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견

택견의 마지막 전승자 송덕기(왼쪽)와 김병수 사범(오른쪽)조선 후기에 택견 하는 아이들을 프랑스 선교사가 찍은 사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150px
이름한글택견
영어Taekkyeon
프랑스어Taekkyeon
국가·위치대한민국
등재 유형무형유산
등재 연도2011년
백 가지의 신통한 비각술

가볍게 상투와 비녀를 스쳐 지난다
꽃 때문에 다투는 것도 풍류이니
단숨에 초선을 뺏고 의기가 양양하구나
(百技神通飛脚術/輕輕掠過琦簪高/投花自是風流性/一奪貂蟬意氣豪)

-최영년(崔永年)[1], 해동죽지(海東竹枝, 1925.4.25) 유희(遊戱)편 탁견희(托肩戱)[2]

1 개요

택견은 한반도의 서울 강북 지역에서 전수되어져온 전통 무예이자 여럿이 편을 나눠 즐기는 단체 민속 놀이이다. 유파나 강습 기관의 형태가 아닌 민간의 사제 관계 형태로 전승되어 왔으며 구한말 시대에는 특히 종로와 왕십리 일대에서 이루어졌다. 택견은 198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로 무예로서는 최초로 한국의 무형문화재등재되었다. 2011년 11월 28일 제6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마찬가지로 무예로서는 최초로 인류무형문화유산등재되었다.#2

2 소개

택견은 정식 경기 기준으로 다리를 사용한 하체 타격과 복부 밀어차기, 안면 타격과 상대방을 다운시키는 유술과 씨름 기술이 바탕이 되는 무예이며 부상의 위험으로 경기에서 사용되지 않는 옛법에선 손을 사용한 타격, 꺾기, 찌르기, 옷을 잡은채 하는 전신타격 등의 기술이 있다.

일제시대에는 일본 군부의 조선인 집회를 탄압하는 정책과 외국의 신문물(유도, 검도, 오키나와테, 중국 무술, 그리고 복싱 같은 서양무술 등)의 유입으로 의해 수련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며 멸절되었다가 일제 시대 종결 후 일제 치하 35년동안 꾸준히 홀로 수련해온 마지막 택견꾼 송덕기 옹에 의해 기적적으로 전승되었다. 이에 송덕기 옹의 밑에서 수련한 제자들이 택견 조직을 형성하여 협회별로 나뉜 택견의 모습이 현재의 택견이다.[3] 태권도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두 무예 중 하나로, 근대창작무술인 태권도와는 다르게 전통 무예라는 차이점이 있다. 평양지역의 날파람이나 함경도 지역의 몽구리 등 한국의 전통 무예들중 문서상의 언급으로만 남은 격투기들과는 다르게 운동원리와 거의 모든 기술이 온전하게 전승된 유일한 문화재이다.

2.1 어원과 역사

  • 어원

태껸이 처음 기록에 나오는 이름은 탁견(托肩)이다.[4] 이 탁견이 곧 어원이고 어원에 대한 인식이 점점 약화되면서 태껸으로 굳어져 표준어 규정 제5항에 근거하여 태껸을 표준어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물론 탁견이 이두식 표현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탁견을 반드시 어원이라 볼 수는 없다. 기존 남북한의 대형 사전들도 모두 태껸으로 표기했었다. 그런데 2011년 8월 31일,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정책과에서 주관하는 국어심의회에서 택견도 표준어로 인정되었다.

