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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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NC 다이노스넥센 히어로즈LG 트윈스
KIA 타이거즈SK 와이번스한화 이글스롯데 자이언츠
과거에 참가했던 구단 보기 ➡
삼성 라이온즈kt w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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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블럼마스코트
위니[1]
한화 이글스
Hanwha Eagles
법인 설립1985년 3월 11일
창단1986년 3월 8일
팀명 변경1993년 11월 1일
구단 법인명㈜한화이글스
영문명칭HANWHA Eagles Professional Baseball club
상장유무비상장기업
기업규모대기업
연고지대전광역시[2][3]
구단 연고지 변천대전광역시 (1986~)
구단명 변천빙그레 이글스 (1985~1993)
한화 이글스 (1994~)
구단주김승연
사장김신연[4]
단장박정규
감독김성근
홈 구장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
(13.000석)[5]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6]
(10,500명)
2군 구장서산 야구장
워드 마크
킷 스폰서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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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단장홍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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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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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대전 시티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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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삼성 블루팡스대전 KGC인삼공사
충청권 연고 기타 구단 보기

1 개요


KBO 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대전광역시.

1986년 빙그레 이글스란 이름으로 KBO의 제7구단으로 창립했다. 이글스라는 팀명은 일반 공모를 통해 지어졌다. 1993년 11월 현재의 팀명인 한화 이글스로 개명했다. 정확하게는 빙그레한화그룹의 계열사던 시절에 운영주체를 빙그레에서 한화그룹으로 옮긴 것. 팀의 상징색은 주황색(빙그레 시절)-빨강색(팀명 변경인 1994년부터 2007년 시범경기까지)-주황색(한화 CI 변경 후).

한화의 자랑으로는 응원가, ++, 응원단장, ++의 세 가지를 꼽는데 이견이 없다. '한화 에이스와 4번은 하늘이 점지한다'란 말이 있을 정도로 항상 에이스와 4번은 리그탑이다.[8]

팀의 상징은 독수리(Eagles)인데 2000년대 중반부터 치킨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며 이를 줄인 약칭 '칰'이나 이를 변형한(보약의 의미가 내재된) '' 으로 불리기도 한다. 암흑기에는 아예 보양식으로 '두산'의 '곰탕'드립처럼 '삼계탕'으로 인식되었다. 처음에는 타 팀 팬들이 폄칭으로 부르기 시작했으나 이후 한화 프런트의 몇몇 뻘짓과 588689967의 진행으로 인해 한화팬들이 자조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늘었다(...). 그런데 바꾸려고 해도 칰이 입에 붙어서 바꾸기가 힘들다 김성근 감독이 사령탑에 오른 2015 시즌 초반경에는 "꼴칰"의 안티테제(Top)+독수리라는 뜻의 "탑돇"이라는 별명이 등장하기도 했다(...). 다만 이쪽의 경우 뭐든 못 까서 안달이 난 국내야구 갤러리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단어 자체에 비꼬는 의미도 담겨 있는 만큼 가려서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도 한화가 못하는 날 야갤에 가면 탑돇이 순식간에 폐닭으로 바뀌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목격할 수가 있다

연고지는 대전광역시이며 연고지의 홈구장인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가 작은 편이었으나 2012년 시즌 후 김응용 감독이 부임하면서 외야 펜스를 뒤로 밀었다. 부연고지는 청주시이며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을 제2 홈구장으로 활용 중이다. 2015년 시즌부터 강원도 춘천시의암야구장제3 홈구장으로 쓸 예정이었으나 프로야구를 치르기 위한 여건 미비로 인해 춘천 홈 경기는 무산되었다. 제2 홈구장인 청주구장은 작아서 투수들의 무덤[9]으로 악명이 높다. 일명 한국의 쿠어스 필드 한화 이글스 2군 구장은 서산 야구장이다.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은 1999년에 롯데 자이언츠를 꺾고 우승한 것이 유일하다. 대신 준우승만 5번을 하였다. 콩칡 대전은 의 고향

2015년 기준으로 팀 컬러는 일명 "마리한화"(마리화나)로 대표되는 안 보려고 하는데도 막상 안 보기에도 뭐한, 지고 있어도 왠지 이길 것 같고 이기고 있어도 왠지 질 것 같은 마약야구로 이겨도 뭔가 불안하게 이기는 똥줄 타는 야구가 팀 컬러가 되었다(...).

과거에는 거포 위주의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내세운 공격 야구가 전통의 팀 컬러다. 용병과 토종 프랜차이즈가 적절하게 배치된 한화의 클린업은 2010년 정도를 제외하면 언제나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 별명이 붙은 이유는 빙그레 시절 모기업인 한화가 화약을 생산하는 기업이었고 창단 초기 시절부터 중장거리 타자들로 포진된 막강한 타선을 구축했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빙그레 이글스 시절은 잠실을 제외한 전 구장이 대전 한밭 야구장과 거의 비슷한 크기였다. 대부분의 팀들이 비슷한 조건에서 경기를 하고 있을 때부터 다이너마이트 타선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니 1980년대의 이글스가 얼마나 타선이 강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다만 빙그레 시절에는 중장거리 위주의 타자들로만 구성되어있지 않고 소총과 대포가 적절하게 섞인 균형이 잘 잡혀있던 타선이었다. 그러던 게 빙그레 말기부터 조금씩 조금씩 바뀌더니 결국 김인식 체제 하에서는 완벽한 뻥 타선을 핵심으로 한 타선이 되어버렸다(...). 암흑기가 시작된 2010년 이후로도 최진행, 송광민, 김태완 등 거포 자원은 꼭 갖춰놓고 있다.

상대적으로 타선의 비중이 높은 팀인지라 투수진은 약한 편이라는 이미지도 있지만, 사실 이상군, 한희민, 한용덕, 송진우, 구대성, 정민철, 문동환, 이상목 등 수준급의 투수들도 동시에 있었던 팀이며 빙그레 시절에는 리그에서 손꼽히는 투수진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이 시절에도 불펜은 약했으며 이후로도 구대성을 제외하면 수준급 불펜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팀. 에이스의 경우는 리그 정상급의 선발이 매년 적어도 1명씩은 있었으며 10승 투수가 유일하게 없었던 2012년에도 류현진의 활약은 10승 투수의 그것 이상이었다. 다만 그 류현진의 해외 진출로 인해 2013년은 이글스 사상 최초로 투수 에이스가 없는 시즌이 되었고 결과는...

2000년 이후로는 점점 투수진이 빈약해지기 시작하면서 9점 주고 10점을 내는 패턴으로 이기다가 2008년 후반기 이후 타선과 투수진이 동시에 침체에 빠지면서 9점 내고 10점 주는 상황이 되고, 2009년 시즌이 끝나면서 타선 약화로 그 9점마저 내기 힘들어지면서 몰락하였다. 2012년 시즌을 마친 후 우승 청부사로 불리던 김응용을 감독으로 영입했지만 우~ 현진이도 없고 2013, 2014년 2년 연속 9위를 기록하고, 결국 김성근 영입이라는 초강수를 두게 되었다. 김성근 영입 이후로 또 9위다.

2 팀의 특색

2.1 으리 넘치는 노장 선수 대우

장종훈송진우 노선이 만들어낸 한 번 뽑은 선수를 오랫동안 기용한다란 방침을 고수하고 있으며 주력으로 사용하는 선수가 대부분 고연령층이어서 노인정이란 별명을 얻었다. 노인정 고정 멤버는 1966년생인 송진우, 1969년생인 구대성, 1971년생 권준헌, 1972년생 문동환, 정민철, 1974년생 최영필, 1975년생 김해님, 1991년생 안승민[10] 등으로 다른 팀에 가면 최고령으로 분류되는 선수가 한화에 오면 회식할 때 고기 굽고 탈의실 정리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2008년엔 정민철이 아직도 커피 심부름을 한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건 한화 구단주인 김승연 한화 회장이 인재들을 한 가족으로 보고 사용하는 방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방침에 맞춰서 팀의 레전드의 재계약에 대한 대우도 좋은 편이라 송진우, 장종훈, 구대성, 정민철 같은 팀의 레전드급 선수를 다른 팀으로 보내지 않으며 데뷔에서 은퇴까지 한화 한 곳에서 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또한 선수 은퇴식을 봐도 상당히 후한 대접을 하고 있어 레전드급 선수에 대한 대우가 나쁜 LG 트윈스롯데 자이언츠[11] 팬들은 한화의 반만이라도 흉내 내 달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12] 일례로 송진우만 보더라도 선수협 파동시 박충식삼성에서 해태로 징계성 트레이드 됐음에도 불구하고 한화는 송진우를 트레이드하지 않았다.[13] 또한 한화에서 뛰었던 선수인 진정필[14]이 백혈병 판정을 받자 수술비를 지원해 주기도 했으며 거기다가 2011년 故 최동원 전 2군 감독의 별세 때에는 한화에서는 선수로 뛴 적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4년간 코치로 연을 맺었던 점을 고려하여 한화그룹 임직원이 상을 당한 경우에 준해서 지원을 해주겠다고 나서기까지 했다! 제발 롯데는 반만이라도 좀 흉내라도 내봐라

이 외에도 비단 노장 선수들만을 대우해 주는 것을 넘어서 2012년부터는 고등학교/대학교 졸업식에 참가하지 못하는 신인 선수들을 위해 스프링 캠프에서 자체적으로 졸업식까지 열어주고 있으며 부상으로 일찍 선수 생활을 접게 된 연경흠에게 육성군 스카우터 직책을 마련해줬고 2013년 시즌을 끝으로 결별하게 된 외국인 선수인 데니 바티스타, 대나 이브랜드에게 감사패를 전달하는 등의 의리 넘치는 모습을 보이면서 타 팀 팬들에게 부러움을 사고 있다. 야구 말고는 뭐든 잘하는 팀

이 노선을 이어가고 있는 선수들은 '한화의 매력남', '꽃범호' 란 별명을 가진 이범호와 성 뒤에 아무 말이나 붙이면 무조건 다 별명이 되는 '김별명' 김태균, 데뷔 후 꾸준히 성장하며 국내 최고급 투수로 자리매김한 류현진이 있다. 이범호김태균이 FA 선언을 하자 무려 130억에 가까운 돈을 퍼부어서 돈을 안 쓰는 인색한 구단이라는 평가를 한 방에 뒤집었다. 그러나 돈을 퍼붓기만 하면 되나 둘 다 일본 가버렸는데(...).[15]

그러나, 이러한 레전드 대우는 굉장히 부작용도 커서 한화에서 프랜차이즈 역할을 했거나 어느 정도 활약을 한 선수는 연수도 없이 요직에 꽂아버리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이름하야 칰무원. 대표적인 사례가 상군매직 이상군으로 투수 코치로 있으며 젊은 선수들의 투구폼을 망가뜨리고 스카우터로 있으면서 브라이언 배스션 헨을 데려오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는 한화그룹 특유의 의리 경영이 이글스에도 영향이 있으며 특히나 김승연 회장이 야구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구단의 중요 일의 경우는 비서실 직통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서 일어나는 현상 중 하나다.

또한 정민철, 김민재, 조경택 등 선수 때는 실적을 올렸을 지 몰라도 코치로서는 무능력자들을 별다른 연수도 안 보내고 코치직에 꽂아 선수육성과 성적 모두 말아먹는 참사를 일으켰다. 그러나 조경택은 2013년 명포수였던 걸로 밝혀졌다. 앞의 평가는 조경택에 대한 모욕이다

자기 선수들에 대해서 철저한 관리를 해주는데 반해 FA 영입이 굉장히 적은 구단으로 외부 영입은 2013년 이용규, 정근우 이전까지 2006년 김민재 영입, 2012년 송신영 영입으로 단 두 건뿐이었으며, 그나마 김민재의 영입은 은퇴 후 코치직을 맡기겠다는 조건으로 한 것이라 선수로서 영입한 것이라기보다는 코치로서의 선고용에 가까워 FA라 치지 않는 시선이 강하다.

다만 팀의 역사상 처음 이루어진 FA의 주인공인 김민재는 한화의 내야진의 안정에 투입되었으며 내야진의 구성이 엉망이라 돌글러브라고 비웃음 당하던 한화 내야진이 눈에 띄게 안정되었다. 평론가들은 팀의 실익과 팬들의 환호를 동시에 얻은 아주 드문 성공적인 FA라고 평가한다. 사직구장에서 한화와 롯데의 경기 칰꼴라시코 가 열리는 날엔 가끔 약주하신 아재들이 '김민재롯데 거' 를 외치기도 한다.

