封奕
(? ~ 365)
전연의 인물. 봉석의 손자.
311년에 봉석이 병이 들면서 모용외에게 봉혁을 부탁했으며, 봉혁이 모용외와 만나 이야기한 후에 소도독에 임명되었다. 이후 모용외가 인재들을 모아 재주에 따라 임무를 맡기면서 송해, 황보급, 황보진, 무개, 유빈, 봉유와 함께 기밀 사항을 권장하게 되었다.
333년에 군좨주를 지내면서 모용황의 지시로 요동 지역을 위무하기 위해 요동으로 향하다가 모용인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돌아왔으며, 334년에 사마를 지냈고 단료가 여러 차례 유성을 공격해 석종, 모여니 등이 이에 맞서자 이들을 구원했다. 모용황이 모용한[1]에게 적들의 기세가 예리해 함부로 나아가지 말라고 했지만 모용한은 나아가려고 했는데, 봉혁은 이를 말렸지만 모용한이 듣지않아 크게 패했다.
절반이 넘는 병사가 죽었고 봉혁이 진지를 정돈하고 힘껏 싸워 괴멸되는 것은 피할 수 있었으며, 335년에 군좨주로 있다가 우사마에 임명되었다. 336년에는 단란, 우문일두귀 등이 각자 유성, 안진 등을 공격했다가 모용황의 군사가 오는 것을 보고 달아났다가 군사를 이끌고 돌아오자 봉혁은 마두산에서 매복해 단료의 군사를 격파하고 단부의 장수인 영백보를 죽였다.
337년에는 진군장군부의 좌장사를 지내면서 모용황에게 연왕을 칭할 것을 권유했으며, 모용황이 왕을 칭하자 국상에 임명되었다. 338년에 후조의 군사와 싸울 때 모용황이 계책에 대해 묻자 굳게 지키면서 틈새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349년에 오재장군을 지내다가 후조에서 석준이 석세를 폐위시켜 찬탈하자 후조를 공격하는 것에 논의했는데, 모용준이 이에 대해 결정하지 못하자 석호가 폭정을 펼쳐 군사를 이끌고 공격하면 오히려 환영할 것이라고 진언했다.- ↑ 모용외의 아들과는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