도올 김용옥은 자신의 저서 『태권도철학의 구성원리』에서 이는 태껸이라는 순우리말의 표기(특히 '껸')를 왠지 어색해하여 굳이 한자식으로 부르고 표기한 데서 기인한 오류이자 변형으로 보고 있다. 택견을 하는 거의 모든 단체에서 '택견'을 정식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본 항목에서는 어원이나 문화재로서의 태껸을 언급할 때 외에는 택견으로 통일한다. 대한택견연맹이용복 회장은 자신의 저서에서 탁견이 서울 사투리의 영향을 받아 택견으로 변형되어 발음되는 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 이르기를 '덕견이' 라는 무술이라고 했는데 이 덕견이가 구한말의 택견을 논한 것인지는 알수 없다.[5]

  • 역사

조선 정조시대(1776-1800)에 간행된 재물보(才物譜)에 "수박(手搏)은 변(卞)이라고 하고 각력(角力, 힘겨루기, 씨름)은 무(武)라고 하는데 지금에는 이것을 탁견이라 한다."는 말이 등장하고, 19세기 민속화에 씨름 옆에서 태견 하는 모습이 그려지거나, 20세기 초 탁견희라는 한시 등등에서 여러모로 언급이 되고 있다. 고로 택견의 존재가 확인되는 가장 이른 시기는 18세기 말이다.

종종 역사책에 등장하는 전통무술 '수박'은 그 용례가 상당히 오래되었으나 격투기나 무술을 가리키는 보통명사에 가깝다고 생각해야 한다. 사료의 부족으로 조선시대의 수박과 택견에 얼마나 공통점이 있는가, 혹은 차이점이 있는가에 대해선 아직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없다. 택견을 나타내는 탁견희 이전에 가장 비슷한 기록상의 예시로는 수박을 유희용으로 사용했다는 수박희가 존재한다. 물론 직접적인 사료가 없기에 직접적인 관계성을 단정할 수는 없다. 또한 당시 평안도의 날파람, 경상도의 까기, 서울 답십리의 까기 등 꽤 비슷하게 발로 까고 피하는 무술들이 전국 각지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종목들이 전부 같은 것일 가능성은 낮지만 사료가 부족해서 엄밀하게 가릴 수는 없다.

현대의 우리가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는 것은 최후의 택견꾼인 송덕기로부터 기인한, 구한말에서 오늘날로 이어지는 근대적인 택견 뿐이다. 송덕기의 언급과 기술의 형태로 보면 서울의 민속무술 겸 한량들의 놀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일부 단체에서 옛날 택견이 "전쟁시 살상능력을 갖추게 하기위해 돌팔매질을 장려했듯, 신체 격투기술을 갖추게 하기위해 나라에서 장려했다…" 운운 하는 이야기는 조선시대 탁견, 수박, 송덕기를 통해 전수된 현대 택견의 상호관계가 학술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이상은 장담할 수 없다.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일제에 의해 택견판이 금지당한 경력이 있는데, 택견을 조선 침략의 걸림돌로 보고 금지시켰다든지 한민족의 전통무술을 말살시키려 했다는 거창한 이유보단 단지 (일제의 허락을 받지 않은) 집회를 막으려는 이유였을 가능성이 크다. 딱히 무술이 아니라도 일제 보기에 못마땅한, 독립 시위로 번질 가능성이 있는 집회라면 전부 훼방을 놨으니까. 어쨌든 택견은 기적적으로 맥이 끊기질 않았고, 마지막 택견꾼 현암 송덕기에 이르러 현대인에게도 전수되게 되었다.

일제에 의한 택견 말살은 허구라는 설도 있다. 최근 허모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일제 시대에도 택견은 존재하기는 했던 듯 하다. 이 조사에 따르면 권충일이라는 새로운 택견꾼의 존재가 드러났는데, 근대 시절에 가라테와 여러 무술의 유입으로 쇠퇴하기 이전에는 다른 수련자도 많았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사실은 송덕기처럼 90대까지 건강해서 택견과 국궁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를 남겨주셨던 분이 굉장히 특별한 경우이다.)