FA 영입과는 반대로 트레이드나 타팀에서 방출된 선수의 영입 등은 의외로 꾸준한 편이고 성공률도 높다. 그럼에도 팬들이 "트레이드가 적다" 고 인식하는 까닭은 거물급 선수 간의 이동은 전무하기 때문. 준척급이나 2군 선수 간 트레이드에선 의외로 활발한 팀이 한화 이글스이다.

이런 선수 영입 중 대표적인 예가 강동우 영입. 2010년에는 이대수정원석을 주워서 잘 써먹고 있다. 두산에서 방출된 선수인 정원석의 경우에는 2010년 시즌 자신의 커리어 최초로 3할대 타율을 기록했다. 그리고 2011년 시즌에는 이대수가 유격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 마구마구에서 이글스 올스타는 드디어 쌍하점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불러들인 선수들이 대부분 나이가 많은 방출생이나 퇴물급 선수인 탓에 1, 2년 깜짝 활약해주고 조용히 방출당하거나 은퇴하는 편이 많은 편이다(...). 그럼 우리의 팩사장님도?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이 때문에 올드팬들 중에선 외부 영입이나 트레이드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많고 다른 팀 출신 선수는 조금만 못해도 까내리는 사람 또한 많다.

2013년 11월 17일, FA 정근우를 70억원(계약금 35억원, 연봉 7억원, 옵션 7억원), 이용규를 67억원(계약금 32억원, 연봉 7억원, 옵션 7억원)으로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작년에 돈은 있는데 호구짓하다 FA를 놓쳤던 과거 때문인지 역대 FA 사상 각각 2위와 3위에 달하는 돈을 써서 FA를 기어코 붙잡았다. 기아는 죽었슴다

2014년 6월에도 노인 수집증은 못 고쳤는지 이대수, 김강석을 주고 조인성을 사왔다. 다만 이 경우는 이대수도 충분히 나이가 많은 고액연봉자 선수이고 한화의 고질적인 포수난을 극복시키기 위한 트레이드이니 섣불리 판단하면 안된다. 또한 2015년 2차 드래프트에서도 장민석, 차일목, 송신영 등 노장들만 죽어라 픽했고, 두산에서 방출된 이재우를 영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심지어는 감독도 백전노장을 좋아한다. 김인식 감독(2005~2009)에 이어 김응용 감독(2013~2014)과 김성근 감독(2015~ ) 등 10년째 감독 선임 때마다 현역 최고령 감독을 고집(?)한다. 중간에 한대화가 빠진건 넘어가자...[16]

2016년 시즌이 되자 리그 내 고령자로는 열 손가락에 드는 사람 중 두 사람이 이 팀 소속이다. 조인성, 박정진[17]. 그만해 미친놈들아 조인성박정진은 연대 선후배이며 리그 최고령 배터리이다!

근데 이 항목 노장 선수 대우라고 하면 은퇴식이나 영구 결번 같은 거 이야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18]

2.2 팀의 평균 연령 증가

위와 아래쪽 문제를 결합하면 어떤 일이 발생하냐면...

2013년 FA로 영입한 이용규가 팀 야수진의 막내(1985년생)가 된다.# 참고로 2016년 현재 1985년생이면 어지간한 팀에서는 주장까지도 할 수 있는 나이다.[19] 직전 시즌인 2015년에는 역시 1985년생인 박석민이 삼성 주장을 역임했었고 한술 더떠서 2016년시즌에는 넥센 히어로즈에서 89년생인 서건창이 주장인 것을 감안한다면 신인 육성의 어려움을 겪는 이글스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 KBO FA 제도에서는 9시즌을 소화해야 FA 자격이 주어진다는 걸 생각하면...

여기에 문제를 하나 더 적자면, 이글스가 2009년 이후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두면서 FA 영입 많이 한 팀이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타 팀에 보상선수로 한화에서 키우던 영건 선수들을 많이 빼앗겼다는 것이다. 여기에 트레이드 과정에서도 노장을 영입하고 그 반대급부로 유망주를 타 팀에 많이 넘기면서 유망주 관리가 잘 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 것. 그 중에서 수혜를 많이 입었던(?) 팀이 2012년 이래로 한화와 함께 하위권을 형성했던(...) KIA 타이거즈. 2009년 노장 강동우를 받고 넘긴 신종길은 트레이드 당시에는 터지지 않았지만 2012~2013년부터 조금씩 기량이 향상되면서 주전선수가 되었고, 2010년에 KIA로 트레이드된 김다원, 2013년 FA 시장에 이용규의 보상선수였던 한승택, 2014년 송은범의 보상선수였던 임기영, 여기에 2015년 트레이드 때에는 2군에서 심혈을 기울여 키우던 노수광, 오준혁과 함께 좌완 기대주였던 유창식도 넘겼다. 당장 해당 선수들이 KIA에 와서 어떤 성적을 거두게 될지는 알 수는 없지만 KIA 입장에서 한화에서 데려온 선수들이 장기적인 안목으로 봤을 때는 가려운 곳을 긁을 수 있는 복권을 수집했다는 점에서 한화는 KIA의 팜(...)이 되어버린 셈. 한화님들 감사합니다

KIA 뿐만 아니라 삼성 라이온즈권혁의 보상선수로 데려온 선수가 신인 대졸 픽 포수 김민수였으며, 롯데 자이언츠심수창의 보상선수로 고졸 픽 투수 재미있는 아이 박한길을 지명했고, 군복무에 합의하고 방출된 최영환을 데리고 갔다. 이러한 점을 고려했을 때 적극적인 FA 영입으로 인해 그 반대로 팀에서 키울 유망주를 타 팀에 빼앗기거나 넘겨준다는 점은 장기적으로 또 다시 평균 연령 증가라는 악순환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살려조 1호기은 한화에서 역대급 몬스터 시즌을 보냈지만...

이러한 FA의 잦은 영입으로 2016년 현재 한화 1군의 평균 연봉은 KBO 10개 구단 중 1위이다. 그러나 이는 역으로 한화 유망주들을 타 팀에게 많이 빼앗기는 빌미가 되었다. 성적이 안 좋아 리빌딩을 해야 할 팀이 구단의 우승에 대한 욕심으로 지나친 투자가 되었다고 허구연 해설가가 에둘러 비판했다.[20]

2.3 우수한 외국인 타자의 고용

외국인 타자를 가장 잘 뽑는 구단으로 알려져 있다. KIA가 투수를 잘 뽑아온다면 한화는 타자를 아주 무시무시한 선수들로만 뽑아오는 걸로 유명하다.

1998년에 외국인 용병 제도가 도입된 이후 역대 한국에서 활동한 외국인 선수 중 가장 많은 홈런을 친 댄 로마이어, 외국인 선수중 가장 많은 안타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한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활동한 제이 데이비스[21], 나중에는 부진했지만 한때 '슈퍼맨' 으로까지 불렸던 덕 클락, 기타 제이콥 크루즈 같은 한국 리그에서 맹활약했던 용병들이 한화 이글스에서 활동하였다. 물론 그 잘 뽑는다는 타자 용병도 항상 잘 뽑는 것은 아니어서 박찬호와 한솥밥 먹었다고 언플을 날린 마이크 부시나 KBO 리그 최초의 용병 포수라는 기록만 세우고 간 엔젤 페냐, 기마자세 타격폼으로 인상을 남겼지만 타격 부진으로 퇴출된 로베르토 메히아, 2009년 빅터 디아즈, T 세리머니만 남기고 퇴출된 나잊어나이저 모건 같은 흑역사도 존재한다.

반면 투수용병 뽑는 실력은 영 별로여서 2001년 후반에 잠깐 활약한 브랜든 리스[22][23], 2007년에 한화 외국인 선수 역사상 최다승인 11승을 거둔 세드릭 바워스, 2008년부터 두 시즌 간 활약하며 외국인 선수 중 두번째로 많은 세이브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24] 브래드 토마스를 제외하면 한 해 반짝하고 망해버린 렌 피코타라든가, 디아즈의 대체 용병으로 왔으나 특색 없는 실력으로 입지를 잡지 못하고 사라진 에릭 연지 언니 등 두각을 나타낸 선수가 별로 없다. 특히 2010년대에는 데니 바티스타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투수 용병을 뽑지 못하고 있다. 0승 11패 투수 호세 카페얀과 대전 관광객 브라이언 배스, 그리고 션 헨 같은 망작들만 뽑고 있는 실정.[25][26]

2010년 시즌에 새로 영입한 호세 카페얀훌리오 데폴라브래드 토마스덕 클락과 마찬가지로 인성이 좋다는 '소식' 과는 달리 인성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 망했어요.[27] 카페얀이 퇴출된 이후 새로 들어온 용병 프랜시슬리 부에노도 마찬가지.

2011년 시즌에는 2010년 시즌 9월 들어 1점대 방어율을 보여주며 호투하는 모습을 보여준 데폴라와 재계약하고 마무리 투수 오넬리 페레즈를 영입했으나 둘 다 망했어요. 결국 대체용병으로 외야수 카림 가르시아를 영입하였고 그의 맹활약으로 5위 싸움을 치열하게 전개하여 이미 4강권에서 멀어진 시즌 후반기에도 팬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2012년 시즌에는 2011년 시즌 대체용병으로 영입되어 마무리 투수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데니 바티스타와 재계약하고 선발투수 브라이언 배스를 새로 영입하였으나 배스는 희대의 외국인 관광객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팀 성적은 초반부터 꼴찌로 추락, 한화의 외국인 투수 잔혹사에 한 줄 더 추가하게 되었다. 여기에 배스의 대체용병으로 영입한 션 헨까지도 영 믿을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결국 퇴출당하고 말았다. 그나마 바티스타는 불안불안했던 마무리에서 원투펀치급 선발로 전환에 성공했다는 게 위안거리.

2013년 시즌에는 선발로 전환한 바티스타에 추가로 대나 이브랜드를 영입했으나 팀이 암흑기를 탔던 터라 둘 다 성적이 영 좋지 못했다. 결국 시즌이 끝난 후 둘 모두와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2014년 시즌을 앞두고 용병 보유 확대와 타자 의무 고용 규정이 생기면서 펠릭스 피에를 영입했다. 과거 메이저리그에서도 수준급 유망주였던 그가 제이 데이비스급의 활약을 보여줄 것인지가 한화 팬들 사이에서 관심사를 불러일으켰다. 확실히 기대가 헛되지는 않았는지 시즌 초부터 한화 타선에 활력을 불어넣어주었으며 거기에 더해 순둥이들이 가득한 한화 덕아웃에서 적극적으로 파이팅을 외치며 활력을 불어넣으며 팬들로부터 호평을 받기 시작했다. 게다가 홈런을 쳤을 때 이종범 3루 코치와의 거수경례 세레모니까지 보여주면서 사실상 신남연 시즌 2 확인사살

2015년에는 투수용병 잔혹사를 의식해 미치 탈보트, 쉐인 유먼과 같은 타 팀에서 검증된 선수들을 영입했지만, 둘 모두 기대만큼의 성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결국 부상으로 유먼을 퇴출한 후 70만달러를 투자해 뉴욕 양키스 소속의 에스밀 로저스를 영입하는 초강수를 두게 되었다. 그후 로저스는 반짝 활약으로 일본 쪽의 주목을 받았지만 2016년에도 한화에 눌러앉기로 했다.

