楊元
?~1598년
명나라의 장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총병제독 이여송 휘하 좌협대장 겸 부총병관으로 참전하였으며, 후에 정유재란에도 재참전한다.
이여송의 지휘를 받아 4차평양성 전투에 참가하였고 이어진 벽제관 전투에서는 포병을 이끌고 궁지에 몰린 이여송을 구출해낸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다시금 조선에 들어와 싸웠으며, 경상남도 의령에서 사기꾼(...) 심유경을 붙잡아 처형하고, 남원성 전투에 참가하였으나 패배하고 도주하여 경리 양호가 군법에 따라 처형한다.
군법에 의해 처벌받을 처지에 놓인 양원에 대해 조선이 구명운동을 하지만, 명나라의 사령관 양호는 단호히 선처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양 경리(楊經理)가 호조 판서 김수(金睟)를 불러 말하였다. "당신 나라에서 양원(楊元)을 구제한다고 하던데, 군문(軍門)의 제본(題本)에 죄주기를 청하였고 나도 역시 죄주기를 청하였으며 급사중(給事中)도 역시 죄주기를 청하였다. 당신 나라에서 만약 구제한다면 말이 서로 어긋날 뿐만 아니라, 제장(諸將)들이 현재 병사를 철수하고자 하는 때에 이들이 필시 양원의 행위를 본받을 터인데, 어떻게 할 작정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