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월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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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세기 초중반에 활약한 영국 클래식 작곡가이다.

2 생애

영국 중부의 올드럼에서 태어났다. 월튼의 아버지도 음악가로 음악을 가르치는 집안이었으며, 집이 부유하진 않았으나 음악에 대한 재능 때문에 옥스퍼드에서 음악을 배웠다. 젊었을 때 영국 상류층의 유명한 음악 패트론이였던 싯웰 (sitwell) 남매와 친해져 그때부터 그들의 서포트를 받으면서 작곡을 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싯웰남매의 영향을 받아서 상당히 아방가르드한 면을 추구했었다 [1] 그러나 영국 낭만주의 음악가인 엘가나 페리의 영향을 많이 받아 점점 전의 아방가르드적인 면은 적어지고 낭만주의적인 색채가 강해지기 시작했다.
1940년대에는 애국적인 작품이나 영화 음악을 많이 작곡하였으며 그후 7년간 <트로이우스 와 크레시다>라는 고전주의적인 오페라를 쓰게 된다. 월튼은 당시 한창 인기를 구가하면서 자신을 명성을 능가하기 시작하던 벤저민 브리튼의 오페라를 의식하고서 이 오페라를 썼다고 한다. 그는 벤저민 브리튼의 피터 그라임처럼 인기있는 작품이 되기를 바랬으나 이 오페라는 흥행에 실패하였고, 이 오페라 이후로 월튼은 여러모로 자신감을 많이 잃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젊은 나이에 이러한 교향곡과 협주곡, 오라토리오에서 굵은 족적을 남인 월튼이 결국은 장 시벨리우스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같은 영원히 음악사에서 이름이 남는 명작곡가로 남게 되리라 예상하였지만, 40세가 넘어가자 그의 인기와 작품에 대한 찬사는 점점 식어갔다. [2] 현재에도 클래식음악의 주류인 오스트리아-독일에서 벗어나는 영국음악 중에서도 엘가나 브리튼에 이리저리 치여서 좀 마이너한 평을 받고 있다. 안습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월튼이라는 작곡가 자체는 좀 마이너한데 비해, 그가 쓴 작품들은 그 분야에서 당대 최고라고 칭송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의 교향곡 1번은 1차 세계 대전 이후 최고의 교향곡이라는 평이 많았고, 카라얀이 경의를 표했던 벨샤자르의 향연또한 20세기 최고의 성악작품이다.

2.1 사생활

젊었을때는 연상킬러로 유명했다고 한다. 싯웰 남매와 친하게 지내면서 영국 귀족 사회에서 놀면서 유부녀들과 가깝게 지냈으며, 교향곡 1번을 작곡할 때에는 미모의 귀족 미망인하고 사귀고 있었다. [3] 결국 4악장은 20살 이상 연상유부녀인 앨리스 윈봄이라는 여성을 사귈때 작곡했다. (그래서 그런지 비평가들은 3악장까지의 음악은 4악장하고 느낌이 다르다고 평하기도 하며, 실제로 4악장은 1악장에서 3악장까지에 비하면 좀 아쉽다는 평이 많다.) 그러나 앨리스 윈봄은 암으로 죽게되고, 그 이후 수재너 길이라는 아르헨티나 여자와 결혼, 평생 이탈리아 나폴리부근의 섬 이치아에서 살면서 작곡에 매진한다. 나중에는 어린 아르헨티나 여성과 결혼에서 죽을때까지 어느 이태리 섬에서 살았고 [4] 그곳에서 작곡에 매진하면서 평생을 살았다.

3 주요 작품

호소력 있는 합창과 월튼의 트레이드 마크인 엄청난 금관을 즐길 수 있는 곡으로, 혹자는 헨델의 메시아, 멘델스존의 엘리야, 엘가의 제론티우스의 꿈을 이어가는 영국 최고의 오라토리오라고 평가한다.

  • 교향곡 1번

1935년 초연된 그의 교향곡 1번 역시 엄청난 금관과 4악장의 화려한 푸가기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월튼 자신은 이전까지 푸가기법을 몰라서 옥스퍼드 음악사전 보면서 4악장을 작곡했다고 한다 (...)

1939년 작곡된 바이올린 협주곡 역시 유명한 곡으로, 매우 현란한 테크닉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의 마찰이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 외에도 첼로 협주곡, 파르티타, 포츠머스 서곡, 요하네스버그 서곡 등 여러 서곡과 교향곡 2번 등이 유명하다. 후기의 작품 중에서는 힌데미트 변주곡과 파르티타가 자주 연주된다.
  1. 20살 즈음에 작곡한 파사드모음곡이 대표적이다.
  2. 1939년 인터뷰에서 월튼은 젊었을때 재능이나 인기는 시들기 마련이라는 식의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3. 3악장까지 작곡했을 때 그 미망인하고 헤어지면서 스트레스로 작곡을 계속하는데 애로가 있었다고 한다,
  4. 월튼은 비내리고 매일 흐린 중부 영국의 고향을 싫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