2016년에 연장계약을 한 에스밀 로저스는 결국 부상으로 수술을 위해 중간에 퇴출됐고, 싼값에 일본에서 데려온 마에스트리는 역시 싼값에 사온 것을 증명하듯 망했다(...). 마에스트리의 대체용병으로는 카스티요를 영입, 육성형 용병으로 나름 괜찮게 평가 받는다. 물론 9월 말에 갑작스럽게 불펜알바 뛰면서 망했다 에스밀 로저스의 대체용병인 에릭 서캠프는 서캠프란 오명을 받으면서 또다시 망하면서 투수용병 잔혹사를 이어갔다. 하지만 타자용병으로 데려온 윌린 로사리오는 4월의 슬럼프를 벗어난 이후 정말 오랜만에[28] 30홈런-100타점을 기록하며 한화 타자용병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2.4 약한 수비와 강했던 공격력

지금은 약체로 전락했지만, 한화 이글스는 빙그레 시절에 삼성 라이온즈와 함께 단골 준우승팀, 2000년대 중반에도 최소 4강은 가는 중상위권의 팀이었다. 하지만 전성기 때든 암흑기 때든 공통점이 있는데, 전통적으로 수비가 약했다. 특히 센터라인의 부재가 심각한 팀이었는데,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체구가 큰 선수를 위주로 뽑고 또 FA 등 외부 영입을 잘 하지 않았다는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이러니 전성기때는 가을야구 같은 큰 무대에서 실책의 남발로 매번 정상의 문턱에서 고비를 넘지 못한채 콩만 쌓았고,[29] 몰락한 이후에는 아예 수비 자체가 답이 없게 되어 버렸다고 볼 수 밖에. 물론 암흑기가 심하게 오니 이제는 그야말로 미친 듯이 데려오고 있다

특히 내야의 키스톤 콤비 문제는 정말로 심각했다.[30] 유격수로는 80년대 후반부터 90년까지 장종훈이 기용되었는데, 애초에 공격력만 보고 기용한 거지 수비 범위든 안정도든 현격히 떨어졌다. 그 외의 선수들은 수비가 그냥저냥 수준까지는 되었지만, 대신 공격력이 완전 사망. 특히 장종훈김민재 사이를 메꾸었던 유격수 허준은 아마추어 시절에는 이종범과 비견될 정도였으나, 프로 입단 후 타격이 사망하였다. 당시 물방망이의 대명사로 타율도 파워도 최악. 해설위원들이 1년에 홈런 1개 칠까말까한 선수라고 놀릴 정도였다. 그나마 수비는 준수한 편이었고 그래도 자리는 지켜줬다는 것에서 위안. 허준이 물러나고 김민재가 오기 전인 2004년부터 2005년까지는 이범호가 유격수와 3루수를 번갈아 가며 맡았다.

한화 역사상 가장 안정적인 유격수로 꼽히는 선수는 2006년 FA로 이적한 김민재이다. 근데 당시 김민재는 2번째 FA였고, 나이가 34세로 유격수 치고는 노장 축에 속했으며 코치직 보장이라는 조건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를 넘는 선수가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사실. 그나마도 외부 영입이다. 망했어요. 그래도 수비가 안정적인 백업 한상훈이 있기는 했다. 김민재가 은퇴한 이후에는 타 팀에서 백업하다가 온 이대수가 골든글러브를 타기도 했지만 그나마도 수비 안정성이... 그 이대수마저 SK로 이적한 2014년부터는 한상훈, 강경학 정도가 1인분은 해 주는 상황.

2루수는 한술 더 뜨는 것이, 팀 역사를 통틀어 봐도 수준급 2루수라고 할 수 있는 게 정근우가 처음이다. 이번에도 외부 영입. 이 팀은 솔직히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안 됩니다 그나마 이전까지는 전대영, 백재호, 임수민 정도가 사람 취급받는 수준이지만, 전대영은 1루수 겸업을 맡는 경우가 많았고, 백재호 또한 유격수로도 출전하는 등 전문 2루수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나마 2루를 전문으로 보던 임수민의 경우에도 군 복무 후 몸이 불어 수비 범위가 좁아지며 사실상 커리어가 끝장났다.

임수민이 은퇴한 이후에는 백업을 보던 한상훈이라고 쓰고 한삼푼이라고 읽는다이나 타 팀 방출생 출신인 정원석으로 겨우겨우 떼우다가 그 정원석도 불의의 부상으로 은퇴. 결국 2013년 시즌 이후 FA로 정근우를 영입하면서 2루수 문제가 해결되었다. 즉, 역대 이글스의 키스톤 콤비는 공격력만 있어서 수비를 아예 포기하거나, 아니면 수비만 되는 백업 선수 수준의 선수들로 자리를 메꾸는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한화의 암흑기였다지만, 2014년 정근우-한상훈의 키스톤은 사실 한화 팬들 입장에서는 역대 최고로 꼽히는 키스톤 콤비였다.

중견수를 보면 이정훈이 몰락한 이후 대책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팀의 레전드로 꼽히는 이영우의 수비 범위는 세발자국이라고 할 정도로 심각했는데, 이런 선수를 중견수로 기용하는 판이었다. 이 문제는 제이 데이비스의 영입으로 비로소 해결되었다. 내부에서 해결한 케이스가 하나도 없다! 문제는 외인 선수를 썼으면 그 기간 동안 키워내야 정상인데, 이번엔 이 외인 선수만을 주구장창 쓴다. 제이 데이비스가 활동한 기간이 1999년부터 2006년까지였으며, 2003년 멕시코리그에서 뛴 것을 제외하면 총 7년인데, 오히려 구단에서는 이 동안 신인 드래프트에서 투수 중심의 지명을 하면서 야수 수급을 거의 하지 않았다. 결국 제이 데이비스가 떠나간 이후 고동진이나 기아에서도 방출하려다가 둘다 방출하려다가 길을 터준 트레이드 신종길과 트레이드된 강동우 등이 중견수로 활동했지만, 당시 강동우 나이는 불혹. 답이 없다 결국 강동우가 1~2년 정도 반짝한 후 이용규펠릭스 피에, 나이저 모건또 외부 영입으로 중견수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포수였다. 한화의 안방을 지킨 선수 중 대표적인 선수로는 유승안, 김상국, 조경택, 신경현이 있었으며, 백업 중 중요한 선수는 강인권, 양용모, 이도형, 심광호 등이 있었다. 이 중 유승안, 이도형은 공격에 비해 수비가 크게 모자랐으며, 양용모는 포수면서 수비는 안 되고 정작 발이 빨라 외야수로 기용되었다. 조경택, 강인권은 공격을 포기했고 도루도 못 잡았다. 체고의 포수 신경현도 상황은 마찬가지. 얼마나 포수진 문제가 심각했으면 엔젤 페냐, 제이크 폭스 등 외국인 선수가 포수 마스크를 쓰는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벌어질 정도이다.

그래도 가장 포수진이 양호했던 유승안-김상국 시절에는 두 선수가 겹쳤고, 유승안이 물러날 시점에서 김상국도 점차 기량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이어받은 조경택-강인권은 둘 다 수비형 주제에 약한 어깨, 똑딱이 주제에 저타율로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고, 이 때문에 형제 1&2호기라는 말도 있었다. 신경현은 그래도 나쁘지 않은 수비, 봐줄 만한 공격력말도 안 돼!으로 유승안 이후 그나마 이글스 안방을 안정시킨 포수로 꼽히지만, 2007년 도루 저지율 4할을 기록한 이후에는 점차 하락, 물어깨의 대명사가 되었다. 부사수인 심광호도 이는 마찬가지. 이 둘도 1&2호기 세트로 묶이는 것이 이글스의 전통? 최훈 말로는 세트는 무조건 죽는다더라 이도형은 2004년 어깨 부상 이후 지명타자 출전이 더 많았다.

즉, 유승안김상국 시기 이후 신경현의 반짝 활약 말고는 한화의 포수진은 기대할 것이 없는 수준. 특히 이 내용들을 종합하면 공격력은 포기(유승안 제외), 도루도 포기, 포수 리드는 그럭저럭이라는 것. 포수 리드 무용론은? 답이 없다 뭔가 취소선이 많다 지금 현재 한화의 포수진을 구축하고 있는 게 누군지 생각해보자. 조인성, 허도환, 정범모, 제이크 폭스다. 이 중 원래부터 한화 소속이었던 정범모와 외야수 등 다른 포지션을 겸업하던 외국인 선수인 폭스를 제외하고, 앞의 두 선수가 얼마나 친정팀에서 욕을 먹었는지 생각해보자. 이 둘로조차 감지덕지하는 게 현재 한화 포수진의 현실이다. 범모보다 잘하니까

그리고 2016년이 되어 포수 마스크를 간간히 쓰던 제이크 폭스는 당연히 나갔고, 남은 것은 정범모허도환, 그리고 조인성 뿐. 결국 한화는 2차 드래프트로 노장 포수 차일목을 데려오는 수를 썼고, 일단 2016년은 어찌어찌 넘어가게 됐다. 2군에 있는 박상언지성준의 성장만 바랄 뿐이다

투수진으로 가 보면 한희민, 이상군, 송진우, 한용덕, 정민철, 류현진 등 전체적으로 선발투수가 매우 강했던 편이지만 구대성을 제외하면 계투진/마무리가 전통적으로 약한 편에 속했는데, 오죽하면 선발 자원이었던 송진우이상군이 마무리 투수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역대 KBO 리그 사상 시즌 다승왕과 구원왕을 동시에 석권한 선수는 단 세 명인데, 그 중 두 명(송진우, 구대성)이 한화 이글스 소속이라는 점이 이러한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 선수들이 모두 은퇴한 이후에는 브래드 토마스데니 바티스타 등 외인으로 마무리를 기용하기도 했지만 이 또한 믿음을 심어주기에는 부족했다. 결국 구대성과 외인 투수 이후부터는 정해진 마무리 없이 송창식, 김혁민, 윤규진 등 집단으로 돌려막고 있는 실정. 특히 투수 운용의 폭을 넓혀줄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는 한희민 이후 별다른 두각을 드러낸 선수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으며, 그나마 마정길, 정민혁, 정재원, 허유강 정도가 초토화된 불펜에서 눈도장을 찍기도 했지만 이 또한 혹사나 본인의 멘탈 문제 등으로 지속적인 활약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반면, 다이너마이트 타선이라고 부를 정도로 공격력은 수위급이었던 팀이다. 이런 특성은 유달리 작았던 홈구장, 타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훈련, 거포 중심의 드래프트 등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한화 팬들 사이에서는 농담삼아, 한화에 가 많은 것은 이 구장과 이 수비진에서 살아남으려면 괴물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그럼 다른 선수들은? 그러나 이를 이끌던 강타선과 투수진이 은퇴, 해외 진출 등으로 단번에 실종되었고 그 사이 선수를 키워내지도 못했으니 팀이 암흑기에 들어가 몰락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사실 이 문제점은 2000년대 초, 아니 그 이전부터 이미 쌓이고 쌓여오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중반 신인 드래프트에서 가장 적은 선수를 지명한다거나, 2군 구장도 없었던 등 선수 육성에서 허점을 드러냈고, 그 동안에는 타 팀에서 방출된 선수인 정원석, 강동우 등을 주워다 땜빵하는 식으로 버텼지만 노장 특성 상 잠깐 활약하고 은퇴하는 경우가 많아 이 또한 5886899 시기에 이르러서 한계에 달하며 문제점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다.

여기에 2013년 시즌부터 홈 구장의 외야까지 넓히면서 고질적인 수비 불안이 더욱 부각되었으니. 망했어요. 사실 2015년 시즌 김성근호를 팬들이 기대했던 것도 이러한 부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나 수비를 강조하는 감독이 가장 수비가 약한 팀을 조련하여 약점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2015년에 수비는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았으나 중용한 양아들들이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2016년 시즌 초반에는 정신줄 놓은 수비들이 나오면서 가뜩이나 갈려나간 투수들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었다.

3 신인 드래프트

대전팜은 북일고, 대전고, 공주고, 청주고, 세광고 정도밖에 없어서 숫적으로 크게 열세였으며 질적으로도 북일고를 제외하면 나머지 팜들도 그저 그런 수준이었기에 고졸우선지명과 전면 드래프트제도를 폐지하는데 앞장선 구단이며 결국 이 두 제도는 단계별로 각각 1999년 지명과 2009년 드래프트를 마지막으로 폐지가 되었다.[31]

그 중에서도 북일고가 한화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라 팜 내에 좋은 선수가 없다는 1차적인 이유에 정치적인 이유까지 겹쳐 북일고 선수가 지명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상군, 김태균, 안영명, 유원상 정도를 제외하면 꾸준히 픽한 북일고에서 배출해낸 주전급 선수가 그다지 없고 유원상도 먹튀 소리를 듣고 있는 판이라 북일고를 픽하는 것에 대해 좋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거기에 전면 드래프트 실시 첫 해에도 1, 2라운드 지명을 북일고 출신으로 해서 욕을 바가지로 먹기도 했었으며 1지명에 대해서 납득하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이 때문에 빙그레 시절부터 북일파와 비북일파(대전고, 공주고, 세광고, 청주고(청주기공고) 등) 간의 갈등으로 팀이 되어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나 이에 대해 애초에 근거가 빈약하다며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물론 1994년에 강병철이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북일고 출신의 비중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이 외에 특징으로 한화의 스카우터는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유난히 하드웨어에 집착하면서 떡대들을 우선적으로 수집하는 경향이 있다. 떡대를 보고 픽한 양훈이 대표적. 그 외에도 항상 코너 포지션의 거포유망주는 쌓아놓고 보는 편이기에 팀 내 거포는 거의 끊기는 법이 없다.[32] 최악좆망이라는 2010년 시즌에도 최진행이 타자진에서 버티고 있었을 정도. 그 반대로 테이블 세터가 될 만한 타자는 픽 자체를 잘 안하기에 잘 나오지 않는 편이다. 때문에 2013년 시즌 이후 정근우, 이용규를 FA로 영입할 때까지 한화는 늘 테이블 세터 부족에 시달렸다. 또한 하드웨어 덕후답게 은근히 포수 자원도 많이 쌓아놓는다. 정범모, 한승택, 이준수, 이희근, 박노민, 엄태용 등등... 하지만 코치가 조경택이잖아?

