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순

王恂
(? ~ 278)

서진의 인물. 자는 양부(良夫). 왕숙의 아들, 왕원희의 동생, 왕건, 왕개의 형.

넓은 식견을 갖추면서 충성스럽고 바른 신하였으며, 263년에 난릉후에 봉해졌고 함희 연간에 오등작 제도가 신설되자 아버지 왕숙이 탁월한 공훈을 세웠기에 왕순은 영자로 고쳐 봉해졌다.

하남윤, 시중 등을 역임하고 재임하는 시절에 평판이 높았다. 마음 속으로 항상 공평함을 지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절개가 있으며, 격의 현령 원의가 준마를 선물하자 그의 탐욕을 알았기에 받지 않았다.

원의가 뇌물 수수로 자리에 물러나고 그에게 뇌물을 받은 사람들은 관직을 잃었으며, 왕순은 두 개의 대학을 세우고 오경을 존중했다. 태원 제부에서 흉노 사람들이 경작하자 많은 사람들이 이민족 수 천 명을 썼다. 진무제가 그들을 옮기면서 경작하는 것을 금지시켰으며, 왕순은 사마염의 뜻에 따라 일을 처리해 왕순 휘하에서 이민족을 사용하는 관리가 없었다.

278년에 나이 40을 조금 넘었을 때 세상을 떠났고 거기장군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