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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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喆熙 1933 ~ 2016

태권도택견 양쪽 모두에 중요한 역할을 한 노사老師. 1946년에 문을 연 윤병인 선생의 YMCA 권법부에서 권법을 배웠으며[1] 열심히 익혀 6.25전날까지 무술시범을 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포병장교로 복무했으며 그의 무술실력이 인상깊게 작용해 후일 육사 태권도 교관으로 초빙되기도 했다. 태수도협회[2]의 전무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당시에 전두환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 이후 박 사범은 경무대(지금의 청와대) 무도 사범을 역임하고, 강덕원 초대관장을 지냈다. 6.25 당시 윤병인 선생이 북한으로 끌려가는 바람에 다른 선배들에게도 무술을 배웠는데 당시에 배웠던 권법들은 팔기권, 토조산, 단권, 장권, 태조권, 태극권[3] 등을 배웠고 ‘삼보대타(三步對打)’, ‘칠본대타(七本對打)’ 등도 많이 수련했다. 또 1971년 미국으로 건너가 태권도를 알렸다. 30여 년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태권도를 알리고 보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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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현 회장과 대타 시범 中

택견 역사를 언급할 때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데 송덕기(宋德基 1893~1987)의 첫번째 제자였기 때문이다. 박철희 사범은은 송덕기를 1958년 또는 1959년 경에 이승만 대통령의 생일을 기념해 열리는‘전국무술개인선수권대회(全國武術個人選手權大會)’에 시연자로 오게 되면서 만나게 되었고[4] 송덕기를 경무대에 자주 초청[5]하여 인연이 이어지게 되었다. 박철희 사범은 전통무술에도 관심이 많아서 어디에 누가 무슨 무술을 한다 하면 득달같이 달려가곤 했으며 이리[6]역 앞에 택견하는 사람의 이야기도 들었고 그 사람이 장심 단련을 하기 위해 나무에다 새끼를 간아놓고 그것을 밟고 지나가는 수련을 많이 했다는 증언도 했다. 또 서울 답십리에도 정노인이라는 80대 노인이 택견을 하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송덕기를 만나기 전에도 택견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송덕기는 박철희 사범을 매우 아꼈고 잘 가르쳤으며 박철희 사범도 택견을 좋아해서 사단법인 택견무도회를 결성하려 했으나 당시 기득권이 세던 수박도 협회[7]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미국행을 택한다.

이 때 박철희 사범이 송덕기 에게 들었던 증언들로는

  • 지금의 을지로에 위차한 국립의료원이 위치한 곳은 구한말 훈련원이 있던 자리인데 모래밭에서 택견 경기를 했다.
  • 택견 경기는 '결련' 이라고 칭했다.
  • 손이 땅에 닿으면 진다.
  •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택견 기술은 발바닥으로 차는 것이다.
  • 손은 주먹을 사용해 치는게 아니라 손바닥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 아랫대와 윗대는 누상동과 누하동을 일컫는 말로 누상동이 윗대, 누하동이 아랫대이다.

미국행에서 돌아와 도기현 회장과 만남을 가졌고 도기현 회장의 택견 몸동작을 보고 자신이 보았던 송덕기의 택견 모습과 같다는 말을 했다. 택견 협회가 분열되어 있는 모습을 안타까워 하며 이에 대해서도 노력하고 있어서 대외적으로 택견이 큰 분란은 없이 가는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최초의 제자가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니 그 아래야 말 들어야 하는게 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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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견 대표자들과.

무카스와의 영상 인터뷰에서도 송덕기와 가장 닮은 모습의 택견이 어느쪽이냐는 질문에 '도기현 씨' 라고 하기도 했으니 역시 남은 자료로나 증언으로나 결련택견협회의 기본 택견 동작이 송덕기와 가장 닮기는 닮은 모양이다. 다만 그 발언을 한 장소가 결련택견협회 사무실이었기 때문에 립서비스가 아닌가 하는 약간의 논란이 있다. 박철희 사범이 수련한 팔기권, 토조산 등의 대타 방식은 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배우기도 했으며 소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1956년에는 파사권법(破邪拳法)이라는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2016년 4월 2일 별세했다. #
  1. YMCA권법부는 6.25전쟁 이후 김순배, 이남석이 주축이 되어 창무관으로 명칭을 변경하게 된다.
  2. 태권도협회의 옛 이름중 하나, 초기 태권도 시절엔 태수도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3. 현재의 태극권과는 관련이 없다.
  4. 당시 송덕기는 김성한씨와 짝을 이뤄 시범을 보였고 김성한 씨는 그때 받은 돈으로 술을 마시다가 죽었다고 한다.
  5. 당시 경무대의 위치를 생각해 보면 박철희 사범이 가진 무술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다.
  6. 지금의 전북 익산
  7. 현재의 수박도 협회와는 관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