특이사항으로는 김인식 감독의 재임기간 동안 야수자원에 대한 픽, 특히 외야자원에 대한 픽을 대폭 줄이고 투수에 많은 카드를 사용했다. 2006년 드래프트에는 1차 포함 상위 6명 중 4지명 정범모를 제외하면 4명이 투수였으며 2007년은 1차 포함 상위 7명 중 4명을, 2008년에도 6명 중 4명, 2009년 지명 7명 중 5명이 투수 지명으로 매년 상위픽에 대부분을 투수에 사용했으며 야수자원도 정범모, 최연오, 이희근 등 포수로 상위픽을 찍으면서 포수자원에 편중된 픽을 했다. 1차 지명인 박상규김회성, 그리고 2차 지명자인 오선진김강 전부 포함해 단 4명만이 김인식 감독 기간에 상위에서 제대로 픽한 야수자원이었다.[33] 이 이외의 자원은 신고선수나 영입선수로 때웠다.

이렇게 굉장히 투수에 치우친 지명을 몇 년간 이어간 결과 당연히 신인 야수에서 새롭게 나오는 자원이 증발해버렸으며 결국 야수 부족으로 이어졌고 심지어 2010년 시즌 중에 2군에서 몇 명의 야수가 부상으로 경기에서 빠지자 경기에 나갈 야수가 부족한 처참한 상태를 맞이하게 됐다.

또 큰 문제가 생겼는데 이렇게 장기간 투수를 집중적으로 모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키워낸 투수가 없다는 것. 그나마 허유강황재규같이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투수는 재활의 신이라고 불리는 어떤 킬감독에 의해 재활해야 할 신세가 되었고, 그나마 이런 투수들도 몇 되지 않았다. 그나마 김혁민이나 유원상처럼 1군에서 털리면서 애증의 대상이 된 투수도 있지만 최진호윤기호, 구본범처럼 아주 2군에서 버로우를 해버린 케이스가 더 많았다. 게다가 야수진 쪽에서도 포수자원을 집중적으로 모았는데 애초에 포수는 단기간에 성장하지 않는 포지션인 데다가 그나마 타격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는 선수가 없으니...

결국 2010년 2지명 김재우와 4지명 이상훈을 지명하면서 그동안 픽이 없었던 중견 자원을 픽했으며 야수자원이 대폭 모자르게 되자 근 10년간 다른 팀에 비해 적게 픽하던 경향을 버리고 10명을 꽉 채워서 지명한 뒤에 모두 계약했다. 또한 야수자원의 픽도 상당히 많았는데 2011년에는 포수 나성용, 유격수 강경학, 1루수 김용호, 외야수 임신호오준혁에 투수로 픽했지만 이후 외야수로 키울 예정인 문재현까지 총 6명의 야수를 뽑으면서 그동안 부족했던 신인 드래프트를 다시 채우고 있다.

2011년 타자 기대주 김회성, 오선진, 김강 들은 터지지 않고 삽질하자 2012년 최대어 신일고 내야수 하주석을 1지명으로 지명했다. 드래프트 역사상 최초 야수 1순위 지명. 팬들은 불안한 내야를 어떻게든 안정시켜주길 기대하고 있다.[34] 또한 최우석, 임기영 등 고교리그에서 준수한 활약을 한 선수들과 북일고 포수 엄태용을 영입함으로써 나름대로 쏠쏠한 드랩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한편으로 신생팀 창단에 의해 피해를 보기도 했다. 북일고 출신의 에이스 윤형배를 지명할 수 있는 기회가 NC 다이노스의 우선 지명으로 인해 날아갔고 1차지명 제도가 부활한 첫 해인 2013년 6월 발표된 10번째 구단 KT 위즈의 우선 지명 선수 두 명 중에서도 당초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북일고 유희운이 예상을 깨고 포함되며 한화 이글스는 멘붕. 충청팜에서 1차로 지명할 만한 선수가 유희운 뿐이었기에 더 큰 손실이다. 대졸 선수를 지명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

게다가 2014년에도 KT 위즈가 우선지명으로 청주고 투수 주권을 지명하여 또 다시 연고지 최대어를 뺏겼다.[35] 그나마 천안북일 김범수가 있어 2013년보다는 나은 상황이지만 2년 연속 연고지 탑유망주를 뺏겼으니 한화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판. 2009년부터 팀 성적이 바닥을 기고 있는데 연이은 신생팀 창단으로 인해 한화가 온전히 1라운드 1픽을 행사한 적은 유창식 단 한 번 뿐이다.[36]

2016년에는 이례적으로 여태까지 갖고 있던 지역팜 안배, 포수 자원 수급, 즉전감 픽의 원칙을 좀 벗어난 점이 보인다. 그리고 항상 투수에게 강조하던 제구보다는 구위형 투수들을 뽑았고,[37] 외야수 자원을 확충했다. 특히 대졸에다가 유일하게 즉전감으로 비벼볼 만한 원혁재가 기대할 만하다.[38][39]

4 팀의 역사

WBC, 베이징 올림픽 야구 등으로 야구가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한 2000년대 후반 이후 야구를 보기 시작한 사람들은 대부분 한화를 일명 꼴칰, 만년 하위팀, 사회인 야구팀 등으로 부르며 약체로 평가하고 있다. 심하게는 '아직 우승해본 적도 없다', '4강도 못 가봤다' 라며 한화를 창단 초부터 답이 없던 만년 하위권팀이라 비난하기까지 한다. 신규 야구팬 유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2008년부터 한화 성적이 급전직하했으니 이런 인식이 생기는 것도 자연스럽다.[40]

하지만 한화가 적어도 만년 하위팀은 아니었다. 여느 팀들처럼 한화도 몇 차례의 짧은 전성기가 있었다. 성적이 워낙 들쭉날쭉했던 탓에 전통의 강팀이라 부르기엔 어려운 편이지만 그래도 빙그레 시절만 하더라도 분명히 리그의 강팀이었으며 한화로 바뀐 이후로는 강팀이라는 인식은 사라졌지만[41] 그래도 2008년 이전까지는 꼴찌는 안하고[42] 가을야구도 종종 하는 중위권 팀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다. 실제로 역대 가을야구 횟수를 따져보면 한화는 창단 이래 지금까지 12번 가을야구에 참가했다. 이는 588689967이 시작되기 이전인 2007년 기준으로는 22시즌 동안 12번 가을야구에 참가했다는 이야기가 되므로 적어도 이 시기까지는 최소한 중간 정도는 가는 팀이 맞다는 결론이 나온다.

4.1 연표

4.1.1 리그의 2인자 (1987~1992, 2005~2007)

2008년부터의 안습한 팀 성적 때문에 거의 잊혀지고 있는 사실이지만[43] 삼성 라이온즈 다음으로 준우승을 많이 한 팀이다. 콩라인 총 5회 준우승(1988, 1989, 1991, 1992, 2006년). 그래도 삼성은 우승을 8번이나 해봤지만(준우승은 10회)[44] 빙그레-한화 이글스는 뭐...[45] 하지만 2013년 기준으로 두산 베어스와 최다 준우승 자리를 같이 나눠먹게 되었다.[46] 이러다 최다 준우승 자리도 두산에게 역전당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한국시리즈 승률도 가장 낮은 팀이다(1회 우승/6회 진출, 16.7%).

2014년 기준으로 한화 다음으로 한국시리즈 승률이 좋지 않은 팀은 LG 트윈스다(총 2회 우승/4회 준우승, 승률 33.3%). 참고로 삼성의 한국시리즈 승률은 7회 우승/17회 진출, 즉 41.1%이다. 2000년대 들어와서 7회 우승을 했기에 승률이 이만큼 오른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1985년 우승은 한국시리즈를 안 치른 통합 우승이어서 승률 계산에서 제외했다. 두산 베어스의 한국시리즈 승률은 4회 우승/9회 진출인 44.4%로 한화, LG 다음으로 한국시리즈 승률이 좋지 않다. 또한 한국시리즈 준우승 1회의 넥센 히어로즈가 있지만 이 경우는 한국시리즈 진출 경력이 한 번이므로 계산에서 제외했다.

해태(현 KIA)에 3번(1988년, 1989년, 1991년), 롯데삼성에게는 한 번씩 한국시리즈에서 패해서 준우승을 했다(vs롯데=1992년, vs삼성=2006년).

더구나 1989년, 1992년 시즌은 정규시즌 우승으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는데도 하위 팀(각각 2위 해태, 3위 롯데)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이런 경우는 단일리그로 치른 25번의 시즌 중 단 네 번 일어났는데(1989 빙그레, 1992 빙그레, 2001 삼성, 2015 삼성), 그 중 두 번을 당한 것이다. 이렇게 해태 타이거즈에게 당한 일은 수십 년이 지나 누군가에게 복수하게 되는데...

4.1.1.1 1차 전성기 (1988~1992)

1차 전성기는 빙그레 시절로 80년대 후반부터 화려한 투타 선수진으로 강팀으로 평가받았다.

당시에 해태 다음갈 정도의 에이스들[47]을 보유하고 있던 강팀이었으며, 88년부터 92년까지 5년간은 22422의 준수한 순위를 기록한 바 있다. 게다가 1989년과 1992년에는 앞서 언급했듯 정규 시즌 우승으로 한국시리즈까지 직행했다!

그러나 이 시기엔 해태와 롯데에 밀려 단 한 번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지 못했고 93년 한화 이글스로 바뀐 이후 페넌트레이스에선 20년간 가을 야구를 겨우 7번 하고 정규 리그 우승은 고사하고 2위도 못해봤다.[48]

4.1.1.2 약간의 부진기 (1993~1998)

그러나 1993년부터 타선 주축이었던 이강돈, 이정훈, 장종훈 등의 선수들이 슬럼프와 부상으로 무너져버리기 시작하며 타선이 난국을 겪었다.

그 시기 한화는 정민철, 구대성 등의 초일류급 투수들과 강석천, 이민호 등의 타자들로 겨우내 순위를 유지하는 형국이었다.[49] 1995년에는 장종훈이 반짝 부활하나 했지만 그걸로 끝이었고 노쇠화하면서 장종훈의 시대도 그렇게 저물어갔다.

하지만 1996년 전설의 신인 드래프트로 신인 4인방(홍원기, 송지만, 이영우, 임수민) 외 기타 알짜 신인들을 발굴해내며 타선도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신인지명은 실로 안습 그 자체. 잘 된 게 1996년 신인 드래프트밖에 없다... 또한 1998년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서 뽑은 둘(부시, 치멜리스)은 부진하면서 제값을 못했다. 특히 부시... 숀 헤어처럼 입 털땐 언제고...

또한 1998년에는 강석천이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신인 구대성이 대성불패로 군림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

4.1.1.3 드디어 염원하던 한국시리즈 우승 (1999)

1999년에는 감독을 교체하고, 기존의 촌스럽던 유니폼을 새로 바꾸고,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부터 뭔가 대박(로마이어, 데이비스)을 터뜨렸다.

