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가르 귄나르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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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베이가르 파우들 귄나르손 (Veigar Páll Gunnarsson)
생년월일1980년 3월 21일
신체조건175cm
국적아이슬란드
출신지레이캬비크
포지션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프로입단1996년 스티아르난 FC
소속팀스티아르난 FC (아이슬란드) (1996~2000)
스트룀고세트 (노르웨이) (2001)
KR 레이캬비크 (아이슬란드) (2002~2003)
스타벡 (노르웨이) (2004~2008)
AS 낭시 (프랑스) (2009)
스타벡 (노르웨이) (2009~2011)
발레렝아 (노르웨이) (2011~2012)
스타벡 (노르웨이) (2012)
스티아르난 FC (아이슬란드) (2013~ )
국가대표34경기 6골

스칸디나비아 4국의 리그를 무대로 활약해 온 선수로 아이슬란드 국가대표 경력이 있다. 하지만 그가 명성을 얻게 되는 계기는 따로 있었으니...

1996 시즌 아이슬란드 스티아르난에서 데뷔했으나 이 해에는 대체선수로 1경기만을 뛰었다. 1998년부터 제대로 출장하기 시작하여 주전으로 발돋움, 1999년 17경기에서 7골을 넣으며 팀을 1부 리그로 승격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때부터 해외에서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여 2001년 노르웨이의 스트룀고세트에 입단했으나 주전 자리를 얻지는 못한 채 1시즌만을 치른 후 다시 아이슬란드로 돌아온다.

2002년 KR 레이캬비크로 이적한 귄나르손은 17경기에서 포풍 7득점을 쏟아내며 팀을 우승으로 이끈다. 이듬해에도 7골을 기록하며 아이슬란드 프리미어 리그 2연패에 성공, 커리어 전성기를 구가함과 동시에 자국팬들에게도 높은 인기를 얻게 된다. 여세를 몰아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볼튼 원더러스 트라이얼에 참가했으나 선발되지는 못했다. 안습.

EPL행은 실패했으나 노르웨이의 스타벡에서 그를 불러주었다. 그러나 많은 출전기회를 잡지는 못했고 스타벡은 2004년 2부 리그로 강등당했다. 귄나르손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2005 시즌부터였다. 새로 부임한 얀 존슨 코치의 지도 아래 다니엘 난스코그와 막강 듀오를 형성하여 맹폭격을 퍼붓게 된다. 귄나르손의 도움에 힘입은 난스코그는 2006년 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팀은 다시 1부로 승격했다. 2007년에는 그야말로 포텐이 폭발해서 리그 어시스트 1위, 득점 4위를 기록하며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노르웨이에서의 호성적을 바탕으로 2008-2009 시즌 프랑스의 AS 낭시로 이적했으나 인상적인 모습은 보여주지 못한 채 노르웨이로 돌아왔다. 귄나르손의 흑역사인 동시에 훗날 이로 인해 골치아픈 문제를 떠안게 된다.

2010년부터는 다시 스타벡에서 선수생활을 계속했지만 전성기만큼의 활약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그러던 와중에 2011 시즌 밸라렝가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있었다. 원래 스타벡은 귄나르손을 5백만 크로네(한화 약 9억 5천만 원)에 로젠버그로 이적시킬 생각이었으나, 이를 거절당하자 1백만 크로네(한화 약 1억 9천만 원)의 이적료를 받고 밸라렝가로 인도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스타벡과 밸라렝가 두 구단이 서로 짜고 AS 낭시가 받아야 할 25만 유로 지분을 갈취했다는 혐의를 받았고, 낭시가 귄나르손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노르웨이 축구협회가 개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두 구단이 벌금을 물고 경찰이 조사에 나서 관련자들이 기소당하는 일까지 벌어진 끝에야 사건은 진정단계에 들어갔다. 하지만 스타벡의 이미지는 크게 손상되었고 리그에서의 경쟁에 대한 공정성마저 의심받게 된다.

2012년에는 다시 스타벡으로 복귀했다. 2013년 아이슬란드 리그 스티아르난 FC로 복귀하였다.

아이슬란드 국가대표에도 선발되어 통산 33경기에서 6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국대가 유럽에서 워낙 약체에 속하는지라 큰 주목을 받진 못했다. 사실 해외에서는 커리어보다도 저 위의 이적사건으로 더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