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스 1세

1571년 1월 27일 ~ 1629년 1월 19일
이란 사파비 왕조의 5대 .

아바스의 할아버지이자 2대 샤였던 타흐마스프 1세가 죽은후 아바스 1세가 왕위를 이어받을 때까지 이때의 사파비 왕조는 사실상 키질바시 부족 연맹체 사이의 내분으로 점철된 기간이었다. 키질바시 부족 연맹체는 사파비 왕가를 권좌에 올려놓았고 사파비 왕국이 오늘날의 이란에 비슷한 영토를 차지하도록 기여하였지만 내란이 일어나자 오스만 제국과 우즈베크 족이 사파비 왕국의 영토를 넘보고 있었다. 이때 아바스는 아버지인 무함마드 호다반다가 눈이 보이지 않게 되어 통치에 어려움이 있자 1587년 아버지를 폐위시키고 16세에 왕이 되었다. 그는 왕이 된 후세 가지의 군제 개혁을 단행했다. 첫째로 기존의 키질바시 부족 연맹체와 그 수장들 중 충성심이 의심스러운 자들을 숙청하였다. 두번째로는 그동안 정치,군사적으로 소외되었던 키질바시 부족 연맹체 이외의 구성원들을 하위 씨족이나 종속 부족으로 삼아 포용했다.[1] 마지막으로는 그동안 중용하지 않았던 굴람(노예)부대를 주목해 그들을 주목했다.[2] 또한 아바스는 정치적 감각또한 뛰어났다. 그는 경우에 따라 외교력과 군사력을 적절히 활용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성과로 1622년 영국의 도움으로 오르무즈(호르무즈)를 점령한 데서 알수 있듯이 서양 열강들과도 기꺼이 협력했고 더불어 그들 사이의 알력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 결과 아바스 왕조는 우즈베크 족과 싸워 헤라트와 베셋을 탈취하였고 오스만 제국과 싸워 아제르바이잔과 쿠르디스탄과 바그다드를 회복하였고 포르투갈과 싸운 끝에 바레인,호르무즈 해역,반다르곰브룬을 되찾았다. 또한 수도를 카즈빈에서 이스파한으로 옮기고 각지에 도로, 다리, 대상숙(隊商宿)을 건설하여 이란의 경제 발전에 노력한 점이 많았다. 그가 수도를 정한 이스파한은 그의 치세 아래 놀라운 발전을 이룩하였다.
  1. 쿠르드족 ,루리족, 차가타이 투르크족 등등
  2. 키질바시 부족 연맹체 이외의 부족 출신 지원병,개종한 그루지아인, 체르케스인,아르메니아 인등이 이에 속한 소규모 부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