그리고 아무도 예상치 못했지만[50] 드디어 1999년 한국시리즈에서 한을 푸는 우승을 차지했다! 이때만 해도 '세기말의 패자' 라는 칭호를 얻었다. 짧은 영광의 순간

사실 이 우승은 운도 어느 정도 작용했는데, 당시 드림-매직 리그로 나뉜 제도 덕을 봤다. 리그 성적으로 보면 한화는 4팀 중 최약체였고[51] 드림리그의 두산과 롯데는 더 만만한 한화와 맞붙기 위해 막판 혈전을 벌였다. 그러나 댄 로마이어제이 데이비스라는 역대 최고의 외국인 타자 듀오와 전성기만은 못해도 제 몫은 다한 장종훈으로 이루어진 클린업과, 톱타자 이영우와 하위타선의 백재호 등으로 이루어진 타선, 그리고 송진우, 정민철, 이상목이라는 확실한 선발진과 철벽 마무리 구대성으로 이루어진 투수진까지 단기전이라면 충분히 사고 칠 수 있는 조합이었고,[52] 이를 바탕으로 플레이오프에서 전체 승률 1위 팀 두산을 4:0으로 스윕하고 삼성과의 준결승에서 방전된 롯데를 4:1로 비교적 손쉽게 제압했다.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가 존재하는 기존 방식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의견이 많지만 당시 드림-매직 리그 1, 2위 간 교차로 이루어진 플레이오프는 기존 제도의 5전 3선승제와 달리 한국시리즈와 같은 7전 4선승제로 한화는 이 플레이오프를 4승으로 스윕해 전력누수를 최소화한 반면 상대 팀 롯데는 그렇지 못했다. 애초에 그렇게 따지면 OB 베어스가 84년도에 우승했을지도 모르는 법. 야구에 만약이란 없다 하지만 4위 팀의 우승이 어려운 것은 분명하다. 준플레이오프 제도가 실시된 1989년 이래로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해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팀은 단 2팀 뿐이란 사실이 증명한다. 그 사례는 정규 시즌 3위로 우승을 차지한 1992년 롯데와 2001년 두산인데, 준플레이오프부터 어드밴티지가 없이 경기를 치뤄야 하는 4위팀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옛날로 거슬러 가면 예외는 있는데 1984년에 종합 승률 4위였음에도 삼성의 져주기 시전으로 후기 리그 1위를 차지하며 한국시리즈를 차지한 롯데 자이언츠가 있다.

4.1.1.4 2차 전성기 (2005~2007)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시 주춤하다 유승안 감독 시기에 팀을 추슬렀고[53] 김인식 감독을 영입해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준우승 한 번을 비롯해 3년 연속 플레이오프를 진출했다. 2006년 한국시리즈엔 삼성과 함께 명승부를 펼치기도 하며 강팀으로 인정받았다.

4.1.2 588689967 (2008~)

그러나 프랜차이즈 스타를 오랫동안 기용하는 팀 특성과 김인식 감독의 지나친 기존 선수 신뢰+그로 인한 혹사 등이 겹치면서 한화의 기둥뿌리는 썩어가고 있었다. 기존 선수들의 뒤를 이을 신인 선수 육성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이후 송지만, 장종훈, 정민철, 문동환, 김민재, 송진우, 구대성 등등 팀을 지탱하던 주축 선수들이 차례차례 은퇴하거나 타 팀으로 이적하고[54] 그나마 젊은 피로 꼽히던 이범호[55], 김태균의 일본 프로야구 진출,[56] 김인식+한대화로 이어지는 선수 혹사와 리틀 야구단식 투수 운용, 그리고 철밥통 코치진의 결과물로 보이는 현기증 나는 수비, 병맛 쩌는 중계플레이로 막장으로 변해갔다.

흔히 지금의 암흑기는 2008 베이징 올림픽 직후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지만[57] 그 하락세는 2000년대부터 이미 시작된 상황이었다. 8888577, 6668587667비밀번호를 작성하지는 않았기에 공론화가 되지 않았을 뿐 2000년에는 투수진의 약화로 전년도 우승팀이 전체 7위에 그쳤고 2001년에는 4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지만 끽해야 승률 4할이었다. 그렇게 2000년부터 2005년 김인식 감독 이전까지 승률 5할도 못 해봤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나 노장 선수의 비중이 너무 높았고 2군 구장도 없었던 상황에서 리빌딩, 신인 선수 육성은 어불성설이었다.[58][59] 2008년 당시 한화는 베이징 올림픽으로 인한 휴식기 전까지 56승 46패(여담으로 이 해에는 연장 무승부가 없었다) 승률 .549로 3위[60]를 기록하고 있었으나 베이징 올림픽 이후 무려 3주 동안 류현진 등판 경기를 제외한 나머지 경기에서 전패[61]하는 등 급격히 무너지며 5위로 추락한다. 그 이듬해인 2009년에는 초반에 살짝 반짝했으나 무너진 선발진과 얇은 선수층, 주축 선수들의 부상 등의 요인들로 인해 연패를 밥 먹듯이 하며[62] 압도적인 최하위를 기록하게 된다.

2012년 시즌 후 대대적인 팀 강화를 위해 김응용을 감독으로, 김성한, 이종범, 이대진 등 과거 해태 타이거즈 출신 코치들을 대거 영입하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그러나 KBO 리그 개막 13연패 신기록을 세우면서 시작한 김응용의 2년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은 투수진 혹사와 팀 운영으로김성근에 비하면 양반이지만 더 험난한 리빌딩의 여정만을 남겨둔 채 잃어버린 2년으로 남게 되었다.

2014년 10월 12일, 롯데 자이언츠에게 패하여 시즌 9위를 확정하면서, 한화는 3년 연속 꼴찌를 기록함와 동시에 KBO 역사상 최초의 7위 꼴찌, 마지막 8위 꼴찌, 최초의 9위 꼴찌에 이어 마지막 9위 꼴찌를 마크하는 대위업을 이루고야 말았다. 2011년을 빼면 2009년부터 꼴찌인 건 함정 결국 비밀번호가 한 자리 더 늘어났다 2014년 10월 13일, 시즌 마지막 홈 경기인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21점차로 지면서 시즌 평균자책점 6.35를 기록하여 삼미의 시즌 평균자책점 6.23 기록까지도 경신하고 말았다.[63]

파일:Attachment/한화 이글스/emergency.jpg

한화 이글스 비상캠페인. 飛上캠페인이 非常(Emergency) 캠페인처럼 보이는 건 함정

4.1.2.1 암흑군주 김성근 감독 시대 (2015~)

객단가 1위, 관중 수입 3위, 한화 굿즈 판매량 300%증가. 흥행은 대성공
2015 시즌 가장 화제성이 높았던 팀, 만년 꼴찌후보 가을야구에 도전하다
살려조 불펜 선수들의 투혼, 그러나 정도가 너무 심했던 후반기 혹사논란
5886899 비밀번호에 67이라는 숫자를 더 연장시키다
많은 팬들이 기대했지만, 실체드러나고 있다

김응용 감독은 2년 임기를 끝으로 물러나고, 5886899라는 비밀번호를 더 늘리기 싫었던 구단은 이글스 마당에 올라온 글과 한 팬의 한화 본사 앞 1인 시위, 그리고 다음 아고라 청원에 서명한 팬들의 의지를 담아[64] 제 10대 감독으로 야신 김성근 감독을 영입한다. 김성근 스타일은 일시적인 도핑에 가깝다는 일부 의견도 있지만, 적어도 비밀번호는 한 번 끊어줄 필요성이 있고 당장 팀의 체질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감독은 김성근 감독뿐이라는 점에 구단과 팬들이 모두 동의한 것.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 김성근마저 한화를 살리지 못하면 한화는 아예 구제불능인 팀이니 해체하라는 이야기가 나오니 할 말 다 하긴 했다.[65][66]

이어 김광수 수석코치, 박상열 투수코치, 아베 오사무 타격코치로 이루어진 일명 '김성근 사단'[67]을 영입하고 조경택 칰무원 배터리코치와 구단 레전드인 강석천, 송진우 코치, 김응용 前 감독을 따라 한화로 왔던 이종범, 김종모, 이선희 코치 등 9명의 코치와 재계약을 포기했다. 선수들이 신임하는 코치를 쫓아낸 롯데와는 여러모로 반대되는 행보 그리고 새로 영입한 코치들, 특히 일본인 코치들의 면면이 아주 화려하다. 특히 통산 165승에 빛나는 1980년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에이스 니시모토 다카시 투수 코치, 히로시마 카프의 1990년대 붉은 악마 타선의 일원이었던 쇼다 고조 타격코치[68] 등 일본프로야구에서도 레전드급 선수 출신의 코치들이 왔다.

김성근 감독은 취임식 때 선수단 전원에게 이발 및 면도 발언을 시작으로 강훈련을 예고했다. "한 가지 재밌는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면 김태균은 내일부터 3루에서 반 죽을 것이다" 등의 발언은 덤. 이제부터는 살 빠진 김태균을 볼지도 모른다. 별명 항목에 김슬림, 김날씬 추가 그리고 1시간도 안 돼서 퍼진 한화 선수들 때문에 좌절했다 이후 야구 관련 커뮤니티들에서는 훈련 받느라 고생하는 한화 이글스 선수들 사진을 보며 즐거워하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본격 칰키워 새디스트 각성 과거 편하게 훈련 받던 것과 대조하는 짤방이나 다시 김성근 감독에게 붙잡힌 정근우별명왕을 소재로 하는 짤방도 흥하는 중.

2014년 11월 10일자로 정승진 대표이사[69][70]가 물러나고 김승연 회장의 비서실장인 김충범 부사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확실하게 밀어주기 위한 전략이라고 봐도 될 정도.

FA 시장에서도 내부 FA인 김경언을 잡아두고 외부 FA인 권혁, 송은범, 배영수를 영입하여 얇은 투수진 뎁스를 크게 보강하였다. 그리고 12월 5일 각각 롯데 자이언츠삼성 라이온즈에서 뛰었던 셰인 유먼미치 탈보트를 영입하면서 새로운 외국인 투수를 영입하는 모험보다는 어느 정도 검증된 선수를 영입하는 행보를 보였다.

시범경기에서 10전 2승 8패로 꼴찌를 하며 아직도 불안함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쌍방울 감독 시절에도 시범경기는 완전 망치고 정규시즌은 3위로 마무리 했던 경험이 있으니 기대감을 가져보자. 설마 김성근 감독에게 입칰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건가?

뚜껑을 열어 봤더니 시범경기는 시범경기였을 뿐. 우리가 시범경기를 꼴찌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지난 5년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4월의 승률은 5할대를 확정하였다. 입칰효과입성큰효과의 대결은 일단 입성큰효과의 승리. 5월에는 7위까지 내려가기도 했지만 확실히 작년보다는 나아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8월 들어 김성근 감독의 무한혹사와 융통성없는 특타로 인해 선수들의 체력이 방전되고 연패횟수가 늘어남으로써 결국 6위까지 밀려나고 말았다.

그리고 9월 11일 SK와의 경기로 여태까지 곪아왔던 혹사의 여파와 이해할 수 없는 투수운용으로 8위까지 밀려나고 말았다.

그리고 끝까지 버텼으나 결국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고 말았다. 그리고 58868996으로 비밀번호는 연장되었다.
일단 그나마 다행인건 그 아래 팀이 4팀이나 있다! 그래봤자 한팀 빼고는 3경기 차도 안나잖아...

한편 시즌 중 유달리 웨이버 공시되어 팀에서 방출당하는 선수가 많이 나왔다. 65명 등록선수 명단을 아예 다 채우고 2015 시즌을 시작했기 때문인데, 많은 선수들의 기량과 플레이를 체크하기 위해 65명을 다 채운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2016년 들어서 한화의 암흑기 시절보다 더 최악의 경기를 펼치고, 김성근도 여러 논란에 휘말리며 한화 이글스는 4월 현재 명실상부한 최악의 팀으로 진행중이다. 이 정도면. 정말 한화 이글스는 명장의 흑역사를 만드는 구단으로 사실상 확정이다. 김성근 감독이 세이콘 모드로 변해서 그런 것

남에게 퍼주는 혜자트레이드를 한다 특히 기아에겐 선물을 주고 쓰레기를 받아가는데 2015년 노수광, 오준혁, 김광수를 줬는데 김광수는 기아의 불펜 필승조가 되었고 노수광, 오준혁은 쏠쏠한 활약을 펼치며 차세대 리드오프로 기대를 받고있다. 게다가 유창식까지 주어서 기아는 보유구단이 되었다. 결국 한화시절 승부조작으로 핵이 터졌다 반면 한화로 간 임준섭은 부상으로 경기에 전혀 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박성호는 육성선수로 전환되있다. 이종환만 가끔씩 대타로 간간히 비치는 중.

