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라트 공화국

125px-Flag_of_Republic_of_Ararat.svg.png

Republic of Ararat/Komara Agiriyê
1927~1930년에 있었던 쿠르드족의 독립국가.

1 건국

1927년 10월 28일, 쿠르드족 일샨 누리와 이브라함 헤스키를 비롯한 인물들이 아라라트산 근처에 세웠던 나라이다. 쿠르드족 출신이던 헤스키는 부족들을 통합하여 반터키 운동을 주도했고 1926년 5월, 아라라트 산 부근에서 터키군을 물리치면서 쿠르드족 자치구를 편성했고 오스만 제국군 출신이던 일샨 누리가 주도하는 쿠르드 독립국가 결의안을 받아들이면서 헤스키가 초대 대통령, 누리가 초대 국방장관 및 사령관이 되었다.

1.1 멸망

하지만 터키군을 일시적으로 막아냈지만, 이를 가만히 보고 있을 아타튀르크가 아니었다. 아타튀르크는 우선 반란 및 폭동으로 규정한 아라라트 공화국 해산을 경고했지만 당연히 아라라트 공화국 인사들은 거부했고 결국 터키군과 총력을 다해 싸워야 했다. 1928,1929년 터키군의 연이은 공세에 아라라트 신생공화국군은 극심한 고전을 겪어야 했고 국제적으로 지원을 부탁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일샨 누리는 프랑스 및 영국, 미국,소련에 이른 강대국에 지원을 부탁하고자 돌아다녔지만 결국 문전박대만 당했을 뿐이었다. 열악한 이들은 그저 산을 배경으로 벌이던 보병전에 의존해야 했지만 1930년에는 터키군이 공군까지 동원하면서 이마저도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1930년 9월 17일, 터키군의 대대적 공격으로 아라라트 공화국은 겨우 3년만에 허무하게 무너지고 만다. 참 비극인 게 이 당시 터키군 상당수 병력에는 쿠르드인이 꽤 있었다는 사실이다. 뭐 쿠르드인 항목만 봐도 알겠지만 부족갈등으로 나누어진 탓에 아르메니아 학살 당시에도 학살자이자 학살당한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던 게 쿠르드인이었고 여기서도 같은 쿠르드인끼리 싸우며 서로 죽이고 죽어갔다.

2 그 뒤에

아브라힘 헤스키는 아우인 아흐메드와 어머니를 터키군의 학살로 잃고, 남은 식구를 데리고 이웃 이란으로 달아났지만 마찬가지로 쿠르드족이 독립요구를 하는 통에 견제하던 이란은 즉각 헤스키와 쿠르드족 수배령을 내린 끝에 결국 이란에서 이란군과 전투 와중에 온 식구와 다 같이 죽고 만다.

일샨 누리는 해외로 달아나서 쿠르드족 독립을 위하여 노력했으나 끝내 결실을 보지못하고 1976년 암살당했으며 정부 수립을 주도하던 대부분 인사는 해외에서 암살 및 병사, 아니면 이 당시 현지에서 사살당하는 비극으로 막을 내리고 만다.

터키에선 아라라트 반란으로 이야기하며 해당 정부에 대한 기록을 죄다 없앤 탓에 이 나라에 대한 상세한 기록 여부가 별로 없다. 물론 작고 힘없던 나라였던 점도 있지만 건국 당시 동부에 거주하던 아르메니아인들과 충돌같은 내부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오래가긴 불가능했다.

여담으로 이란에서도 마하라바드 공화국이 1941년에 세워졌다.하지만 당시 이란이 2차대전 여파로 제대로 신경쓰지못했고 소련이 배후에서 부추긴 것이지만 결국 2차대전 끝나고 오래 못가 1947년 이란군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