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마 노부모리

佐久間信盛
(1528? ~ 1582. 2. 18)

오다 가문의 무장으로 후위 부대의 지휘를 전문으로 하여 물러나는 사쿠마라[1]고 불렸으며, 법명은 도무케이겐(洞無桂巌) 또는 소스케(宗佑).

오다 노부히데를 섬기면서 오다 노부나가가 태어나자 후견인 역할이 되었으며, 1551년에 오다 노부나가에게 오다 노부카츠가 반기를 들었을 때 노부나가를 지지하였다. 1560년에 오케하자마 전투에 참전하여 젠쇼지토리데의 수비를 맡아서 싸운 공으로 나루미 성의 성주에 임명되었다.

1568년에 노부나가가 상경할 때 종군하여 오미국의 롯가쿠 요시카타를 공격하는 미츠쿠리 성 전투에서 선봉으로 참전하였으며, 1570년에 아자이, 아사쿠라를 공격하는 아네가와 전투에서는 본진을 수비하는 역할로 참전하였다. 보다이지 성에서 패배한 요시카타를 감시했지만 놓쳤다.

1571년에는 영지로 오미 쿠리타군을 받았으면서 마츠나가 히사히데와 싸우던 츠츠이 쥰케이를 귀순하는 교섭을 하여 히사히데와 쥰케이를 화목시켰으며, 제 1차로 이세나가시마 공격에 참전하였으나 고전했다. 1572년에는 미카타가하라 전투에 타키가와 카즈마스, 히라테 히로히데, 미즈노 노부모토 등과 함께 3천의 병사를 이끌었지만 노부모리가 다케다 신겐의 군사를 보고 퇴각하는 바람에 싸워보지도 않고 퇴각했다.

1573년, 1574년 두 차례에 걸쳐서 이세 나가시마 공격에 참전하였는데, 1573년 1573년 8월에 노부나가가 에치젠의 아사쿠라군을 공격했을 때 출병하라는 노부나가의 사전 공지를 들었다. 하지만 노부나가보다 늦게 왔다가 질책하자 그렇게 모질게 말씀하셔도 우리 정도의 가신들을 쉽게 거느릴 수 없다고 하여 대답하여 노부나가의 분노를 샀는데, 이는 이후 노부나가에게 추방되는 원인 중에 하나가 된다.

1575년 6월 29일에 벌어진 나가시노 전투에서 다케다군을 꿰어내기 위해 좌익으로 참전하였으며, 1576년에 혼간지를 공격하는 지휘관을 맡았지만 고전하였다. 같은 해에 제 1차 키즈카와 전투에서 모리의 수군에게 패하였다.

1577년에는 키슈 정벌과 시기산성 전투 등에 오다군의 부장으로 참전하였으며, 노부나가가 조정과의 알선으로 혼간지와의 싸움이 끝난 1580년에 19개조에 해당하는 셋칸장(징계장)을 받으면서 장남인 사쿠마 노부히데와 함께 추방되어 1582년 1월 16일에 사망했다.

파일:佐久間信盛.jpg

특별한 전공을 세우지 못하고 노부나가에게 추방당했다는 사실 때문인지 신장의 야망 초창기 시리즈에서는 능력치가 낮았으나, 노부히데-노부나가 2대를 섬긴 점, 여러 전장터에서 공을 세웠던 점 등이 반영되어 최근작에서는 근소하게 능력치가 올라가 통/무 60대를 마크하며 보통 무장이 되어다.
  1. 이를 전국시대때 신가리라고 하는데 어떤 전투에서 아군 전체가 위험에 빠져 철수를 해야만 하는 상황 일때 아군의 본대가 무사히 철수할수 있도록 소수의 군을 이끌고 후방에 머물며 적의 추격을 저지하거나 본대의 후퇴를 엄호하는 위험한 임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