이후, 인간문화재 선정 과정에서 택견의 방향성이 2가지로 갈라진다. 문화재관리청에서 송덕기의 택견이 기술이 단조롭고 품새가 없어서 무형문화재로 등록하기 힘들다는 의견을 표했는데, 택견의 전파에 힘을 쏟았던 신한승은 활개짓과 후려차기 같은 몇가지 기술을 넣고 본때뵈기, 동과 째라는 수련체계를 만들어 무형문화재와 인간문화재 선정에 성공한다. 그러나 신한승의 택견 스승인 송덕기가 인간문화재가 아닌 상태에서, 그 제자만이 인간문화재가 되는 것이 해당 법령에 맞지 많아, 송덕기의 택견을 웃대택견 / 신한승의 택견을 아랫대 택견이라고 구분하여 두 사람을 모두 인간문화재로 등록해 문제를 해결했다.

이렇게 택견을 두 가지로 구분했던 것은 나중에 택견을 분열하게 만든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웃대 택견을 존중하는 단체에서는 주로 전통적인 순수성을 강조하고, 아랫대 택견에서 분화한 단체들은 현대적인 계승과 진화에 대해서 논의하는 특징이 있다. 기본적으로는 송덕기 / 신한승의 방식에 대하여 정통성 논쟁을 하는 면모도 강하다. 하지만 양쪽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인 연구를 하는 단체도 존재하는데, 이런 유사단체들을 문제 삼는 경우도 있다. 그놈의 정통성 문제

2.2 무예와 놀이, 두가지 양면성

택견은 조선시대, 구한말 시대의 기록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어린아이 부터 어른들 그리고 군병사까지 두루 익힌 무술이자 놀이의 두가지 성질을 가진 무예이다. 이는 한반도 지역의 무예들을 통틀어봤을때 주목할만한 특징이다. 놀이나 무예로 보기 보다는 선비의 소양으로 여겨진 활쏘기와 군부대에서 쓰인 궁술을 통틀어 일컫는 국궁, 그리고 무도나 무술로 수련되기 보다는 개개인과 마을간의 승패를 나누는 놀이로 사용된 씨름과는 다르게 택견은 두가지 성질을 함께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 체제가 들어온 현대 택견의 흐름속에서도 전국의 수많은 택견꾼들은 스포츠에 한정되지 않고 옛법에 대한 연구나 수련 방식의 고도화를 통해 무예로서의 택견과 스포츠로서의 택견 두가지 모습을 함께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2.3 복장

본래 택견은 평민들이나 근접 박투에 관심을 가진 군의 무인들이 도장이나 유파의 형식 없이 개개인끼리 전승되어져 온 것으로 특별히 통일된 복식이 없다. 즉 수련자 모두가 개인의 사복(한복)을 입고 수련한 것이다. 이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진 및 영상 자료에도 확인할 수 있는데, 송덕기 옹의 자료들을 보면 단지 깨끗한 고의적삼과 대님, 미투리를 신은채 별도의 보호장구나 추가 장비 없이 수련한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현대의 택견 경기에서 보이는 선수들의 복식과 전수관의 관원들이 입는 도복은 근현대에 조직차원에서 정립된 것이다.[6] 즉, 협회별로 복식도 차이가 있다. 공통적으로는 조상들로부터 전해져오는 전통 무예의 정체성을 표하는 한복의 고의적삼을 입으며, 발에는 대님을 매고 정강이에는 아랫발질에 의한 부상을 막기 위해 행전을 한다.[7] 실내에서는 버선을, 실외에서는 미투리를 신는다. 이런 신발을 신음으로서 지면과 몸 사이에 마찰력을 줄여 균형잡기를 힘들게 하고, 기술을 사용할 시 지면과의 마찰력에 의한 추가 에너지를 싣는 것을 어렵게 한다. 이는 균형 감각과 유연성을 기르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차이점으로는 대한택견협회는 최근 고의적삼 대신 철릭을 입게하도록 복장 규정이 바뀌었다.[8] 또한 협회별로 허리띠 등을 통하여 복장으로 택견꾼들의 수준을 나타내는 방식도 다르다.

