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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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청룡 역대 감독
김동엽
(1985~1987)
유백만
(1988)
배성서
(1989)

1 소개

兪百萬, 프로야구 전 감독이자 현 프로골퍼. 1941년생.

2 야구 선수

울산이 고향인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부산으로 이사오면서 야구와 인연을 맺었다. 부산상고 출신으로 나름대로 활약했지만, 백인천이 이끌던 경동고의 기세에 밀려 우승과 인연을 맺지는 못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고교 졸업 후 실업팀에 입단하면서부터. 원래 내야수였던 그는 실업무대에서 어깨가 강하다는 이유로 투수로 전향했는데, 이게 대박이 났다. 실업무대 역사상 최다 노히트 노런 기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1963년 첫 기록을 세운 후, 1969년, 1970년, 1971년에 잇따라 노히트 노런의 대기록을 작성했다. 한 마디로 3년 연속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 것. 1971년에는 국가대표로 아시아 야구 선수권에서 활약하며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3 지도자 시절

부산 야구의 대부격인 장태영의 애제자였기 때문에 장태영이 일선에서 물러나 은행 직원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뒤를 이어 1973년 상업은행 감독 자리에 올랐다. 1976년 그 뒤 준프로에 가까웠던 한국화장품 실업팀의 감독도 역임한다.

아마 시절 명성도 있고, 야구계에 영향력이 있던 장태영의 애제자라 감독 자리 제안도 몇 번 받았지만, 본인 성격이 감독과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 많이 거절했다고 한다. MBC 청룡의 창단 코치로 부임하기도 했고, 삼성에서 코치로 활동하다가 다시 MBC로 돌아왔다. 그리고 김동엽 감독이 중도 해임되자 그 뒤를 이어 1987년 후기리그부터 감독 대행을 역임한다. 나름대로 PO를 두고 접전을 벌였지만, 아쉽게 탈락. 하지만, 접전을 벌인 모습과 5할이 넘는 승률을 인정받아 감독 자리를 제안했고, 결국 감독에 오르게 된다. 본인은 계속 거부했지만, 스승인 장태영이 "이번에도 거절하면, 영원히 무능력자로 찍히게되니, 이번에는 거절하지 말게." 라는 권유를 듣고 결심한 거라고.

그러나 1988년 MBC 청룡 역사상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면서 물러나게 된다. 당시 팀 성적이 전기리그 최하위, 후기리그 6위. 팀도 아니라는 평가를 받던 청보보다 겨우 반 보 앞선 성적이었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도 없었다. 그리고 팀 선수들에게 자율을 주던 모습이 다소 나약하게 비춰졌다고. 그 뒤 다시 삼성의 코치로 활동하다가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바로 골프.

4 골프 선수 시절

골프를 시작했지만 곧 바로 정식 투어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는 아니고, 주로 티칭 프로로 활동했다. 1990년에 KPGA 티칭 프로 자격증을 얻으면서 본격적으로 이 세계에 입문했다. 가끔 시니어 투어에 나가서 종종 입상도 했고, 2007년에는 호주 시니어 투어 정규 회원 자격증까지 얻었다고 하니 실력이 만만치 않다. 에이지 슈트[1]를 두 차례, 홀인원은 무려 아홉 차례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의 제자 중에 가장 유명한 선수가 배상문. 그리고 그의 성공 이후, 야구 선수 출신으로 골프 티칭 프로로 전향하는 사례도 많이 늘게 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방수원, 오희주.

2011년부터 제주 어린이들 야구 클럽인 감귤야구사랑야구단 총감독 겸, 여전히 골프 관련 일을 하고 있다.
  1. 나이와 똑같은 타수를 치는 것. 당연히 골프에서 18홀을 모두 돌아 40타를 낼 수는 없으니, 주로 나이가 들어서 달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