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 산의 사진들 중 버마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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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gyoke Aung San [bòdʑoʊʔ àʊɴ sʰáɴ]
1915년 2월 13일 ~ 1947년 7월 19일
버마의 독립운동가, 정치가. 버마의 국부.
1932년 양곤대학에 입학하였으며, 4년 뒤인 1936년 동맹휴학을 지도하였다. 1940년 영국의 체포령이 내려지자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중국 하이난 성에서 버마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이후 일본군의 도움을 받아 영국군과 싸웠다. 일본의 도움을 받아 버마에 다시 돌아왔으나, 영국보다 더욱 가혹한 통치를 하는 일본[2]에 대항하여 "30인의 동지와 함께 반파시스트 인민자유동맹(AFPFL)을 결성, 일본에 대한 저항운동을 시작했다.
일본군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하고 영국군이 버마를 재점령하자, 아웅 산은 1947년 1월 런던에서 영국 총리 C.애틀리와 ‘애틀리-아웅 산 협정’을 맺음으로써 미얀마 독립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독립을 맛보기 전인 1947년 7월 19일 군부 반대파에 의해 관료회의 중 아웅 산의 동생을 포함한 6인의 관료들과 함께 암살당했다.
그의 죽음으로 버마의 운명은 독립부터 삐걱댔었고, 이후 버마족과 소수민족간 혹은 이념이 다른 정당간 내전이 끊이지 않게된다. 독립 이후 버마의 굴곡진 역사에서 민족, 종교, 이념을 막론하고 모두가 존경하고 버마 통합의 상징이 될 수 있었던 아웅 산의 죽음은 제일 안타까운 순간인셈. 그가 죽지않고 버마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더라면 적어도 지금같은 내전, 쿠데타에 시달릴 확률은 적었을꺼라는게 확실했을터이니...
한국에는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김재익, 이범석 등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관료들이 죽으면서 알려졌다.
아웅 산 수 지여사는 그의 딸이다. 본래 버마어에는 성이 따로 없지만 영국 유학을 위해 아버지의 이름을 본인의 이름 "수 지" 앞에 붙여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외래어표기법에 따르면 "수 치"이지만 2013년 한국을 방문한 본인의 의사에 따라 수지로 표기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