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보컬리스트. 1945년생.
1 개요
하드록 시대 최고의 록 보컬리스트 중 한명
딥 퍼플 하면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보다 먼저 떠오르는 보컬리스트.
1969년 딥퍼플 의 리치 블랙모어는 레드 제플린의 로버트 플랜트의 노래를 듣고 딥 퍼플에서도 레드 제플린의 로버트 플랜트 처럼 강렬하게 외쳐대는(screaming) 보컬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선택된 그 누군가가 바로 이안 길런이었다.
지금까지도 하드록 헤비메탈 보컬의 교과서로 불리우며, 그 특유의 미칠듯한 고음의 샤우팅과 무지막지한 파워를 가진 스크리밍 창법은 이후 아이언 메이든의 부르스 딕킨슨을 비롯한 여러 헤비메탈 보컬리스트들의 창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탁월한 음역대를 가지고 있어 때로는 오페라틱 창법을 구사하기도 하며
이것은 1970년 딥퍼플 가입과 동시에 녹음된 Jesus Christ Superstar 초판 레코딩에 예수역으로, 또 Concerto for Group and Orchestra 앨범에서 들을수 있다.
2000년대 들어와서 열렸던 루치아노 파바로티 와의 협연에서도 여전히 파워풀한 그의 창법을 느낄 수 있다.
딥퍼플 탈퇴 이후 자신의 이름을 딴 밴드를 결성했었고 한때는 블랙사바스에 가입하기도 했고 84년 딥퍼플 재결성 이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너무나 강렬했던 딥퍼플 시절의 음악에 비해 그 후의 활동은 그 명성에 못 미친다는 것이 아쉬운 면이다.
오지오스본 이나 로니제임스 디오 그리고 딥퍼플 시절 그의 후임자였던 데이빗커버데일 등은 모두 밴드 탈퇴후 자신의 밴드로 독자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길런의 독자적인 활동은 큰 성공이라고 말하기엔 뭔가 부족한것이 사실이다.
길런 스스로도 '나는 딥퍼플에서 너무 빨리 소진 되었다' 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또한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했던 로니 제임스 디오나, 시간이 갈수록 가창력이 늘어난 데이빗 커버데일에 비해서
워낙에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는 창법을 구사했던 그 이기에 80년대에 들어와서 그의 보컬 실력 또한 최전성기에 비해서는
눈에 띄게 노쇄해진것은 사실이다.
이 점은 70년대의 라이벌인 로버트 플랜트 또한 레드 제플린 이후 미적지근한 솔로활동을 해왔다는 점과 흡사한 점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이안 길런이나 로버트 플랜트 두 명 모두 당대의 명 그룹 딥퍼플 과 레드제플린 에서의 활약이 너무나 대단했기에,
상대적으로 그 후의 활동이 더욱 미약하게 느껴질수도 있다.
또한 중저음 위주가 아닌 이들처럼 초고음 위주의 샤우팅 창법을 구사하는 보컬리스트들은 빨리 노쇄할수 밖에 없는것이 자연의 이치이기도 하다.
어찌됐든 1970년부터 73년까지 만 4년여 기간 딥퍼플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그의 보컬만으로도 그가 록음악계에 끼친 영향력은 엄청난것이었고, 현재까지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보컬리스트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2 생애
1945년 미들섹스 주의 혼슬로우에서 태어난 그는 60년대 대부분을 문샤이너스(Moonshiners), 자벨린스(Javelins), 에피소드6(Episode6) 등을 비롯한 수많은 록밴드에서 활동하면서 보냈다.
에피소드 식스 시절의 길런 뒷줄 맨 왼쪽. 가운데 여자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은 로저 글로버
69년 당시까지 메인스트림 록밴드로 명성을 날리던 딥 퍼플에 길런이 영입되면서 딥 퍼플은 본격 하드록으로의 전향을 꾀했다. 그때부터 딥 퍼플은 70년대 하드록 계의 거목이 되었으며 [in Rock], [Machine Head], [Made in Japan]같은 앨범은 헤비메탈의 교과서 로 불리운다.
1973년에 딥퍼플을 탈퇴한 뒤 75년 명 키보디스트 콜린 타운즈 와 기타리스트 레이 페닉 등과 함께, 그의 이름을 딴 Ian Gillan Band 를 결성한다.
레이페닉과 이언 길런
그 이듬해 첫 앨범인 [Child in Time]을 발매했는데, 앨범 명 처럼 딥퍼플 시절의 곡 Child in time 이 리메이크 되었다는것 외에는 기존의 하드록이 아닌 재즈록 퓨전 사운드를 선보였다.
