كورد, Kurd (쿠르드어)
Kurds(영어)
Kürt(=퀴르트, 터키어)
이라크 쿠르디스탄 자치정부의 기. 군사조직인 페슈메르가도 별도의 군기 없이 이 기를 상징으로 사용하며, 쿠르디스탄의 상징으로 가장 널리 사용된다. 아르헨티나와는 관련없으며 헝가리와도 관련이 없다
시리아 쿠르디스탄(북시리아 연방, 별칭 로자바)의 삼색기. 2012년에 채택되었으며, 시리아 쿠르드족이 사용한다.
야지디교인의 기
파일:Attachment/쿠르드족/Kurd.png
56-1식 AK 소총으로 무장한 쿠르드족 저항군 병사.
쿠르드 남녀 대원들. 쿠르드인들은 여성의 지위가 굉장히 높다. 특히 다른 이슬람을 믿는 민족보다 비교적 세속적인 탓에 히잡을 강요하지 않아서 서구적으로 사는 여성이 많다.
목차
1 본문
터키, 이라크, 이란, 시리아 등 중동 여기저기 쿠르디스탄에 사는 산악 민족이다. 정확히 말하면 쿠르드족이 사는 곳이라 쿠르디스탄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지만(...) 다만 터키 사람들 앞에선 절대로 '쿠르디스탄(Kürdistan)'이란 표현을 사용해선 안된다! 대체로 터키인들은 쿠르드 문제가 서방의 언론플레이로 인해 편향되어있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키프로스 문제도 가급적이면 피할 것. 사실 쿠르디스탄이란 용어도 정의대로라면 '쿠르드인이 사는 곳'이란 뜻인데, 사실 쿠르드인은 터키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다. 가령 이스탄불 내의 제이틴부루누(Zeytinburunu) 지역 같은 경우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쿠르드인이 많이 살았고, 오늘날에도 동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쿠르드인이다.
쿠르드인들이 사는 지역.
2 인구
추정하는 곳마다 다른데, 최소 2200만 명에서 3800만 명(추정)으로 독립적 국가를 가지고 있지 않은 민족으로서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다. 중동에서는 아랍인, 터키인, 페르시아인(이란인) 다음으로 많다. 각국에 귀속된 쿠르드인의 숫자는(2008년 추산치), 터키에 1200만~1700만 명, 이란에 500만~700만 명, 이라크에 400만~650만 명, 시리아에 80만~160만 명, 기타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과 투르크메니스탄, 러시아 등에도 소규모로 거주하며 서방국가에 망명해 거주하는 쿠르드족도 있다. 이 추산치를 근거로 하면 최대 약 3800만 명, 최소 2200만 명 정도까지 헤아릴 수 있을 듯(위기와 극복의 아틀라스에서 참조).
3 종교와 역사
대부분이 이슬람 수니파에 속하지만 시아파에 속하는 쿠르드도 많고(특히 이란), 기독교나 알레비파, 야지디를 믿는 쿠르드도 꽤 있다. 언어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쿠르드어이다. 쿠르드어는 페르시아어와 매우 유사하며, 쿠르드어 내부에서도 소라니어 같은 다양한 방언이 존재하는데, 방언격차가 상당히 커서 상호 의사소통이 안되는 방언도 있다. 가령 자자어는 사실상 별개언어 취급하는데, 위키피디아의 경우도 다른 쿠르드제어들은 kurdî로, 자자어는 zazakî로 구분해서 취급하고 있다. 심지어 표기하는 문자도 제각각이다. 터키에서는 라틴 문자를 사용하고, 이란의 쿠르드인들은 아랍-페르시아 문자를 사용하며,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지역의 쿠르드인들은 키릴 문자를 사용한다.
쿠르드민족의 주된 생업은 목축으로 중동 외의 다른 민족과 같이 유목민으로서 생활해 왔다. 아이유브 왕조의 시조인 살라흐 앗 딘은 쿠르드족 출신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터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중년 가수 이브라힘 타틀르세스(İbrahim Tatlıses)도 쿠르드인이다. "쿠르드인은 밉지만 이보(=이브라힘의 애칭)의 목소리는 좋다" 가 극우의 보편적인 평가인데, 이보가 쿠르드어로 부른 앨범을 내자 극우 단체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기도 했다.
쿠르드어나 고대 이란계 언어들을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는 쿠르드어가 과거 메디아인들이 쓰던 이란계 언어의 서부 방언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중세 쿠르드인들의 발흥지가 구 메디아 왕국의 중심이었던 서부 이란의 산악지대이므로 쿠르드인들을 메디아인들의 후손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상술했다시피 쿠르드어는 방언도 많고 그 기원에 대해서도 이설이 많다.
고대 문헌에서 아나톨리아나 이란의 산악지역에 살았다는 수렵 목축민들에 대한 기록인 수메르의 구투(Gutu, Guti 혹은 Gutian people)이나 그리스-로마 기록의 퀴르트(Cyrtians) 혹은 카르두키(Charduchi) 등에서 쿠르드인의 기원을 찾기도 하는데, 사실 파르티아나 사산 왕조 시대까지는 여러 이란계 부족 중 하나 정도로 취급되어 왔다. 중세 아랍 이슬람 세력의 침공으로 이란이 아랍 제국에 복속된 뒤 옛 이란의 서부 변경 지역(캅카스-아제르바이잔-구 메디아 일대)에서 이란계, 아르메니아계, 아랍계, 튀르크계 등이 뒤섞이며 단순한 이란계 종족이 아닌 독자적인 종족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 쿠르드인이다. 예컨대 가장 유명한 쿠르드인 중 하나인 살라딘의 조상들은 원래 아랍계 부족이었는데 아르메니아로 이주해 와서 살다가 점차 쿠르드화된 경우이다.
