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내 마음은 함부르크, 내 피는 유대, 내 정신은 피렌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Abraham Moritz Warburg[1]
1886.07.13 - 1929.10.26
독일의 문화사학자이자 미술사학자.
미술사에서는 도상학의 시작을 알린 인물이지만, 어째 에르빈 파노프스키에 비하면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쇼미더머니와 탁월한 지성이 결합했을 때, 엄청난 파급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 인물이기도 하다.
2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남자
아비 바르부르크는 독일 함부르크의 유대인 은행가 가문인 바르부르크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조상은 17세기에 이탈리아에서 독일로 이주해온 인물로 '바르부르크'라는 성은 그의 조상이 처음 정착했던 노르드라인베스트팔렌 주의 마을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18세기에 바르부르크 가문은 함부르크 인근의 알토나(Altona)[2]로 이주했고, 바르부르크 은행[3]을 설립한 바 있다. 이런 바르부르크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은행가로서의 부유한 삶이 보장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정작 아비 바르부르크 본인은 문학과 역사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본 대학교에서 종교사학자 스테판 우센어와 문화사학자 칼 람프레히트, 그리고 미술사학자 칼 유스티의 강의를 들었고 뮌헨과 스트라스부르에서 학업을 지속했다. 그의 관심사는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인문학에 접목하는 것이었고,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영향을 통해 르네상스 미술을 연구하는 활동을 계속해나갔다.
물론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부유한 집안을 등에 업고 연구에 전념하는 보통의 유대인 학자였겠지만......
3 쇼미더머니!!!
아비 바르부르크는 연구활동에만 머무르지 않고, 자신이 수집한 온갖 종류의 문헌들을 보관하고 계속해서 수집해나가면서, 동시에 젊고 유망한 학자들을 한 자리에 모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래서 둘째동생 막스 바르부르크를 찾아가 장자상속권을 포기하는 댓가로 자신의 프로젝트에 돈을 댈 것을 제안하여, 바르부르크 문화학도서관(Warburg Kulturwissenschaftliche Bibliothek[4])을 건립하는데 이것이 바르부르크 연구소의 시작이었다.
도서관을 설립한 후, 아비 바르부르크는 장서수집과 함께 도서관을 관리하고 연구에 종사할 학자들을 긁어모으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바르부르크 도서관에 들어온 학자로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노예 프리츠 작슬[5]과 철학자 에른스트 카시러, 그리고 에르빈 파노프스키가 대표적이었고, 훗날 언스트 곰브리치 역시 이 도서관의 일원으로 합류한다.[6] 이게 뭐가 대단한 일이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아비 바르부르크는 어디에 소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학자를 추구했기 때문에 대학에서 일하지 않았을 뿐더러, 도서관을 만들면서 자신의 사재[7]로 도서관을 설립한 것이다. 장서의 수집 뿐만 아니라 연구원들의 생계(..)도 자신이 책임졌다는 소리다. 게다가 이 도서관을 만들 당시 바르부르크의 나이는 26살(...)
4 영향
아비 바르부르크가 활동하던 시기의 미술사는 전근대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던 학문이었다. 그러니까 지오르지오 바사리 시대에서 이루어졌던, 단순한 형태의 문헌연구+박물학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는 거다. 바르부르크와 동시대의 살았던 하인리히 뵐플린이 '양식분석'이라는 독자적인 방법론을 만들어냈다면, 바르부르크는 도상학이라는 방법론을 만들어냈고, 이 두 방법론은 근대적인 학문으로서의 미술사를 정립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바르부르크가 설립한 바르부르크 연구소의 모체였던 바르부르크 도서관은 런던으로 옮겨가서도 활발하게 연구활동을 지속해나갔으며, 미술사학의 변방이었던 영국이 미술사학계에서 큰 힘을 얻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윌리엄 터너 등 일부 화가들만 유럽에 알려졌을 뿐, 유럽 미술사에서 큰 비중 없던 영국의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연구하면서 '연구할만한 대상'으로 바라본 것도 바르부르크 도서관과 함께 이주한 독일계 학자들이었다.[8]- ↑ Aby라는 이름은 Abraham의 애칭이다.
- ↑ 지금은 함부르크 시에 병합 되어 있다.
- ↑ 현재도 함부르크를 근거지로 영업중이다.
- ↑ 독일어 Kulturwissenschaft는 과학으로서의 인문학을 지칭하는 용어지만, 이상하게 한국에서는 '문화학'이라는 새로운 학제를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되곤 한다. 영미권에서는 Human Science로 번역하고, 일본에서는 문화학이라고 번역한다. 아무래도 일본의 번역어를 그대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 ↑ 고령에 몸이 좋지 않던 바르부르크 대신에 도서관의 살림살이를 책임졌던 인물이다. 훗날 바르부르크 도서관을 함부르크 대학의 부속기관으로 만들었고, 1933년 나치의 등장과 함께 도서관을 런던으로 옮기는 것을 주도했다.
- ↑ 곰브리치가 합류한 것은 이 연구소가 런던으로 옮긴 뒤인 1936년이긴 하다.
- ↑ 물론 동생에게 받은 거지만
- ↑ 언스트 곰브리치는 그 공로로 기사작위도 받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