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율융운

耶律隆運
(941 ~ 1011)

요나라의 인물.

한족이다. 본래 이름은 한덕양(韓德讓)이고 계주 옥전 사람으로 1001년에는 이름을 덕창(德昌)으로 바꿨으며, 1004년에는 야율씨 성을 받았다가 1010년에는 융운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태도가 점잖고 마음씨가 너그러우면서 지략이 있었으며, 정치의 요체를 다스리면서 공을 이루면서 일을 세웠다.

요경종 때 근칙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동두승, 보추밀원통사, 전상경황성사, 요수창덕군절도사 등을 역임하고 아버지 한광사에 이어서 상경유수가 되었으며, 남경유수가 되어 송나라를 상대로 유주를 지켜 고량하 전투에서 승리해 요흥군절도사, 위남원추밀사에 임명되었다.

요경종이 죽고 소작이 황태후가 되자 소작의 심복이 되었으며, 983년에 개부의동삼사에 더하고 정사령을 겸임했으며, 986년에 송나라에서 조빈을 보내 공격하자 이들을 공격해 격파해 수사공을 더하면서 초국공에 봉해졌다. 북부재상이 되었고 988년에는 소작이 그의 거처에서 연회를 열고 많은 사람들에게 상을 내렸으며, 송나라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해 초왕에 봉해졌다. 991년에는 백성들의 부역을 면제하거나 재물을 채우는 귀족들을 처벌했으며, 북원선휘사가 되었다.

993년에는 모친상을 당했고 영추밀사, 감수국사, 흥화공신이 되었으며, 994년 6월에는 청탁을 하는 다수의 관리들을 가두어 심문했다. 수태보에 더해지고 정사령을 겸임했고 또한 북원추밀사를 겸임하고 대승상으로 임명되었으며, 진왕으로 높이고 총이추부사가 되었다.

1004년에는 거란에서 남하해 송나라를 공격하는 것에 참여해 전연의 맹을 맺게 되었으며, 고려를 공격할 때 병을 얻었고 1011년에 71세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