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감

楊玄感
(? ~ 613)

수나라의 반란자. 양소의 아들.

589년에 의동삼사가 되었고 606년에 양소가 죽자 작위를 계승해 초공이 되었으며, 610년에 장형이 설도형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이 말을 수양제에게 상주했다. 양현감은 날썌고 용감하면서 말 타기와 활 쏘기를 잘하고 책 읽기를 좋아했으며, 해내에서 이름이 알려진 인사는 대부분이 그와 사귀었고 이밀과 잘 지냈다.

양현감은 아버지 양소가 수양제의 시기를 받고 죽은 것을 알았으므로 항상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예부상서를 지내다가 613년에 수양제가 고구려 원정을 계획하자 여양에서 운반하는 일을 감독하게 되자 동도(뤄양) 근처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양현감은 동도를 포위했지만 번자개의 방비로 인해 함락하지 못했으며, 양현감은 위문승과 낙수에서 여러 차례 싸워서 그를 격파했다.

양현감은 매번 싸울 때마다 사졸들보다 솔선해 향하는 곳마다 부러뜨리고 무너뜨렸으며, 그의 부하들을 위로하면서 기쁘도록 잘 했으니 모두 죽을 힘을 다해서 싸웠다. 이 일로 인해 매번 싸울 때마다 대부분 승리해 무리들이 많아져서 10만 명에 이르렀으며, 굴돌통이 이끄는 수나라의 원군이 도착하고 번자개의 공격으로 여러 차례 패하면서 불리하자 동도의 포위망을 풀고 동관에 이르러 동도를 깨뜨렸으니 관서를 빼앗을 것이라 선언했다.

홍농에 도착해 양지적을 공격했지만 3일 동안 싸워서 함락하지 못했으며, 우문술, 위문승, 내호아, 굴돌통 등이 추격해 황천원에서 따라잡힌다. 양현감은 하루에 세 번 패하고 8월 1일에 동두원에 진을 치다가 여러 군대의 공격을 받아 패하면서 상락으로 도망갔다가 추격하던 기병이 도착하자 그들을 큰 소리로 꾸짖어 도주하게 했으며, 가노수에 도착해 동생 양적선과 함께 도주하다가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양적선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해 양적선이 칼을 빼서 양현감을 죽였다.

양현감의 머리는 3일 동안 낙양 거리에 효수되고 시체는 방치되었다가 땅에 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