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찬양

1 개요

기독교 세계관에 근거하여 기독교적 역사의식을 가지고, 구체적인 시대와 역사 현실 속에서 신의 정의와 평화가 실현되기를 기원하며 신을 찬양하는 CCM. 간단히 말해 기독교 색채가 더해진 민중가요, 또는 민중가요와 CCM의 교집합이라 할 수 있다. 대체로 신정통주의적 신앙 노선에 근거하고 있다.

2 태동 배경

1970년대 유신정권과 1980년대 5공정권 치하에서 근본주의적인 신앙 노선을 가진 교회들은 성경을 왜곡하여 독재 정권에 침묵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노골적으로 아부하고 협조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거꾸로 신정통주의 또는 민중신학적 신앙 노선을 가진 교회들은 박정희 및 전두환의 독재 정권을 신의 정의와 평화를 말살하는 악의 세력으로 간주하고 목사와 교인들이 앞장서서 독재 정권에 맞서 싸웠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신정통주의/민중신학 노선의 교회에서는 이러한 역사의식을 담아 낸 찬양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교회의 찬송가가 죄다 서양사람들이 작사, 작곡하여 서양사람들에게 맞는 곡들로 도배된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한국사람이 한국의 문화와 역사적 배경 속에서 작사, 작곡하여 한국사람들에게 맞는 곡으로 신을 찬양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신정통주의/민중신학 노선의 교회들을 중심으로, 기독교적 역사의식을 가지고 구체적인 시대와 역사 현실 속에서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신을 찬양하는 내용의 민중찬양이라는 장르가 태동되게 된다. 즉 아침 이슬, 임을 위한 행진곡, 함께 가자 우리 이길을 같은 민중가요와 CCM의 교집합으로써 민중찬양이라는 장르가 시작되었다.

3 노래운동

이러한 운동은 한국사람에게 맞고 역사의식을 담아낸 찬양을 부르자는 하나의 움직임으로 발전하는데, 이를 노래운동이라고 한다. 여기에 덧붙여서 기존 민중가요에 기독교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도 나타난다. 그러나 1987년 6월항쟁 이전에는 가사들 자체가 코렁탕 먹어도 100그릇은 먹을 노래들인 관계로 합법 앨범을 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불법 음반과 구전을 통해 노래운동이 이어져 나가게 된다. 6월항쟁 이후 어느 정도 표현의 자유가 확대되면서 본격적으로 노래운동은 활성화되기 시작하였고, 1990-1994년에 이르면 절정에 도달하게 된다. 1991년에는 다양한 민중가요와 민중찬송들을 모아서 편찬한 '평화의 아침을 여는 이'라는 악보집이 출판되었고, 그 이듬해에는 같은 제목으로 역사적인 작품집이 나온다. 노래운동 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합법 음반으로, 당시 민예총에서 '환자 트리오'로 통하던 백창우, 주현신, 류형선 세 사람의 작품집이다. 이 세 사람이 지은 찬양들을 기독교를 믿는 민중가요 가수들과 노래운동을 하는 찬양팀들이 무더기로 달려들어 한두 곡씩 차지하고 불렀다. 곡의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 트랙 1 달리다쿰 (백창우 작사, 작곡) : 이동원
  • 트랙 2 그는 어디에 있을까 (주현신 작사, 작곡) : 노래마을
  • 트랙 3 그대 오르는 언덕 (류형선 작사, 작곡) : 김원중
  • 트랙 4 그대와 함께 평화가 되어 (류형선 작사, 작곡) : 노찾사
  • 트랙 5 길 (백창우 작사, 작곡) : 홍순관
  • 트랙 6 부활노래 (주현신 작사, 작곡) : 에이레네 (남성중창단 찬양팀)
  • 트랙 7 고등어 두 마리와 찹쌀떡 다섯 개 (류형선 작사, 작곡) : 질경이 (노래마을의 유닛)
  • 트랙 8 새 날에 선 겨레여 (주현신 작사, 작곡) : 김원중
  • 트랙 9 우리는 평화가 되자 (주현신 작사, 작곡) : 노찾사
  • 트랙 10 평화의 아침을 여는 이 (백창우 작사, 작곡) : 안치환
  • 트랙 11 안돼 정말 안돼 (주현신 작사, 작곡) : 나누릿골예수 (기장 교단 소속 찬양팀)
  • 트랙 12 작은 예수 (백창우 작사, 작곡) : 굴렁쇠 (백창우가 지도 선생님으로 있는 어린이 노래모임)

그런데 이 음반도 사실 반쪽짜리였던 게, 류형선의 작품 '예수'와 '예수님 서울에 오셨네', 그리고 주현신의 작품 '한반도의 십자가를 어깨에 지고'는 심의 과정에서 빠꾸를 먹어 결국 발표되지 못했다. 때문에 이 곡들은 악보집을 통해서나 겨우 만나 볼 수 있는 상황. 음원 자체가 없다.