고유 종교로 야지디가 있는데, 예지드파, 야지드파라고도 불린다. 10세기경에 나타난 쿠르드족의 일신교 계통 야즈단파의 분파에다가 미트라교, 메소포타미아 전통, 기독교, 이슬람, 조로아스터 등의 종교를 섞어 만든 쿠르드족의 민족종교. 본인들은 최초의 일신교라고 주장하지만 다른 일신교들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종교이다.
현재는 이슬람에 밀려 극소수만 믿는다. 야지디 교인들은 조로아스터가 쿠르드인 성인으로, 유대교를 야지디를 베낀 종교로 주장하고 있으며, 나아가 기독교와 이슬람도 야지디에서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그들만의 주장으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특히 악마를 숭배하는 종교, 뱀을 숭배하는 종교라는 비난을 받으며 다른 종교로부터 숱한 배척과 탄압을 받아 왔다.
쿠르드족의 거주지는 중세부터 근대에 걸쳐 광대한 영토를 유지한 오스만 제국에 있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지고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서 만들어진 자의적인 국경선에 의해 터키, 이라크, 이란, 시리아, 아르메니아 등에 분단되었지만 길게 통일된 민족주의적인 세력이 흥하지 않았으며, 소수민족으로서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20세기가 되면서 문화적인 압력 의전으로 정치세력이 탄생해 큰 인구를 거느리는 터키와 이라크, 이란에서는 분리 독립을 요구하게 되었기 때문에 자주 박해를 받게 되었다. 특히, 주변국들이 쿠르드족의 독립을 절대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은 쿠르드족의 규모가 너무 크고 그들의 거주지가 하필이면 석유산지와 겹치는 곳이 많다는 이유도 크다. 뭐 수가 적고 별 이권이 없는 곳이라도 자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순순히 인정하는 나라 따위 없지만
4 차별과 갈등, 학살
덕분에 주변국에게 여러번 이용당하곤 버려지길 반복했다. 미국이 실컷 이용하고 이스라엘이 이란 견제를 위하여 쿠르드인 일부 단체와 교섭을 했으나 이걸 알아차린 이란 정부가 아주 끔찍하리만큼 이들 단체를 뭉개버렸다. 이 당시 쿠르드인을 공개 총살하던 사진이 퓰리처상까지 받았던 바 있다[1]
이스라엘은 이란 쿠르드인들에게 이렇게 하곤, 되려 터키 쿠르드인들을 뭉갤 때는 터키를 도왔다. 저항조직 PPK 리더 외잘란 체포에도 모사드가 정보를 제공했다는 게 정설일 지경.
아르메니아로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이다. 아르메니아에선 쿠르드인은 20만이 넘게 살고 있는데 이는 아르메니아 인구 10% 가까운 무시 못할 수이다. 하지만 아르메니아 항목을 참조하면 알 수 있듯이 아르메니아로선 주변 나라들과 복잡한 상황이라서 쿠르드인들 박대하다간 고달퍼진다. 게다가 터키 견제에 이들을 쓰자는 의견도 있고 1차대전 이후로 터키군, 전 오스만 제국군에게 학살당할 당시 쿠르드인들이 오스만 제국군과 같이 아르메니아인 학살에 끼어든 가해자인과 동시에 이들도 당시 같이 학살당한 피해자이기에 과거사를 따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참고로 쿠르드인 앞에서 윈스턴 처칠의 이름은 꺼내지 말란 말이 있다. 1918년 이후 이라크, 요르단 지역을 점령한 영국에게 저항하던 쿠르드인들을 독가스로 다 죽여버리란 명령을 내리며 쿠르드인은 벌레 같고 하찮다며 히틀러스런 모습을 보여준 게 처칠이었기 때문.[2] 당시 겨자가스가 부족해 독가스 학살은 벌어지지 않았으나 처칠이 가스 학살을 명령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며 영국군은 독가스를 쓰지 않았을 뿐, 쿠르드인들을 마구 학살해버렸다. 사망자 수는 최저 2천 명에서 수만여 명 정도로 추정되는데, 심지어 사담 후세인이 처칠이 하던 짓을 배웠다는 말까지 있으며 후세인이 자길 비난한 영국 언론에게 늬들이 존경하는 처칠은 뭐했나며 되려 비웃은 일도 있다. 당시 영국에서도 아이들까지 학살한 이 일로 비난이 많았고, 처칠의 정치 인생에선 갈리폴리 전투와 더불어 최고의 흑역사로 정적들에게 죽을 때까지 두고두고 까였다.
오죽하면 자신이 노벨 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던 처칠에게, 정적이던 프레스턴 의원이 대놓고 "독가스로 학살 명령을 내리고 아이들까지도 죽인 걸 평화에 기여했다고 하시면, 그건 히틀러도 평화에 기여했다는 헛소리일 텐데요"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처칠을 존경하는 영국인들도 쿠르드인 독가스 학살에 대하여 쉬쉬하기에 모르는 이들이 엄청 많다고 한다. 그리고 영국은 터키에 대하여 아르메니아 학살을 강력하게 따지지 못하는데 바로 이 쿠르드인 학살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터키를 비난하자면 이 학살 이후로 벌어진 쿠르드인 학살도 당연히 얽히기 때문.
