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두지

乙豆智

(? ~ ?)

생몰년 미상. 고구려 대무신왕 때의 재상.

서기 25년(대무신왕 8)에 우보(右輔)에 임명되어 군국(軍國)의 사무를 맡아보았으며, 27년에는 좌보(左輔)에 임명되었다.[1]

28년, 후한(後漢)의 요동태수(遼東太守)가 침입해왔는데, 그 군세가 막강해서 막기가 힘들었다. 대무신왕은 신하들을 불러 모아서 계책을 물었는데, 을두지는 당시 좌보 벼슬을 지내던 송옥구와 더불어 성을 지키면서 지구전을 전개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왕은 위나암성으로 들어가 한나라군과 대치하였다.

그러나 한나라군이 오랫동안 성을 포위한 채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을두지는 한나라군이 물러나지 않는 이유는 한나라군이 고구려의 땅이 척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위나암성의 물과 식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나서는 한나라군에 사신을 보내 화해를 청하면서 물에서 나는 귀한 잉어와 수초, 맛좋은 술 등을 보내주면 한나라군이 알아서 물러날 것이라며 계책을 말해 주었다.

대무신왕은 을두지가 알려준 계책을 따랐다. 당시 한나라군의 장수들은 고구려군이 오랫동안 성안에서 나오지 않고 뻐겨대자(...) 초조해하던 참이었는데, 고구려 사신이 잉어와 수초, 술을 가져오자 성안에 아직도 물과 식량이 풍족하여 성을 빼앗기가 힘들다고 여기고는 화친을 받아들여 군사를 이끌고 물려났다.

  1. 우보와 좌보는 후에 명림답부가 최초의 국상이 되기 전까지 고구려에서 가장 높은 관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