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수 전투

蛇水戰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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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수 전투 기록화

662년(보장왕 21년), 고구려의 사수에서 벌어진 전투로 제2차 여당전쟁의 대표적인 전투이지만 워낙 기록이 적어서 상세한 것을 알 수 없다.

그러나 정황상 당나라와 고구려 양 군이 이 전투에서 군사들이 많은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사수 전투
날짜
662년 음력 2월 18일
장소
사수(합정강으로 추정)
교전국1교전국2
교전국고구려당나라
지휘관연개소문방효태
병력불명불명
피해 규모불명불명[1]
결과
고구려군의 승리
기타
당나라군이 평양성 함락의 차질이 생겨 고구려에서 철수.

1 배경

660년에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키자 661년에 백제의 잔당군을 공격하는 것과 동시에 백제의 우방국인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해 평양으로 군사를 보냈으며, 임아상을 패강도행군총관, 글필하력을 요동도행군총관, 소정방을 평양도행군총관으로 삼으면서 부여도행군총관 소사업과 여러 흉노의 군사 등 35개의 군대와 함께 육지, 바다로 나누어 공격하게 했다.

당나라의 군사는 패강, 압록수 등에서 고구려군을 격파하고 소정방이 평양성을 포위하기에 이르렀다.

2 진행

옥저도총관 방효태는 영남의 수군을 이끌고 사수에 진영을 쳤다가 연개소문이 사수 언덕에서 방효태에게 맞서 싸웠으며, 방효태가 패하면서 어떤 사람이 방효태에게 유백영이나 조계숙의 진영에 가기를 원했지만 이를 거부하고 싸우다가 그의 아들 13명과 함께 전사했다.

평양성을 공략하던 소정방이 지휘하던 당나라의 군사는 고구려의 사수가 얼어붙는 혹한을 활용해 운차, 충팽으로 북과 징을 시끄럽게 치면서 공격했지만 역습을 받았는지 고구려에게 오히려 당나라의 진지 2개를 빼앗겼는데, 나머지 2개의 요새를 고구려군이 밤에 빼앗으려고 했지만 고구려군은 날카로움이 무디어지고 힘이 다해 끝내 빼앗지 못했다고 한다. 다만 이 교전이 방효태군의 괴멸 이전인지는 파악되지 않는다. 다만 신라에서 쌀배달 오니까 급하게 밥만 지어먹고 갔다고 한다.

3 결과

이 전투의 패배로 인해 당나라의 평양성 공격에도 영향을 끼쳐 끝내 평양성을 함락하지 못했으며, 폭설로 인해 소정방이 이끄는 당나라의 군사는 퇴각하게 되었다.
  1. 방효태가 지휘하던 옥저도행군은 괴멸된 것으로 보이나 그 규모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