2.4 경기 방식

택견은 '경기' 기준으로 볼 때 다리를 사용한 하체 타격과 노기 레슬링이 바탕인 만큼 소위 '발차기 위주 무술'이면서도 태권도에 비해 평균적인 대치, 공방 거리가 가깝다. 하이킥 즉 상단에 대한 발질도 엄연히 있지만 현대 경기에서 한 대만 맞추면 되기에 평균적으로 태질싸움 하체타격싸움이 오가는 거리만큼 가깝다는 의미이다

권투로 치면 WTF 태권도는 아웃파이트, 택견은 인파이트에 가깝다. 택견의 품밟기 기본 형태는 발바닥을 붙이고서 체중을 낮추고 높이는 과정의 반복인데 이것은 인파이트에서 주로 나타나는 모습에 근접하다.[9] 아웃파이트의 통통 튀는 스텝은 WTF 태권도 경기의 모습과 근접하다.

물론 택견꾼이라고 태권도처럼 멀리서 뛰어들어와 때리던가 까치발로 뛰며 제빠르게 거리를 조절하며 싸우지 말란 법은 없지만 송덕기가남긴 택견의 기본이라는 품밟기의 형태상 택견의 경향성이 그러할 것으로 추측할 뿐이니 더 아는 사람은 적극적인 수정을 바람.

옛법 영역을 포함한 택견의 싸우는 모습도 따라서 제법 인파이팅에 가깝지 않을까 추측해 볼 뿐이다. 실제로 박종관의 전통무술 택견 책에서 보면 손질을 붙잡고 치는 식으로 예시를 드는 경우가 많다.

대한택견협회의 경우는 대련을 할땐 상대를 밀어내는 '는질러차기' 기법을 사용한다. 이는 택견의 상생(相生) 철학에 의한 것으로 상대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대련을 별도의 방호구 없이 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택견의 '는질러차기'는 타격 지점까지 발을 가져다댄 후 부드럽게 밀어내어 상대방과 자신의 안전을 함께 도모한다. 하지만 이는 거의 명목상일 뿐이고 실제 '는질러차기' 발차기에 맞아 보면 아프지 않을 리가 없다. 끊어서 차고 바로 돌아오는 발차기에 비해 끝까지 밀어내는 기법이기 때문에 명치나 배 부분을 맞아보면 그 부위가 쑥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고학년이 찬 축구공에 명치를 맞는 격. 그리고 단순히 싸움질을 할 때도 미는 행위는 의외로 효과적인 공격이다. 참고로 어느정도 수준을 넘어가면 밀고 때리고 할 것 없이 아프다.

구체적인 기술의 설명은 택견/기술 및 구성, 공식 경기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기술들은 옛법 문서 참조.

2.5 금지규정

택견의 각종 금지조항은 택견 문화의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한 장치이다. 예를 들면 '걸이'는 한반도의 전통적인 그래플링 개념인데, 택견에서는 다른 무술에서 반칙으로 보일만한 '걸이' 기술도 살상력만 높지 않다면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다른 격투기에는 없는 우리 전통의 씨름 기술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택견에서는 아무리 위험한 궤도의 발차기라도 치명상을 주지만 않는다면 허용한다. 반대로, 무릎으로 얼굴을 찍는 기술은 살상력이 높으므로 반칙이다. 옷을 잡는 것을 금지하는 이유는 옛날에는 옷감이 귀해서 옷이 찢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밀치기는 결련택견협회의 경기의 경우 자주 사용된다. 단 지나치게 자주 사용할 경우 경고를 주기도 하는데, 이는 경기를 지루하게 만들기 때문이지 화려함과는 관계가 없다. 택견 단체들의 금지규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즉, 택견들의 다양한 규칙은 한반도의 전통적인 문화의 흐름을 보존하고, 격렬한 몸 동작을 보여주는 재미를 부각시키기 위한 연구의 산물이다. 협회들은 택견 특유의 놀이문화를 보존하기 위해서, 경기를 너무 획일적으로 만드는 기술들을 금지하는 조항들을 적절하게 섞어놓는다.

