌀롱의 진행도 맡으면서 생애 처음으로 종편 프로그램을 맡기도 했다.
2015년 5월부터 동년 11월까지는 리얼체험 프로젝트 인간의 조건 고정 멤버로도 출연 중이었다.
6.3 오디션 심사위원
슈퍼스타K 1, 2, 3기에 걸쳐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가끔 개드립을 치기도 했지만, 대체로 설득력 있는 평을 내린데다가 도전자들을 챙겨주고 가수로서의 방향성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준 덕분에 슈퍼스타K의 심사위원 중 비교적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은 편이었다.
슈퍼스타K4부터는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지 않는다고 한다.[43] 하차하고 나서 대체로 '윤종신 특유의 섬세한 심사평을 듣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쉽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 와중에 슈퍼스타K 2,3의 PD인 안준영 프로듀서는 트위터 상에 '앓던 이가 빠진 느낌이다! 감사합니다! 잘 빠졌네요^^' 라며 슈퍼스타K를 하차하는 윤종신을 저격하는 뉘앙스의 트윗을 남겨 잠시 논란이 됐었다.
프로그램 하차 이유에 대해서 인터뷰를 통해 '난 사실 음악을 말하는 걸 참 싫어했다. 그냥 듣고 느끼면 그게 다인데.. 트위터 시작하고 부쩍 음악을 말한다. 고치려고. 심사를 관둔 이유도 그 이유가 큰데. 열심히 만들고 부르고. 이 새벽도 그러면서 지샙니다'라는 트윗을 남겨 간접적으로 슈퍼스타K 하차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슈퍼스타K5로 복귀했다. 그리고 하차 건으로 김구라에게 슈파스타K의 장성택이라며 디스를 당했다
슈퍼스타K7를 끝으로 하차가 결정되었다. 하지만 차후 언제든 다시 참여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한다.
7 라디오 DJ 활동
한편, 윤종신은 라디오DJ로 다수 활동했다. 리즈 시절인 1991년에 MBC 표준FM <우리는 하이틴>을 시작으로 SBS 표준FM <기쁜우리 젊은 날>, MBC FM4U <두시의 데이트> 등에서 오랜기간 DJ를 했다.
요즘은 완전히 깐족거리는 기믹으로 활약하고 있지만, <우리는 하이틴>[44]의 DJ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내성적이었다고 한다. 한 번은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김완선[45]이 게스트로 출연했는데 작가가 써준 대본 내용으로만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해 방송사고를 낸 에피소드가 있다. 그러다 라디오DJ로서의 경험도 쌓이고 깐족거리는 이미지가 더해져 나른한 낮시간 때에 최적화된 DJ로 변모했다.(…)
유희열에 의하면 본디 젊은이들의 감성을 건드리는 섬세한 오빠같은 섬세한 밤 DJ였다고 한다. 적어도 '우리는 하이틴', '기쁜우리 젊은 날'때까지는... 그런데 실제 당시 기사로 그렇게 나와있었다고 한다.
8 게임 '회색도시 2' 특별 출연
회색도시2의 등장인물 | |||||||||
선진화파 | 정은창 | 소완국 | 김성식 | 노구치 | |||||
유상일 | 주정재 | 황도진 | 최재석 | ||||||
경찰 | 권현석 | 서재호 | 오미정 | 배준혁 | |||||
박근태 | 이경환 | 조용호 | 고상만 | ||||||
하성철 | 도세훈 | 이준영 | |||||||
백석그룹 | 장희준 | 강재인 | 양태수 | 장지연 | |||||
무소속 | 정은서 | 권혜연 | 양시백 | 유아연 | |||||
홍은희 | 황도준 | 하태성 |
2014 월간 윤종신 9월호 (2014년 9월 26일)에서 알테어팀의 회색도시2와 컬래버레이션하여 음원을 출시하였는데, 회색도시 2의 에피소드 1에서 정은창이 전광판을 바라보자 한껏 감정을 잠은 윤종신이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깜짝 출연 하였다.
