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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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이 신한승 선생.

1 설명

송암 신한승(松菴 辛漢承, 1928 ~ 1987)
중요 무형문화재 76호인 태껸의 초대 예능보유자. 송덕기 옹에게도 배웠고 구리개 태껸의 명인이라는 김홍식 옹에게도 배웠고 그 외에도 어렸을 때 자신의 집에서 기거하던 태껸꾼들에게도 한두 수 정도 배웠다고 주장했지만 송덕기 옹에게 배운것외에는 증거가 없다. 당수도 했었고 레슬링 국가대표 선발전에도 나갔으나 최종 선발전에서 탈락.

그 후 어렸을 때 보았던 태껸을 어떻게든 배우고 알리고 싶어서 자료를 찾던 중 송덕기 옹의 존재를 알고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다고 한다. 거리도 멀었고 또 태껸의 다른 흔적을 더 찾고 싶은 마음에 진득하니 배운 것보다는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으며 다른 전통무술과도 연관성을 찾으려고 했었다.[1]

현대 태껸의 역사 설명을 보면 구리개 태껸의 명인인 김홍식 옹에게 활개짓을 배웠다고 나오며[2] 수벽치기라는 또 다른 무예를 찾아 다니기도 했다. 그 수벽치기 계통을 잇는 것이 육태안 씨의 수벽치기 단체다.

2 송덕기 옹과의 대립

꽤 유명한 일화로는 부산에서 열린 1회 태껸대회가 끝난 후 태껸의 경기에 불만을 가진 송덕기 옹에게 태껸스럽게 하려면 활개짓을 더 잘해야 된다고 했다가 송덕기 옹이 "태껸은 품만 잘 밟으면 돼!! 왜 없는 동작을 자꾸 만들려고 해!!!" 라는 일갈을 받아 머쓱했다던 적이 있다. 그러나 그 후에도 활개짓의 동작을 포기하지 않은 것을 보면, 정말 그런 동작을 김홍식 옹에게 배운 것인지 아니면 그냥 고집인지는 지금 와서는 알 수가 없다.

또한 그는 태껸 특유의 기합(?)을 "이크 에크" (대한택견, 충주택견협회) 라고 하였는데, 송덕기 옹은 "이크"(결련택견에서 쓴다)라고만 하였고, 도기현 회장은 저서에서 이에 대해 '맞다, 틀리다'라고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송덕기 옹 당신은 좋아하지 않으셨다고 회고했다.[3]

3 차이점

송덕기 옹의 태껸의 부드러운 몸짓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여준다. 이는 송덕기 옹으로부터 진득하게 원형 그대로 배운 것이 아니라 전국을 떠돌면서 태껸꾼을 찾아다니며 태껸을 연구하면서, 태껸꾼 개인의 변형된 독자적 스타일이나 혹은 다른 지방의 무술 형태가 유입된 탓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송덕기 옹에게 진득하게 오래 배우지를 못한 상태에서 여러 태껸꾼들의 기술을 배워서 그렇다는 추측도 있다. 이것을 사상의 차이에서 나오는 몸동작의 다름이라고 보기도 하고, 또는 그냥 못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두가지 의견이 있다.

태껸이 기술이 적어서 문화재 지정이 난감하다고 하자 다른 무술의 기술들을 일부 도입하고 투로인 본때뵈기 12마당을 만들었다. 일단 신한승 선생의 이러한 노력 덕에 태껸이 문화재 지정이 되었지만, 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4] 또 본때뵈기 12마당의 진행이 품을 아래로 밟는 굴신동작이 아니라 위로 몸을 움직이는 구조라서 기본적으로 굼실거리며 아래로 밟으며 기술이 나가는 송덕기 옹의 태껸과는 전혀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다. 송덕기 옹은 품을 밟으며 중심을 낮추는데 이 본때뵈기 마당에서 걸음을 나아갈 때는 오히려 중심을 높여버린다는 문제점이 있다.

결련택견을 '결연택견' 이라고 해석하여 '결연하게 하는 태껸' 즉 싸움수까지 포함한 무술 태껸을 의미한다고 생각했고 이는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5][6]

4 결론

여러가지 비판과는 별도로 태껸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것에 지대한 공헌을 한 분이라는 것은 사실이며 이 분이 열심히 뛰지 않으셨다면 태껸은 오늘날 서울에서만 간신히 목숨을 이어나가는 작은 유파에 불과하거나 심하면 태권도에 흡수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지방의 모 태권도장에서는 옛날 태권도인 태껸을 수련함으로 경기에 치우친 태권도에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하는...어쩌고 하는 말을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

신한승 옹이 가산을 날려가면서까지 열심히 뛴 결과 태껸은 중요 무형문화재가 되었고 이에 감격해 신문을 보며 엉엉 울었다고 한다. 하도 고생하셔서 그런지 대장암에 걸리셨고 수술을 받았으나 결국 송덕기 옹이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에 먼저 돌아가시고 말았다. 태껸은 태권도와 전혀 다른 우리의 전통무술이라는 점에서 신한승 선생의 발로 뛴 그 역사는 매우 소중하며 현대 태껸의 역사에 큰 별이라는 것도 확실하다.

다만 결연택견의 오류나 동영상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송덕기 옹의 태껸과 다른 점들에 대한 건전한 비판이 있어야 태껸계의 갈등도 줄고 더 한발 나아갈 수 있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문제는 이 분이 배웠다는 다른 태껸꾼들의 방식이 꼭 잘못된 것으로 보기에는 애매한 점이 있으며, 이 분을 많이 문제삼는 쪽에서는 송덕기 옹에 대한 정통성을 너무 강조해서, 일반인들의 시선에서 본다면 놀이로서의 가벼움보단 불편할정도로 정통성에 집착하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대한택견 쪽에서는 독자연구도 가장 엄청나게 늘어나서, 정작 송덕기 옹이 전수한 기술의 원형에서 가장 많이 대격변을 일으킨 태껸 단체 중의 하나가 되었다. (...). 물론 대한택견도 송덕기 옹의 품새를 기반으로 가장 연구가 깊은 단체이며, 신한승 옹의 "이크에크" 기합도 받아들인 단체이기는 하다. 애초에 수장인 이용복이 송덕기 옹보다 신한승 옹에게 사사한 기간이 훨씬 길다.
  1. 도기현 회장의 저서를 보면 선무도의 설적운 스님과의 에피소드도 나와 있다. 그러나 선무도 계열에서 적운스님의 이야기는......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 그런데 도기현 회장의 칼럼을 보면 김홍식 옹에게 배운 것이 아니라 태권도 하는 애들과 떨어졌을 때 제자들이 자꾸 얼굴을 맞길래 위로 크게 돌리는 활개짓을 만들었다는 말이 나와서 정보가 어떻게 잘못 전달된 것인지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3. 이크라는 기합의 용례에 대해서는택견의 기합은? 참조
  4. 일단 태껸의 기술 수가 적다는 것 자체가 이미 틀린 말이다. 택견의 기술 수는 과연 적은가? 참조.
  5. 대한택견연맹에서 문화재 관리국에 질의를 보내 결연택견은 오류가 확실하다는 답변도 얻었다. 결련택견은 마을에서 주거니받거니 하는 택견의 방식이다.
  6. 헌데 정작 이 영상을 보면 송덕기 옹께서 '호신술로 하던 택견을 결련택견이라 했다'라고 하는 부분이 나온다. 진실은 저 너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