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정

李茂貞
(856 ~ 924)

당 제국 상서령 
전임 곽자의이무정
901년
(당 멸망)

당나라 말기 번진 세력 중 하나

하북성 심주 사람으로 본래 성은 송 이름은 문통이었다. 당나라 사병에 있다가 신책군소교에서 무예를 닦는 도중 황소의 난이 터지자 전란에서 전공을 쌓아 신책군지휘사로 진급하였다. 885년, 당희종이 흥원[1]으로 파천했을 때 어가를 호위한 공로로 진무군절도사(武定軍節度使)에 부임되었다. 또한 이씨 성과 무정이란 이름 그리고 정신(正臣)이라는 자를 하사 받았다. 887년, 어가가 풍익에 다다랐을 때 봉상절도사(鳳翔節度使) 이창부를 살해하고 그 자리를 자신이 장악하였고 농서군왕에 봉해졌다. 891년, 조정에서 병권을 회수하자 이무정은 군대를 일으켜 흥원을 공격하였고 여세를 몰아 장안을 쳐들어가 당소종을 협박하며 환관 양복공과 재상 위소도를 죽이고 궁을 어지럽히고 풍익절도사, 산남서도절도사로 승진하였으며 진왕의 작위를 받았다. 당시 당나라는 이미 절도사의 통제력을 상실한 까닭에 이러한이 일이 있고도 오히려 관직을 주어 유화하였다. 895년, 왕행유, 한건과 군대를 빙자하여 경사로 입관하여 재상 최승우(韋昭度)와 이계를 무참히 도륙하였다. 상서령, 시중, 기왕에 봉해졌다. 901년, 주전충이 군대를 이끌고 장안으로 들어와 수도를 낙양으로 옮기라고 핍박하자 환관 한전회가 당소종을 모시고 봉상으로 도망갔다. 하지만 주전충의 세력이 커져만 가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었던 이무정은 촉왕 왕건과 함께 빈주절도사 양숭본과 함께 세력을 규합하고 거란의 야율아보기와 형제의 맹약을 맺어 주전충을 견제하는 득을 취할 수 있었으나 이 해에 당소종이 시해당하여 군사 파견은 중지되었다. 904년, 이무정과 왕건이 이극용에게 출병을 약속하고 군사 2만을 봉상에서 집결했으나 왕중사와 유지준이 각각 장안과 동주를 굳세게 수비하고 있어 장안의 서쪽에서 교전하였으나 연합 병력이 패배하였다. 907년, 주전충이 당을 멸망시키고 후량을 건국하지만 이무정은 끄덕하지도 않고 풍익에 기왕부를 설치하고 당나라의 연호를 이어 사용하였으며 관속을 두었다. 923년, 후량이 멸망하고 후당이 건국되자 이존욱에게 표를 올리고 칭신하여 진왕에 봉해졌다. 사후 진충경왕의 시호를 올렸다.
  1. 지금의 한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