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덕공

龐德公
(? ~ ?)

후한삼국시대의 당시 유명한 재야은사.

양양 사람으로 방통, 방림의 숙부이자 제갈량의 사돈이며 방산민의 아버지.

송서를 인용한 사고전서에서는 이 사람이 유표와 대화하는 부분에서 방공이라 지칭하고 있어서 방덕공이 아니라 방덕이 이름일 수도 있다.

현산 남쪽에서 아내와 살면서 농사를 지었으며, 유표가 여러 번 청했지만 유표가 벼슬을 하지 않으면서 후세에 무엇을 자손에게 물려주지 않냐고 묻자 세상 사람들은 위험함을 물려주지만 자신은 편안함을 물려준다면서 거절했다.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어 사마휘를 수경, 제갈량을 와룡, 조카 방통을 봉추라고 했다.

방통(龐統)이 나이가 어렸을 때 그를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오직 숙부 방덕공만이 그를 중히 여겼고 방통이 18살(또는 약관의 나이인 20살) 때 사마휘를 만나게 했는데, 사마휘가 덕공은 진실로 사람을 볼 줄 안다면서 덕공의 조카 방통을 정말 훌륭한 덕(聖德)을 지닌 사람이라고 감탄했다.

제갈량이 집에 찾아올 때 침상에서 절을 하거나 사마휘가 형 대접을 하거나 방덕을 찾아갈 때 누가 손님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하며, 사마휘가 방덕을 방공이라 불렀기에 사람들은 방공을 이름으로 알았다고 한다. 후에는 아내를 데리고 녹문산으로 들어가 약을 캐면서 살다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며, 아들 방산민이 제갈량의 작은 누나와 결혼해 제갈량과는 사돈 사이로 사마휘보다 10살, 조카 방통보다는 15살 많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