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조선)

李薈
(1567 ~ 1625)

조선의 인물. 자는 무백(茂白). 이순신의 장남.

1567년 2월에 태어나 벼슬로는 현감을 지냈고 1592년 음력 정월에 숙부 이우신, 사촌 이봉 등과 함께 이순신을 방문했으며, 1593년 음력 5월 16일에 진중에 있다가 사촌 이해와 함께 돌아갔다가 음력 5월 23일에는 이순신에게 명나라 관원이 영문에 와서 배를 타고 온다는 것을 전했고 음력 8월 9일에는 이순신에게 할머니가 평안하고 사촌인 이염에 대한 병세에 대해 차도가 있다는 소식을 알렸다.

1594년 음력 5월 2일에는 할머니의 생신상 차려 올릴 일로 계집종과 함께 돌아갔다가 다시 왔고 19일에는 송희립과 노루 사냥을 하다가 동생 이면과 함께 돌아갔다. 음력 7월 21일에는 방자에게 곤장을 친 일로 인해 이순신에게 꾸중을 들었으며, 음력 11월 13일에는 신 첨지, 이희남, 김숙현 등과 함께 본영으로 갔다. 1595년 음력 10월 19일에는 동생 이면과 함께 떠났다가 30일에 이순신을 방문했고 음력 11월 13일에는 이희남, 김숙현과 함께 본영으로 돌아갔다가 19일에는 사촌 이분, 이봉, 이해 등과 함께 이순신을 방문했다.

1596년 음력 3월 11일에는 사촌 이해, 이완 등과 함께 여종 3명을 데리고 떠났으며, 음력 8월 4일에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한 헌수잔을 올리기 위해 동생 이면, 사촌 이완 등과 함께 떠났다. 윤 8월 9일에는 교서가 오자 김대복, 사촌 이봉과 함께 감사하는 절을 올렸다.

1597년에 이순신이 백의종군을 하면서 남쪽으로 가던 와중인 4월 11일에 할머니가 사망해 상을 당했는데, 상을 마치고 이순신이 남쪽으로 가자 동생 이면, 이울, 사촌 이해, 이분, 이완 등의 가족, 친척과 주부 변준서와 함께 천안까지 이순신을 따라갔다. 1597년 음력 9월 16일에 명량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음력 10월에는 아산으로 가서 집안 사람들의 생사를 살피러 갔다가 동생 이면이 죽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이순신을 따라 전쟁에 참전하면서 뚜렷한 전공을 세우지는 못했지만 이순신과 여러 무장에 대한 뒷바라지를 한 것이 공로로 인정되었으며, 이순신이 2품직으로 승진하면서 국법에 따라 음보를 통해 임실현감이 되었다. 통훈대부, 첨정 등을 차례로 역임하고 통정대부 좌승지에 추증되었으며, 임진왜란의 공으로 선무원종공신으로 책봉되었다.

1603년에는 어머니의 병이 중하다는 이유로 사직 또는 휴가를 청했는데, 조정에서는 도를 통해 음식을 제공하도록 했다.

2014년에 개봉한 영화 명량에서도 아버지 이순신을 곁에서 모시는 역할로 등장했는데, 이회 역을 맡은 배우의 이름이 권율이다.