현대에는 택견이 발전하면서, 현대격투기를 택견의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시합에서 이용하는 경우도 제법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택견을 택견답게 만드는 '규정'에서는 여전히 보수적인데, 애초에 택견이 까딱하면 "사라질 뻔 했던" 문화였음을 감안하면, 택견 단체들의 이러한 노력은 수긍할만한 것이다.

다른 무술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규정 때문에 몇몇 격투기 수련자가 바로 뛰어들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보기도 한다. 예를 들어 킥복싱이나 카포에라 수련자들이 택견배틀에 참가했다가 이해하기 어려운 규칙 때문에 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태권도, 가라데, 유도를 하던 사람들은 택견 시합에서도 그럭저럭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택견의 금지조항에는 악의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택견의 개성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에 가깝기 때문이다.

또한 택견에는 문화재를 보존해야한다는 원칙이 강하게 적용된다는 점을 알아두어야한다. 택견 단체가 나서서 현대격투기와의 호환성을 늘려야한다는 주장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다. 다른 고류무술들도 현대의 규칙으로 싸우는 경우는 없다. 현대적인 규칙을 무작정 받아들이면 해당 무술이 100년 이상 쌓아온 전통의 기반을 훼손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며, 섣불리 현대 규칙에 편승한다는 것은 문화재로서의 순수성에도 금이 갈 수 있기 때문이다.[10]

3 기술 목록과 경기규칙

4 무형문화재 등재와 정통성 논쟁

택견은 현재 국가가 지정한 중요 무형문화재 76호이며, 기능보유자는 운암 정경화다. 그리고 2010년, 유네스코에서는 택견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가장 큰 문제는 문화재로 지정된 택견에 대한 견해 차이이다. 정경화는 국가가 지정했으니 아무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택견을 상업화하고 변질시키는 유사단체들이 문제라고 강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대한택견연맹 측은 무형문화재는 사멸할 위기의 유산을 국가가 지정하는 것인데 이미 택견은 사멸할 위기는 지났으며, 더군다나 신한승이 정리한 택견은 송덕기의 택견과 판이하게 다르다는 이유로 무형문화재를 다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송덕기와 신한승의 택견을 보면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보더라도 전혀 다르게 보일 정도로 모양이 다르다. 당연한 것이 신한승은 아래대 택견에 대해서 무형문화재를 인정 받았다. 송덕기는 윗대 택견에 대해서 무형문화재를 인정 받은 것이고. 송덕기 이래로 윗대 택견의 행정적 전수가 이루어지지 않아 공식적으로 윗대 택견의 명맥은 끊어졌다. 따라서 신한승의 택견은 절대 택견 전체를 대표할 수 없다

분명히 송덕기는 신한승이 본인에게 배우지도 않으면서 여기저기 자료수집한다고 돌아다니면서 다른 전통무술이랑 연관짓는 것을 좋게 보지 않았다. 부산 구덕 체육관에서 1회 택견대회가 끝난 후 신한승이 택견에는 활개짓이 중요하다면서 이야기하자 송덕기는 그야말로 역정을 내며 '택견은 품밟기만 잘하면 돼!! 왜 없는 걸 자꾸 만들어서 택견을 이상하게 만들어!' 하며 크게 화를 낸 적이 있어서 회식자리 분위기가 급냉한 적도 있을 정도다.

다만 신한승의 연구에도 의미가 없진 않으며, 다른 택견단체들도 송덕기의 시대랑은 차이가 크다. 정작 신한승의 직계단체인 한국택견을 갈아엎어야한다고 강변하는 대한택견도 송덕기의 기술 명칭을 전부 뒤엎고, 독자적인 품새로 갈아엎은 단체이다. 애초에 한국태견협회와 결련택견협회의 품밟기는 같은데 대한택견 쪽만 역품을 고수하고 있는걸 보면 정말 독자적으로 만든 것 같아 보인다. 심지어 환빠 기질도 있는 분들이 남을 타박한다고. 신한승도 택견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여러가지 연구를 했으므로, 송덕기에 대한 정통성이 아니라, 상업성에 대한 논쟁을 가속화 시키는 일부 단체만을 문제시 해야한다는 주장도 크게 틀린 것은 아니다. 애초에 이런 문화들은 지방, 사람, 단체에 따라서 달라지기 마련이고, 택견 자체가 놀이로서의 즐거움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5 관련 항목

