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종

李道宗
(600 ~ 653)

당나라의 황족.

악양공을 지내다가 이세민과 함께 유흑달을 토벌하는 일에 종군했으며, 622년에 영주총관에 임명되었다가 돌궐을 격파한 일로 인해 이도종의 무인의 재간이 조창과 같다고 해 임성군왕에 임명되었다.

625년에 돌궐을 격파했고 629년에도 돌궐을 공격했으며, 대동도행군총관을 지내면서 아사나소니실을 압박해 힐리가한을 잡아 호송하게 했다. 631년에는 영주의 곡설부가 봉기하자 추격해서 격파했고 634년에는 형부상서를 지내면서 선선도총관에 임명되어 토욕혼을 공격하는 일에 종군해 공을 세웠다.

이후 강하왕에 봉해지고 641년 정월 15일에 예부상서를 지내면서 문성공주를 토번으로 호송했으며, 후군집이 이정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 무고하자 이도종은 후군집의 성품을 이야기하면서 후군집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 하니 그 말대로 되었다. 645년에 고구려 정벌에 종군해 여름 4월 5일에 요동도부대총관이 되어 신성을 압박했으며, 15일에 이세적과 함께 개모성을 공격해 11일 만에 함락했다.

요동성에 도착했고 고구려의 보병, 기병 4만이 요동을 구원하자 4천을 거느리고 싸웠으며, 마문거가 선봉이 되어 고구려의 진지를 어지럽게 하자 군사를 이끌고 가서 고구려군을 격파했다.

안시성을 공격할 때 고구려군 수백 명이 성에 줄을 매달아 내려온 소식을 듣고 그들을 공격해 물러나게 하면서 이도종은 무리를 감독해 성의 동남쪽 귀퉁이에 토산을 쌓아 안시성을 압박했으며, 여러 차례 고구려군과 교전하다가 발을 다쳤다. 이도종은 부복애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토산 꼭대기에서 적을 대비하게 했지만 결국 토산은 고구려군에 빼앗겼는데, 죄를 받게 해달라고 청했지만 개모성, 요동성을 격파한 공로가 있어 용서받았다.

결국 안시성을 함락하지 못하고 철수하면서 이세적과 함께 보병, 기병 4만을 거느리고 후위를 맡았으며, 설연타의 다미가한이 하주를 노략질하자 이도종은 당태종의 명으로 9개 주의 병사를 징발해 삭주에서 진수했다가 646년에 설연타의 다미를 격파한 공으로 아사나사이와 함께 한해안무 대사에 임명되었고 사막을 넘어가서 설아파 달관의 무리를 격파한 후에 사신을 파견해 여러 부를 불러서 타이르고 당나라 조정에 조현하게 했다.

653년에 특진, 태상경으로 있다가 반란을 일으킨 방유애와 왕래하면서 연락했다는 것에 연좌되어 영표로 유배를 가던 중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