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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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14일 싱글위로 콘서트에서.

1965년 10월 24일 음력 생. 대표적인 386 가수이다. 경기도 화성시에서 출생. 정확히는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로 이 곳은 미군의 공군훈련사격장이 있던 곳이며, 이 고향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만든 노래가 7집의 "매향리의 봄". 연세대학교 사회사업학과[1]를 졸업했다. 주요 대표곡으로는 "광야에서" "철의 노동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내가 만일" "사랑하게 되면" 등등이 있다.

김민기양희은과 더불어 유명한 민중가수. 다만 김민기·양희은은 본의 아니게 1970년대 저항의 아이콘이 되었을 뿐,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안치환과는 시대적 차이도 있고. 전두환 정부 시절부터의 정치계라든가 사회의 안 좋은 면모를 비판하는 음악을 많이 만들어왔다. 덕분에 데모판에 나가면 안치환의 노래를 많이 들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활동하는 일부 민중가수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평을 듣지 못하고 있다. 과거 노래운동을 활발하게 할 당시 안치환의 친정으로 여겨졌던 노래모임 새벽이나 노찾사NL보다는 PD 색이 강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전향하면서 민중가요진영의 신경을 거슬릴 법한 발언들과 함께 인터넷 벤처기업 광고를 찍고 심지어(?) 노무현과 관련된 행사에서도 거리낌 없이 공연하는 것을 보며 실망한 선후배, 동료가 한둘이 아니다. PD 계열은 친노동적인 색이 강한데, 노무현 정권 당시 김주익씨와 배달호씨 등 수많은 노동열사가 숨졌다는 것을 기억하는 이들은 실망할 수 밖에 없다. 루머에는 안치환 집 대문 앞에서 은행나무 침대의 황장군처럼 무릎 꿇고 눈물로 호소하던 후배를 아침에 발견하고 아연실색하여 똥 씹은 표정으로 뒷문으로 도망쳤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이니... 이즈음에 가서는 어떤 집회나 문화제에 안치환이 섭외되었다는 소문이 돌면 "안치환이나 아무개 같은 상업가수 섭외했던데?" 같은 식의 말이 돈다. 우리랑 동급으로 취급하기 싫다는 거지. 그러나 민중가요 최대명사.[2]

좋게 말하면 주류-비주류 통괄 가수, 나쁘게 말하면 박쥐. 대중가요계에 민중가요라는 장르를 수혈한 선구자로 평가할 수 있으나 대중가수로 전향할 때 기존 민중가요 진영을 상대로 날을 세운 전력이 있다는 점에서 뒷담화거리. 97년 Nostelgia확장팩 Beyond Nostelgia(2006)[3]을 낼 당시 민중가요의 유산을 부정하는 발언들과 '노동자의 정서를 믿지 않는다' 발언 한창 민중가요진영과 날을 세우고 있을 때였는데 "민중가요를 이용해 돈벌어 먹으려 한다"는 비난이 격렬했던 적도 있다. 나중에 신동아 인터뷰(『신동아』 2003년 6월호, 임진모의 안치환 인터뷰 기사 「번민의 80년대가 남긴 '시대의 가수' 안치환」 인터뷰 1 인터뷰 2)에서 '음악적으로'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다는 해명을 했다. 그와는 별개로 노스텔지아 & 비욘드 노스텔지아 앨범은기존에 묻혀있었거나 저작권자를 알 수 없이 구전으로 전해지던 노래를 되살렸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는 음반이다. 편곡이 다소 획일적이라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80년대에 노래운동이 태동하던 시기 많은 노래패가 활용했던 화려한 기타 연주를 들을 수 있다.

평소 사람를 엄청 좋아한다고 한다. 평소에 시집도 많이 읽는 편이고, 시에서 음악적 영감을 많이 얻을 정도. 그래서인지 그의 곡 대부분이 시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많으며, 몇몇 대표곡은 아예 시에 멜로디를 붙여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앨범 하나를 통째로 시인 하나의 시에 멜로디를 붙여서 발표하거나, 시인에게 바치는 앨범 등 여러 가지로 시와 관련이 깊은 가수다. 정호승, 김남주, 김지하, 안도현 등등... 특히 김남주의 시를 좋아한다. 대표적으로 김남주 헌정음반 6.5집 remember, 정호승 헌정음반 9.5집 정호승을 노래하다가 있다.

