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적

능연각 24 공신
장손무기이효공두여회위징
방현령울지경덕고사렴이정
소우단지현유홍기굴돌통
은개산시소장손순덕장량
후군집장공근정지절우세남
유정회당검이세적진경
당 제국 상서좌복야
전임 방현령이세적
649년~650년

후임 우지녕
당 제국 사도
전임 이각이세적
653년~669년

후임 이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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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世勣
(594 ~ 669)

의 장수. 능연각 공신의 한 명.

1 생애

원래의 이름은 서세적(徐世勣)으로, 당 왕조 초기를 대표하는 이름높은 명장들 중 하나이다. 선배였던 이정이, 죽기 전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병법서들을 넘겨주었을 정도.

이호 사람으로 집이 위남에 있었고 수양제가 무리하게 여러 차례 고구려 대규모 원정을 계획하면서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는데, 17세에 적양의 장수가 되었다가 이후에 합류한 이밀의 장수가 되어 두각을 나타냈다. 후에 이연에게 귀순해 당나라 건국에 공을 세워 이씨 성을 받았으며, 이렇게 이세적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나 후에 이연의 아들인 당태종 이세민이 즉위한 후에는 이름이 심히 겹친다 하여 피휘(避諱)제도로 인해 황제의 휘를 피하였으므로 결국 이름 가운데의 '세'자를 빼버렸다고 한다.(...) 안습.

그리고 이연의 황위를 찬탈 계승한 당태종 이세민 밑에서 여러 차례 싸웠고 630년에는 이정과 함께 힐리가한을 공격해 돌궐을 멸망시키고 병주도독 장사가 되었으며, 641년에 병부상서가 되었다가 삭주도 행군총관이 되어 설연타를 격파했다. 643년에 능연각 공신이 되어 영공에 봉해졌으며, 3월에 9개의 주의 군사를 징발해 당태종의 5남인 이우의 반란을 진압했다.

645년에 고구려 원정에서 요동도행군대총관이 되어 보병, 기병 6만, 난주, 하주에서 항복한 호족들을 인솔하고 4월에 요하를 건너 신성, 건안성을 공격했다가 함락하지 못하자 이도종과 함께 개모성을 공격해 11일 만에 함락시키고 요동성을 포위했지만 이후 고구려 원정이 실패하면서 당나라로 돌아간다.

649년에 이세민에게 의심받아 첩주도독으로 좌천되었으나 당고종 이치가 즉위하자 복위해 재상이 되었다. 고종이 원래 있던 황후를 폐하고 후실이었던 무조를 대신 황후로 삼으려 했을 때 다른 신하가 반대하는 가운데 이세적은 진언을 피해 사실상 용인해주었다. 이윽고 무조가 무측천(측천무후)으로서 정권을 빼앗자 많은 신하가 실각하는 가운데 이세적은 그대로 중용되었다. 실제로 이세적은 측천무후가 대신들과 정권 투쟁을 벌이는 와중에도 늘 중립을 지켰기 때문에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고구려와의 전쟁에서도 크게 활약했는데 비록 당태종이 주도한 여당전쟁 당시에는 번번히 실패하였으나[1] 당고종 때에 결국 연개소문이 죽은 후에는 668년에는 고구려의 도읍인 평양성을 함락시키는 공을 세웠다. 당시의 나이가 무려 70세였다.

이세적이 평양성 함락 후 소국 주제에 책이 너무 많다면서 이 책들을 그대로 놔두면 반란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고 하고는 궁궐과 함께 대부분 불태워버렸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건 황현매천야록에서 각색된 이야기. 왕실 도서관이야 있었겠지만 장문고란 이름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삼국사기에는 이세적이 평양성을 함락시키면서 궁궐에 불을 질렀다고 나오는데 딱히 역사서를 없애기 위해서 책만 소각한 것은 아니다.

말년까지 공신으로 인정받아 나라로부터 높은 대우를 받으며 천수를 다하였다. 그러나 그의 사후에 손자인 이경업(서경업)이 측천무후에 대항하여 모반을 꾸미던 것이 진압되자 그 가문이 초토화되었고 결국 그 시신도 무덤에서 끌려나와 산산히 분쇄되어 바람에 날려 버리는 형벌을 받았다.

2 창작물에서

삼국지 시리즈고대무장으로 삼국지 9, 삼국지 10삼국지 11에서 출연했다. 산전수전 겪은 인물이고 장군의 이미지가 더 강한 인물인데 어쩐지 일러스트는 젊은 문관의 이미지. 능력치는 딱히 떨어지는 능력치가 없는 만능형 무장으로 통솔과 지력, 정치가 90대이며 무력이나 매력도 70대.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95/무력 79/지력 88/정치력 85. 특기로 분전, 돌진, 주사, 제사, 교사, 혼란, 덫, 배반, 매도를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는 통솔력 93/무력 73/지력 95/정치력 88/매력 80, 특기 19개. 당연히 문무겸비답게 군사 특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항변, 논파가 있음에도 명사 특기가 없는 게 약간 흠이다.

삼국지 11에서는 통솔력 92/무력 70/지력 94/정치력 90/매력 74. 병종적성은 오기처럼 하나 빼고 올 A이다.[2] 특기는 묘계. 삼국무장 중에서 원술유일하게 갖고 있는 특기이다. 이세적의 지력을 봐도 원술과 비교하면 이하생략.

연개소문(드라마)에서는 이적이라는 이름으로 연개소문당태종과 친구 관계였다는 설정으로 등장한다.

서유요원전에서는 위징과 함께 그나마 명장 노릇하는 인물로, 손오공의 라이벌 중 하나로 등장.

드라마 대조영에서는 드라마 한정으로 손자인 이문과 함께 한족 우월주의자로 묘사되었으며 평양성이 함락됐을 때는 대놓고 "고구려의 왕실과 역사를 없애러 왔다"며 고구려인들을 학살하고 평양성을 불태웠다(...).

  1.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보급이 끊길 가능성을 우려해 안시성을 공략을 건의한 것이 가장 큰 실책이 되었다.
  2. 오기는 기병적성이 B, 이세적은 수군적성 B라는 차이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