빙그레 첫해 이후 최소 경기 30패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한화, 빙그레 첫 해 이후 '최소경기 30패' 굴욕

2016년 6월 7일까지 12경기에서 11승 1패를 거두는등 반격을 시작하고 있다. 한때는 9위와 10게임 이상의 차이가 벌어져 영영 답이 없을 것만 같이 보였으나 기세를 몰아 상반기를 7위로 마무리 했다.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 5위까지 게임차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기대할 수 있는 부분. 다만 같은 이유로 최하위권까지의 간격도 좁은 만큼 하반기의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결국 7월에 기아에게 1번 1승2패를 당한 것 외엔 모두 위닝 시리즈를 기록하였다![71]

8월 중반까지 기아와 함께 5할 승률을 유지하며 희망고문을 이어나갔으나 안영명의 어깨 수술로 인한 시즌 아웃[72], 배영수[73]안승민[74]의 복귀 불발, 서캠프의 공인구 부적응으로 인한 부진,[75][76] 한화의 미래 김민우의 어깨 관절와순 손상, 권혁의 팔꿈치 통증으로 인한 이적 후 첫 1군 이탈 등 악재가 터지며 월 승률 5할이 붕괴되고 총 승률 5할에 10경기 이상이 남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77]

가을마다 김성근이 맡던 팀이 훈련으로 인한 체력 방전으로 부진했던 걸 생각해보면 30경기가 조금 남은 상황에서 20번 이상 이기길 기대하긴 어려울테니 올해도 포기하는 게 편할 듯. 특히 김민우의 부상은 전병두류현진이 겪은 어깨 부상인데다가 어깨 부상 후 재활 성공률은 10% 정도라 김성근을 모셔오자고 시위를 하던 팬덤 내부에서 조차 아름다운 이별 아니면 칰복절을 바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78][79] 20일 태평양 돌핀스식 도박성 선발자원 불펜 투입의 부작용이 제대로 폭발하며 LG에 패하여 5할 승률 불가가 확정되었다. 굿바이 포스트시즌. 2003년부터 10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한 LG 트윈스에 이어 역대 두번째로 오랜기간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한 팀이라는 굴욕적인 기록까지 세우게 되버렸다. 거기에다 선수들 대부분이 사실상 선수 생활에 심각한 타격이 감에 따라, 위약금을 내서 감독을 경질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 호응을 얻고 있으며 심지어 구단을 해체하고 선수들 다른 데로 보내줘야 한다는 말까지 진지하게 거론되는 수준이다. 당장 네이버와 구글을 비롯한 공신력 있는 검색 엔진에서까지 '한화 이글스 해체'가 자동완성으로 뜨고 있다.

한화 이글스의 최근 상황을 자세히 알고 싶다면 한화 이글스/2016년/9~10월 항목으로.

4.2 관련 기록들

4.2.1 역대 감독

역대이름재임기간성적
초대배성서1986~1987216전 78승 133패 5무
2대김영덕1988~1993726전 415승 294패 17무
3대강병철1994~1998568전 254승 298패 16무
4대이희수1999~2000265전 122승 136패 7무
5대이광환2001~2002266전 120승 137패 9무
6대유승안2003~2004266전 116승 119패 11무
7대김인식2005~2009637전 308승 321패 8무
8대한대화2010~2012371전 147승 218패 6무
감독대행한용덕201228전 14승 13패 1무
9대김응용2013~2014256전 91승 162패 3무
10대김성근2015~288전 134승 151패 3무

역대 감독 목록에서도 볼 수 있듯이 KBO 리그에서 굵직한 기록을 세웠던 노장 축에 속하는 감독들(김영덕, 강병철, 이광환, 김인식, 김응용, 김성근)이 이글스를 거쳤던 적이 있다. 이 중 김영덕, 김인식, 김응용 감독의 마지막 1군 감독을 보낸 팀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승이 패보다 많은 감독이 두 명밖에 없다

이른바 KBO의 3김(김인식, 김응룡, 김성근) 또는 KBO에서의 자신만의 일가를 이뤘다고 하는 대감독 3명(이광환, 김응룡, 김성근)이 거쳐갔으나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것은 이광환 감독밖에 없고 김응룡, 김성근은 포스트시즌 진출에 모두 실패하였다.

특히 이런 감독 특성은 한화 이글스 팬덤이 혹사에 다른 팬덤 이상으로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낳았는데, 김영덕 감독의 중무리 야구, 최동원염종석 등 롯데 시절 혹사로 유명한 강병철 감독[80]을 빙그레 시절 이미 경험했다. 게다가 쓰는 선수만 쓰는 김인식 감독,[81] 해태 타이거즈 시절 습관을 전혀 버리지 못한 김응룡 감독 등 혹사 논란을 피할 수 없는 감독을 계속해서 경험했다. 여기에 2015년 김성근 감독의 희대의 혹사를 만났으니, 팬덤이 폭발한 것은 사실 당연한 것. 다만 2차례의 전성기 모두 혹사를 근거로 했다는 것이 더 문제

4.2.1.1 노감독들의 무덤 한화?

감독에게만큼은 이글스다!
KBO를 이끌었던 노감독들의 마지막 커리어가 한화로 집중되고 그 말로가 상당히 비참하다는 점에서 한화라는 팀 자체가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노감독들의 특성과 한화라는 팀의 특징이 만들어 낸 결과라 봐도 무방하다.

우선 김인식 감독은 마지막해 커리어만 나빴지 전체적으로는 최전성기 시절의 김영덕 다음으로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린 감독이다. 05~07년 간의 3년 연속 PS 진출과 한 번의 준우승은 김인식 감독이 단기전에 강하고 송진우, 정민철, 문동환, 구대성이 마지막 불꽃을 피우는 가운데 혜성과 같이 등장한 류현진이라는 투수가 있어서 가능했다. 거기다 특유의 거포 중심 스타일 야구는 당시 작았던 대전야구장의 특성을 가장 잘 살렸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은 리빌딩에 약하고, 구단 자체적으로도 몇 년간 드래프트에서 4~6명만을 지명하는 등 신인수급이 부족했으며 2군에 대한 투자도 미약했다. 결국 주축 노장들의 은퇴시기와 맞물리며 투수공동화 현상이 왔고, 그것이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김응용 감독의 경우 화려한 선수진을 바탕으로 하는 선 굵은 야구를 추구한다. 하지만 2013년의 한화는 그런 선수들과 거리가 있는 리빌딩이 필요한 선수층이었다. 또 주축 에이스 투수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포스팅은 큰 타격이 되었고, 직전 시즌 5선발로 뛰었던 박찬호의 은퇴, 한화 특유의 투수용병의 부진, 오랫동안 감독직을 수행하지 않았던 김응용 감독의 감각문제까지 더해지며 결국 2년 연속 최하위라는 불명예로 감독직을 마치게 되었다.

이후 부임한 김성근 감독은 팬들이 선임한 감독, 팀 다운 팀을 만들어주는 감독으로 기대를 모았고, 2015 시즌 전반기에는 그러한 희망을 봤다. 하지만 2010년대의 한화는 2000년대 후반의 SK와는 달리 여전히 팀 전력이 얇고 평균 연령층이 높았고, 여기에 김성근 특유의 팀을 쥐어짜는 방식의 운영이 더해저 2015 시즌 후반기에는 급격한 하락세를 보였다. 또한 지나친 전권부여는 감독으로 하여금 자신의 철학만을 내세우게 하였고, 그 결과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야구와 독재식 팀 운영을 통해 팬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게다가 이태양의 수술,[82] 미치 탈보트셰인 유먼, 배영수송은범의 동시부진으로 시즌 초반 구축했던 선발투수진에 균열이 생기고, 임준섭, 윤규진이 이탈하자 비상식적으로 불펜을 많이 쓰는 야구를 하게 되면서 최악의 혹사감독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점은 결국 2016 시즌에서도 현실이 되었고, 사실상 김성근 감독과 한화의 만남도 최악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4.2.2 역대 성적

­우승
­준우승
­포스트시즌 진출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연도정규시즌 순위최종순위팀이름경기수승률
19867위/7팀[83]7위빙그레 이글스108317610.290
19876위/7팀[84]6위108475740.454
19882위/7팀[85]준우승108624510.579
19891위/7팀준우승120714630.604
19903위/7팀3위120685020.575
19912위/8팀준우승126724950.591
19921위/8팀준우승126814320.651
19935위/8팀5위126616140.500
연도정규시즌 순위최종 순위팀이름경기수승률
19943위/8팀3위한화 이글스126655920.524
19956위/8팀6위126557100.437
19963위/8팀4위126705510.560
19977위/8팀7위126517320.413
19987위/8팀7위126556650.455
1999매직 2[86]/4팀우승132725820.554
2000매직 3위/4팀3위[87]133507850.391
20014위/8위4위133616840.473
20027위/8팀7위133596950.461
20035위/8팀5위133636550.492
20047위/8팀7위133537460.417
20054위/8팀4위126646110.512
20063위/8팀준우승126675720.540
20073위/8팀3위126675720.540
20085위/8팀5위126646200.508
20098위/8팀8위133468430.346
20108위/8팀8위133498220.368
20116위/8팀6위133597220.450
20128위/8팀8위133537730.408
20139위/9팀9위128428510.331
20149위/9팀9위128497720.389
20156위/10팀6위144687600.476
20167위/10팀7위144667530.468
KBO 통산 31시즌V1 394918412028800.476


그 외 사항은 KBO 리그/역대 팀 스탯 항목 참조.

4.2.3 역대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

삼성 라이온즈88PO : 3승
90준PO : 2패
91PO : 3승 1패
06KS : 1승 1무 4패
07준PO : 2승 1패
준PO 1승 1패, PO 2승, KS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9승 1무 8패
KIA 타이거즈88KS : 2승 4패
89KS : 1승 4패
91KS : 4패
94준PO : 2승
06준PO : 2승 1패
준PO 2승, KS 3패
개별 경기 총 전적 7승 13패
롯데 자이언츠92KS : 1승 4패
99KS : 4승 1패
KS 1승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5승 5패
현대 유니콘스94PO : 3패
96준PO : 2패
06PO : 3승 1패
준PO 1패, PO 1승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3승 6패
두산 베어스99PO : 4승
01준PO : 2패
05PO : 3패
07PO : 3패
준PO 1패, PO 1승 2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4승 8패
SK 와이번스05준PO : 3승 2패준PO 1승
개별 경기 총 전적 : 3승 2패

4.2.4 연도별 시즌 요약

4.2.5 역대 유니폼 변천사

4.2.6 역대 트레이드

5 영구 결번, 은퇴식

한화 이글스 영구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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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우정민철장종훈

KBO 소속 구단 중 가장 많은 수인 3개의 영구결번을 가지고 있다. 프랜차이즈 스타는 확실히 챙겨주는 한화의 팀컬러가 드러나는 부분.
영구 결번 지정된 순서대로 쓰면 다음과 같다.[88][89]

  • 35번 장종훈 : 2005년 9월 16일 지정
  • 23번 정민철 : 2009년 9월 11일 지정
  • 21번 송진우 : 2009년 9월 23일 지정

이 순서대로 대전한밭구장 3루측 상단 관중석에 기념되어 있다.[90]

