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3월 5일 ~ 2006년 6월 5일
1 개요
한국의 언론인. 야구 전문 기자로 이름을 날렸다.
2 생애
제물포고와 서울대를 거쳐 1977년 한국일보에 입사한 뒤 야구 전문 기자로 활동했다. 이후 경향신문을 거쳐 1985년 스포츠서울 창간 때 자리를 옮겨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재직했다.
야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필력으로 유명했다. 1980년대 중반 스포츠서울 지면을 통해 소위 '땅표'로 알려진 국내 최초의 야구 경기 기록표를 만들어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다른 스포츠 일간지에서도 이 땅표를 흉내낸 기록표를 실었지만 가독성과 경기 상황의 재현, 최근 5경기 타율 표시 등의 측면에서 스포츠서울 땅표만한 퀄리티를 내지 못했다.
현장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을 통해 좋은 기사를 많이 쓰기도 했다. 김성근의 굿바이 OB가 좋은 예. 또한 적극적인 저술 활동을 통해 약 20여권의 야구전문서적을 집필하면서 국내의 야구 저변 확대에도 큰 기여를 했다. 특히 1999년 한국야구위원회와 대한야구협회의 후원하에 말년에 유홍락, 천일평과 함께 발간한 <한국야구사>는 그의 저술활동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방대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2002년에는 스포츠서울 편집국장을 맡기도 하였다.
오랜 기자 및 저술 활동을 통해 야구계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으나 2006년에 폐암으로 인해 향년 5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사후에도 야구 기자의 귀감으로 후배들이 그를 추도하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이런 기사가 좋은 예이다.
다만 한화 이글스의 '북일파 VS 비북일파' 대립 떡밥을 만드는 등 일부 사안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크게 엇갈리는 편이다. 여기에 스포츠서울이 전체적으로 잘난 체가 심한 기사 어조를 보이는 데에 일조했다는 비판도 있다. 실제로 자신의 영향력을 잘 알고 있었고 그 행사를 엄청나게 많이 했다. 장호연이 OB 베어스와 연봉문제로 대립할 때, 대놓고 자신과 친분이 있던 장호연의 편을 들었다거나, 현대 유니콘스가 창단될 때에는 '대충 현대가 창단하나 보다' 라는 것을 짐작하고는 창단 기사를 소설로 쓰고, 이걸 보고 정보가 샌 것을 안 현대가 서둘러 창단하자 특종이 되었다고 좋아했다거나 하는 정말 당황스러운 내용들을 자신의 책에 기록하고 있다.(-_-) 또한 이광환 감독의 열렬한 추종자라서 1996년 이광환이 LG 트윈스에서 짤리고 천보성이 후임 감독으로 취임하자, 찬탈이란 극단적인 표현으로 비난한 전력도 있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중립적인 기자라기 보다는 필력이 뛰어나고 지식이 많았던 칼럼리스트로서 더 적당했던 인물. 박동희의 원조격이라고 볼 수 있다.(박동희와 다른 것은 줄곧 신문사 내에서 활동했다는 것이지만.)
3 저서 및 번역서 목록
스탠드의 명심판(1980, 번역서, 시먼서 著, 통산 1호 번역)
심판도 할 말 있다(1986, 번역서, 루치아노 著)
챔피언 만들기 : 美 카디널스 감독 허조그의 야구인생(1988, 번역서)
챔피언 만들기 2 : 美 LA 다저스 감독 라소다의 야구인생(1989, 번역서)
미국야구 일본야구(1991, 번역서, 화이팅 著)
야구란 무엇인가 (1993, 1994, 번역서, 레너드 코페트 著)
추억의 다이아몬드(1994, 번역서, 로렌스 리터 著)
야구에는 민주주의가 없다(1995, 번역서, 레너드 코페트 著)
두가슴 한마음 : 프로야구 10년...두 기자의 잔소(1991)[1]
사람 좋으면 꼴찌(1992)
야구가 있어 좋은 날(1994)
LG, 이광환, 자율야구(1994)
이중노출 : 프로야구의 특종, 낙종... 그 뒤의 진실(1995)
한국야구사 (1999, 유홍락, 천일평과 공동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