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태

司馬泰
(? ~ 299)

삼국시대 위나라, 서진의 인물. 자는 자서(子舒). 사마월의 아버지.

위나라에서 양정후에 봉했고 양적령을 지내다가 부풍태수로 옮겼으며, 265년에 위나라가 멸망하고 사마염이 선양을 받아 진나라를 건국하자 황족들에게 봉작을 내리고 조정의 백관들을 임명하면서 사마태를 농서왕에 봉하고 읍 3천 2백호를 받고 유격장군에 임명되었다. 지방으로 나가 연주자사에 임명되고 응양장군이 더해졌으며, 옮겨서 사지절, 도독영주이주제군사, 안서장군, 익주자사에 임명되었다가 병으로 부임하지 않았으며, 옮겨서 안북장군에 임명되고 형인 사마권 대신 독업성수사에 임명되었다가 옮겨서 안서장군, 도독관중사에 임명되었다.

280년에 산기상시, 전장군에 임명되고 업의 성문교위에 임명되었지만 병으로 관직을 떠났으며, 후에 사마황을 대신해 상서좌복야에 임명되고 나가서 진서장군이 되었다. 서융교위, 가절에 임명되고 사마준 대신 도독관중군사가 되었다가 병으로 낙양으로 돌아갔으며, 290년에 석감 대신 사공이 되었고 태자태보에 임명되었다.

291년에 양준이 주살되자 시중에 임명되고 보병 2천 1백, 기병 5백을 받았지만 사마태는 이를 거부했으며, 1천의 군사와 기병 1백만 받았다. 초왕 사마위가 낙양으로 들어오자 병사를 통솔해 제지하려 했다가 제주 정수가 함부로 움직이면 안된다고 진언해 그 말을 따랐다. 사마위가 주살되자 녹상서사에 임명되었다가 태위로 옮겼으며, 수상서령이 되었고 고밀왕에 임명되어 읍 1만 호를 받았고 299년에 사망해 태부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