77년 발표된 두번째 앨범 Clear Air Turbulence 와 세번째 앨범 Scarabus 는 재즈록을 전면에 내세운 앨범으로 멤버들의 수준 높은 연주력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이후 일본 부도칸에서 성황리에 공연을 마치고, 이때의 실황은 Live at the Budokan 이라는 라이브 앨범으로 기록 되었고, 자신의 곡 과 딥퍼플 시절의 곡을 절반씩 담고 있다.
1978년 이언 길런은 자신의 밴드의 재즈록 퓨전 스타일이 대중적으로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판단을 하고, 딥퍼플 출신 아니랄가봐
키보디스트 콜린타운즈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을 몽땅 교체하고 밴드명도 Ian Gillan Band 에서 간단하게 Gillan 으로 바꾸고
다시 하드록 헤비메탈 계열의 음악을 발표한다.
78년 밴드 Gillan의 첫 데뷔 앨범 'Gillan' 이 발표되었고, 이듬해인 1979년 기타리스트를 Steve Byrd에서 Bernie Torme로 교체하고 발표한
두번째 앨범 'Mr. Universe' 가 히트를 치게 된다.
1979년 크리스마스에 딥퍼플 시절의 동료 리치 블랙모어가 그를 찾아와 자신의 밴드 레인보우 에 가입할것을 권하나, 독자적인 활동을 계속 하길 원했던 이언 길런은 이를 거절한다. 하지만 그 둘은 그 후 마키 클럽에서 3일 밤동안 잼을 하게 되고 이것은 1973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길런 밴드의 무대에 함께 한 리치 블랙모어
이후 Glory Roads 와 Future Shock 의 앨범들이 연달아 성공하면서 전성기를 맞지만 Bernie Torme가 탈퇴하면서
밴드는 하락세를 타게 된다.
그의 후임으로 후에 아이언 메이든에 가입하게 되는 야닉거스가 뽑혔고 두장의 앨범을 더 발표한다.
82년 가을 Magic 앨범이 발표 되었으나 전 같은 반응은 오지 않았고,
83년 어느날 이언길런은 나머지 멤버들에게 성대에 이상이 생겨 수술이 필요하다고 통보한다.
나머지 멤버들은 그의 쾌유를 빌며 휴식기에 들어가는데...
하지만 그는 불과 몇달뒤 그는 블랙 사바스에 가입해 [Born Again] 앨범을 발표한다.
Gillan 의 베이시스트이자 공동작곡가였던 John Macoy는 후에 인터뷰에서 자신을 비롯한 나머지 멤버들은,
길런이 블랙사바스에 가입했다는 소식을 뉴스로 듣고 나서야 자신들의 밴드가 해체 되었다는걸 깨달았다고 한다.
이언길런의 블랙사바스 가입은 딥퍼플과 블랙사바스의 만남으로 대단한 화제였지만, 단 한장의 앨범과 투어로 끝이 났다.
이 거물 보컬리스트는 블랙사바스의 리더 토니아이오미 입장에서는 영입했다기 보다는 모셔왔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영향력이 큰 인물이었고, 덕분에 [Born Again] 앨범은 기존의 블랙사바스의 스타일과는 너무나 다른 스타일을 담고 있다.
앨범 발표 후 진행된 순회공연에서도 언제나 앵콜로는 딥퍼플 시절의 스모크 온 더 워터 가 연주되었다. 리치블랙모어의 괴팍함에 필적할만한 자유분방함을 가지고 있는 이언 길런은 가사를 바꿔 부르는걸 개의치 않았는데 그래서 인지 이 노래 가사마저 까먹었다 한다
결국 이번에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한 길런은 블랙사바스 로서의 활동에 흥미를 잃게 되었다.
이업 길런을 영입할 때 단 한장의 앨범으로 끝낼 계획이 아니었던 블랙사바스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이었지만 결국 그를 놓아줄수 밖에 없었다.
1984년 딥퍼플이 재결성 되었기 때문이다.
이언 길런은 그때부터 2016년 현재까지 딥퍼플 의 보컬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중간에 다시 한번 탈퇴했다가 재가입했지만 이제는 리치블랙모어 도 없고 존로드 도 없는 딥퍼플 에서 명실 상부한 리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제 딥퍼플은 완전히 그의 밴드로 보여진다.
솔로 앨범도 여러번 발표햇는데 가장 최근작은 2009년에 발표한 [One Eye to Morocco]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