뒷풀이에서도 등장한다. 뒷풀이에서 모든 캐릭터들이 모여 '일반 회사를 다녔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하여 완생이라는 각본을 연기를 하는데, 회장님으로 윤종신이 등장한다. 이름이 '윤○○'이라고 표기되고 사진 눈에 블랙 바 모자이크처리는 덤.
??? "잠깐, 자네들 내 출연분을 빼먹은 거 아닌가?"돌아본 정은창은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정은창 "회, 회장님..!"
김성식 "응? 저기만 더빙이 빠져있는데요?"
정은창 "그럴수 밖에... 저 분은 바로...
가수 윤[46]씨라고...!"
초상권 있는 분이라 위험하다며 뒷풀이 MC들에게 만류되어 각본이 종료되고 엔딩곡으로 넘어가는데 계획된 엔딩곡 음원이 회색도시(월간 윤종신 9월호 Feat.스윙스) 였다. 음원이 없다고 하자 서재호가 MC 3중창으로 가자며 더 막 나간다. 셋이서 부르기 시작하는데 정은창에게 대책없이 엔딩곡에 넣으면 큰일 난다고 만류된다.
덕분에 별 다른 등장없이 여러모로 저작권, 초상권 문제로 임팩트를 크게 남겼다.(...)
9 논란
- 무한도전 올림픽대로 가요제에서 영계백숙(정준하&애프터스쿨)을 작곡했는데, 후에 이를 리믹스 버전 음원으로 내놓은게 논란이 됐는데, 이에 네티즌들은 무한도전의 올림픽대로 가요제의 취지를 훼손한다며(무한도전 측은 가요제 수익 전액을 기부했다.) 대차게 깠다.
- 거기에 때맞춰 타블로가 정형돈과 부르려다 미완성한 '전자깡패'를 완성시켜 본인의 홈페이지에 올리며 저작권 Free를 선언하였다. 그럼에도 윤종신은 '그래도 유료'라는 입장을 고수하여 네티즌들의 엄청난 뭇매를 맞았다. 결국 자신의 홈페이지에 공식으로 사과를 하고 음원 수익 전액을 기부했다. 사실 윤종신의 영계백숙 리믹스 발표는 무한도전의 프로젝트와 전혀 별개의 것이며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자기 곡을 자기가 팔겠다는데 그걸 왜 욕해야 하는가……. 리믹스, 편곡도 돈 다 드는 엄연한 작업이다.
- 당시 논리 중 하나는 "그 노래를 당신 때문에 듣는게 아니고, 무한도전에서 홍보한 음악이니 수익도 무한도전의 방침에 따라 기부해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이때 윤종신 뿐 아니라 에픽하이도 전자깡패를 앨범의 히든트랙에 넣겠다고 했다가 "앨범 판매 수익을 무도에 기부해라"라는 말을 듣자 그냥 홈페이지에 공개했는데, 당연히 말도 안 되는 개소리들이다. 그럼 MC몽 팬이 메이비 1집을 구입하면 그 수익을 MC몽한테 줘야 하나?
TV에서 홍보가 돼서 뜬 노래는 가수의 것이 아니라면 세상에 가수가 돈 받아야 될 노래가 몇 개나 될지나 잘 생각해보자. 마이클 잭슨은 MTV에 뮤직 비디오가 나와서 떴으니 앨범 수익을 받으면 안 되나?
윤종신: 저는 회에 비유해요 회! 회! 첫번째, 신선해야돼!정지찬: 으하하하하하
윤종신: 두번째! 쳐야 돼.
정지찬, 윤종신 : 으하하하하하깔깔깔
정지찬: 와~ 이거 위험한 발언이에요
윤종신: 농담입니다 웃자고 한겁니다~ 제가 회입니다. 그렇죠? 그런거도 있고. 제가 그렇다는게 아니라 남자들이 신선한 여자를 찾는다 이런거죠. 신선한 느낌이어야하고 오래되면 좀 질려하고 말이죠.
정지찬: 그러다가 그 회가 신선하지 않아서 버렸는데 다른 사람들이 찌개 끓여먹으면 또 부러워요.
윤종신: 버렸는데 삭혀져서 또 맛있는 홍어회가 됐네?
