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북 시험

1 개요

모든 참고물을 치워야 하는 일반 시험과는 달리 교재의 참고를 허용하면서 치르는 시험방식. 주로 대학에서 이루어진다. 중고등학교에서는 지필고사에선 절대 없고, 가끔 수행평가 방식에 따라 치러지기는 한다.

이름만 들어보면 책을 보면서 시험을 치다니 참 편하겠다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현실은 시궁창. 보통의 시험이 암기하면 푸는 문제가 나온다면 오픈북에서는 암기해도 못 푸는 문제가 나온다. 아래의 어떤 출제방식이건 간에 사전에 공부를 꽤 많이 해야 된다. 절대 편한게 아니다. 교재의 전체적인 구성이 어떻고, 무슨 내용이 나오면 어디를 찾아서 봐야 되는지를 필수적으로 익혀야 되고, 특히 중요한 핵심개념과 논리는 완전히 이해해 놓아야 한다. 안그러면 시험 시간에 답안지에는 쓰지/풀지 못하고 거기서 책 읽고 공부하다 시간 다 쓰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더구나 오픈 북 시험은 대개 시간이 부족한데다, 아예 시험을 포기하는 학생도 적기 때문에 현장에서 공부하면 망하는거다. 다만 제대로 공부해 놓으면 편하긴 하다. 이해만 해두면 되고, 구질구질하게 길게 외워야 되는건 어디 보면 된다는 것만 미리 봐두면 되기 때문.

교수:이번 시험은 오픈북,범위는 배운데부터 배운데까지다.
신입생:어 예 X발!
복학생:아 X발

2 종류

2.1 교재를 봐도 전혀 알 수 없는 문제가 나온다

교재를 제공하여 시험을 치는데 필요한 모든 자료를 주었다는 타당한 근거를 들어 출제 난이도 제한을 풀어버리는 경우이다.
계산식을 대입하여 푸는 계통의 문제는 오픈 북 시험에서 나오는 타입으로 문제 자체가 무식하게 복잡한 관계로 교재는 "흰 건 종이요 까만 건 글씨로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도움이 별로 안된다. 가끔 '풀어볼테면 풀어봐라'라는 식으로 문제를 내는 악랄한 강의도 있다.
그정도까진 아니어도 교재는 기본 법칙 위주로 나와 있는데, 응용 위주의 문제를 내면 교재에 나와있는 기본 수식을 보면서 문제를 풀어내는 방식이 가능하다. 이때는 일일이 수식을 적거나 유도하지 않고 예를 들어 "교재 (4.21)식에 의하면" 이라고 퉁치고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사전에 시험 공부를 제대로 했다면 문제 풀 때 편해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몇몇 이공계 교수들은 이런 효과를 노려서 오픈 북 시험까지는 아니어도 A4용지 1~2장 정도의 컨닝 페이퍼 지참을 허용하거나, 해당 범위의 기본 법칙 수식들을 문제지에 아예 쭉 적어주거나 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어려운 계산 문제가 아니더라도 오픈 북 시험을 하는 과목이 있는데, 암기보다는 자료 수집과 해석을 중요시하는 교수님이 그런 경향이 있다. 모 대학의 국제법 교수님 강의는 오픈 북 뿐만 아니라 사용 가능한 모든 자료, 즉 노트북을 들고 와서 인터넷을 뒤져도 되는 과목도 있는데 그래도 못 푸는 문제를 낸다 카더라. 좀 심한 경우로 또다른 모 대학의 공정제어 교수님 강의는 서로 상의만 안한다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이용해도 되며 문항수 4~6문항에 시험 시간이 24시간임에도 (풀다 배고프면 밥먹고 와도 되고 간식 가져와서 먹어도 되고 졸리면 자도 되고) 불구하고 다 푸는 사람이 없다. 뭐 제대로 풀면 한 문제당 답안이 수십 페이지가 나오니까.

2.2 응용 위주로 시험을 내는 경우

상단 항목에 서술되어 있지만, 응용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문제를 풀 수 없게끔 해서 내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자면 공식을 이용한 증명 문제, 특정 현상이나 사실에 대한 A4 2~3페이지 분량의 소논문을 시험현장에서 써야 하는 문제, 인문계의 경우 특정 작품을 주고 그것을 시험현장에서 비평하는 문제 등.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마치 고시와 비슷한 유형의 논문형 문제를 즉석에서 풀게 해서 문제에 따라 3~5페이지 정도의 분량을 채워야 하는 시험을 내기도 한다. 사실 고시는 필요한 내용을 다 암기까지 하고 있어야 하지만 학교 시험이니 봐주는 거에 가까울 지도...

이와 같은 경우에는 교재를 기초 논거로 두고 각종 응용공식이나 논리를 전개해 가야 하기 때문에 시험 난이도가 대폭 상승한다. 증명이나 비평이나 하나같이 강의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면 풀 수 없는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대학교 버전 시험. 주입식에 길들여진 학생들의 뇌구조를 바꿔버린다.

