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蕭綽
(953 ~ 1009)
요나라의 황후이자 태후. 어릴 때의 자는 연연(燕燕).
본명은 소작(蕭綽). 인물로 예지황후(睿智皇后)로도 불린다. 북부재상 소사온의 딸로 어려서부터 슬기가 있었다. 두 명의 다른 자매들은 청소를 할 때 대충 쓸었지만 소작은 꼼꼼하고 깨끗이 치웠는데, 소사온은 이를 보고 큰 그릇이 될 거라고 칭찬했다.
요목종이 시종들에게 살해당한 일로 인해 소사온이 요경종을 옹립해 왕으로 세우면서 17살에 황궁에 귀비로 들어갔고 황후가 되자 요성종을 낳았으며, 사냥을 좋아하던 경종 대신 점차 조정의 정사에 참여하기 시작했으며 경종이 붕어하자 982년에 황태후가 되어 섭정을 지내 야율사진과 함께 한덕양에게 국가의 대사를 맡겼다. 한덕양과의 스캔들은 궁중에서도 유명했으며, 요성종도 한덕양을 아버지처럼 모셨고 남쪽 변방의 일은 월휴가에게 맡겼다.
983년에는 승천황태후라는 존호를 받았고 가족들에게도 공사를 구분해 상벌을 내려서 법도를 준수하면 신임하고 총애했지만 어긴다면 엄하게 처벌할 정도였으며, 1006년에는 예덕신략응운계화법도홍인성무개통승천황태후라는 존호를 받았다. 1009년에 사망하자 성신선헌황후로 추존되었다가 예지황후로 추존되었다.
요나라 황후들은 요세종의 비 견씨를 제외하고는[1] 모두 소씨(술율씨) 집안 출신이기 때문에 요나라의 다른 황후들도 '소태후'이나 소작이 워낙 출중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오늘날 '소태후'는 소작 한명을 가리키는 단어가 되었다. 역시나 유명한 야율아보기의 황후는 술율평(述律平)이라는 본명으로 부른다.[2]
2 업적
단순히 황후에 머물지 않고 여러가지 업적을 세웠다.
우선 12살의 어린 나이로 즉위했던 아들을 매우 엄격하게 키워 요성종을 요나라 최고의 명군으로 키운 바람직한 어머니 상으로 묘사된다.
거란인과 한족의 차별을 없애 서로 공평하게 대우를 받도록 했다.
그리고 몸소 전장에 나가 북송과 맞써 싸웠던 사실도 유명하다. 송태종이 30만 대군을 이끌고 요나라로 쳐들어 오자 태후 자신이 직접 대군을 이끌고 송나라 군을 물리쳤다. 1004년에는 20만 대군을 거느리고 송을 공격했는데 전투에서는 요나라가 북송에게 크게 패했으나 처음부터 요와 싸우기 싫었던 주화파였던 송진종은 주전파 구준 몰래 사신을 보내 요와 화친을 청했다. 소태후는 이를 놓치지 않고 양국이 형제 관계를 맺고 휴전에 응하여 매년 20만 필의 비단과 백은 10만냥을 요나라에게 바칠 것을 요구하는 '전연의 맹(澶淵之盟)'을 맺었다. 그리고 소태후는 진종의 숙모가 되었다.
명신 야율융운을 중하게 기용하여 사실은 사랑해서 부비부비 성종때부터 도종때까지 3대에 이르는 요나라 최 전성기를 이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3 창작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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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태후에서 심혜진이 소태후 역으로 등장한다. 주인공 천추태후와 대척점에 있는 또 다른 여걸로 묘사된다. 고려를 치지 못해 안달이 난 아들을 제지하고 아들에게 엄격하게 대한다.[3] 고려와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입장을 보인다. 죽을때 고려를 침공하지 말라고 아들에게 유언을 남겼으나 성종은 결국 고려를 침공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쳐발렸다.
한편, <천추태후>에서 심혜진이 맡은 소태후 역은 당초 양금석이 낙점되었는데 당시에는 2008년 10월 초 첫 방송 예정이었다.
하지만, 양금석은 당시 출연 중이었던 KBS 1TV 일일극 너는 내 운명의 연장방영으로 캐스팅 제의를 포기했으며 <천추태후>는 2009년 1월 초로 첫 방송일이 바뀌었고 양금석 자리에는 심혜진이 대신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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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양과의 애틋한 닭살돋는 로맨스는 덤.
중국의 사극이나 무협 드라마에서는 주로 송나라 때의 무인인 양업과 그 아들들의 이야기이자 무용담으로 인기가 높은 <양가장> 시리즈에서 최종 보스로 등장한다. <양가장> 시리즈는 본래 경극으로도 만들어 졌으니 당연히 경극에서도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