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슬로바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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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어: Československo
슬로바키아어: Česko-Slovensko
영어: Czechoslovakia

공식명칭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Československá republika, 1918-1938, 1945-1960, 1990-1993)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Československá socialistická republika, 1960-1990) 등.
면적140,446km²(1921), 127,900km²(1993)
인구1360만 7385명(1921), 1560만 명(1993)

1918~1992년 사이 동유럽[1]에 존재하던 공화국. '체코+슬로바키아'라는 명칭이다.

1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1918~1938)

신성 로마 제국 황제에 의해 왕관이 윤허된 보헤미아 왕국 - 체코와, 천년 동안 헝가리의 일부로서 지배되었던 슬로바키아를 합쳐서 만든 나라이다.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면서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Československá republika)으로써 독립하였다.

전후 전간기 동안 독일인 문제로 위기를 맞았으나 연정의 형식을 통해 독일인들을 권력 집단의 주요 축으로서 끌어들임으로서 민족적 불만을 누그러뜨리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나치 독일 성립 이후 본국에서의 막대한 후원을 등에 업은 주데텐 독일당이 득세하기 시작하면서[2] 체코슬로바키아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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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이전 주데텐 독일인의 분포도.

신성로마제국의 일부가 된 이래로 독일인들이 대거 이주해오면서, 특히 30년 전쟁으로 이런 이주가 가속화되면서 체코슬로바키아 성립 당시에는 독일인이 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는데, 특히 독일과 국경을 이루는 수데티(Sudety) 지방, 이른바 주데텐란트에는 독일인들이 대거 이주하여 뿌리박고 있었다.[3] 독일 민족의 통일을 외치던 나치 독일은 이 '동포'들을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고 주데텐 독일당을 이용해 독일인들을 자극하여 말썽을 일으키게 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독일인들이 박해를 받고 있다며 선전을 하며 전쟁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미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흡수당하였던 전적이 있었으므로 위협의 메시지는 분명하였고 이 일로 인해 또다시 전쟁을 발생시키고 싶지 않았던 영국의 체임벌린 내각은 재빠르게 움직여 아돌프 히틀러와 직접 대면하였으나 협상을 원치 않았던 히틀러는 주데텐란트를 모두 내주도록 해주겠다는 협상 조건을 묵살하고 무조건 무력을 동원해 점령하겠다고 엄포를 놓아 영국과 프랑스 모두를 경악에 빠뜨렸다. 결국 체임벌린과 프랑스 총리 달라디에는 이탈리아가 제안하고 중재자를 자처한 뮌헨 회담에 참석하여 나치 독일와 '협상', 주데텐란트를 독일군이 직접 점령하는 데에 동의하고 체코슬로바키아에 압력을 넣었다. 체코슬로바키아 정부가 배제되었던 이 회담의 결과에 굴복한 체코슬로바키아는 나치 독일에 주데텐란트를 할양했을 뿐만 아니라, 헝가리폴란드에도 인종 지도에 따라 슬로바키아 남부 지역과 루테니아, 톄신 등을 내주는 수모를 당했다.

주데텐란트를 빼앗긴 체코슬로바키아는 더 이상 독일에 대항할 능력이 전무했다. 주데텐란트에 체코의 중공업 산업이 산재해있었음은 물론이고 군사적으로는 국경 요새가 건설되고 확장되어 소(小)마지노라고 부를만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으므로 이것을 모조리 빼앗긴 체코슬로바키아는 현실적으로 시한부 국가가 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워진 것이다. 이때를 틈탄 슬로바키아 민족주의자들의 압력에 의해 체코-슬로바키아로 국가가 개편되기 시작하였으나 주데탄란트를 복속한 것으로도 만족하지 않은 나치 독일은 슬로바키아 민족주의자들을 사주, 이용하고 이들이 체포되자 즉시 군대를 움직여 슬로바키아 민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남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마저 병탄했다. 이후 슬로바키아를 분할시켜 1939년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이란 괴뢰 국가를 성립시키는 한편 나머지 영토는 형식적으로는 체코슬로바키아를 계승하는[4]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을 설치했다. 후에 체코슬로바키아 망명 정부가 결성되어 영국의 도움을 받아 연합군에 가담하여 추축국에 대항하였다.