- 사실 정지찬이 더하긴 하지만, 욕 먹을만도 하다…… 이후 윤종신은 말실수를 인정하고 너무 재미있게 하려다가 한 실수였다고 말했다. 죽을때까지 안고 가야 할 일이라고.
- 2015년 인터넷 방송 태도로 논란이 되었다. 기사 뮤지와 BJ 철구, 백설양 함께 인터넷 방송을 진행했는데 게스트로 나왔던 신화(아이돌)의 김동완을 BJ들이 '퇴물'이라고 지칭하고, '잘안되셨으니까 나온거 아니냐', 신곡가사가 'XX인생을 뜻하는 것 아니냐' 하는 발언을 쏟아내는 등 전체적으로 난리도 아니였다는 평. 윤종신은 이후 트위터에 당분간 트위터를 쉰다는 글을 남기고 글은 남기지 않고 있다.[47]
10 그 外
파일:Attachment/boyoon.jpg
보급형 정우성.
김구라도 칭송하는 가요계의 황태자에서 김구라의 밥으로 전락한 비운의 음악가.
윤종신은 이 말이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이걸 4년이 넘게 기억하고 있었다.
참고로, 연예인 야구단들 중 하나인 '恨'에서 내야수로 활동 중이다. 특이하게도 사회인 야구인에서는 보기 힘든 우투좌타로 활동중.
연예인 중에서도 특히 잘 알려진 시계매니아이다.
방송을 통해 소유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진 롤렉스 모델만 신/구형 서브마리너, 그린 서브마리너(초록베젤), 데이토나 등이며 그 외에도 태그호이어의 까레라 복각 모델을 자신의 뮤직비디오(1월부터 6월까지, 나쁜, 못나고 못난)에 착용하고 출연한다거나, 세이코의 SKX007 모델도 방송에 차고 나오는 모습을 보여준다.
유희열의 말론 한때 본인을 한국의 기타노 다케시(비토 다케시)라고 자칭했다고 한다. 이에대해 김장훈은 윤종신과 달리 비트 다케시는 재밌는 사람이라고 말했다.[48] 사실 따지고보면 그렇게 틀린말도 아니긴하다... 다른점이라면 다케시의 경우 코메디를 하다가 영화인도 겸하게 된경우고 윤종신은 거꾸로 음악을 하다가 예능계로 손을 뻗은 경우. 둘 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 순서를 떠나 비슷한 것은 변함없다.[49]
좋은 프로듀서가 아니라는 비판을 받았다. 윤종신 본인은 이 기사를 자신의 트위터에 리트윗 시켜놓았다.
딸의 이름이 라오다. 그리고 절친한 뮤지션 유희열의 딸 이름은 유리아(......) 당연히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재미있는 우연이다.- ↑ 1969년 당시 행정구역상 경남 진해시
- ↑ 칠원 윤씨 39세손 '鍾'자 항렬이다.
- ↑ 2015년 현재는 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에 출연해서 좀 유명해졌지만, 예전에 윔블던 주니어 부분 결승에 진출한 적이 있었던 한국을 대표하는 여자 테니스 선수였다. 1994년 윔블던 주니어 여자단식에서 준우승을 기록했는데, 당시의 결승상대는 여자 테니스계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선수였던 마르티나 힝기스였다. 이후 1995년 US오픈에서는 힝기스와 복식조로 나서기도 했다. 2005년에 현역 생활을 마감하고 결혼했다. 2015년 현재 테니스 해설위원으로도 활약하고 있으며, 후배 테니스 선수들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 1996년 015B 6집 앨범에서 (21세기 모노리스 등) 본명이 아닌 신경필이라는 가명으로 곡을 쓰기도 했다. 이승환 역시 비슷하게 토이 앨범에 '이철민'이라는 가명으로 참여했기도 했고.
- ↑ 1박2일 복불복 게임에서 김승우에게 말하길, 자칭 게임계 복덩이라고 했다(...)
정작 입수, 야외취침, 아침걸식 등 다 걸린 건 함정. - ↑ 도라에몽의 주인공 노진구를 말한다.
- ↑ 유희열이 그의 음악 작업 방식을 음도에서 평하기를(...)