터키에선 언어가 금지되고, 심지어 쿠르드 고유 이름을 짓는 것조차 금지되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웃기게도 그런 이름들 중 몇몇은 터키인들도 흔하게 쓰던 이름이라서 이 문제로 야당까지도 비꼰 적까지 있다. 그럼에도 이 조치는 1990년대까지 계속 이뤄져 왔다. 또한 1990년 초반, 동부 디야르바크르(Diyarbakır) 부근에서 터키어를 모르던 쿠르드인 노인 유목민이 터키군에게 말을 못 알아듣는다는 이유 하나로 총살당하던 일도 벌어졌다. 실제로 동부 쪽은 터키인보단 쿠르드인들이 더 많고 이들은 시골 생활을 하면서 터키어를 모르는 경우가 수두룩함에도 그런 유목민 노인을 다짜고짜 쏴죽인 일이었기에 터키 군부에서도 우려했다. 게다가 디야르바크르는 쿠르드인의 본거지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쿠르드 인구가 많은 곳이다! 이 도시 이름조차도 쿠르드어로 '도시'를 뜻하는 diyar와 '구리'를 뜻하는 터키어 bakır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이름이다(오스만어: diyâr-ı bakır). 고대 시대부터 질 좋은 구리가 생산되면서 구리세공업으로 유명했기 때문. 이 일은 터키 내 좌파들과 우익 일부도 되려 이런 마구잡이 총살은 쿠르드인들만 분노하게 만들고 터키의 국제적 입지만 타격을 준다고 반발했다. 결국 이런 비난 속에 가해자 군인이 8년 징역형을 살았고 직속 상관들도 강등 조치를 취했지만, 이 일로 쿠르드인들 과격파들을 응집하게 만들던 계기가 된 바 있다.
이렇게 일반적인 이미지는 비극의 민족으로 취급되고 있지만 사실 쿠르드족 역시 아르메니아 학살을 주도한 전력이 있다.[3] 또 학살을 주도하면서 더불어 학살도 당한 것도 쿠르드인들이다. 오스만 제국이 저지른 아르메니아 학살이 세계적으로 논란이 될 당시 쿠르드인들은 '우리는?'이라며 분노했었다. 이 당시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인 쿠르드인은 오랫동안 분열되면서 같은 쿠르드인들도 서로가 적이 되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터키 측은 당시 쿠르드인 학살에 대하여 역시 입을 다물지만 그 피해자 수는 아르메니아인에 미치지 못할지언정 최저 몇 만에서 최대 30만 정도로 추정하고 있기에 절대로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다만 쿠르드인들도 터키를 닦달하지 못하는 게 쿠르드인 중에도 학살자가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들도 아르메니아인들에게 당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아르메니아로써도 난감한 상황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나, 터키 극우들에게 살해 협박을 받아 프랑스로 가서 살다가 미국으로 이민가 대학교수가 되어 터키 인권 운동에 나서고 있는 오르한 파묵은 스위스 언론 인터뷰에서 "오스만 제국은 100만 아르메니아인들과 13만 쿠르드인들을 학살(파묵은 학살자 수를 최저와 최대 주장치에서 중간치로 이야기했다)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렇듯 당시 쿠르드인들도 배신할까봐 덩달아 학살당했다는 주장도 실제로 많다. 더불어 이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이 반강제였다든지, 식구들이 인질로 잡혀서 오스만 제국 민병대로서 학살을 벌여야 했다는 주장도 있을 정도! 하지만 정확한 사망자가 집계조차 안된 시리아인 기독교인 학살은 거의 묻혀졌다. 더불어 아랍인 무슬림들도 이 당시 오스만제국에 위협이 된다라고 하여 역시 상당수 학살되었음에도 묻혀졌다. 종교가 아니라 튀르크 민족주의에 어긋난다고 판단한 이들은 같은 무슬림이라도 뭉갰기 때문.
사실 쿠르드족을 터키, 아랍 민족과 구분해서 보기 시작한 건 20세기 이후의 일이기 때문이다. 오스만 제국 후기(1875년) 인구조사를 보면, 당시 프랑스 고문관들이 인구조사를 했는데, 제국 내 민족을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 무슬림으로 분류해놓고 있다. 당시 사람들에겐 무슬림이냐 아니냐가 중요했지 그들이 어떤 언어를 썼는지는 하등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쿠르드족의 근대 민족주의는 1930년대 이후 신생 터키공화국이 '터키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가운데 이에 대한 반발로 성장한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사실 모든 쿠르드어를 사용하는 쿠르드인들이 스스로를 '쿠르드' 정체성을 갖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쿠르드의 일파라 분류되는 자자인(Zaza)들은 자신들을 쿠르드랑 동급으로 묶는 것을 매우 불쾌해한다.[4] 이는 오래전부터 자자인들이 터키 내에 거주하는 쿠르드계 부족 중 가장 큰 부족인 쿠르만즈(Kurmancılar) 부족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해왔고 자자인들이 터키공화국에 호의적이기 때문이었다. 현재까지 터키 동부에 거주하는 쿠르드들은 대다수가 부족 사회에 속해있고 그들에게 중요한 건 부족적 정체성이지 근대 쿠르드 민족주의는 별로 와닿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주장이 또 지극히 터키 정부의 지배논리로 객관성이 완벽하게 결여된 소리라는 시각도 있다. 쿠르드인들끼리의 연대가 튼튼하든 그러지 못하든, 독립국가를 만든 경험이 있든 없든, 쿠르드인은 터키인과는 언어적으로 현저히 다른 데다가 인종적으로도 차이가 존재하며 그들 중 상당수가 터키의 지배가 아닌 자치나 독립을 원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므로 위의 논리는 궤변이라는 것. 정말 대부분의 쿠르드인이게 민족주의는 별로 와닿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자치, 독립 운동은 외계인이 꾸미는 일이며 이라크의 쿠르드족 자치구는 상상 속의 나라란 말인가? 이라크의 쿠르드족 자치구는 이라크 정부의 배려가 아니라 쿠르드인의 투쟁의 결과물이었다는 것 또한 주목할 만하다. 멀리 이라크까지 갈 필요 없이 터키만 해도 학캬리나 디야르바크르 같은 동남부의 쿠르드인 밀집 지역에서는 선거 때마다 쿠르드계 정당이 70-80% 이상의 몰표를 받는다. 물론 일부 쿠르드인들은 독립이나 자치를 반대하며 터키에 섞이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제국주의하 식민지에서도 있었다. 또한 일단 외세의 지배를 받은 나라들이 노선에 따라 분열하는 것은 쿠르드족만의 현상도 아니다. 당장 한국만 해도 2개로 분열되었으며, 중국 또한 2개 이상의 국가로 분열되었다. 네덜란드어권 또한 종교에 따라 벨기에의 플랑드르와 네덜란드로 분열되었다. 그렇다고 위의 나라들의 독립에 정당성이 없는 것이 아니기에 쿠르드족의 노선에 따른 분열과 독립 정당성은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5 분열
현재까지도 내부적으로도 세력 분열을 거듭하고 있다. 애초에 단 한 번도 통일된 공동체를 가져본 적이 없다. 터키에서도 극렬 독립파인 PKK나 반대로 자치를 주장하는 KDP 같은 단체(터키 지지를 받아서 여기가 무장이 꽤 잘 되어있다)로 나뉘어 자기들끼리 죽어라 싸웠다. 가령 1923년 터키공화국 건국 이후 터키 정부의 세속화 정책에 반발한 남동부지역의 쿠르드 부족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들을 진압한 것은 터키군보다 이웃인 다른 쿠르드 부족이 많았다. 게다가 이 PKK를 이끌던 압둘라 외잘란(Abdullah Öcalan)조차도 오랫동안 따로 살다보니 아주 남남이 되었다면서 이라크 내 쿠르드인들과 생각도 달라졌다고 할 정도이다. 즉 다른 지역 쿠르드인들과 문화적, 지역적 갈등까지 생겨버렸다. 당연히 이라크 및 여러 지역 사막에 살던 쿠르드인들이나 이란 서북쪽 서늘한 산지에서 주로 살던 쿠르드인들, 터키나 시리아 여러 도시에 살던 쿠르드인들더러 갑자기 만나서 우리 뭉치자(...) 이러면 대체 어디서 살자는 말인가?