아울러 영구결번된 2명[91] 외에 구대성, 이영우까지 포함 2009~2010년 사이 무려 4명의 레전드가 은퇴식을 치렀다. 특히 송진우정민철의 은퇴식은 2주 간격을 두고 치러졌다. 가장 최근에 열린 은퇴식은 2013년 9월 14일 신경현의 은퇴식.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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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현진의 포스팅 건으로 인해 국내 포스팅 시스템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된 팀이기도 하다. 미-일간 포스팅 시스템 개정 때문에 국내 선수도 앞으로 2000만 이상의 포스팅을 받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바뀐 제도는 미국-일본 간에만 적용되며 한국 선수의 미국 진출 포스팅은 예전 제도에서 변경되지 않았으므로 더 높은 포스팅 비용으로 진출할 가능성은 아직 남아있다. 하지만 2014 시즌 기준으로 류현진 이상 몸값을 받고 진출할 수 있는 한국야구 선수가 있는 팀들은 현재로서는 없기 때문에 당분간은 한화만이 유일하게 한국 야구팀 중 2천만 달러가 넘는 포스팅 비용을 받은 팀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14 시즌 후 포스팅을 시도한 김광현양현종이 처참한 몸값이 나오면서 확인사살. 그나마 선방한 강정호도 500만 정도만 받았다. 애초에 현진이는 국내 리그 수준을 넘어선 사기캐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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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훈 개인이 네이버나 야친에서는 타 팀들, 특히 LG, SK, 해태/KIA에 대해서는 감성팔이 추억의 에피소드도 많이 그리지만 한화에 대해서는 구단 측에서 직접 돈을 받는 공홈 웹툰을 제외하면 그린 적이 거의 없다. 게다가 빙그레 리즈시절에 LG의 빙그레 상대전적이 정말 처참한 수준이었던 것이라든가 최근의 류현진(...) 등 LG 팬들은 한화 싫어할 만한 여지가 꽤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싫어하지는 않더라도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네이버나 야친 등지에 가끔 등장할 때라든가 공홈 웹툰에서 한화팬들의 지난 2년간 가려웠던 곳을 몸 쪽 꽉 찬 100마일 돌직구 수준으로 대놓고 까면서 정말 시원하게 긁어줬던(...) 것을 생각하면 그래도 팀에 어느 정도 호감이 있으니까 남의 팀 망치고 있는 금지어 감독을 저렇게 신랄하게 까주는 게 아닌가 싶은 관계로[92] 좀 미묘하다. 어찌 되었든 최소한 어떤 팀처럼 대놓고 X뉴비라고 까인 적은 없으니 적어도 한화까는 아닌 게 확실히 맞다.
참고로 최훈 카툰의 캐릭터중 야구 팬들에게 공통적으로 높은 인기와 지지를 받고 있는 캐릭터가 한화 마스코트 캐릭터이기도 하다. 캐릭터 명칭은 '이글이'. 그리고 이글이는 공식 어플리케이션에 팝업으로 등장한다. 이쯤되면 반공인 마스코트일지도?
  • 모기업 계열사간의 암투 때문에 이 팀의 이름이 변경된 적이 있다. 그 이전에는 빙그레 이글스였으나 김승연김호연의 집안싸움으로 인해 야구 구단이 빙그레에서 한화로 넘어가면서 이 팀이 한화 이글스로 팀명이 변경되었다.
  • 모기업의 재무구조상 구단의 자금은 흔히들 생각하는 폭약보다는 보험을 팔아서 나온 돈일 가능성이 높다(...) 방산 부분은 크게 이득을 볼수는 없어도 이득은 보장하는 분야니까
  • 한화 이글스 파크로 개장 이후 관객들의 플래시로 인해 요주의가 되는 코스다. 눈뽕이다 항상 잊을만 하면 주심이 관객들에게 플래시 켜지 말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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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랫동안 마스코트를 위니, 비니만 쓰다가 2016년 시즌 이 둘의 자식이라는 컨셉으로 '수리'가 추가되었다. 원래 이름은 '아리'였는데 무슨 병아리냐고 항의한 사람들에 의해 슬쩍 태명으로 바꾸고 수리로 변경. 이로써 KBO 리그 내 가족 단위 마스코트가 된 것으로는 세번째 이 되었다.
위니와 비니에 비해 단순한 디자인이지만 동그란 몸매에 귀여운 외형으로 아이들 뿐만 아니라 성인 팬들에게도 호평을 받고 있다. 귀엽다 못해서 하도 쫓아다니면서 때리는지 위니 인스타그램에 이런 글이 올라오기도. #
마스코트 공개 당일과 탄생 100일 기념을 맞아 두 번 시구했는데, 탈의 구조가 구조다보니 두 번 다 던진다기 보다는 떨어트린다에 가까운 시구가 되어버렸다(...) 그 와중에 성심성의껏 휘두르는 이대형이 포인트

7 지역 연고 학교

8 선수단

9 유명인 이글스 팬

한화 이글스를 응원하는 연예인들은 다음과 같다. 개그맨들이 많은 것이 특징. 그래서 야구를 개그로 하는구만...

