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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 일가족이 살던 방의 모습
1 개요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단독주택 지하에 세들어 살던 모녀 일가족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건.
당시 60세인 박 모씨는 35세 큰딸 김 모씨와 32세 작은딸 김 모씨와 함께 살고 있었으며, 인근 놀이공원[1] 식당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잇고 있었다. 큰딸은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있었으나 비싼 병원비때문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작은딸은 만화가 지망생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고 있었으나 빚으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된 상태였다. 이렇게 된 원인은 생활비와 병원비를 신용카드로 부담했기 때문이었다. #
아버지는 12년 전 방광암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어머니인 박씨가 사실상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는데, 사건 발생 1달 전 넘어져 몸을 다쳐 식당 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실의에 빠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하여 생활고로 고민하던 끝에 집세 70만원이 든 봉투와 유서를 남긴 채 번개탄을 피워 일가족이 동반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이 일어났다.[2]
이 사건은 한국 사회복지 제도의 헛점을 드러낸 비극적인 사건이었으며, 사건 이후 사회보장제도 개선에 대한 많은 비판이 오갔다.
2 왜 사회복지 혜택을 받지 못했나?
우선 박씨 가족은 사회복지 제도에 대한 지식 부족 또는 자존심 문제 때문에 기초생활 수급자 신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기초생활 수급자 신청을 한다고 해도, 어머니 박씨는 식당에서 일할 당시 월 120만원 상당의 소득이 있었으며, 큰딸의 질병인 당뇨와 고혈압은 근로가 불가능할 정도의 병으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한다. 어머니가 식당 일을 그만 둔 상황에서는 가족 중에 근로 능력이 있는 사람은 작은딸이 유일하지만, 이 경우 가족 중 근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 2명인 것으로 간주되어 기초생활 수급자 혜택을 받지 못한다.
더 자세한 내용 추가바람.
3 그 외
일가족이 세상을 떠난 후 그들의 살림살이는 모두 임의 폐기처분되었으며, 장례는 빈소도 없이 쓸쓸히 치러졌으며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은 친지 등 10여명이 전부였다고 한다.#
작은딸은 만화가 지망생이었으며 그 실력도 프로급 수준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유품인 습작 노트 수십권 중에는 작은딸이 참여한 동인지도 있었다고 한다.
작은 딸이 그린 작품 및 행적에 관해 추가바람.
2016년 2월 26일,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는 고인을 추모하는 의미로 송파 세 모녀 2주기 추모제를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