게다가 1980-1988년에 벌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란은 이라크 쿠르드족을, 이라크는 이란의 쿠르드족을 지원해 서로 갈등 관계에 빠지게 되었고, 사담 후세인의 묵인하에 터키가 이라크 쿠르드 거주 지역에서 군사 작전(PKK 소탕작전)을 수행하게 되자 이라크 쿠르드족은 터키군에 적극 협력해 터키 쿠르드족 극렬 독립파인 PKK를 공격해서 이란 쿠르드-이라크 쿠르드-터키 쿠르드의 반목이 상당히 심하다.
이와 같은 복잡한 쿠르드족 내부 갈등은 처음 쿠르드족 문제를 접하는 일반인들에게 엄청난 혼란을 가져와 쿠르드족 독립운동을 어렵게 하는 것 외에 일반인의 쿠르드족 문제 이해를 더욱 어렵고 난해하게 만들고 있다. 쿠르드족 내부의 분열 문제를 모르면 '탄압받는 쿠르드인이 불쌍하다', '쿠르드인들은 왜 멍청하게 통일전선을 결성해 효과적인 해방운동을 벌이지 못하는 것일까?' 등 극히 피상적인 면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최근의 예를 들자면 이라크 쿠르드족은 자치정부를 수립해 독자적으로 발전해나가고 있지만, 이 발전이 다른 나라의 쿠르드족에게 전혀 도움이 되고 있지 않다. 이 현상조차 쿠르드족 내부의 분열을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단지 '그들은 불쌍한 민족'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이슬람이 쿠르드의 고유 종교인 예지디교(또는 야지디)를 이단시하며 핍박하여 이들을 증오하고있고, 인구 상당수가(전 인구 90% 정도) 이슬람을 믿고 있어 소수 예지디교 신도와 화합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 종교적인 갈등이 상당하다.
이렇듯 단지 박해받는 소수민족이라는 하나의 시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사실 '소수종교 박해'와 '자신들끼리의 분열', '독립국가를 가져본 적이 없음'은 팔레스타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지만, 무조건적인 동정과 지지를 받는 팔레스타인과 달리 쿠르드족의 경우엔 거의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테러리스트 취급까지 당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자주 일어난다. 이는 아무래도 팔레스타인보다는 강한 세력권을 지녔고, 팔레스타인처럼 허구한 날 이웃 강국에게 핍박받는 입장인 것만은 아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5]
그러나 2014년부터는 혜성처럼 등장한 악당들과의 전쟁에서 쿠르드족이 최전선에 서게 되면서 분열 양상은 옛날보다는 가라앉은 상황이다. 역시 조직의 단결을 위해서는 외부의 적이 필수라는 건가?
6 국제정세와 쿠르드족
현재까지도 중동 문제의 핵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여러 나라는 쿠르드족 독립을 인정하려고 들지 않지만 이라크전에서 미국이 그들에게 약속한 자치구 덕분에 미국을 믿고 쿠르드 자치정부와 석유 계약을 맺었더니 정작 이라크 본국에서 계약을 안 맺어주더라 하는 중국과 대만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또 그나마 친미적인 터키에서 미국이 눈 가리고 있는 사이에 쿠르드족 자치구를 침공해서 깽판을 벌이는 등 이스라엘, 그리고 쿠르드족의 새로운 원수로 떠오른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과 함께 중동의 세 가지 태풍의 눈.
미국 National Intelligence council은 보고서에서 2030년까지 이라크와 시리아의 쿠르드족이 독립하여 나라를 세울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하였다. 이라크와 시리아는 정치가 불안정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리아에서 시리아 민주화 운동에 이어 시리아 내전이 일어나자 시리아 내전의 여파로 수니파는 터키 접경지역 및 동남부 사막지대를, 시아파 정부군이 수도를 비롯한 남부 지역을 장악한 과정 속에서 쿠르드족이 북동부의 사막지대를 점령하고 자치권을 확립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물론 자치권 자체는 별로 문제가 안 될 수 있지만, 시리아의 정황상 국가 분열의 상황으로 흘러가지 말라는 보장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쿠르드족에게 국가가 생기는, 그것도 이라크, 터키 등 쿠르드족 접경지역을 아우르는 나라가 생기는 것이다. 그 위치가 서남쪽이 시리아, 북쪽이 터키이며, 동쪽이 이라크이다. 이렇게 되면, 영토의 작음, 큼의 여부를 떠나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이 생기는 상황이 빚어지는 결과를 초래하며, 터키, 이라크 등 쿠르드족이 어느 정도의 비율을 차지하면서도 좋지 못한 관계를 맺은 나라에서는 입 안의 가시가 새롭게 생기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에 따라서 주변 나라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고, 터키는 적극적인 개입마저도 고려하는 중이다. 자세한 과정과 전망은 시리아 민주화 운동 참조. 문제는 터키의 쿠르드족은 물론이고 아프가니스탄의 쿠르드 자치구에서 시리아의 쿠르드족의 자치권 확립에 대해 껄끄러운 입장을 보여, 쿠르드족의 통일 국가 수립은 요원해 보였다.
