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道解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고구려 말의 대신.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만 등장하는 인물로, 642년 김춘추가 고구려에 사신으로 파견될 당시 보장왕이 총애하던 신하였다. 보장왕이 김춘추를 떠볼 생각으로 마목현과 죽령 땅을 요구하자 김춘추가 거절했다 볼모로 잡혔는데 신변의 위협을 느낀 김춘추가 선도해에게 비밀리 뇌물을 바쳐 탈출을 꾀했다. 선도해는 주안상을 차려 연금되어 있던 김춘추를 찾아가 구토지설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김춘추는 보장왕에게 글을 보내 마목현(현 조령)과 죽령 땅이 고구려 땅임을 인정하고 신라로 돌아가면 왕을 설득해 이 땅을 돌려주겠다는 글을 보내고 무사히 신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물론 김춘추는 입을 싹 닦았지만 오히려 이것이 고구려가 신라를 칠 명분으로 작용하여 여제동맹군이 결성되어 신라를 맹공해 신라는 더 심각한 위기를 겪게 된다.
본시 보장왕은 정말로 신라가 마목현과 죽령 땅을 내놓을 생각이 없다는것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고 김유신 열전에도 보장왕이 그냥 김춘추를 떠볼 생각에서 한 말이라고 표현해 놓았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김춘추는 선도해의 말에 속아 마목현과 죽령 땅을 내놓는다 해놓고 번복하는 명분상의 약점을 제공했으니 결과적으로 백제와 손잡고 신라를 칠 기회를 노렸던 보장왕의 의도에 놀아난 셈이 된다. 때문에 선도해가 김춘추의 구원요청을 수락한건 처음부터 보장왕과 짜고 취한 행동이었다 추측할 수 있다.
2 미디어에서의 모습
삼국기에서는 박영목이 연기하였다. 흑벌무와 더불어 연개소문의 충직한 의형제로 나오며 뛰어난 지략으로 연개소문을 보좌한다. 연개소문이 사망한 이후 연개소문의 아들들의 내분이 심화되자 고구려의 멸망을 직감하고 자결한다.
연개소문에서는 삼국기와는 완전 정반대로 간신배로 묘사된다. 연개소문의 정변에서 우는소리를 내며 목숨을 구걸한 덕에 살아남았고 이후에 은근히 연개소문이 하는일에 훼방을 놓는다. 결국 연개소문의 아들들의 내분을 조장했다 평양성이 당군에게 함락되는 와중에 연개소문이 보낸 술탈에게 처단되어 수급이 연개소문에게 보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