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苗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자는 덕주(德冑).
거록 사람으로 젊어서 청백하고 사람됨이 몹시 악을 미워했으며, 건안 연간에 승상부로 들어갔다가 위나라에서 처음으로 벼슬길에 나라 수춘의 현령으로 부임했고 얇은 덮개가 있는 수레의 그늘에서 밥을 먹으면서 타고 왔다. 그의 밑에서 명령이 행해지는 것이 마치 바람에 나부끼듯 저절로 따랐으며, 재임 중에 자기가 타고 간 암소가 새끼를 낳았고 그가 벼슬에서 물러날 때 내가 올 때 이 송아지는 없었다면서 이 송아지는 회남에서 나고 자랐으므로 회남 땅의 소유물이라면서 그 송아지를 남겨두고 떠났다고 한다.
관리들이 이를 만류했지만 시묘는 듣지 않았고 사람들이 모두 감격하게 여겨 이로 인해 천하에 이름이 나게 되었으며, 돌아와서 태관령이 되었다가 거록군의 중정을 겸임해 구품을 정했다. 관용을 쓰지 않고 재능에 따라 사람의 순서를 정했지만 사람들의 단점을 엮어두고 오랜 시간이 흘러도 마음 속에만 품고 밖으로는 내비치지 않았다.
수춘의 현령을 지낼 때 양주치중으로 있던 장제를 찾아갔는데, 당시에 보통 명사가 오면 약속을 하지 않았더라도 만나는 것이 예의였다. 그런데 장제는 술에 취해서 면회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시묘를 문전박대했으며, 그 날부터 나무로 만든 인형에 술을 마신 장제라는 기록해놓고 흙벽 아래에 두면서 아침저녁으로 그 인형에 활을 쏘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
위략 뿐만 아니라 세설신어에도 장제가 문전박대한 일화가 기록되었으며, 위략에서 나온 송아지를 두고 간 것은 거관유독이라는 고사성어의 유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