그러나 이미 미승인국의 지경에 이른 수니파 반군 이슬람 국가가 이라크 수니파 지역으로 진격하여 자기들의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이라크 정부군이 패퇴하자, 이라크 쿠르드족이 군대를 결성해 쿠르드 지역을 지키고 있어, 경우에 따라 분리 독립을 해야 쿠르드족을 지킬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하고 있어 시리아 쿠르드족과 이라크 쿠르드족이 통일국가를 세울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라크 내전 항목을 봐도 알겠지만 막장인 이라크 정부군이나 역시 막장인 이슬람 국가보다 오히려 무장 수준이나 장비 수준이 월등할 정도. 과연 쿠르드족들의 수백년 염원인 '쿠르디스탄/쿠르드 국가'를 건국할 수 있을지... 그러나 시리아령 쿠르디스탄과의 연합에는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면서 이라크 쿠르드족은 양 쿠르디스탄 지역을 잇는 요충지인 라비아 마을을 빼앗기는 등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민족주의 자체는 공유하더라도 일반적인 의회를 갖춘 자유 민주주의 독립 민족 국가 노선을 추구하는 이라크의 쿠르드 자치구와, 처음에는 공산주의, 최근에는 아나키즘을 비롯한 좌익 투쟁 이론을 대대적으로 받아 들였으며, 시리아 민주군을 통해 비-쿠르드계 반지하디스트, 반 아사드 조직들과도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터키, 시리아의 PKK-YPG 노선 간의 이데올로기 차이도 뚜렷하다.
한편 미국 등의 국제사회는 이라크 내의 이슬람국가 IS군에 대한 공습에 들어갔고 미국은 9월 말 결국 시리아에도 공습을 확대했다. 시리아 쪽의 쿠르드족 밀집 거주지로 시리아 내 쿠르드족이 지배하는 영역은 서쪽부터 아프린과 코바니, 하사카 세 개가 떨어져 있다. 이 중 하사카는 시리아와 이라크령 쿠르드 지역의 경계에 있어서 IS군으로부터 전투 중이긴 하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편이지만, 정가운데에 있는 코바니에 9월달부터 이슬람국가군이 공격에 나섰다. 결국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에 쿠르드족 주민 수십만 명이 터키로 피난을 떠났다. 미국이 시리아 쿠르드족을 돕기 위해 코바니 인근 지역에도 공습을 가하기 시작했지만 지상의 시리아 쿠르드족군과 손발이 맞지 않아 이대로라면 10월 초순이 끝날 때까지 IS군이 코바니를 장악하는 게 확실시되는 상황. 코바니 인근 마을을 IS가 점령한 지 얼마 안돼 그 마을의 시리아 쿠르드족 민간인들을 IS가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코바니가 장악되면 피난 가지 못한 주민 수만 명이 대량학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이젠 시리아에서 피난 간 쿠르드족 때문에 터키는 쿠르드족 분리주의가 고양될 것을 우려하고 있지만 이제 코바니를 근거로 IS가 터키를 침공할 판이라 터키도 시리아의 쿠르드족을 받아주긴 하고 있다 그러나 터키 정부는 시리아의 쿠르드족을 지원하러 자원한 터키의 쿠르드족이 시리아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도 하는 상황. 일단 터키 의회는 10월 2일자로 IS에 대한 군사 공격을 승인했다.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의 건국자 오스만 1세의 할아버지 슐레이만 샤의 묘소가 유프라테스 강가에 있는 터키의 월경지인데 이곳을 IS가 파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0월 5일을 기준으로 IS에 군사대응 방침은 밝혔지만 어떻게 대응할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한편 이 상황에서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라비아를 되찾는 등 선전하고 있다.
2015년 6월에 IS 라카와 터키 사이의 길을 차단하고 코바니를 동부의 시리아 쿠르드족 지배 지역과 연결하는데 성공하면서 독립국가의 꿈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특이하게 이슬람국가군 포로들을 학대하지 않고 제대로 대우해준다. 물론 IS라는 입장상 그렇게 좋진 않겠지만,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나 시리아군, 자유 시리아군 등 시리아 반군들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명분으로 무조건 죽이거나 가혹하게 학대하는 것과는 다르게 어느정도 국제 사회 눈치를 보며 제네바 협약을 지키고 있다. 그래서 국제사회는 터키나 이란 같은 나라들을 빼면 쿠르드 반군에 대해선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7 터키와 쿠르드족
최근 들어 터키 내에서 쿠르드족의 처우는 점차 개선되는 추세이다. 국영방송 TRT에서 TRT 6채널을 만들어 TV와 라디오로 쿠르드어로 방송을 내보내기 시작했으며 과거에는 판매가 금지되었던 쿠르드어 교재들도 서점에 등장했다. TRT에서는 TRT AVAZ라는 채널에서 중앙아시아 튀르크 민족들의 언어로 된 방송을 내보내는데, 아제르바이잔어, 카자흐어, 우즈베크어, 투르크멘어, 위구르어 방송을 번갈아가면서 내보낸다. 마찬가지로 TRT 6에서도 시간대에 따라 쿠르만즈어, 자자어, 소라니어로 분류해서 방송한다. 쿠르드어 노래도 시중에서 흔히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인식은 so, so... 동남부 지역에 거주하는 터키인들은 상당수가 가까운 일가가 쿠르드 노동자당과 정부군 사이의 교전에서 희생된 일이 있기 때문에 쿠르드인 전체를 가족의 원수로 여기는 경향도 여전하며 PPK 리더 외잘란이 잡힐 당시 여기 독립 저항-터키에겐 테러-로 죽은 군경찰 및 공무원 유족들이 모여들어서 '외잘란을 처형시켜라!' 라며 울부짖었을 정도이다.