이후 노래운동은 복음주의 진영으로 확산되어 기독노래운동모임 '뜨인돌'이 등장하게 된다. 현재 복음주의 진영의 대표적 활동가인 황병구와 양희송이 이 찬양팀 출신이다. 김영삼 정권 초기까지 노래운동은 노래모임 새하늘새땅과 같은 찬양팀들을 중심으로 유지되었으나, 1990년대 후반으로 넘어가면 점차 퇴색되게 된다. 이유는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더 이상 투쟁의 대상인 독재정권이 사라진 상황이라, 민중찬양의 메시지가 먹혀들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거기에 1990년대 후반 이후 급격하게 떠오른 대형 보수교회들의 물량공세와, 그러한 대형 보수교회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보수적 노선의 찬양운동 때문에 더욱 입지가 좁아졌기 때문도 있다. 그나마 명맥을 잇고 있는 아티스트가 바로 홍순관, 송정미, 문수정, 합창모임 새하늘새땅, 많은물소리 등이 있다. 문수정의 경우 아예 담당 PD가 류형선. 2013년 WCC 총회에서 노래운동의 핵심 멤버였던 주현신 목사가 예배음악위원을 맡으면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는 있지만, 여전히 입지는 매우매우매우 좁은 상황이다.

노래운동과 무관하게 역사의식을 담아 낸 곡들을 뽑아내고 있는 찬양 사역자로 고형원 전도사가 있다. 신학 노선은 '진보적 복음주의'(보수적 신학 노선을 갖고 있지만 근본주의자들의 답 없는 수구꼴통 정치 노선을 거부하고 비 수꼴적 정치 노선을 추구함)로 노래운동과는 무관하다. 그러나 의외로 평화와 통일에 대한 역사의식을 담아 낸 곡들을 많이 뽑아냈다. 다만 그 기저에 깔린 배경은 1980-1990년대의 노래운동과는 약간 거리가 있다. 어쨌든 가사 내용 자체는 민중찬양과 어느 정도 공유하는 점이 있어서, 데모판에서도 고형원 전도사 찬양이 진짜 민중찬양 이상으로 많이 불리곤 한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의 노래운동에서 쏟아져 나온 다수의 찬양들은 신정통주의 성향의 진보적 교회들에서 여전히 널리 불리고 있다. 이러한 교회의 예배 시간에 회중 찬양으로 불리거나 성가대의 특송으로 불리는 것은 물론이고, 이쪽 계열에서 특정한 시국 사건에 대해 예배나 기도회의 이름으로 데모를 열 때면 이따금 불리곤 한다. 류형선의 작품인 '희년을 향한 우리의 행진'이 의외로 데모판에서 자주 불리며, 통일 관련 행사에서는 주현신의 '한반도의 십자가를 어깨에 지고'가 자주 불리곤 한다.

4 주요 작곡가

  • 백창우: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햇볕 한 줌 될 수 있다면'이라는 곡으로 유명한 바로 그 민중가요 작사, 작곡가 맞다. 노래패 노래마을 멤버였고, 어린이 노래모임 굴렁쇠의 지도 선생님인 그 백창우 말하는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써 다수의 민중찬송을 뽑아내었다. (물론 이 가운데는 민중찬송이라 할 만큼 뚜렷한 역사의식이 드러나지 않고, 가사 액면가만 놓고 보면 그냥 2000년대 이후 나온 CCM과 별반 차이가 없는 일반 CCM 곡도 존재한다.)
  • 주현신: 전교조 노래인 참교육의 함성으로를 작곡한 전교조 운동가. 예장통합 교단의 안양 대영교회 주경덕 목사의 아들로, 사범학교 시절인 1986년에 예장통합 소속의 장청노래선교단(여기서 '장'은 장로교의 줄임말)에서 활동하면서 평화와 통일에 대한 민중찬송을 몇 곡 뽑아내었다. 이후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구로중학교에서 윤리과 교사로 재직하면서 전교조를 하다가, 참교육의 함성으로를 작사한 서대문중학교 국어과 교사 차봉숙과 함께 해직되었다. 전교조 문화국원으로 활동하면서 또 다수의 민중찬송들을 뽑아내었고, 이후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진학하여 M. Div 과정을 이수하고 예장통합 소속 목사가 되었다. 현재는 과천교회 담임목사로 목회를 하고 있으며, 2013년 WCC 총회 때는 예배음악 위원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 류형선: 위 두 사람과는 달리 전문적으로 작곡을 전공한 음악 전문가이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에 걸쳐 다수의 민중찬송들을 뽑아내며 노래운동에 헌신하였고, 이후 국악 쪽으로 방향을 틀어 현재 국립국악원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 홍순관: 작곡가 겸 가수. 위 세 사람의 작품집인 1992년도 앨범 '평화의 아침을 여는 이'에서 백창우의 작품인 '길'을 맡아 불렀으며, 이후 민중찬송을 전문적으로 부르고 또 작곡도 하면서 민중가요 쪽으로 영역을 넓혀 나갔다. 민중찬송 운동을 현재까지 계승해 나가고 있는 몇 안 되는 아티스트. 기독교 계열에서 예배/기도회의 이름으로 데모를 할 때면 특별찬양 순서를 맡아 자주 출연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