- ↑ 2회 졸업생으로, '대원 외국어학교' 시절이다. 일반 고등학교를 못 갈 것같은 사람들이 가던 그 시절 맞다. 그래서 라디오 스타에서 윤종신이 "나 외고 나온 사람이야!" 라고 하자, 김구라가 "못 나가던 시절에 나온 거잖아!" 라고 공격했다. 대원외고 동창으로 현재 벤츠의 딜러인 한성자동차의 세일즈맨으로 알려진 가수 김민우가 있다.
- ↑ 이를 통해 대원외고-연세대 졸업이라는, 겉으로만 보면 완전 엘리트인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실제로 연세대 신촌 캠퍼스 졸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 모양. 물론 거짓말을 하고 다닌 건 아니지만.(그러나 윤종신 재학시절 국문학과 교수였던 정현기 교수 말에 따르면 가수생활 중 라디어 프로그램에서 학창시절 얘기를 할 때 지하철 드립(..)을 치다가 걸린 적도 있다고 했던 걸 봐서는 진실은 저 너머에...) 은근히 자신을 엘리트로 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웠긴 했는지 강심장에서 '나는 학창시절 반에서 20등 정도 하는 학생이었다.'라고 에둘러서 고백아닌 고백(?)을 하기도 했다.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 그냥 연세대학교라고 되어 있었으나 연예인 학력 위조 파문 등이 있었을 때 자연스레 캠퍼스도 표시되었다.
- ↑ 그 이후로도 방송에서 김구라가 여러번 그가 원주캠퍼스였다고 이야기하기도 했고, 팟캐스트 '진중권의 문화다방'에서도 자신의 입시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 ↑ 이런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낸 곡이 '환생'이다. 꽤나 가스펠 스타일인 곡.
- ↑ 출처는 힐링캠프.
- ↑ 참고로 한때 유희열은 윤종신이 참 게으르다며
한숨섞인한탄을 한적이있다... 아무래도 음악에 한해서인듯. - ↑ 그리고 자기가 영화음악을 만든 그 영화에 출연을 하기도 한다.
- ↑ 그 전부터 서로 외모가 많이 닮았다는 이야기는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있었던 이야기였다.
- ↑ 1994년 윔블던 주니어 여자 단식 결승에 진출하여 준우승을 기록한 경력이 있다. 당시 상대는 훗날 1990년대 중후반 세계 여자 테니스계를 주름잡았던 스위스의 마르티나 힝기스. 2005년에 현역 은퇴를 선언한 후 이듬해 윤종신과 결혼했다. 현재는 엠스플의 테니스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후배 테니스 선수들을 위하여 여러 가지 활동을 하신다고 한다. 마리텔에 부부 자녀 동반으로 출연했으나, 최하위에 그쳤다.
- ↑ 윤종신은 (프로필상) 170cm, 전미라가 175cm이다. 각자 프로필 상 키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차이날 수도.
- ↑ 모르핀이 한번에 많이 들어가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여러 번 눌러도 실제로는 한두 번 밖에 안들어가도록 설계되어있다. 대체로 10분 간격으로 자동으로 투입되나, 그 사이에 몇 분 안에 한해서 누를수 있다던가. 방식으로 사용한다.
- ↑ 015B 2집 '두 번째 에피소드'의 수록곡 '친구와 연인', 'H에게", 3집 '제3의 물결'의 수록곡 '우리 이렇게 스쳐 보내면'(박선주와의 듀엣곡) 등 간간히 피처링으로 015B를 돕고 있다.
- ↑ 원래 작곡가 박강영에게 편곡을 맡기려고 아는 사람한테 번호를 물어봤는데, 그 사람이 실수로 작사가 박주연의 번호를 알려줬다고 한다. 차마 잘못 걸었다고 할순 없어서 작사를 부탁드렸는데, 그 잘못걸린 전화로 인해 윤종신의 초기 양대명곡으로 꼽히는 너의 결혼식과 오래전 그날이 탄생하게 되었다.
- ↑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M.net에서 방영한 디렉터스 컷(Director's cut)이며, 당시 윤종신이 아끼는 인물들(하림, 조정치, 정지찬 등)이 많이 나왔었다. 참고로 구하라가 엄청 못부른(...) 키스의 여자이니까가 나온 프로그램도 바로 디렉터스 컷이었다.