참고로 1927년 쿠르드인들이 아라라트 공화국이란 작은 나라를 3년이나마 세운 적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여파와 터키 공화국 건국 이후로 반발하던 세력 정리 및 당시 소련을 신경 쓰느라 터키가 미처 관심을 두지 못한 틈을 타서 3년동안 유지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아라라트산 주변에서 건국(?)이 이뤄졌기에 이곳을 성지로 여긴 아르메니아인들과 전투를 벌였다. 결국 이 와중에 5천이 넘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죽기도 했기에 아르메니아와 갈등을 빚었었다. 이 때문에 쿠르드인들이 독립한다면 아르메니아와 또 죽어라 전쟁을 벌일 게 뻔하기에, 쿠르드인 독립 문제를 두고 아르메니아도 반대하고 있다. 게다가 아라라트 공화국을 뭉개던 터키군에 쿠르드인들도 대거 있기에 여기서도 서로 죽고 죽이는 비극이 재현되었다.
1941년에는 이란에서도 모하바드 공화국이란 쿠르드족 독립국가가 세워졌지만 역시 이란에게 철저하게 공격받아 결국 1947년 소멸했다.
게다가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터키의 동부 댐 공사로 인하여 쿠르드족이 주로 사는 지역이 수몰되면서 친터키적인 쿠르드족까지도 반발하고 있다. 터키 내 환경보호 단체들도 결사반대하여 쿠르드족과 같이 공사현장을 뒤엎고 몸으로 막으며 반발하고 있는데, 터키가 기획하고 있는 거대한 댐들이 세워지면 디야르바크르, 하산케이프 같은 쿠르드족이 엄청 많이 사는 곳이 수몰되며 아니를 비롯한 옛 아르메니아 왕조들의 수도 등도 물에 잠기게 된다. 때문에 아르메니아에서도 같이 반발하고 있어서 이 문제에서 쿠르드족과 아르메니아가 힘을 합치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이 지역에 가득한 문화재들이 수몰된다고 하여 터키나 국제사회에서도 반대가 많다.
2011년 10월에 터키군 초소를 급습하여 24명이 목숨을 잃었고, 터키측은 이 보복으로 2011년 12월 28일 (터키 측 발표에 의하면) 쿠르드 반군을 폭격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쿠르드 측은 사망자가 대부분 민간인이라고 반발했고 급기야 주지사마저도 현지 성명으로 밀매업을 하던 젊은이들로 반군과 무관하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결국 여당 대표마저도 민간인이라고 인정하고 말았다.
2014년 이라크 내전이 터지면서 이라크 쿠르디스탄 자치정부군 페슈메르가 무장 수준이 상당히 강력해지고 쿠르디스탄이 보유한 석유를 터키를 통해 판매하면서 터키도 무턱대고 이라크 쿠르디스탄을 반대할 수 없게 되었다. 석유 에너지 공급처로서 터키를 거슬러가면 터키에게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라크 내 쿠르디스탄에 한해서만은 터키가 협조할 뜻을 비칠 뿐, 터키 내 쿠르디스탄은 역시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평균적으로 쿠르드인의 경우 터키인보다 아이를 1명 이상 더 낳으며, 터키인의 경우 대체출산율(2.1명) 아래로 출산율이 떨어진 데 반해 쿠르드인은 높은 출산율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으므로, 세대가 지날수록 지금도 적지 않은 쿠르드인의 비중이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경향은 터키 동부 쿠르드족 거주지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도시화가 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꾸준하게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터키 정부도 이에 대해 위협을 느끼고 있어서 '여성은 아이를 3명은 낳아야 한다'느니 하는 소리를 하는 중. 실업률이나 낮추지? 쿠르드족 일각에서는 '어차피 터키 전체가 조만간 쿠르디스탄이 될 텐데 뭐 하러 독립운동 따위를 해서 앙카라나 코니아,이스탄불 같은 비옥한 도시를 버리겠냐'며 독립운동을 하지 말자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참고로 이거 오스만제국 당시 독립 직전의 그리스에서도 나온 소리였다(....)
7.1 한국전쟁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에 파견됐던 터키군 병력에 상당수의 쿠르드인들이 섞여있었다고 한다. 쿠르드인들의 주장에 따르면 60% 정도. 이들 대부분은 터키어도 할 줄 몰랐기에 징집된 직후도 아니고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터키어를 배웠단다. 참전용사 인터뷰.
8 이라크의 쿠르드 족
사담 후세인 시절 쿠르드족이 공격을 받고 독가스 학살을 당하면서, 이 지역에는 비행금지구역이 설치되었고 쿠르드족은 이라크 북서쪽 3개주에 걸쳐서 자치권을 얻게 되었다. 쿠르드족 자치구는 민병대 수준이기는 하지만 페쉬메르가라는 독자적인 전투부대도 보유하게 되었다. 이라크 전쟁에서 후세인 정권을 공격하는 미국에 협력하기도 하였다.
이라크가 워낙 막장이다보니, 비교적 치안이 유지되어 안전한 편에 속하는 쿠르드족 지역은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어 있다. 2010년대 통계에 따르면 쿠르드족 자치구는 이라크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부유한 지역이다. 수도는 아르빌로서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시 주둔하던 지역이다.