오픈북 시험에서 이런 문제가 나올 것이라 예상되는 경우, 가장 빠른 대처법은 3천원에 구입할 수 있는 띠지를 사서 중요 이론 항목이 적힌 페이지마다 띠지를 붙여놓고 그 부분만 체크해 놓는 것이다. 한 강의마다 특정 주제를 다루기 마련이므로 해당 강의의 강의계획표와 대조해서 하면, 수업을 몇 번 빼먹었더라도 어느 정도 커버하는 것이 가능.

그리고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강의의 목표를 이해하고 수험자 본인이 그 목표를 달성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스스로 강의 내용을 응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강의를 충실히 소화했다면 사실 그렇게 어렵진 않은 시험. 문제는 그런 학생이 없다는 거

2.3 시험범위가 무식하게 넓다

말 그대로 시험범위가 넓고 아름다운 경우를 말한다. 넓은 건 맞지만 수험생 입장에선 전혀 아름답진 않다. 두께가 수백 페이지를 가벼이 넘어가는 교재의 시작과 끝을 몇번이고 횡단해야 답을 기입할수 있는 문제가 주를 이루는 타입으로 교재를 넘기다가 보면 시험시간이 끝나가는 아름다운 경험을 하게된다. 거기다가 이 타입은 문항수도 많다. 즉, 이런 경우엔 시험 공부를 할 때 책을 여러 번 봐서 책의 어디에 무슨 내용이 나오는지를 전반적으로 파악하고 있어야 시험 시간 중에 해당 부분을 빨리 찾아 참조해서 시험 문제의 답을 써내려갈 수 있지, 오픈 북 믿고 그냥 들어갔다간 시험 시간에 교재 찾기만 하다 답은 못쓰고 시험 공부만 하다 나올 수도 있다.

사회과학의 경우, 교재 외 출제를 하면서 참고 서적을 자유로 학생들에게 맡기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참고 서적의 선정 자체부터 해당 강의를 얼마나 이해하였느냐라는 척도가 된다. 그런고로 학생들은 참고 서적을 산처럼 쌓아놓고 시험 시간에 장문의 레포트를 쓰게 된다. 그리고 도서관은 특정 분야의 책을 차지하려는 학생들의 전쟁터가 된다.

강의를 교재와 더불어 논문로 나간 뒤, 교재의 기초지식을 바탕으로 논문의 데이터를 해석하는 식으로 시험을 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에도 오픈 북을 한다. 학부수준에서도 논문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다량의 논문을 외워서 시험을 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 사실 모든 논문을 외우는 짓은 교수들도 귀찮아서 안 한다. 직업이 그런 쪽이니 주요 학자들의 논문이야 자주 봐서 외워지긴 하겠지만 그걸 단기간에 암기하려는 미친 짓은...

2.4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고 싶은 경우

비중이 낮은 교양과목 같은 경우,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고자 오픈 북을 하기도 한다. 학점을 따려는 학생들에게 대체로 인기가 많지만, 교수나 학생의 의욕이 없는 경우가 많다. 강의 평가제에서 평점이 매우 불안한 교수들이 이러기도 한다. 이런 경우 최악인 것은 보통 교양 강의는 교재를 선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교수가 자신의 안 팔리는 저작물을 팔기 위해 오픈 북을 강요하는 것. 의외로 좀 있다.

2.5 학생들의 수준이 낮을 경우

일부 극소수의 하위권 대학이나 특수한 경우에 한정하지만, 학생들이 아예 공부를 포기했거나 강의를 이해하지 못했을 경우 무더기로 백지 시험지를 제출하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오픈 북 시험을 채택하는 경우도 있다. 아예 시험을 오픈북이라고 예고하는 경우도 있다고.

2.6 교재를 볼 시간이 없다?

교재를 보는 건 가능하지만 문제를 풀기만 해도 시간이 촉박하여 교재를 거의 보지 못하는 경우다. 이 경우는 오픈 북 시험의 긍정적인 취지를 살리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지엽적인 개념의 암기보다는 논리의 전개, 주장의 타당성을 평가할 때 유용하다. 물론 시험시간 자체가 부족한 만큼 기본적인 개념의 정의까지 찾아볼 시간은 없으므로 시험준비를 부실하게 한 사람에게는 오픈 북이 딱히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3 여담

일본에서는 좀 다른의미로 持ち込み可テスト(갖고들기가능시험) 라고도 한다.

뭐든지 갖고 와도 된다고 해서 관련된 농담이 여럿 있다. 컴퓨터를 들고 왔다거나, 대학원생을 업고 왔다거나, 외국인 친구를 데려왔다거나...

물론 사람은 데려오면 안된다

다만 독일어 시험에서 독일인을 데려온 학생이 있었다는 전설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