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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정계 입문까지
1967년 인천에서 태어났으며, 나고 자란 곳 모두 용현동이다. 그리고 학교도 용현동에 있는 동인천고등학교와 인하대학교를 나왔다. 정계 입문 전까지는 잘 나가던 회계사였다. 세동회계법인,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했고, 금융감독원에서도 일을 했었으며, 한미회계법인의 경인지역 본부장을 지내는 등, 인천 지역 경제계에서는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러던 그가 정계에 입문하게 된 것은 본인의 말을 따르지면, 2009년 노무현의 자살이 계기였다고 한다. 그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막연히 가지고 있던 정치에 대한 생각을 결심으로 바꿨다고 한다. 그 결과 민주당 계열에 투신하여 정계에 입문했다.
3 정치 활동
그러나 정치 활동의 시작은 좌절이 먼저였다.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고 자란 용현동이 포함된 남구 을에서 출마를 선언했지만, 여성 우선 공천 원칙이 적용되면서 연수구에서 지역구를 옮긴 안귀옥 후보에게 공천장을 내주고 말았다. 반발을 하기는 했지만 일단 당의 방침을 따르면서 19대 총선에서는 인천시당 대변인을 맡아 활동했다. 그리고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당내 공부모임인 사단법인 돌바내 (돌아보고 바라보고 내다보고)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2014년 경선 끝에 사고지역구였던 연수구 지역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사실 이 것도 갈 곳이 없어서 당에서 이 지역에서 활동해 보라고 권유한 것이라고 한다. 성실한 활동 끝에 당 조직을 재건하면서 당의 신망을 사게 되었는데, 이게 20대 총선 공천에서 좋게 작용했다.
연수구는 분구 이래로 민주당 계열에서 당선된 적이 없는 그야말로 험지였는데, 인구가 송도신도시 개발로 늘어 선거구가 두 개로 증가하였다. 꾸준히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지역 조직을 재건한 공을 인정받아 20대 총선에서 가장 먼저 단수 공천으로 출마가 확정되면서 일찌감치 선거 준비에 착수할 수 있었다. 마침 이 지역의 터줏대감 격이던 황우여 의원이 새누리당 공천으로 인해 서구로 떠나면서 무주공산이 된 상황. 국민의당과 표가 갈리기는 했지만, 그간 지역구를 다진 결과 214표 차이로 신승하면서 민주당 계열의 사상 첫 연수구 승리라는 기록의 주인공이 되며 금배지를 차지했다.
4 트리비아
- 본인은 지역 언론과 인터뷰에서 정계 입문의 계기를 노무현의 자살로 밝히고 있으나, 계파적으로는 손학규 계열, 또는 송영길 계열로 분류되는 등 모호한 편이다. 손학규 계열로 분류되는 이유는 선거 도중 손학규가 지지 메시지를 보내는 등 개입했다는 점으로 인해, 송영길 계열로 분류되는 이유는 정계 입문 과정에서 많이 도움을 주고 권유했던 인물이 송영길이기 때문인 듯 하다.
5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 선거 종류 | 소속 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16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인천 연수구 갑) | 더불어민주당 | 30,047(40.6%) | 당선 (1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