북서부 유전지대에서의 원유수입으로 경제적 이득도 많이 얻었으며 이는 주로 IS와의 전쟁으로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악화된 틈을 타서 이루어졌으니 사실상 이라크 내전의 최대 수혜집단.
쿠르드라면 이를 가는 터키와의 관계도 나쁘지 않다 강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현명함 . 터키를 통해서 자체적으로 원유 거래를 하여 서로 막대한 이득을 얻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터키나 시리아의 다른 쿠르드 집단과의 관계는 반대로 소원한편. 유명한 코바니에서 시리아 쿠르드족들이 IS에 포위되어 고생할때도 거의 안도와줬다고 한다.
9 무장집단
9.1 쿠르드노동자당(PKK) - 터키
해당 문서 참조.
9.2 쿠르드자유인생당(PJAK) - 이란
PJAK 대원들
이란과 터키, 동부 이라크를 근거지로 삼는 이란계 쿠르드 테러단체 겸 독립단체. 쿠르드노동자당의 분파로, 이들은 이란 내에서의 쿠르디스탄의 건국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민간인에 대한 테러를 일삼아대어 터키와 이란, 미국에게 테러단체로 지정되어있다. 단, 이란은 PJAK이 비밀리에 미국과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미국과 이스라엘은 쿠르드와 관련없다고 주장하며 쿠르드 역시 우리도 그들과 거래안한다며 부정한다. 하지만 애초부터 이란과 적대한것은 아니고 자치를 요구하다 밉보여 팔레비 왕조 때부터 심한 차별과 탄압을 받아왔다. 그러다보니 쿠르드인들은 팔레비 왕조를 증오했고 이슬람 혁명 때 팔레비 왕조 타도에 이슬람 신정 정부를 지지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이란의 이슬람 정부도 팔레비 왕조와 다를거 없는 탄압을 했고 오히려 더 심했다. 그러다보니 쿠르드인들의 불만이 폭발하여 이때부터 쿠르드자유인생당(PJAK)가 탄생해 대이란 투쟁에 들어갔다. PJAK는 게릴라전으로 이란을 심하게 괴롭혀서 이란은 제대로 제압도 못하고 골치였다. 그래서 이란은 쿠르드 때문에 같이 골치아파하던 터키와 동맹을 맺고 PJAK를 제대로 털어버렸다.[6] 이란-터키 연합군의 공격에 큰 타격을 입은 PJAK는 2008년에 이란과 전투를 중단하겠다고 하여 휴전협상을 제시했고 내부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하고 싶었던 이란 정부는 협상을 받아들여 한동안 평화가 유지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2016년에도 크고 작은 충돌이 벌어지긴 했지만 격렬한 수준은 아니라 이란 당국도 완전히 뭉개버리려는 수준으론 안나오고 있다.
9.3 인민수비대(YPG) - 시리아
해당 문서 참조.
9.4 페쉬메르가(Peshmerga) - 이라크
해당 문서 참조.
10 문화
오랜 기간 터키인들과 공존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사실상 문화적으로는 터키인과 전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닮았다. 물론 이 지역으로 이주한 터키인들이 더 이전부터 거주하고 있던 쿠르드족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가령 남동부 아나톨리아에 남아있는 전통 문화 중에 남성이 머리에 두르는 수건인 푸시(Puşi)도 원래 쿠르드족의 풍습이며, 이쪽 지방에서 전통적으로 입는 품 넓은 바지인 샬바르도 원래 쿠르드 옷이다. 이 지방의 민속춤인 할라이(halay)도 쿠르드족의 민속춤.
쿠르드족이 많이 거주하는 남동부 아나톨리아의 터키어 방언에도 쿠르드어의 영향이 짙게 남아있다. 가령 가지안텝 사투리로는 와이셔츠와 같은 종류의 상의를 mintan이라고 부르는데, 쿠르드어와 동일한 어휘이다(터키 표준어는 gömlek). 또한 이 지방에서 온 사람들을 놀릴 때 쓰는 어휘인 gundî(군디)도 쿠르드어로 '촌놈'이란 뜻에서 온 말.
머리에 푸시를 두르고, 민탄과 샬바르를 입은 쿠르드인의 모습.
한때 푸시는 촌놈들의 상징으로 여겨질 만큼 대접이 안 좋았지만 2010년 이후 터키에서 남녀 안 가리고 스카프 용도로 두르고 다니는 게 유행이 되면서 다시금 여기저기서 볼 수 있게 되었다.
11 국가
쿠르디스탄 국가인 "수호자여!(Ey Reqîb 에이 레키브)"다.
1절 Ey reqîb her maye qewmê Kurdî ziman Naşike u danaye topên zeman 후렴 Kes neben Kurd dimirin, kurd jin diven Jin dive qet nakeve, Ala Kurdan 2절 Em xortên Medya u Keyxusrewin Seyr bike xwîna diyan me da rijan 후렴 3절 Em xortên renge sor u şorişin De xwin nexşîn bikin taca cihan 후렴 4절 Lawên Kurd rabûne ser pêyan wek şêran Dîn iman u ayin îman Kurd u Kurdistan 후렴 5절 Lawên Kurd tev hazir u amadene Can fidane can fida tev can fida 후렴 1절 오! 적군이여, 우리의 언어가 쿠르드의 국가가 살아있음을 말했도다. 그것이 어떤 무기에도 패배하지 않으리라고. 후렴 누가 쿠르드 족이 죽었다고 말하게 될지라도 쿠르드족은 살고 있으리라. 결코 그들의 용기는 나약해지지 않으리라. 2절 우리는 혁명 때 흘린 피의 아들이리라. 우리의 역사는 피로 가득차 있도다. 3절 우리는 메데스와 케이호스로우의 아들이리라. 우리의 조국은 신뢰와 신앙의 땅이로다. 4절 쿠르드족 어린이가 일어나면 귀족 군대가 일어난 것과 같도다. 피로 삶의 왕관을 그리거라. 5절 쿠르드족 어린이는 스스로의 목숨을 바치리라. 몸을 희생하랴, 몸을 희생하랴. |
12 기타
기동전사 건담 00의 크루지스는 쿠르드족 자치구가 모티브이며 주인공인 세츠나 F. 세이에이 역시 쿠르드족 출신이다. 굳이 따지면 현 이라크의 쿠르드족 자치구나 이란 지역의 쿠르드족 출신, 극중 아자디스탄이 현실의 이란과 대응하기 때문에 이란 쪽 쿠르드족이라고 보는 게 맞을 듯. '아자디'라는 단어 역시 쿠르드어로 자유, 해방(liberty)을 뜻한다.
