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개

1 서진의 인물

王愷
王犬

생몰년도 미상

서진 시대의 인물로 는 군부(君夫)이다.

동해 사람으로 왕랑의 손자이자 왕숙의 아들이다. 사마소의 아내이자 사마염의 어머니 왕원희의 남동생으로 사마염의 외삼촌이다.

젊어서 훌륭한 관료라는 칭찬을 받았지만 외척이라 진나라 조정에서 너그럽게 대해주기도 했고 천성이 호사스러웠다.

집안발은 쩔어주는 서진의 대귀족. 하지만 학문으로 유명했던 누나 왕원희와는 달리 사치돈지랄로 유명했다. 사실 왕개가 제대로 된 인간이었다면 할아버지 왕랑이 괜히 내 손녀(왕원희)가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게 아쉽다고 한탄하지 않았을 것이다.누나만한 아우 없다

후장군 시절 산기상시 석숭돈지랄 경쟁으로 라이벌 관계였다. 왕개는 사치뿐만 아니라 인간성으로도 석숭과 호적수가 될 만했는데,고로 막장 대결 병림픽 악사가 음악을 좀 잘못 연주했다고 그 자리에서 끌어내 때려 살해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말 위에서 활쏘기를 좋아해 땅을 사서 울타리를 만들고 땅 한 쪽에 돈을 깔아 당시 사람들이 금전의 제방이라고 불렀다는 등의 석숭과 비슷한 일화가 남아있다. 또한 사마염이 왕개의 집에 오자 주연을 베풀었고 상에 올려진 여러 음식 중 특히 돼지고기가 맛이 있어 사마염이 요리하는 것에 무슨 비결이 있는지 묻자 그 돼지고기는 사람의 젖으로 키웠다고 말했고즉 수 뭐시기(...) 사마염은 불쾌해서 식사를 끝내지도 않고 갔다고 하며, 이 일화는 문헌에 따라 왕제의 일화로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사마염은 외삼촌인 왕개를 꽤나 좋아했던 모양이다. 왕개가 석숭과의 돈지랄 경쟁에서 조금 밀린다는 이야기를 듣자 황실의 보물인 산호수를 떡 하니 내줄 정도였다.황제가 돼가지고 잘하는 짓이다. 가장 재밌는 게 싸움구경이라더니. 하지만 왕개가 이번에는 아주 성대하게 발렸고 GG를 쳤다.

세설신어의 태치편에서 석숭과 돈지랄 경쟁하는 여러 가지 일화가 나온다.

또한 짐새는 장강 이북으로 들여올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그 깃털을 술 속에 담가두면 반드시 사람을 독살하기 때문으로 왕개가 익군을 지낼 때 석숭에게서 짐새를 얻어 길렀고 그 크기는 거위만 했고 부리의 길이는 1척이 넘고 오로지 독사만 먹었다. 왕개는 석숭과 함께 조사받아야 한다고 상주받았고 사마염은 용서해주면서 도성의 거리에서 짐새를 태우게 했다.

왕개는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해 꺼리는 바가 없었다. 생전에는 후군장군이 되었으며, 사후에는 추(醜)라는 시호를 받았다. '더러울 추(醜)'라는 한자에서 보듯이 이 시호는 최악으로 나쁜 시호다. 사기 시법해에 따르면 위세를 믿고 방자하게 행동하는 것을 추(醜)라고 한다.고 하였다. 당대 사람들 역시 참으로 형편없는 인간으로 보았던 것이다.

2 후한 말의 인물

王凱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왕찬의 사촌형이자 왕업의 아버지, 왕필의 조부.

왕찬과 함께 난리를 피해 형주로 이사를 가 유표에게 의지했는데, 유표에게 딸이 있어 왕찬의 재능을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처음에는 유표가 딸을 왕찬에게 시집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왕찬의 용모가 못 생긴데다가 사소한 절개를 따지지 않는 것을 꺼려했으며, 유표가 왕찬에게 그대의 재능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지만 몸매와 용모가 볼품없으니 사윗감이 아니라고 하면서 왕찬을 사위로 삼는 것을 그만뒀다.

그러나 왕개는 좋은 풍채와 용모를 지녀 유표가 딸을 왕개에게 시집보냈으며, 이 유표의 딸과의 사이에서 왕업을 낳았다. 왕개가 낳은 왕업은 위풍의 난에 가담한 왕찬의 두 아들이 처형되면서 왕찬의 대가 단절되자 왕찬의 양자가 되어 후사를 이었다.

3 중국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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