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토오리 노리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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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居宣長 1730~ 1801

일본 국학의 거두중 하나이자 정한론의 중요 기반을 만든 사람으로서 중국과 대비되는 일본 고유의 신국(神國) 사상을 강조하였다. 본업은 의사였지만 간간히 저술활등을 충실히 하였고 36년동안의 번역으로 고사기를 근대 일본어로 재현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호는 스즈노야(鈴屋)였고 후일 문하생을 가르칠때에도 강습소에 이 이름을 넣어놓았다.

참된 도는 하늘과 땅 사이에 어느 나라라도 같게 통용되는 것으로 모든 나라에 하나뿐이다. 그런데 참된 도는 오직 황국(皇國)에만 올바르게 전해지지고 외국에서는 상고부터 전래가 끊어졌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는 별도로 다른 여러가지 도를 말하면서 정도(正道)인 듯이 설명하지만 모두 정도에서 벗어난 샛길로 참된 도가 아니다. 비록 비슷한 점이 있다고는 해도 동떨어진 샛길이며 뜻을 섞어서 채용한 것이므로 참된 도에 필적하기 어렵다.

잘도 이런 미치광이 같은 소리가 이 발언이 노리나가 사상의 집합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1 생애

이세(伊勢) 지방 마쓰사카(松阪) 출신. 아버지는 에도에 점포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호상(豪商)이었으나 가운이 기울기 시작해 노리나가가 11세 때 병사하였고 이를 계기로 어머니의 계기로 의술을 배우게 되었다.

호리 게이잔(堀景山, 1688~1757)에게서 유학을, 무카와 고준(武川幸順) 등에게서 의학을 배우고. 그러던 중에 게이잔의 소개로 게이추(契沖, 1640~1701)의 저술을 접하고 국학자로 접어들게 된다. 1757년 마쓰사카에서 소아과 병원을 개업하고 1763년 가모노 마부치(賀茂眞淵, 1697~1769)와의 만남을 계기로 국학에 입문하게 되어 일본 고대 사상의 정수라고 판단한 고사기의 해설인 <고지키전(古事記傳)> 집필에 착수한다. 이때 1763년 게모노 마부치의 만남은 단 하룻밤이었지만 그 이후에도 간간히 편지를 왕래하고 서로에 사상에 큰 영향을 끼쳐 이때의 만남을 '마스시카의 하룻밤'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무렵부터 <겐지 이야기를 읽는 요령(紫文要領))>, <이소노카미노사사메고토(石上私淑言)>를 집필하는 등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기 시작해 1771년에는 복고사상(復古思想)의 총론이라 할 수 있는 <나오비노미타마(直毘靈)>를 출판한다. 1786년에 간행된 <가카이카(呵刈葭)>에 수록된 우에다 아키나리(上田秋成, 1734~1809)와의 논쟁도 유명하다. 1798년 35년간 몰두한 <고지키전>을 완성했다. 복고사상에 입각해 일본의 고대 정신을 규명하고자 평생을 바쳐 고전을 연구했던 사람으로, 그의 문하생은 전국에 걸쳐 500명에 달했다고 한다.

주요 저서로는 고사기전, 옥승간, 겐지이야기를 읽는 법, 어융개론 등이 있다.

2 사상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그는 출병이라고 하지만)을 긍정적으로 보거나 (단 무리하게 출병한 사실은 인정한다.) 조선 통신사를 셔틀로 보고 에도에 조선과 중국의 사신이 입조해야한다.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것 같아요. 라는 논리를 보면 제정신이 아닌것같지만 이외로 순수 유학부터 국학에 이르기까지 사상적 토대는 꽤나 혁신적이며 스승이 틀렸으면 제자가 그것에 구애받으면 안된다. 라는 개념찬 소리를 하기도 했다.

이러한 양면성이 나타나는 이유는 그의 사상적 기반을 파악하고 당시 일본의 행태를 보면 일부 이해가 갈수있다. 당시 일본에서는 무분별한 성리학과 양명학의 수입에 대한 반발로 고학(古學)이 일어나 선진 유학의 연구를 거쳐 일본 고유의 미학을 파악하는 국학이 일어나고 이러한 면모에서 일본을 띄워야하는 필요가 있기때문이다.

정한론의 일원이었지만 진구 황후의 존재를 부정하고 주술등으로서의 고대 일본사의 가치를 폄하하는 등의 가치를 내보였고 유학 연구에 이러한 높은 가치가 나타나는건 이 때문이다.

그러나 한계가 있기도한데 어떤 이유든 간섭되어서는 안되는 천황이지만 현실상의 논리에 막혀서 막부가 천황의 대리인이라는 논리로 집권하는것을 합리화시키고 신토를 필요이상으로 신성불가침화시켜서 결론적으로 후대의 일본인이 정신승리와 타 아시아 민족을 깔보는 정서를 내보이고 결과적으로 일본 제국주의라는 끔찍한 결과를 낳는데 조금이나마 책임이 있기 때문.

3 평가와 그 외

2013년도부터 신설된 동아시아사에 국학의 중심인물로 시험에도 빈도있게 출제된다.

동방 프로젝트에 나오는 모토오리 코스즈의 모티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