만약 학교 내에서 좀 신세대의 국어 선생님이 계신다면, 가끔씩 언급이 되기도 하는 가수. 국어책에서 반드시 나오는 시인 "자유", "타는 목마름으로", "연탄한장", "내 꿈의 방향을 묻는다"와 같은 곡들이 좋다.

사람을 만나거나 관계를 맺는 것도 중요시 여기며,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도 굉장히 아름답다고 여기는 성격인지라 곡에서도 보면 정치색 강한 곡을 제외하면 다들 "인간은 아름다워 랄랄라~"풍의 서정적인 포크풍의 곡이 굉장히 많다.

한국인 노래자랑에서 빠지지 않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4]를 비롯하여 "소금인형", "내가 만일", "귀뚜라미", "우리가 어느 별에서", "연탄한장"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명곡들이 수두룩하다.

안치환의 노래의 주요 정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아름다운 사람 -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우리"
  • 사랑 - "우리가 어느 별에서" "내가 만일"
  • 노동과 투쟁, 민중가요 - "철의 노동자" "타는 목마름으로"
  • 통일 - "철망 앞에서" "동행"
  • 반미 성향 - "피묻은 운동화"[5] "America" "오늘도 미국 대사관 앞엔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EBS 스페이스 공감에 출연해 (9집을 발표한 직후였다) "술 먹고 집에 들어갔다가 딸의 방문에 걸린 god 브로마이드를 보고 열받아서 '나도 가수인데...' 하면서 찢어서 버렸다가 다음 날 딸에게 혼난 기억이 있다"라는 말을 했다(...) 역시 딸느님은 무섭다. ㄷㄷㄷ 그러니까 왜 찢어

여담으로 야구선수 이종범도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했는데 애아빠의 고충 어릴 때만 해도 자기 사진이 붙어 있던 아들 방에 어느 날 가보니 이치로 사진이 붙어 있었다고. 전성기를 보낸 뒤 일본에서 귀국, 야구선수로서 재기하는데 힘이 되었다고 한다.

고양시의 슬로건이 "사람이 꽃 보다 아름다워" 곡의 제목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한 "꽃 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를 슬로건으로 쓰고 있다. 이 인연인지 고양시 홍보 로고송인 "캐세라세라 고양"을 안치환이 만들기도 하였다.
  1. 이 당시 남경필 경기지사와 동기로 매우 친한 사이였다고. 2015년 지금도 남경필 지사와 안치환 가수는 사적인 곳에서 만나는 등 친분이 있다고 한다.
  2. 민중가요는 이런 식으로 대중에게서 유리된 감이 있다. 친노와 엮인다거나 하는 식으로 선명성 논란을 일으켜서 이 사람 저 사람 다 빼고나면 대중적인 곡이 하나도 없어진다. 선명성과 성향 논란으로 비판받은 사람들이 PD에서는 안치환, NL에서는 윤민석인데 이 두 사람 노래들이나, 본의 아니게 민중가요 취급 받은 대중가수들 노래를 다 빼버리면 흔히 알려진 민중가요의 상당수가 증발한다. 민중들은 모르는 민중가요
  3. 근데 진짜로 확장팩 개념이 강하다. 2006년 녹음한 투쟁적인 노래를 첫번째 CD에 배치하고 97년 Nostelgia 음반을 두번째 CD로 추가해 줬다.
  4. '사람'이다. '사랑'이 아님에 주의하자. 꽃다지의 노래로 먼저 발표되었다. 다시 말해 민중가요였다가 대중가요가 된 케이스. 주로 386 아저씨들이 즐겨부른다
  5. 효순이 미선이 사건을 주제로 만든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