5.1 단체

5.2 인물

5.3 자료

5.4 서적

5.5 기타

6 대중문화에서의 모습

  • 소설
    • 천년검로 2권에서 태권문(太拳門)의 전수자가 잠시 나온다. 근데 이 태권문의 전수자가 공격을 하며 쓰는 기합은 익크! 엑크!
    • 퇴마록 - 장준호 유단자로 몇 장면 안 나오긴하지만 택견으로 싸우는 장면이 나온다.
    • 피를 마시는 새 서거라, 섯다 하는 방식은 택견의 방식이지만 비각술만 나올 뿐 태질은 나오지 않는다.
  • 게임
    • 택견 드라군
    • 리그 오브 레전드 - 리 신 캐릭터 공격 모션을 택견에서 따왔다고 한다. 사실 소림축구나 여러 동양 맨손 무술(주로 중국계)을 섞어서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우렁찬 기합 소리만은 이쪽 기원이 맞아 보인다.(이 - 쿠!)
    • 왕중왕 - 태극선사
    • 파이터 타클라마하칸 사막편 - 권기찬 고전게임 야화의 제작사 FE가 만든 격투게임 주인공.
    • 젬파이터 - 비전서 중 태껸과 옛법 태껸이 있다. 일반 태껸은 대한택견식 품밟기를 사용하는 반면에 옛법 태껸은 결련택견협회 소속 장태식 선생의 옛법 시연을 그대로 구현했다.
  1. 1856~1935. 구한말과 일제시대의 문인이자 교육자로, 고향 땅 광주시에 시흥학교를 설립하고 제국신문을 주재 하는 등 민족계몽에 힘씀.
  2. 이 한시의 첫구인 '백기신통비각술'은 택견을 상징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3. 결련택견협회, 충주택견협회, 한국택견협회 셋.0 위대태껸까지 고려되기도 한다.
  4. 《재물보》, 이성지.
  5. 무엇보다 신채호 선생의 저서 가운데 무술 관련 저술은 신빙성이 낮기 때문에 그다지 믿을만한 사료가 못 된다.
  6. 단, 결련택견협회에서 주최하는 택견배틀의 경우 타 택견협회는 물론이고 타종목 선수들도 전부 참여할 수 있어 택견 수련자가 아닌 이들 중에선 그냥 민소매 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나오는 격투기 선수들도 볼 수 있다. 유의하여 볼 것.
  7. 덕분에 현대의 택견 수련자들은 헝그리정신으로 죽어라 맨몸으로 맞으며 배웠던조상들보다는 편하게 수련한다.
  8. 대택의 철릭은 전통 철릭을 택견 수련에 맞춘 개량형으로, 행전이 아예 바지에 붙어있고 신발도 대님이 붙어있어 따로 맬 필요가 없다.
  9. 스텝을 밟다가도 인파이트 거리에서 공방할 때는
  10. 멀리 볼 것이 없이, 현대의 쿵푸가 상업성이 짙어졌다고 유네스코가 2011년도 1차 심사에서 전통자산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현재는 추가바람.) 자주 언급되는 말이지만, 전통 문화를 해체하고 현대격투기를 만들어야 한다면, 그것은 차라리 WTFITF 같은 태권도 단체들이 담당해야하는 적합한 영역에 가깝다. 다만 WTF 태권도는 올림픽 종목 중 하나라 많은 단체와 이권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불가능에 가깝다.
  11. 택견에 감명받았음에도 쿵푸를 연마한 이유는 당시 국내에선 택견도장은 거의 찾아볼수없었기때문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