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용황

모용선비의 역대 군주
고조 선무제 모용외1대 태조 문명제 모용황2대 열조 경소제 모용준
생몰년도297년 ~ 348년 음11월(52세)[1]
재위기간333년 음5월 ~ 348년 음11월(15년)[2]
묘호태조(太祖)
시호문명황제(文明皇帝)
연호-
부모관계아버지: 모용외 / 어머니: ?

1 개요

전연의 1대 군주. 휘는 황(皝), 자는 원진(元眞), 시호는 문명(文明)이다.

모용외의 3남으로, 굳셈이 뛰어나고 지략이 있으며 경학을 좋아했다고 한다. 모용외가 죽자 모용선비는 분열되어 모용황의 이복형 모용한은 단부로 망명하고 동복동생 모용인은 요동에서 자립하기에 이르렀으나, 모용황은 모용인을 격파하고 모용선비의 분열을 수습한 뒤 337년에 연왕으로 즉위하여 전연을 세웠다. 이후 후조를 끌어들여 단부를 무너뜨리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이 와중에 후조를 배신하고 돌아가서 이후 전연은 후조와 대립하게 되었다. 고구려를 침공하여 배후의 위협을 제거한 뒤, 후조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하고 재차 부여를 침공하여 왕을 사로잡았다. 348년에 사냥 도중 낙마하여 입은 부상으로 죽었다.

2 생애

모용황은 297년에 모용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321년에 세자로 책봉되고 333년에 모용외가 사망하면서 모용부의 대인이 되었다. 그러나 배다른 형인 모용한과 동생 모용인, 모용소와 대립하여 모용부는 내분을 겪게 된다. 모용인은 모용소와 반란을 꾸몄으나 발각되어 모용소가 살해당하자 평곽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켜 요동 일대를 장악했다. 모용한은 단부로 망명하였다가 단부의 군대를 이용해 모용황을 공격하였다. 한때 모용황은 멸망 직전까지 몰렸으나 모용한이 모용부가 멸망할 것을 두려워하여 철군하여 살아남았다. 336년, 모용황은 모용인을 공격하여 격파하고 다시 모용부의 지배권을 확립하였다.

337년, 모용황은 나라(동진)에 대한 종속적 관계를 단절하고, 연왕을 자칭하며 연나라(전연)를 건국하였다. 모용황은 단부와 대립했다. 나라(후조)와 동맹을 맺고 338년에 단부를 협공하였다. 모용황이 혼란에 빠진 단부를 약탈하고 튀자 조나라의 석호는 전연에게 분노하여 단부를 멸망시킨 조나라는 연나라와 전쟁을 시작하였다. 조나라의 침입으로 한때 수도인 극성이 포위되기도 하였으나 모용황은 농성 끝에 조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역관광하여 영토를 일부 확장하였다. 이후 조나라의 유주를 계속 공격하며 약탈전을 벌였다. 340년에는 다시 조나라가 대군을 이끌고 연나라를 위협하였으나 모용황은 조나라의 전선을 우회하여 유주의 계를 습격, 대승하였다. 342년에 용성으로 천도했으며, 고구려를 공격하여 대파했다. 344년에는 우문부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모용황은 한족의 유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한화 정책을 취하였으며 농경을 장려하여 국가 체제를 정비하는 데 주력하다가 348년에 수렵 도중에 낙마하여 머리를 다쳐 사망하였다.

아들 대에 태조 문명제로 추존되었다.

3 기타

3.1 한국에서의 모용황

한국 고대사에서 아버지 모용외에 이어 부여를 사실상 작살내고 덤으로 고구려의 고국원왕까지 관광태워버린 사람으로 유명하다. 대중적으로는 '근초고왕(드라마)'에 등장하면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생겨난 편이다.
  1. 자치통감 기준, 진서의 향년을 적용.
  2. 자치통감 기준, 진서의 재위기간을 적용. 337년 10월에 연왕으로 즉위하여 전연을 건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