끝으로 이브라힘 타틀르세스가 쿠르드어로 부른 노래 '솀맘메(Şemmamme)'를 첨부한다. 밑에 가사도 추가했다. 병풍으로 쿠르드족의 전통 춤이기도 한 솀맘(Şemmam)[7]과 이보 특유의 수건 흔들기 춤(...)에 주목하시라.
Şemmamê Şemmamê Şemmamê bûkê Dotmamê dotmamê dotmamê bûkê Wî wî wî … Şemmo Qurbana te me, Şemmo Tu nûrê nûran î Şemmamê bûkê Tu berf û baran î dotmamê bûkê Şemmamê tu bi xêr hatî Şemmamê bûkê Tu bûkê bûkanî dotmamê bûkê Ez te pır hez dikim Şemmamê bûkê Tu nayê ez çi bikim dotmamê bûkê Tu dibê xorto bigirî Şemmamê bûkê Eyb e, fedî dikim dotmamê bûkê Şemmamê pir zer e Şemmamê bûkê Ẍezalê dûr merre dotmamê bûkê Carek te ramîsim Şemmamê bûkê Xorto birîndar e dotmamê bûkê 솀맘에, 솀맘에, 솀맘에 들어와 삼촌 딸도, 삼촌 딸도, 삼촌 딸도 들어와 이것은 이것은 이것은... 솀맘 너를 위해 모든 것을 다 희생하지 솀맘 (후렴) 너는 빛 중의 빛 솀맘에 들어와 너는 눈과 비 삼촌 딸도 들어와 솀맘에 온 것을 환영해 솀맘에 들어와 너는 신부들 중에서 신부야 삼촌 딸도 들어와 너를 정말로 사랑해 솀맘에 들어와 네가 오지 않으면 난 무엇을 해야 할까? 삼촌 딸도 들어와 너는 말하지, 아이가 울고 있다고 솀맘에 들어와 망신스러운 일이야, 망신스러워. 삼촌 딸도 들어와 솀맘에 아주 빠져들었구나 솀맘에 들어와 가젤아 멀리 가지 마라 삼촌 딸도 들어와 내가 다시 한 번 키스해줄 테니 솀맘에 들어와 아이가 다쳤다네 삼촌 딸도 들어와 |
또한 2010년에 이브라힘 타틀르세스는 터키인과 쿠르드인 사이의 평화를 주제로 한 노래 '우리는 터키인, 우리는 쿠르드인(Biz türküz Biz kürdüz)'을 불렀다. 후렴구가 무척 인상적인 노래.
Biz Türküz biz Kürdüz yoktur farkımız Alevi Sünniyiz olmaz gayrımız Biz Lazız Çerkeziz nedir farkımız Yıllardır söyleriz budur şarkımız 우리는 터키인, 우리는 쿠르드인 우리는 다를 것이 없어요 알레비파도, 수니파도 이제부턴 구분하지 말아요 우리는 라즈인, 체르케즈인 무엇이 다른지요 오랜 세월동안 노래합시다. 이 노래를 |
13 유명한 쿠르드인
- 살라흐 앗 딘 : 흔히 살라딘으로 알려진 아이유브 왕조의 창시자.
- 이스멧 이뇌뉘(İsmet İnönü) : 터키의 대통령이자 총리
- 투르굿 외잘(Turgut Özal) : 터키의 총리
- 이브라힘 타틀르세스(İbrahim Tatlıses) : 터키의 음악가
- 헬란 압둘라 (Helan Abdullah) : 이란 출신 미국 여가수. 예명은 Helly Luv.
- 마흐무드 다후드 (Mahmoud Dahoud) : 독일의 축구선수
- ↑ 촬영자는 이름도 정체를 철저하게 숨겼는데 26년이나 지난 2006년 이란인 자한지르 라즈미로 밝혀졌다. 관련기사
- ↑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처칠은 분명한 인종차별주의자다!
- ↑ 하지만 어느 집단에나 배신자는 있기 마련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파들이 조선인에 대한 일제의 학살을 도왔다지만 그렇다고 조선인 전체가 가해자가 되는 건 아니다.
- ↑ 다만 언어학적으로 자자인들의 언어는 일반적인 쿠르드인들의 언어와는 계통상 구분된다. 자자인들을 두고 쿠르드 정체성을 논하는 것은 너무 예외적인 사례를 드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계통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쿠르드'로 묶인다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도 있다.
- ↑ 역으로 말하면 국제사회에서는 완전 약소국이 아닌 다음에야 제대로 된 자위권을 지닌 세력이 일방적인 동정과 지지를 받기만은 어렵다는 걸 뜻하기도 한다.
뒤집어 말하면 국제사회의 동정 따위 실질적으로는 별 쓸모가 없는 걸지도이러니 마키아벨리즘이 판치지 - ↑ 참고로 이란과 터키는 서로 원수로 여길 정도로 적대적이다. 이렇게 더러운 관계임에도 동맹을 맺고 공격할 정도면 쿠르드 문제가 굉장히 심각했다.
- ↑ 영상에서 볼 수 있지만 굉장히 격렬한 동작을 요구하는 춤으로 터키 남동부지방의 전통춤 할라이(Halay)의 한 종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