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테야 케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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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리즈 시절이었던 PSV시절

이름마테야 케즈만 (Матеја Кежман)
생년월일1979년 4월 12일
국적세르비아
출신지제문
포지션스트라이커
신장182cm
소속팀FK 라드니츠키 피로트(1996-1997)
FK 로즈니차(1997-1998)
FK 사르티드(1998)
FK 파르티잔(1998-2000)
PSV 아인트호벤(2000-2004)
첼시 FC(2004-2005)
아틀레티코 마드리드(2005-2006)
페네르바체 SK(2006-2009)
파리 생제르망 FC(임대)(2008-2009)
파리 생제르망 FC(2009-2010)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임대)(2010)
사우스 차이나(2011)
FC 바테 보리소프(2011)
사우스 차이나(2012)
국가대표49경기, 17골

1 개요

에레비디지에 득점왕이자 월드클래스 스트라이커에서 먹튀에 저니맨으로 전락한 비운의 스트라이커

세르비아의 전 축구선수로 PSV시절 에레비디지에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평가 받았으나 첼시로 이적하며 먹튀로 전략한 선수. 첼시 이적 전까지만 해도 유럽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하나로 꼽혔던 선수였다.

2 선수 시절

케즈만은 17살의 나이로 FK 라드니츠키 피로트에서 데뷔했다.데뷔 시즌,케즈만은 17경기에 출전해 11골을 넣는 준수한활약을 했다.이로인해 케즈만은 세르비아 청소년 대표에 소집되기도 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낸다. 하지만 그 이후 2년간 27경기 9골에 그치며 슬럼프에 빠지며 그저 그런 선수가 되는가 싶었다. 이때, FK파르티잔으로 이적해 22경기 6골을 넣으며 부활을 조짐을 보였다. 99/00시즌에는 32경기 27골을 넣으며 최연소 득점왕기록을 갈아치우더니, 챔피언스리그에서도 7경기에 출장해 6골을 넣으며 유럽 최고의 유망주중 하나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에 빅클럽들도 케즈만에게 관심을 보였는데, 이 중 에레비디지에의 명문클럽 PSV 아인트호벤에 1050만 유로에 이적한다.

PSV로 이적한 후, 첫 시즌에 33경기 24골을 넣으며 데뷔하자마자 득점왕을 차지, 리그 타이틀과 리그 컵 동시에 석권하는 맹활약을 한다. 물론 이 활약을 바탕으로 국가대표에도 소집됐다. 그 이후 세시즌 동안 득점왕 2번을 차지하며 월드클래스 스트라이커 반열에 올랐다. PSV에서의 4시즌동안 127경기 98골,득점왕 3번을 차지, 특히 02-03시즌에는 33경기 35골, 유럽 베스트일레븐에도 선정되는등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여기까지만 보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젊은 월클급 스트라이커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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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로 이적하며 케즈만의 축구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게된다

500만 파운드, 한화로 약 106억 원의 이적료로 첼시로 이적한 케즈만 PSV시절 동료였던 아르옌 로벤과 함께 배트맨-로빈 조합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드록바와 구드욘센에게 밀려 벤치신세로 전락했다. 무리뉴의 전술에도 맞지 않았던 케즈만은 25경기 4골이라는 성적을 내며 망했어요.[1]

결국 한 시즌만에 쫒겨나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한다. 하지만 AT로 이적한 후에도 케즈만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으며 다시 한 시즌 뒤, 터키리그의 페네르바체 SK로 이적한다. 페네르바체 이적후에는 준수한 활약을 하며 부활하는듯 했으나 끝내 부활하지 못했다.[2] 이후 케즈만은 파리생제르망, 제니트 등의 클럽을 전전하다가 33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3 여담

은퇴 후에는 스포츠 에이전시에 몸 담고 있다.
3시즌 만에 100골을 달성한 몇 안되는 선수이기도 하다.

4 케즈만의 굴욕

2005년 11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축구 국가대표팀#s-1.2 시절에 방한하여 용산 전자상가를 방문했었는데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 이후로 외국 유명인사들이 방한했는데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 무시당할 때마다 인터넷상에서 추억의란 접두사가 붙은 채로 강제소환 당하고 있다.
  1. 케즈만은 로만이 독단적으로 영입했던 선수였기에 전술에 맞지 않았던 그를 무리뉴가 쓸리가 없었다. 로만을 죽입시다 로만은 케즈만의 원수
  2. 사실 활약이라고 해봤자 전성기의 골수에 반도 못 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