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本 哉(まつもと はじめ)
일본의 빈민운동가이자 노숙자, 가난뱅이라는 특이한 직함을 가진 인물. 저서로 가난뱅이의 역습, 가난뱅이 난장쇼등이 번역되어 있다. 학창시절엔 노숙 동호회에 가입했다거나, '호세 대학의 궁상스러움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했다거나 하는등 딱봐도 기인의 냄새가 풀풀 난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전에는 본토보다 한국에서 더 알려져 있었다. 모 국제행사를 개최하면서 비상이 걸린 한국 정부가 국격 유지를 위해 그의 한국 입국을 거부하였기 때문. 독재정권 하에서 금지곡이 대학생들 사이에 유행했던 것처럼, 입국 거부 사건으로 되레 유명해져서 그의 저서들이 다시 한번 불티나게 팔렸다.[1]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반핵 운동가로 업그레이드했다. '사운드데모'라는 사회운동가/예술가들이 자주 써먹는 데모방법을 사용한다. 시위열 앞에 밴드나 디제이를 태운 트럭을 두고 함께 행진하는 시위다. 시민들의 이목을 끌기도 쉽고 종종 시위현장이 파티장처럼 변하는 능력(!)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일본 내 반핵여론이 높아져도 도저히 모일리가 없는 인원(30만명)으로 당초 시위 규모를 잡는 등 허풍도 심한 성격인 듯. 실제로는 15000쯤 모였지만 다들 성공한 시위라고 할 정도니까. 천명 단위의 집회라고 구라치고 3명이 나가는 시위를 한 적도 있고(시위명은 '반정부시위'), 초과격시위라고 뻥치고 길바닥 한가운데에 앉아서 꽁치를 구워먹는(…) 짓을 한 적도 있다.
또한 별 방해없이 맘대로 시위하기 위해 선거에 나가는 기행을 한 적이 있다. 물론 대선일린 없고 지역구. 요란한 사운드데모를 난무했기 때문에 항의가 미친듯 쏟아졌지만 선거운동이라 실드가 가능했다는 모양.(...) 왠지 허경영이 연상되는 의외로 표는 생각보다 꽤 많이 나왔다고 한다.
실제로 원래 사회운동가로 시작하려던게 아니라 빈민운동, 빈곤학생연대에서 이리저리 떠돌다 보니 성장한 케이스라서 특별한 사상도 없고, 편견도 없고, 심지어 진지함도 없다(…). 그래서 이런 뻥카나 괴상한 시위방식은 오히려 신선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2] 또한 일단 주류 사회운동가들과 진지함의 정도뿐만 아니라 주장의 방향성이 좀 다른 편이다. 본인의 말로는 아버지는 작가, 어머니는 아나키스트로 어린 시절부터 동네친구가 농어를 욕조에서 키운다던가 하는(...) 매우 가난한 생활을 보냈다고 하는데, 그런 식으로 사회의 일반적인 사고를 접할 기회 없이 성장기를 보낸게 오히려 나름대로 남다른 사고를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또한 직함은 일단 가난뱅이지만 저서에 따르면 마츠모토 본인은 무턱대고 가난을 추구하는건 오히려 거대자본 소유주들에게만 좋은 결과를 낼수 있다고 생각하는듯 보인다. 격차 사회의 계급 자체를 부정하고 자발적 가난을(사회적으로 가난을 기피하는 이유는 가난 자체의 어려움도 있지만 대개 가난이 '계급적 몰락'으로 취급받는다는 점이 좀더 크다), 사회적 기준이나 부보다는 개개인의 자아 혹은 하고싶은 일에 치중하고 사는 삶을 주장한다.
일단 그는 점점 많은 돈을 쓰길 요구받기에 점점 많은 돈을 벌어야만 하는 현재 자본사회에서 탈출해 개개인이 연대해서 생활하는 방식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며, 공동체가 연합해 일, 주거, 유흥, 문화생활이 전부 해결 가능한 공간을 만들어서 자본 사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마츠모토 본인은 재활용 가게의 점장으로, 이상한 물건 좋아하는 자기 취향+미친듯이 멀쩡한 물건이 버려지는 상황 속에서 자발적 가난을 추구하는 사람들끼리 버려진 물자를 돌려서 쓰자는 취지로 열었다는 듯.
밤섬해적단의 일본 원정에 큰 도움이 된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저서에서 언급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