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신 계획

Project Cybersyn

1 개요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 시대에 칠레에서 실행된 컴퓨터로 통제하는 계획경제 시스템. 1971년에서 1973년 사이에 진행되었다. 수도 산티아고에 있는 컨트롤 센터의 단일 컴퓨터와 칠레 각지의 공장을 텔렉스(전화기능이 있는 팩스)로 연결하여 제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2 역사

1971년 칠레경제개발공사(CORFO)의 기술 부문 책임자이자, 20대였던 페르난도 플로레스가 영국의 연구자 스테포드 비어를 초빙하여 만들어졌다.

이들은 남북 4,600km에 달하는 칠레의 국토 전체에 흩어져 있는 생산 설비와 통신을 하고, 생산을 조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방대한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영어권에서는 사이버신(Cybersyn), 칠레에서는 신코(Synco, Sinco, Cinco)라고 불리웠다.

이 시스템은 1972년 8월 CIA의 지원에 따른 50,000명의 트럭 운전자들의 파업으로 산티아고의 물류가 봉쇄되었을 때 활약하였다. 아옌데 정권은 사이버신의 텔렉스 장치를 써서 정부에 협조하는 200대의 트럭을 동원하여 산티아고 시내로 음식을 운반할 수 있었고 이 파업은 실패로 돌아갔다.

1973년 9월 11일, 피노체트쿠데타 이후 이 시스템은 파괴되었다.

3 사이버신 시스템의 구성

사이버신은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시너지(synergy)의 합성어이다.

"사이버넷"(Cybernet), "사이버라이드"(Cyberstride) "체코"(Checo), "본부 룸"(Opsroom)의 4가지 프로젝트로 되어 있었다.

3.1 사이버넷(Cybernet)

칠레의 생산 거점을 연결하는 텔렉스를 이용한 네트워크. 빠른 실시간 제어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매일 오후 5시에 한 번 정보를 보내는 것이 고작이었으며, 그 정보도 원재료, 생산량, 결근 자수 같은 일부 수치에 불과했다.

3.2 체코

경제 모델에 따라서 전체 경제의 장래를 예측하는 시뮬레이터 시스템. 체코라는 이름은 국가명이 아닌 칠레 경제(CHilian ECOnomy)에서 따왔다. 하지만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얻을 수 없었던 문제도 있어서 시험시의 성적은 좋지 않았다.

4 평가

이상은 대단했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다.(…)

경제 전체를 컴퓨터로 분석해서 관리하고 예측하는 것은 21세기에도 수많은 전문가가 컴퓨터와 함께 달라붙어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당시 칠레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컴퓨터가 거의 없어서 단 1대의 IBM 360/50 메인프레임이 사실상 시스템의 거의 전부였다. 흔히 사이버신은 거대한 컴퓨터실을 배경으로 대단히 미래지향적인 시스템으로 소개되었지만, IMB System 360/50은 1964년에 판매된 컴퓨터로 1971년의 기준으로도 이미 구식이었다. 원래 계획했던 실시간 제어를 실현하기 위해 요구되는 계산량을 달성할 수 없었던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덕분에 경제 전체의 장래를 시뮬레이션으로 분석한다는 사이버신에서 실제로 수행한 것은 단순한 수준의 베이지안 필터링 정도에 불과했다. 컴파일러도, 고급 언어도, 심지어 텍스트 에디터도 없이 천공카드로 기계어 프로그래밍을 해야 하는 시대에는 그 정도도 대단한 첨단기술을 지향한 셈이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사이버신 계획을 떠받친 것은 그 이전 정권에서 구입해 놓은, 500대의 텔렉스 머신으로, 이를 각지의 공장, 광산에 한 대씩 배치하고 일일 생산량을 중앙에 보고하는 정도였다. 물론 이러한 보고는 컴퓨터로 분석되게 되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사이버신은 사실상 90년대에 삐삐를 이용해 문자메시지로 보고하는 수준도 되지 못했다.

이러한 수준의 시스템에 의존해서 칠레 전체의 경제를 중앙에서 아옌데 본인이 직접 관리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무모한 발상이었다. 현장 관리자들은 문자메시지만 받는 아옌데에게 사실상 보고하고 싶은 사항만을 보고할 수 있었고, 칠레 전체에서 보고를 받아야 하는 아옌데는 보고서를 읽어보는 잠깐의 시간 동안 내릴 수 있는 정도의 판단만을 내릴 수 있었다. 이 정도의 네트워크로도 파업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지지자들과 연락을 취하는 용도로는 유효하게 사용할 수 있었지만, 정작 일상적인 상황에서 경제를 관리하는 업무에서는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좌파 일각에서는 중앙집권에서 탈피해 신경망을 모델로한 평등하고 분권적인 민주적 시스템이라는 이유로 사이버신에 하앍거리는 케이스도 없지 않으나, 이것은 이념과잉의 분석일 것이다. # 이 시스템의 실패원인을 아옌데 정권의 일부 우경화로 돌리고, 결과적으로 "그러나 개방적이고 평등한 특성을 가진 사이버신 시스템은 강압적 군사정권과는 태생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없었다"는 식의 사이버신의 몰락에 대한 궁색한 변명이 안쓰러울 지경이랄까.

좌파 일각의 주장과는 달리 사이버신 계획은, 실제 신경망이 그렇듯이, 중앙집권적인 시스템이었다. 모든 정보는 중앙에 있는 아옌데의 컴퓨터에 흘러들어가고 아옌데의 결정이 모든 단말로 되돌아가도록 설계되어 있었지, 단말간의 횡적인 정보 교환 같은 것은 사이버신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단지 문제가 해결되었는지를 확인하는 몇 단계의 피드백 구조 정도만이 있었을 뿐이다. 즉 사이버신 시스템에 결정권을 단말로 이양하기 위한 구조는 없었고, 시스템에 그러한 변화를 계획했던 흔적 역시 발견되지 않는다. 중앙에서 독점하는 메인프레임과 각 단말에 나누어준 텔렉스 머신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이 '분권적'이기는 매우 어렵다.

애당초 아옌데가 추구한 경제체제는 중앙에서 전체를 관리-감독하는 계획경제였지 각 단말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방식이 아니었다. 중앙의 결정권을 단말로 이양하는 '평등하고 분권적인'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