- ↑ 그러나 2번째 Monthly 앨범(Project 2010 May)의 수록곡인 '본능적으로'가 슈퍼스타K 2에서 강승윤 덕분에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이문도 남는 프로젝트가 되었다. 우왕ㅋ굳ㅋ. 이 노래는 윤종신이 표현하길 자신의 음악 인생을 통틀어 유일한 1등곡이자 초대형 히트곡이라고 한다.(…)
- ↑ 버스커버스커가 슈퍼스타K 3에서 리메이크한 첫번째 Monthly앨범 수록곡 '막걸리나'도 유명세를 탔었다.
- ↑ 가수들 사이에서는 말술로 유명하다. 라디오 DJ로 활동하던 시절 밤 늦게 술 마신 얘기를 자주하는 편. 또한 헤비 스모커로 유명했다가 한 번 쓰러진 이후로는 술과 담배는 줄인듯 하다. 사실 이제는 거의 끊었다. 테니스를 통해서 몸은 오히려 좋아졌다고.
- ↑ 라디오 스타 '이승철'편에서 옥타브 대결 비슷하게 했었는데 그나마 깔끔하게 낸 이승철에 비해 상대적으로 탁하고 힘들게 냈다……. 물론 노래 중간에 내는것이 아닌 생목으로 바로 2옥타브 시를 내는 것이 대단한 것만은 사실이다. 이렇듯 라이브 실력에 대해선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팬캠에는 '라이브 대박이다.. 쩐다' 등의 목소리가 많이 섞여들어가 있다. 가수생활 20년이 넘는 관록이 그냥 생기는게 아니다.
- ↑ 이 순서는 그림 순서이고, 실질적으로 '음악노예'라는 별명이 가장 어울리는 사람들은 유희열, 하림, 조정치 정도까지로 봐야 한다. 가수활동 위주로 하는 사람들이나 윤종신과 함께 일한지 몇년 정도 밖에 안 된 다른 사람들은 사실 노예 수준 노가다(?)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에 비해 유-하-조 세사람은 그와 함께 적지 않은 기간 일하면서 가수활동만 한 것이 아니라 엄청난 양의 작곡과 편곡을 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하림의 경우는 윤종신 관련 음반 편곡의 대다수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희열은 독립이라도 했지 하림은 윤종신에게 여전히 속해 있는 영원한 노예다 - ↑ 김연우 등이 소속된 소속사 대표 프로듀서이다!
- ↑ http://cafe.naver.com/musicy/16642
- ↑ 윤종신 10집 "너에게 간다"와 대구를 이루는 곡.
- ↑ 이승환과 비슷한 작업 방식이다. 이승환 역시 음악과를 전공한 게 아니기 때문에(그는 외대 출신이다) 황성제 등과 공동작업을 하고 있다.
- ↑ 물론 조크다. 실제로는 이 레시피대로 하면 망한다. 음과 박자를 고려해서 세심하게 단어를 배치한 것. 그렇게 쉽지 않다.
- ↑ 극중 내용: 꼴통 4총사(노영삼 외 3인)가 방학 중 휴가비 마련을 위해 팥빙수 장사 시작 → 윤종신이 매일 사먹으면서 '이 빙수를 먹으면 악상이 떠오른다'고 말하며 이 노래를 부름 → 1주일 뒤 빙수를 먹으면서 배가 아파오는 것을 단순히 장이 나빴던 것으로 의심하다가 그 빙수를 사먹은 종신의 어머니도 똑같이 복통을 호소 → 결국 빙수 제조 공정의 불량(위생얼음도 안 쓰고 청결상태가 영 좋지 못한 손으로 제조)을 눈치채서 빙수 장사를 접게 만들고 끝.
- ↑ 1994년에 정광태가 발표한 김치 주제가가 있다. 김치 없인 못살아, 정말 못살아.의 그 곡. 또 1980년대 후반에 아기공룡 둘리의 삽입곡으로 나온 라면과 구공탄도 있다.
- ↑ 다만 팥빙수와는 다르게 영계백숙이나 막걸리나, 망고 쉐이크는 레시피를 다루진 않았다.