10 커뮤니티

11 사건 사고

12 연관 단어

13 둘러보기

최종 우승
1회
1999
역대 우승 엠블럼
파일:Attachment/hanwhaeagles1999.png
1999년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 팀
1998-현대 유니콘스한화 이글스2000-현대 유니콘스
한화그룹 산하 스포츠단
한화 이글스
(야구)
한화 골프단한화갤러리아 승마단한화갤러리아 사격단
대전광역시px
연고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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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대전 시티즌대전 삼성 블루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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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KGC인삼공사대전 코레일
  1. 이외에도 여성형인 비니가 있고 이 둘의 자식(?!)이란 설정의 수리가 추가되었다.둘이 뭘 한거야 기타 항목 참조.
  2. 충청북도, 세종특별자치시, 충청남도, 강원도 영서지방
  3. 도시연고는 대전광역시이며 넓게는 충청남북도 전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충북 지역인 청주에서 일부 홈 경기를 분산해서 치른다. 대전엔 1차지명 고교가 1곳이지만 충남북에 각각 2곳씩 두고 있다.(충남 - 공주고등학교, 천안북일고등학교 / 충북 - 청주고등학교, 세광고등학교) 강원도 영서 지역은 지역 고교 팀을 대상으로 1차지명을 할 권한만 갖고 있을 뿐 지역 연고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4. 김승연 회장의 사촌 관계(김 회장의 큰아버지인 故 김종철 국민당 총재의 차남)로 그룹 계열사 한화폴리드리머의 대표이사를 지냈으며, 2015년 3월 이글스의 대표로 선임되었다. 전임 사장이었던 김충범 비서실장은 지병인 심장병이 재발하면서 요양을 위해 사퇴했다. 아니, 이분 너무 빨리 사임하셨는데요??
  5. 2015년 3월 18일까지 '한밭 종합운동장 야구장'으로 불렸지만 모회사인 한화생명명명권을 구매하여 2015년 3월 19일부터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로 개명.
  6. 제2구장
  7. 계폭됨
  8. 빙그레 전성기에는 다이너마이트 타선으로 불렸다. 1991-1992년이 가장 강했으며 주요 타자로 1번 중견수 이정훈과 3번 1루수 장종훈이 있다. 이정훈은 2년 연속 타격왕(.348 .36)이었으며 장종훈은 3년 연속 홈런+타점 2관왕(35 41홈런 114 119타점)에 올랐다. 1992년에 팀 144개 홈런으로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장종훈이 1991년에 친 홈런 갯수는 등번호와 같다.
  9. 916 대첩 당시에는 정규 이닝만으로도 홈런이 무려 7개나 나왔다.
  10. 워낙 노안이라... 실제 나이는 류현진보다도 어리다.
  11. LG 트윈스 같은 경우는 1994년 우승을 이끌었던 신예 트리오였던 유지현김재현에게 은퇴를 강요했을 정도로 매몰차게 대우를 했다. 이 때문에 떨어져 나간 팬들도 일부 있었을 정도이다.
  12. 2012년 시즌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첫 화면에 동영상이 뜨는데 장종훈, 송진우, 정민철, 구대성의 모습이 나온다. 현역 선수라고는 신인 박찬호 선수밖에 안 나온다.
  13. 양준혁선수협 관련하여 약간 부연한다면 선수협 창립은 1999년 겨울이고 양준혁의 트레이드는 1998년 겨울이므로 양준혁선수협 파동 때문에 삼성에서 해태로 보내진 것이 아니다. 다만 프랜차이즈를 트레이드하는 과정에서 삼성 구단에 실망한 양준혁이 이후 선수협에 적극 참여하게 된 점은 있다.
  14. 1989년부터 1995년까지 한화 이글스에서 뛰었던 선수. 은퇴 후 북일고, 대전고 코치를 맡다가 백혈병으로 2003년 6월 30일 별세했다.
  15. 단, 실제로 퍼부은 건 아니고 퍼붓겠다고 공언한 것일 뿐이다. 둘 다 일본 간 데다 이범호 복귀도 불발.
  16. 선임 당시 나이는 김인식 감독이 58세, 김응용 감독이 72세, 김성근 감독이 73세이다. 물론 선임 당시를 기준으로 모두 KBO 최고령자들. 의외로 김인식 감독은 나이가 별로 안 많아(?) 보일 수도 있으나 그때는 선동열·김경문·조범현 감독 등 당시 40대의 젊은 감독들이 대세이던 시절이었다.
  17. 투수 최고령자이자 리그 최고령자는 이 분.
  18. 그만큼 팬덤에서 팀의 노령화에 신물 내고 있다는 반증. 그 반동으로 신인이나 나이 젊은 선수들에 대해서는 실제보다 기대치를 과하게 책정 짓는 부작용도 자주 보인다. 노인네들만 보다 영계 보면...
  19. 2016년 현재 두산 주장 김재호와 롯데 주장 강민호가 1985년생이다.
  20. 구단은 사실 그런 전략이 필요해요. 이게 우리 구단들은 그룹에서 하다보니까 매일 우승할려 그래. 힘도 없으면서(웃음). 그러니까 헛돈을 쓰는 경우가 많잖아요.
  21. a.k.a. 신남연
  22. 후반기 7승, 두산전 완봉승을 거두며 두각을 보였지만 준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김태균의 알까기에 힘입어 0.1이닝만에 7실점하며 탈락의 빌미를 제공하며 재계약에는 실패했다. 여담으로 이 해에만 한화에서 시즌 중 퇴출된 외국인 투수만 무려 4명(누네스, 에반스, 워렌, 윈스턴).
  23. 한화가 이 해에 외국인 선수를 하도 바꿔대서 2002년부터 시즌 중 외국인 선수 교체 횟수 제한 규정이 생겼다.
  24. 이 기록은 2012년 두산 베어스 소속이었던 스캇 프록터가 35세이브를 기록하면서 뒤로 밀려났다.
  25. 다만 여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2000년대까지 외국인 스카우트를 지휘하던 프런트의 이인영 대리가 2010년경 구단에 충언을 하다가 물러나는 사건이 있었다. 박동희가 쓴 관련 기사 스크랩 자료
  26. 당시 이인영 대리는 한화 팬들 상당수가 이인영 대리표 용병은 믿는다고 할 정도로 팬들 사이에도 널리 알려져 있던 인물. 이후 이인영 대리는 유학을 떠났고, 트위터에 올린 팬의 글에 배스와 니퍼트, 프록터, 트래비스, 고든 등과 관련한 글을 남기며 한화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해당 짤
  27. 이에 대해서는 투수 코치에서 잘린 뒤 잠시 스카우터로 자리를 옮겼던 이상군의 작품이라는 해석도 있다. 망할 상군매직
  28. 외인 기준 17년, 한화 선수 기준 14년만
  29. 대표적으로 1988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2루수 조양근이 평범한 내야 플라이를 잡지 못해 역전패를 당한 것과 장종훈의 알까기 등 3실책으로 무너진 1989년 한국시리즈 2차전, 우익수 이중화가 파울 플라이 하나를 잡지 못해 8회 2사까지 퍼펙트를 이어가던 송진우가 무너진 1991년 한국시리즈 3차전 등.
  30. 이를 반영하듯, 마구마구에서의 빙그레-한화 이글스는 10 KBO가 나오기 전까지 유일하게 하이점프캐치(레어 이상의 2루수, 유격수 카드에 부여) 잠재력을 가진 선수가 없던 팀이었다.
  31.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고졸우선지명과 1차지명이 폐지된 그 해에 한화의 팜 내부지역에서 그 해의 최대어가 배출되게 된다. 고졸우선지명의 경우에는 조규수, 마일영이 배출되었고 한화의 스카우트진들은 고뇌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한화는 조규수를 택했다. 재미있는 건 이 조규수를 2010년에 두산에 트레이드 했는데,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일영을 트레이드로 영입해서 결국 두 선수 모두 한화에 몸을 담아보거나 담고 있는 상황이 됐다. 1차지명의 경우에는 2010년에 연고 고교인 천안북일고에서 신정락이 배출되었는데(고교 졸업은 2006년) 2010년 신인지명부터 1차지명이 폐지되었기에 전체 1번으로 LG 트윈스가 신정락을 지명했고 한화는 1라운드 4번으로 북일고 투수 김용주를 지명하였다.
  32. 한상훈도 대학교 시절 학교 4번 타자였다.
  33. 하위에서 픽한 자원이 아주 없는 건 아닌데 상위지명에 이 선수들까지 전부 다 합쳐도 6~7명 수준이며 그나마 1군에서 뭔가를 보여준 선수는 없다.
  34. 칰갤에선 한화의 마지막 잎새라며 하잎새라는 눈물 겨운 별명을 데뷔 전부터 획득. 물론 못하면 얄짤없이 까인다.
  35. 롯데 또한 신생팀 창단으로 인해 심재민, 홍성무를 KT에 빼앗겼다. 이민호의 경우 당시 전면드래프트였으니 딱히 연고지 유망주를 뺏겼다고 보긴 힘들다.
  36. 하주석의 경우 NC의 노성호, 이민호 우선 지명 후 행사한 픽이었다.
  37. 1차 드랲으로 뽑힌 김병현은 지역팜에다가 제구형인지도 두루뭉술한게 좀 예외로 보인다
  38. 솔직히 그렇게 대어는 아니지만 이용규를 빼면 공수를 두루 갖춘 외야수가 없는 한화로서는 쓸법하다
  39. 시카고 컵스를 나와 군복무를 해결하며 재활한 김진영 같은 경우에는 현장에선 좀 지켜봐야 한다는 듯하다
  40. 실제로 2008년 이후 9개 구단 중 포스트시즌에 한 번도 올라가지 못한 팀도 한화 단 한 팀 뿐이다. 2015년부터 KT가 합류하므로 어떻게 될 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41. 빙그레 시절을 제외하면 정규리그 우승~2위가 없다.
  42. 창단 첫해 꼴찌(7위) 이외에 꼴찌를 한 적이 없다. 다만 2008년 이후로는...
  43. 2008년 시즌에는 올림픽 브레이크 이후 후반기에 불운이 겹친 건 사실이다. 문제는 2009년부터이다(...)
  44. 삼성은 1985, 2002, 2005, 2006, 2011, 2012, 2013, 2014년에 우승했다.
  45.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우승 경험이 없다.
  46. 두산이 준우승한 년도는 2000, 2005, 2007, 2008, 2013년이다. 원조 콩을 뛰어 넘는 신흥 콩
  47. 투수 부문에선 이상군, 한희민, 송진우, 한용덕 등. 타자 부문에선 장종훈, 이강돈, 이정훈, 강정길
  48. 그나마 2001년에는 8위 롯데에 불과 2게임차 앞선 4위였는데 롯데가 호세의 징계, 김명성 감독 급사라는 악재를 만난 덕을 봤다.
  49. 그나마 저런 초일류급 투수들조차 없었더라면 이때가 1차 암흑기가 될 뻔했다. 당시 타선이 영 힘을 못 썼던지라...
  50. 읽다 보면 알겠지만 시즌 초반만 해도 한화는 우승전력이라 평가받지 못했다.
  51. 하지만 시즌 후반의 성적은 가장 좋았다. 포스트시즌은 실제 전력보다 기세가 중요하다는 말이 실증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52. 애당초 리그 운영도 송-정-이 세 투수에 구대성으로 확실히 3승 하고 나머지는 버리는 3승 2패 전략이었다.
  53. 문동환 재활, 이범호의 레벨업 등 김인식 초창기 잘 나가던 한화의 기초는 유승안 감독 때 마련되었다. 반면 송창식 혹사 등의 그림자도 있어서 과대평가란 시각도 있다.
  54. 한화 자체가 2군팜 육성이나 선수단 관리의 질적 향상에 극히 인색한 구단이다. 2군 시설이 열악한 건 말할 필요도 없고 당장 군입대 선수 훈련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한 게 2013년이었고 불과 얼마 전까지 기본적인 군입대 관련 선수 관리가 엉망진창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송광민.
  55. 이후 1년만에 국내 복귀를 했지만 구단과의 마찰 등의 이유로 KIA로 가고 말았다.
  56. 2012년 한화로 복귀했으나 혼자서 팀의 암흑기를 끝내기는 역부족이었다.
  57. 사실 그 전부터 노장 선수들의 비중이 컸고 신인들의 성장이 더뎠기 때문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긴 했다.
  58. 특히 타 팀이 신인선수 지명 권리를 모두 행사할 때 한화는 2년 연속으로 4~5명의 선수만 뽑을 정도였다. 당연히 선수가 없을 수밖에...
  59. 2000년 이후 한화가 김태균, 이범호, 류현진, 최진행을 제외하고 제대로 키워낸 선수가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보자. 그나마 쓸 만했던 유망주들은 혹사로 맛이 갔고 뭔가 해주는 선수들은 죄다 군 미필에 군필 선수들 중 기량이 성장한 선수가 있냐면 그것도...
  60. 당시 2위였던 두산 베어스와는 승차가 없이 승률이 약간 딸리는 정도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문가들 역시 한화의 4강은 거의 무난하다고 보는 편이었다. 4위권과 승차가 넉넉한 데다가 당시 한화는 잔여경기가 가장 적은 팀이었으니...
  61. 이것만 따지면 무려 3승 12패.
  62. 두 자릿수 연패가 무려 두 번(12연패, 10연패)이나 있었다.
  63. 사실 2014년은 역대급 투병타신 연도이다. 순위로 보면 투수조련사라는 김성근이 부임한 2015년에도 똑같은 9위를 기록중이다.
  64. 김성근 감독을 싫어하는 국내 구단의 분위기에 편승해 그냥 내부승진을 통해 새 감독을 정하려 했으나, 1인 시위 등의 소식을 접한 회장의 압박회장 : 뭘 잘했다고 내부 승진이야?으로 인해 김성근 감독을 영입했다는 소문도 있다. 농담이 아닌게 실제 기자들의 증언도 이와 일치했다. 특히나 김승연 회장 성격상 이런 말이 자기귀에 다이렉트로 들어간 상황이라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할까?
  65. 여담으로 이 당시 김성근 감독이 대전에 내려가서 감독면접을 봤니 이상훈코치가 대전 집을 알아보고 있니 하는 소문이 돌았지만 다 사실무근이였다. 애초에 김성근 감독과 같은 레벨이라면 사장이 감독을 찾아가는게 보통인 크보 상황일 뿐더러, 사장은 애초에 대전에 있지도 않았다.
  66. 이보다는 더 큰 문제가 있는데, 애초에 김성근 감독은 팬들이 원하는 감독이였고 감독 선임에 팬의 입김이 작용한 국내 프로스포츠 최초의 사례이다. 그런데 만약 이 감독체제에서 성과가 없다면 그 후에 한화이글스의 운영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당시 옐로우카드에서도 논의되었다. 물론 15년과 2016년 관중동원이나 구단 굿즈판매량을 보면 양측 모두 아주 행복한 상황이지만.
  67. 다만 감독 본인은 사단의 존재를 부인하였다. 실제로 코치진에서 감독과 처음 호흡을 맞추는 코치고 상당수였고.
  68. 다만 쇼다 코치는 2009 시즌에 SK 와이번스의 코치로 있었다.
  69. 사실 정승진과 김성근은 나름 불편한 관계. 2012년에 한화는 차기 감독으로 김성근을 영입하려고 했었으나 한화 프런트가 김성근과의 약속을 깨고 결국 영입은 물거품이 되었다. 이는 카더라 통신이 아니라 실제 보도된 내용. 그 당시 프런트의 수장이 정승진이었으니... 애초에 이번에 한화팬들이 김성근 감독밖에 없다고 주장했을 때에도 저 2년 전 일 때문에 김성근이 한화로 오는 건 힘들 것이라고 보는 의견도 많았다.
  70. 약속을 깼다는 부분이 한대화를 경질시키지 않는다는 조건을 안지켰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막장전력을 맡기 싫었던 김성근이 트집을 잡은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무엇보다 이때 김성근이 부임했더라면 메이저리거 류현진은 아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71. 저 기록은 7월 초까지 7전 전패를 당했던 두산에게 얻어낸 2승 1패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자칫하면 삼미 슈퍼스타즈처럼 전패를 당할 수도 있었으니 정말로 불행 중 다행. 졸지에 두산은 승률 7할 실패로 고춧가루 피폭행
  72. 어깨 웃자람뼈를 깎는 수술을 받았다. 윤규진이 작년 후반기에 받은 수술과 유사하다.
  73. 2군에서 130km 초반의 공을 겨우 던지다가 이제서야구속을 140km 중반까지 끌어올린 덕분에 8월 초 1군에 콜업되어 선발진의 부담을 줄여주나 싶었으나 감독이 '그냥 잠깐 보려고' 부른 것으로 밝혀졌다. 덤으로 같이 올라온 김범수도 다시 2군행 특투?
  74. 어깨 부상이 치료되지 않아 2016년 시즌에는 볼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75. 1군 엔트리에 이름을 걸고 2군에 잠시 내려가 계형철 코치의 지도를 받았으나 올라온 뒤로도 베팅볼만 뿌리며 거하게 캠프 파이어를 저지른 뒤 진짜로 서산에 캠프를 차려버렸다.
  76. 2군 경기에서도 1.2이닝만에 머리로 향하는 사구로 퇴장을 당하며 미치 탈보트마에스트리에 이어 감독에게 '장점을 도저히 찾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실패한 투수로 단단히 찍힌 것으로 보인다.
  77. 기아는 5할을 찍다가 올라가고 LG는 우주의 기운(...)을 받아 9연승을 찍는 와중에 롯데가 아직 승부처가 아닌지 8월 후반에 완전히 무너지며 8월 내내 8위와 7위를 오고가고 있다
  78. 일단 어깨 부상 후 복귀하는 게 10% 남짓이지 그 후 지속적으로 선수 생활을 하는 선수는 그 중에서 20%를 채 넘지 못한다. 게다가 김민우는 부상 여부를 감독이 계속 숨긴 채 불펜 투구로 쇼케이스를 여러 차례 했고 당장 한 곳에서 재활해도 충분치 않을 시간에 1군 경기가 있는 경기장과 2군 서산을 오가며 재활과 재활 중단을 반복하고 있어서 사실상 선수 생명이 끝났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79. 8월 후반기엔 본인이 수술 없는 재활을 선택하여 30m 롱토스를 하며 몸을 푸는 중이고 본인이 토미 존 수술과 무뤂 수술 등 여러 고비를 넘긴 덕에 긍정적으로 재활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80. 한화 시기에도 이러한 특성은 바뀌지 않았다. 투수 운용에서 구대성을 과하게 혹사시켜 구원 투수이면서 다승왕과 구원왕을 독식(18승 3패 24세이브!!)하는 있어서는 안 될 기록을 세웠다.
  81. 믿음의 야구, 재활 공장장이라는 말로 포장되어 있고 실제로 한화 이글스 시절 2차 전성기를 이끌었던 것도 사실이나, 이런 특성은 팀의 노령화와 특정 투수의 혹사로 이어졌다. 당시 혹사당한 선수로는 양훈, 황재규, 허유강 등이 대표적이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82. 다행이 16년에서는 돌아와서 후반기 1선발을 맡아가며 활약했다. 물론 빠른 복귀라 17년이 어떻게 될지는 두고봐야 한다.
  83. 전기 7위, 후기 6위
  84. 전기 6위, 후기 공동 5위.
  85. 전기 2위, 후기 3위
  86. 전체 4위
  87. 전체 7위
  88. 구대성의 15번도 영구결번 지정이 검토되었으나 본인이 고사하며 자신의 번호는 자기를 이어나갈 만한 후배가 물려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고 많이들 알고 있는데 이는 사실 무근이다. 선수 본인도 내심 기대했으나 당시 병맛이 넘치다 못해 남아돌던 프런트에서 의지가 없었다고.
  89. 은퇴식 당일날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 인터뷰한 영상이 그 증거. 관련기사도 있다.
  90. 기존의 영구결번은 우측 외야에 큼지막하게 있었으나 구장 리모델링으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고, 크기가 상당히 줄어들었다.
  91. 장종훈의 경우는 2005년에 은퇴식이 거행되었으니 제외.
  92. 실제로 SK가 아닌 다른 팀의 팬인데도 SK 시절 갓동님을 디스하는 야구팬이 있다면 누구라도 그 사람은 SK 와이번스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할 것이다.
  93. 한화 재단에서 운영하는 고등학교. 한화 이글스 2군 유스팀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심지어 유니폼 디자인마저 한화 이글스와 비슷하다 여긴 고교야구 우승권인데 한화는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