2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1945~1989)

1945년에 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하지만 1945년 5월 소련군이 진주하기 시작했다. 종전 이후 체코슬로바키아는 독립을 되찾았지만 헝가리에게 빼앗겼던 카르파티아-루테니아 지방은 우크라이나인이 거주하고 있던 지역이었으므로 다시 찾지 못하고 소련(현재의 우크라이나)에게 빼앗겼다. 1948년 2월 무혈 쿠데타가 일어나 소련의 지원을 받는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Komunistická strana Československa)이 일당 독재로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이후 1960년 7월 사회주의 헌법을 채택, 시행하면서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Československá socialistická republika)"이라는 국호로 바꾸었다.

1968년에는 프라하의 봄 사건이 일어났다. 알렉산데르 두브체크(Dubcek)는 사회주의 정권의 개혁파였으며 1968년 1월에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제1서기로 취임했다. 정치 개혁, 자유화를 추구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반개혁파와 소련군은 약 20만명 규모에 전차를 포함한 바르샤바 조약기구 군을 동원해 체코슬로바키아 전역을 진압했다.

1969년 4월부터 1987년 12월까지는 후사크(Husak)가 당 제1서기, 당 서기장, 대통령 등을 맡으며 장기 집권했다. 1987년 12월부터 야케스(Jakes) 당서기장이 취임했으나, 1989년 11월의 벨벳 민주화 혁명으로 인해 퇴진한다.

3 체코 및 슬로바키아 연방 공화국(1989~1993)

냉전이 종결되고 1989년 11월 벨벳 혁명의 결과 1989년 12월 바츨라프 하벨이 새 대통령에 선출되어 자유주의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1990년 3월 정식국명을 "체코 및 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Česká a Slovenská Federatívna Republika)"으로 바꾸었으며 1991년 6월에는 체코 주둔 소련군도 철수를 완료했다.

하지만 곧 체코인들과 슬로바키아인들 간의 국명 분쟁을 비롯한 일련의 알력을 빚었다.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1993년 1월 1일부로 체코슬로바키아는 완전히 별개의 국가로 분리되었다.[5] 분리되었을 적에도 벨벳 혁명처럼 아무런 군사적 마찰없이 분리됐기 때문에 이를 벨벳 이혼(...)이라고도 부른다. 다만 체코가 보복을 안하진 않았는데, 처음 약속을 깨고 체코슬로바키아의 국기를 그대로 사용한 것.[6]

4 트리비아

  • NASA아폴로 계획 마지막 미션이었던 아폴로 17호의 사령관 유진 서넌(Eugene Čerňan)은 미국으로 이민한 슬로바키아인 아버지와 체코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던 인물로, 달에 가서 성조기와 별도로 체코슬로바키아의 국기를 놓고 왔다. 이에 훗날 슬로바키아 정부에서 훈장을 수여했다.

5 관련 항목

  1. 현재는 체코와 슬로바키아 모두 중앙유럽으로 분류되지만 냉전 당시 소련의 영향력이 미치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동유럽으로 분류되었다.
  2. 1935년 총선에서는 독일인들의 몰표에 힘입어 주데텐 독일당이 득표율 제1당이 되었을 정도였다.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내 독일인들의 68%가 주데텐 독일당에 투표했다고.
  3.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만약 히틀러가 집권하지 않고 2차 세계대전이 없어서 체코 거주 독일계가 추방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체코도 벨기에처럼 체코인-독일인 연방제 국가가 되었을 확률이 높다.
  4. 실제로는 독일에서 파견된 총독이 통치. 2대 독일 총독이 그 유명한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5. 협정에 따라 당시 인구 비율이었던 2:1로 모든 걸 나눠 가졌다. 심지어 국채까지...
  6. 이는 정통성 논쟁에서 승리하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