- ↑ 비슷한 케이스로 토이 3집, 5집에서 이승환이 이철민이라는 가명으로 부른 바 있긴 하다(...)
- ↑ 참고로 LG미디어는 1997년 외환위기때 사업을 정리했다. 덕분에 015B 6집은 음악 성향이 상당히 실험적으로 변한 것과 맞물려 재발매도 안 돼서 다른 앨범에 비해 현재 구하기 엄청나게 어렵다.(다만 근래에는 2006년 발매된 7집이 더 구하기 힘들어지긴 했지만. 이 앨범은 1만장 한정 판매 크리(...)) 아닌게 아니라 1980~1990년대 괜찮은 음악을 내던 음반사,기획사들이 외환위기로 대부분 몰락한 것이 MP3의 범람과 함께 대한민국 음악 시장이 1990년대 말에 급변한 하나의 원인으로 꼽힌다. 예당음향, 동아기획, 대영AV, 서울음반 등도 이 시기에 치명타를 맞으면서 사그라들었고, 그리고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이 기획형아이돌을 내세운 SM엔터테인먼트, YG, JYP 등이다. 이외에 서태지 5집, 토이 4집을 낸 삼성뮤직도 음반업계에서 결국 철수했다. (다만 토이 4집은 다른 회사에서 재발매 중이다.)
- ↑ 선글라스에 의자까지, 작정하고 꾸미셨다!
- ↑ 심지어 주제곡까지 불렀다. 2번째로 나온 에피소드에선 언더그라운드 가수의 설정이었는데 나중에 TV에 출연해서 이노래까지 불렀다.
- ↑ 야심만만 시즌2
- ↑ 항문이라든가 무좀이라든가…….
- ↑ 하지만 김장훈과 유희열은 이 얘기를 듣고 비웃었다.
- ↑ 이 부분은 어폐가 있는데, 2시간 내내 방송에서 예능인 윤종신을 비웃다가 마지막에는 정색하고 어렵고 힘든 길을, 그것도 두 길을 모두 성실하게 묵묵히 걷는 윤종신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셋은 거의 형제같은 사이로 장난끼 넘치는 디스는 그들의 일상이다. 참고로 유희열이 잠시 미국 여행을 간 사이 윤종신은 자신의 공연에서 "희열씨가 드디어 빚쟁이의 등쌀에 못 이겨 라디오를 버리고 미국으로 도피하셨습니다"라는 드립을 처주셨다.(…).
- ↑ 대신 싸이가 참여한다.
- ↑ 윤종신은 이 프로그램의 DJ가 되기 전에 015B의 멤버들과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텅빈 거리에서를 2번이나 틀려, 녹음방송이라 그냥 넘어갔지 생방송이었으면 완전 끝장날 뻔한 짓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윤종신은 우리는 하이틴이란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떨었다고 했는데, 몇 달 후 DJ로 섭외가 들어왔으니 윤종신의 심정이 어땠을까...(출처는 정석원이 쓴 '공일오비 스토리')
- ↑ 윤종신은 동갑이다(...). 생일은 김완선이 더 빠르고, 데뷔 연도로만 따지면 4년 차이.
- ↑ 삐 소리가 난다.
- ↑ 동시기에 아이유의 제제논란에 의견을 제시했다가 논란에 휩싸인 것도 한몫한 듯.
- ↑ 이때의 윤종신은 예능 늦둥이로 불리던 시절로 2015년 기준 현재처럼 그다지 예능계에 영향력이 있던 사람은 아니었다. 지금이야 두 분야 각각 충분히 인정받고있지만 그땐 아직 음악인 윤종신으로서의 모습이 강했기때문에 낯설어 하는 사람들과 젊은 세대들에겐 알듯말듯한데 예능계에 자주 눈에띄어 가수인지 예능인인지 헷갈려하던 시절이었다.
- ↑ 흔히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윤종신은 예능을 꽤 오래전부터 하고싶어했다.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의 언급을 보면 줄곧 벼르고 있었던 듯. 음악을 떠나 라디오라든지 시트콤, 활동기간에서의 방송을 보면 그 부분이 두드러져 있는 걸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